성공, 그거 뭐 꼭 해야 하나요?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밀레니얼부터 Z세대까지, 지금의 젊은 세대는 더 이상 ‘노오력’하고 나를 갈아 넣어야 하는 성공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차라리 ‘나나랜드’에 살겠다는 이들에게 성공은 저마다 각기 다른 모양을 지닌다. ::비즈니스, 커리어, 커리어팁, 밀레니얼세대, 성공, 노오력, 나나랜드,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 비즈니스,커리어,커리어팁,밀레니얼세대,성공

어차피, 이번 생에 성공하긴 글렀다한때는 흔히 말하는 ‘성공’이란 단어를 들으면 속이 좀 울렁댔다. 성공하려면 내 영혼을 갈아 넣어가며 일하고,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고, 우악스럽게 기회를 탐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부족함 없이,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떵떵거리며 살 줄 알았다. 시간이 좀 지나자 더 이상 그런 감정도 느끼지 않게 됐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어차피 성공하지 못할 거란 걸 깨달았으니까. 내가 열심히 한들, 모두가 열심히 하니까 내 노력은 티도 나지 않을뿐더러 출발선 자체가 다른 사람들이 무수했다. 우리는 이른바 ‘수저 계급론’이라는 웃픈 패배주의가 만연한 시대를 살고 있었다. 많은 청춘의 공감을 사는 하완 작가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열심히 노력하면 달라질 거란 희망, 그 믿음 하나로 버텨온 세월이었다. 노력은 종교였다.” 하지만 이제는 작가도 알고 우리도 안다. 노력해서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래서 나와 내 친구들은 ‘소확행’을 외치며 매달 살뜰히 월급을 탕진하고,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살았다. 어차피 성공은 못 하니까. 솔직히 그런 맘도 있었다. ‘아싸리 성공하길 포기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니 겁나 편하구먼!’ 그러면서도 또 성공은 글렀지만 실패할 순 없어 아등바등 살았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 청년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같은 책에서 작가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에 대해 말한다. 사토리 세대는 요즘 젊은 층이 어떤 꿈이나 욕망 없이 현실에 만족하며 득도한 사람처럼 살아간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고, 욕망을 줄이고 소비에 관심이 없으며, 장기 불황으로 체득한 무력감과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은 현실 때문에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인생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그저 그렇게라도 인생을 살아내고 싶을 뿐. 그런데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든다. 성공하겠단 사람을 보면 왠지 얼굴에 욕심이 그득그득해 보여 괜히 눈을 흘기거나, 성공 말고 진정한 행복을 찾을 거란 말을 신념처럼 내뱉다가 또 실패할 순 없어 엉엉 울어대는 나는 ‘도대체 성공이 무엇인지나 알고 이 난리인가?’ 싶은 생각 말이다. 사촌 언니 A는 한때 성공에 다다르는 길을 확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학창 시절부터 누구에게도 1등을 뺏기지 않던 언니는 외고에 진학했고, 외국으로 유학을 갔고, 대기업에 취직했다. 누구나 언니가 성공했다 말했고, 이모의 어깨엔 힘이 들어갔다. 심지어 언니가 회사에 취직하자마자 이모는 결혼 상대를 알아보고 다녔다(솔직히 그건 좀 진짜 오버라고 생각했다). 몇 년 전 언니랑 몇 개월을 함께 산 적이 있는데, 하루는 언니가 잔에 소주를 콸콸 따르며 이런 이야길 했다. “너무 아파서 점심시간에 링거를 맞으러 갔단 말이야. 그런데 팀장님이 어디냐고 문자를 해서 잠깐 병원에 왔다고 했지. 팀장님이 딱 한마디하더라. ‘그래서 언제 올 건데?’ 링거 한 병을 채 못 맞고 다시 돌아갔는데, 서러워 죽는 줄 알았어.”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아, 성공하는 건 실패하는 사람의 삶만큼 아픈 거구나. 사는 건 모두에게 공평하게 힘든 거구나.’ 공평하게 힘들었던 그 언니는 그 직장을 3년 다니다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대학 동기 B는 좀처럼 얼굴을 보기 힘든 친구다. 일찌감치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기로 했는지 몰라도 B는 졸업 후 제 발로 들어간 회사를 짧게 다니고 퇴사해 아버지 회사에서 몇 년째 일하고 있다. 시간을 쪼개 만난 B에게 “일은 재밌냐?”라고 물었더니 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일에 재미라는 수식어가 어떻게 붙을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일은 그냥 일이지. 그냥 나중을 위해 오늘을 좀 참는 거야.” 또 생각했다. ‘근데 도대체 언제까지 참고 견뎌야 하지?’ 오늘의 마시멜로는 오늘 먹는다 성공과 관련한 글을 쓴다 했을 때 한 친구는 “오늘 왜 이렇게 다 성공 타령이냐”라고 말했다.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마침 남편이 <마시멜로 이야기> 오디오북을 자신에게 억지로 들려주는 중이라고 했다. 내일의 성공을 위해 오늘의 마시멜로를 참고 남겨둬야 한다는 책의 내용을 얘기하며 친구와 나는 “오늘의 마시멜로는 불에 구워 맛있게 먹어치워버리자” 했고, 그런 우리에게 친구 남편은 “그러니까 둘이 친구다”라고 핀잔을 줬다. 하여튼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베스트셀러였던 <마시멜로 이야기>가 아직도 읽힌다는 사실이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건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그 가치가 유효하단 사실이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에서 2019년을 전망한 책 <트렌드 코리아 2019>는 새로운 키워드 ‘나나랜드’에 대해 말한다. 