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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워라밸은 안전한가요?

칼퇴 후 운동을 하거나 프랑스어를 배운다. 탱고를 배우거나 독서 클럽에 참여하기도 한다.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나 “오늘도 칼퇴 사수!”를 외치며 룰루랄라 출근하는 삶. 그래, 이것이 바로 ‘워라밸’이로구나. 근데 잠깐, 나 왜 눈물이 나지?

BYCOSMOPOLITAN2018.12.08


어느 기업은 오후 6시 ‘땡’ 하면 PC가 강제 종료된다 하고, 또 어떤 기업은 정해진 출퇴근 시간도 없이 하루 7시간만 일하면 언제든 박차고 퇴근하면 된단다. 이게 다 ‘워크&라이프 밸런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범국가적 조치다. 그렇다면 이런 기업에 다니는 모두는 행복할까? “조금만 더 정리하면 되는데 강제로 꺼진 PC 때문에 똥 덜 닦고 바지 입은 기분이야. 주말에 집에서 일 더한다니까?”(8년 차 과장 J씨) “난 근무 시간보다 근무의 질이 더 중요한데, 회사에서는 온통 경쟁으로 몰아넣고 7시간 안에 일 다 끝내라고만 하니 출근해서 진짜 컴퓨터에 머리 처박고 정신없이 일 처리만 하고 나와. 회사에 있는 시간이 너무 불행하다니까?”(5년 차 대리 K씨) 그렇다면 난 어떨까? 일단 책상 앞에 앉아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오늘은 일요일이다. 사람 만나고 취재하는 게 일이니 누군가를 인터뷰하려면 상대방의 시간에 맞춰 새벽이든 밤이든, 주말이든 연휴든 뛰쳐나가야 한다. 원고를 쓰고, 그에 맞는 사진을 고르고, 페이지에 디자인을 앉히는 모든 과정이 맞물리는 마감 주에는 야근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다른 직장인들처럼 따박따박 칼퇴가 꿈이냐고? 글쎄,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이런 상상을 한번 해봤다. 똑같은 종류의 일을 하지만, 갑자기 내일부터 ‘요이 땅’ 칼퇴 보장이란다. 주말 출근도 ‘네버 에버’ 없고, 어떤 인터뷰이든 나의 칼퇴를 위해 평일 낮에만 약속을 잡는다. 마감 시간에 쫓겨 원고를 쓰다가도 오후 6시 땡 하면 박차고 일어나기. 자, 이쯤 되면 워라밸이 성사된 삶이라고 기뻐하면 되는 걸까? 글쎄, 현실은 이렇다. 퇴근 후에도 못다 쓴 원고 생각에 괴롭고, 만나기를 고대하는 스타가 주말 밖에 스케줄이 안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전전긍긍이다. 몸은 사무실 밖을 나갔으나, 정신은 온통 회사 안을 맴돈다. 이럴 바에야 야근 좀 해서 쌓인 일 싹 끝내놓고, 한 시간을 쉬더라도 마음 편히 쉬고 싶다. 취미 생활은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나 생각해볼 일이고, 일에서 얻는 성취감이 ‘칼퇴 사수’로 얻는 내 시간보다 더 크다. 마감 땐 좀 고생해도 끝나면 남들 일하는 평일에 유유자적 쉬는 것도 꽤 괜찮다. 세상에 수많은 성격의 사람들이 있듯, 일의 종류와 작업 방식에 따라 ‘워라밸’의 정의 또한 달라야 한다. 주 40시간 근무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칼퇴가 보장된 삶이라도 회사에서의 시간이 너무 불행하다면? 퇴근 후에도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삶이라면? 수박 쪼개듯 업무 시간과 내 시간을 반듯하게 나누는 워라밸보다 기왕 일할 거 회사에서 좀 덜 불행할 방법을 강구하는 게 낫다. 칼퇴가 다가 아니라는 이들에게 맞는 워라밸은 따로 있다.


경쟁자가 아니라 동반자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가장 큰 요인은 어쩌면 일보다 ‘관계’에 있을지 모른다. 주변 친구들을 봐도 회사에서의 스트레스 8할은 사람이 원인인 경우가 많았다. 수많은 인간관계가 얽힌 회사에서 누군가는 조직형 인간으로 승승장구하는데, 나만 늘 불화하는 인간인 것 같아 괴롭다. 일을 잘하면 잘하는 대로 성취를 깎아내리려 안달 난 이가 있고, 일을 못하면 못한다고 무시당한다. 회사는 사방이 적이니 개인사나 고민거리를 털어놓는 건 남들에게 얕보이는 짓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사람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회사에 있는 시간이 불행하다면, 워라밸을 누리는 삶이라 말할 수 있을까? ‘배민’의 기업 문화를 연구한 책 <배민다움>의 저자 홍성태는 “직장이 재미있는 놀이터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해볼 것을 권한다. ‘회사 안에서 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과연 온당한 것일까?’ ‘회사 안에서 마음 둘 곳을 찾는 건 왜 순진하다고 폄하돼야 할까?’ 오늘부터 이렇게 시작해보자. 동료를 경쟁자 말고, 함께 가는 동반자로 생각하는 거다. 회사 동료는 가족보다도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가족 같은 직장 문화’가 못마땅한 당신일지라도 회사에 한 명쯤 마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왜 필요치 않겠는가? 각박한 직장 내에 일 외의 일상을 나누고 서로를 염려하는 한 사람이 있다면 회사 생활이 꼭 불행하지만은 않을 테니 말이다. 누군가 혹시 날 깎아내리지는 않을까, 내 공을 채가려는 건 아닐까 곤두선 신경도 좀 내려놓자. 경쟁보다는 동료 의식을 가지고, 일과 삶을 억지로 분리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함께 갈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워라밸은 지금보다 얼마든지 더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회사에서 작은 성취 맛보기 