나나랜드는 ‘자기만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사랑하고 지켜가려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말한다. 나나랜드에 살고 있는 ‘나나랜더’들은 타인의 시선, 사회의 통념에도 굴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기성세대가 의미 있다고 했던 삶에 반기를 든다. 자연스레 개개인의 다양성을 매우 중요시하며, 시대에 뒤떨어진 관습이나 획일적인 규범을 거부한다. 이렇게 나나랜드가 2019년 트렌드 키워드로 떠오르는 이유는 과거 기성세대들이 경험한 것과 같은 성공과 성취감을 얻기 어려워진 지금의 세대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궁극의 행복을 찾기 위해 ‘진정 행복한 삶은 무엇인가’에 대해 자문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래의 막연한 성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않고, 몸 바쳐 일하기보다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 성공보다 더 큰 가치가 있음을 깨달은 이들은 일상적으로 스쳐가는 보통의 것에 충실하고, 재미를 느끼며 사는 것도 충분히 값어치 있고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특별한 것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치고, 보통의 정서를 공유하고 나누며 행복을 느끼는 방식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행복감을 느끼고 미래를 가꾸는 방식은 이전 세대가 해오던 대로, 기성세대와 학교가 가르쳐준 가치관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지점은, 행복한 삶에 대한 가치가 재정립되고 있다면 성공에 대한 개념도 다시금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세대가 규정한 성공의 개념을 재고하고, 다가올 시대의 성공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오늘의 달콤함을 참아야만 내일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 말고, 오늘 참지 않고 마시멜로를 먹어도 나쁜 게 아니란 이야길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비록 내일 마시멜로가 없더라도 실패한 삶이 아니라는 논의가 가능해야 성공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할 수 있다.  단순히 좋은 커리어를 쌓고, 돈을 많이 벌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들을 지니고 사는 것이 성공이라면, 그 한 가지 명제에 닿기 위해 모두가 그토록 애쓰고, 그중 극소수만 성공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비극이다. 물론 지금껏 사회에서 ‘성공’이라 규정했던 것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성공이라는 개념은 사회 혹은 타인이 아닌 내 안에서 세워지고, 또 내 마음이 동해 그에 다다르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거다.  우리는 모두 다 성공할 수 있다얼마 전 스포츠웨어 브랜드 룰루레몬이 진행한 <Feel Good Trip 2018> 행사에 다녀왔다. 여러 프로그램 중 인상 깊었던 것은 1백여 개의 단어 중 자신에게 중요한 단어를 추리는 클래스였다. 1백여 개에서 반으로, 거기서 또 반으로 줄여나가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며 마지막에 남은 5~6개의 단어로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수업. 마지막에 자신이 어떤 단어를 최종 선택했는지 서로 보여줬는데, 각자가 고른 단어가 많이 달랐다. 누군가는 골랐지만 내 눈에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던 단어, 혹은 나 말고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던 단어도 있었다. 이렇게나 다른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같은 모양의 성공’을 바라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일까. 자신에게 중요한 기준, 또 행복의 척도가 사람마다 다르다면 성공 또한 모두에겐 다른 의미를 지닌다. 누군가에겐 두둑한 적금 통장이, 또 누군가에겐 힘들 때 전화 한 통이면 뛰어오는 친구가 성공의 기준일 수 있다. 다행스러운 건 이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사회의 통념에 앞서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법을 안다는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2019년을 맞은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이전 그 어느 세대보다 분명하게 ‘나’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할 수 있는, 아주 단단하고 건강한 자존감을 지닌 세대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성공의 개념에 대해 생각할 줄 알게 됐다. 삶은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와 같고, 우리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쓰며 살고 있다. 우리는 파도를 가르는 서핑보드 위에서 벌떡 일어나기도 하고, 또 바닷속으로 고꾸라지는 날도 있을 거다. 우리는 누구나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산다. 나만 해도 그렇다. 모아놓은 돈 하나 없는 내가 완벽한 실패자처럼 느껴지다가도 또 어느 날은 누구보다 걱정 없고 자유로우니 나만큼 성공한 인간이 있나 싶어, 이만하면 괜찮은 삶이란 생각도 든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우리는 모두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당신의 성공이 어떤 모습이어야만 하는지 알기만 한다면 말이다. 성공은, 의외로 모두에게 공평한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