여기 “워라밸은 씹어 먹는 거냐?”라고 반문하는 A씨가 있다. 10명 안팎의 작은 스타트업 회사 창립 멤버로 2년째 일하는 A씨는 깨어 있는 거의 모든 시간을 회사에서 보낸다. 회의와 미팅의 연속에다 기획부터 실행까지 그녀 손을 거치지 않는 일이 없다. 지칠 때도 많지만 그녀는 이 일이 싫지 않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더디지만 조금씩 발전하는 회사가 꼭 내 새끼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 주변의 친구들은 대부분 “요즘 같은 워라밸 시대에 누가 그렇게 일하느냐”라며, “그렇게 일하다가 네 삶은 없어질 거다”라고 경고(?)한다.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A씨는 점점 ‘이렇게 일해도 되는 걸까?’ 의문이 든다. 이처럼 전형적인 워커홀릭에게는 단순히 시간으로 나눈 ‘워라밸’이 중요하지 않다. 세컨드브레인연구소의 이임복 대표는 “이런 사람은 일하는 시간을 줄여 여가 시간을 늘리기보다는 회사 안에서도 스스로 작게나마 워라밸을 찾는 게 좋다”라고 조언한다. 프로젝트의 성공만을 위해 내 삶을 희생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더라도 나 자신을 위한 일을 회사 안에서 시도해보라는 것. 이를테면 점심 먹고 8층 사무실까지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기는 어떨까? 헬스장 갈 시간도 없는 A씨에게 매일 10분 정도 계단 오르기는 꽤나 괜찮은 운동이 될 것이다. 또 저녁 식사는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혼자, 회사 밖에서 먹는 루틴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사람들과 부대낄수록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장시간 회사 안에만 있는 A씨의 경우 잠깐이라도 바깥 공기를 쐬며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밖에도 회사 안에서 잠깐씩 짬을 내어 할 수 있는 일로 나만의 작은 성취를 맛보다 보면 워라밸은 멀리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일터 안에서도 숨 쉴 틈을 만들어볼 것.


일 얘기도 내 얘기다 

“회사 밖에서 일 얘기는 일절 금지!” 일종의 불문율 같은 이 말은 회사 사람들끼리 회식이라도 하면 꼭 나오곤 한다(그러다가도 늘 ‘기승전-일’로 끝나는 게 함정이지만). 가족이나 친구에게 회사 얘기는 절대 안 하는 걸 의무처럼 여기는 사람도 많다. 이러한 자기 검열에서도 좀 벗어나보자. 물론 ‘월급루팡’이 꿈인, 직장은 그저 스쳐가는 곳이라 아무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 이들은 제외다. 그러나 다른 대다수의 직장인들에게 일 얘기란 실은 자신의 현재 고민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반영하는, 결국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 <당신이 옳다>라는 심리학 책을 낸 정신과 의사 정혜신과 <내 마음이 지옥일 때>를 쓴 심리기획자 이명수 부부는 터놓고 대화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장성한 세 자녀를 둔 이 부부는 지금까지도 24시간을 붙어 있고,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이들은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미주알고주알 모든 이야기를 나눈다. 회사 일과 집안일을 구분하지 않고, 바깥에서 받은 상처도 안에서 나눌 수 있는 것이 곧 ‘삶의 조화’라고 말한다. 나도 그랬다. ‘바깥일은 바깥에서’라는 가부장 밑에서 자라, 일 얘기는 연인이든 가족에게든 일절 하지 않는 게 룰이었다. 회사 일은 회사 안에서 해결하는 게 워라밸인 줄 알았다. 그러나 직장 내 스트레스는 퇴근 후에도, 데이트 중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회사 일로 고민이 많을 때는 원형 탈모까지 왔다. 지금 나는 일 얘기와 내 얘기를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 회사가 괴롭힐 때는 동료끼리, 또 친구든 가족이든 붙잡고 얘기한다. 바깥일로 괜한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혼자 삭이는 것보다 고민을 털어놓고 나누는 게 좀 더 건강한 삶이더라. 일과 삶의 구분이 힘든 사람이라면 오히려 일상에서 일 얘기를 충분히 나눠보자. 주변에서 들어준다면 들어주는 사람 찾아 굳이 더 얘기해보라. 워라밸은 단순히 퇴근 후 시간 확보로만 접근할 수 없다는 이들에게는 좀 다른 워라밸이 필요하다. 회사에서건 삶에서건 결국 그 안에서 스스로 얼마나 행복을 찾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할 테니까.


 워라밸 체크리스트 

다음 6가지 경고 신호를 확인해볼 것. <내 시간 우선 생활습관>의 저자이자 미국의 심리학자인 닐 피오레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워라밸이 당신의 주도하에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말한다.

□ 목표와 가치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없다.

□ 자신감이 없고 확신이 적어 생산적으로 일하지 못한다.

□ 인생을 달성할 수 없는 의무의 연속이라고 느낀다.

□ 우유부단하고, 실수에 대해 비난받을까 봐 두렵다.

□ 성취감이 없고, 불만이 많으며, 의기소침하다.

□ 시간을 현실적으로 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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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성영주
  • 사진 Louisa Parry
  • 디자인 이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