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만큼 중요한 디지털&라이프 밸런스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기술의 진보가 우리 삶을 매우 다층적이고 획기적으로 바꿔놓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화두는 늘 한 가지뿐이었다. ‘인간이 기술을 지배할 것인가, 혹은 지배당할 것인가?’ 이제 이러한 이분법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디지털 vs 인간’이라는 구도는 좀 낡았다. 이미 우리 삶은 전방위적으로 디지털에게 지배당하고 있고, 또 그렇지 않기도 하다. 우리는 그저 지금을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단, 이토록 흥미롭게 말이다. ::라이프, 워라밸, 디지털, 인공지능, 기술,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 라이프,워라밸,디지털,인공지능,기술

하루 중 내가 가장 즐기는 시간은 잠들기 전 샤워하는 5분이다. 일주일 중에서는 일요일 밤 욕조에 몸을 담그고 반신욕을 즐기는 30분. 틈날 때마다 달려가는 수영장에서의 30분도 좋다. 물과 나는 상성이 잘 맞는 것인지, 물속에 있을 때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뇌 속 깊숙이 숨겨져 있던 기억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도 하고, 중요한 화두 하나를 붙잡고 자문자답을 하면서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이 시간들의 공통점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내 손에 스마트폰이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24시간 내내 내 곁에는 스마트폰이 있다. 잠잘 때조차 바로 옆에 있다. 자다가 잠깐 깨서 메일과 슬랙(Slack, 비즈니스용 메신저)을 확인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 알람 시계 역할도 하기 때문에. 이 정도면 스마트폰은 내 몸의 일부와 같다. 몸 중에서도 눈과 귀 같은 정보 흡수 채널, 그리고 뇌와 같은 저장 장치 역할을 두드러지게 수행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마트폰을 떠나 있는 물속에서의 시간이 나의 뇌가 스마트폰에게 뺏겼던 본연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하루 동안 흡수했던 온갖 정보들을 끌어모아서, 이어 붙이고, 해석하고, 결론을 내린다. 스마트폰이 없는 동안 나는 맨몸으로 가동할 수 있는 능력치를 최고로 끌어올리는 느낌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활자 중독자라, 콘텐츠를 소비하는 매체는 읽기(text)>듣기(audio)>보기(video)의 순으로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이는 내가 콘텐츠를 몰입하여 소비하기 시작한 10대 시절의 취향이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집에는 내가 태어난 후 매일 아침 종이 신문이 배달됐고,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는 훌륭한 공립 도서관이 2개나 있는 데다, 아파트 단지 상가에는 만화책 대여점도 있었다. 도저히 즐겁지 않았던 초·중·고 시절, 부모님은 내가 신문을 읽든 만화책을 읽든 상관하지 않았고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나는 기본적으로 ‘읽는 인간’으로서 세계를 배워왔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온종일 카세트 플레이어를 끼고 살았다. 글자를 잘 읽지 못했던 그때의 나는 카세트 플레이어에 한국 전래 동화, 세계 명작 동화 등의 테이프를 넣고, 늘어지게 듣고 또 들었다. 유년 시절의 상상력을 발동하게 만들어준 모든 이야기들을 나는 귀로 먼저 접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귀로 접하는 정보 방식도 무척 좋아한다. 아이폰이 한국에 들어오고 팟캐스트 앱을 가동시켜 보면서 나는 신세계를 접했다. 전 세계의 지식이 오디오로 생생하게 쌓여 있었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언어는 한국어와 영어뿐이지만, 이 두 가지 언어로 만들어진 오디오 콘텐츠는 지난 10년간 숱하게 들었고, 지금도 여전히 즐겨 듣는다. 제일 많이 듣는 시간은 역시 출퇴근길이고, 밤에 조깅을 하거나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할 때도 듣는다. 이 시간 동안 내 귀 속에는 실리콘밸리 창업자들의 성공과 실패 이야기도, 골드만삭스와 <파이낸셜 타임스>의 인터뷰도, 한국 경제의 위기를 진단하는 전문가들의 대담도 끊임없이 흘러 들어온다. 작년 초에 나 자신에게 생일 선물로 주려고 주문해서 6주 만에 도착한 에어팟은 귀에서 떨어질 틈이 없다. 토요일은 침대 밖을 거의 나가지 않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한 주의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나면 토요일은 나를 충전기에 꽂아놔야 하는 시간이고,  그 충전기는 이불 안에 있다. 토요일 중 눈을 뜨고 있는 시간에는 영상을 본다. ‘넷플릭스’와 ‘왓챠플레이’로 드라마와 영화의 세계에 뇌를 맡긴다. 둘 다 거실에 있는 대형 TV에 ‘크롬캐스트’로 연결해두었기 때문에, 영상을 제대로 보려면 거실에 나가서 보거나, 그도 귀찮으면 이불 속에 그대로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본다. 작년부터 넷플릭스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극장에 가는 일은 크게 줄었다. 이건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주변에서 강권하는 영화가 아니고서는, 티켓 예매하고 옷 챙겨 입고 극장까지 가고 오는 과정 자체가 수고처럼 돼버렸다. 이전에는 매일 밤 자기 전에 챙겨 봤던 요일별 웹툰을 요즘엔 주말에 몰아서 본다. 책들도 (읽는 속도보다 구입하는 속도가 훨씬 더 빠르지만) 침대에서 읽는다. 밑줄 긋고, 눈물 흘리고, 중요한 구절을 사진 찍어 공유하고,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도 간단한 리뷰와 함께 올린다. 이 시간은 인스타에서 봐두었던 옷을 몰아서 쇼핑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주말, 내 이불 안은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최고의 환경이다.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시간에는 일을 하고 있다. 어떤 일이냐 하면, ‘일하는 사람의 콘텐츠 플랫폼’을 만드는 일을 한다. 쉽게 말해, 소비자 입장에서는 ‘지식 콘텐츠의 넷플릭스’로 다가가서 미칠 듯이 빠르게 돌아가는 이 세계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는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고, 우리 사회 전반의 관점에서 보자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적 인프라를 21세기에 맞게 새롭게 구축하는 일을 한다. 우리 고객의 귀중한 24시간 중 ‘퍼블리(PUBLY)’는 어느 시간을 꽉 붙잡아야 할 것인가, 그렇게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물속에서, 길 위에서, 침대 안에서를 제외한 나의 모든 시간은 여기에 쓰인다. 다른 여력은 없다. 작년 연말에 감동적으로 읽은 책,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에서 피아니스트 번스타인은 “일과 자신이 하나로 통합된 경지의 삶을 추구하는 90년 평생을 살아왔다”고 한다. ‘워라밸’이 당위처럼 쓰이는 요즘이지만 나는 이 말도 시간에 따라 정반합의 과정을 거칠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말하듯, ‘Work and Life Harmony’ 혹은 ‘Work and Life Integration’이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고 여기에서 기쁨을 느끼면서 성장하고 성공하고 싶다. 글 박소령(‘퍼블리’ 대표) 신문과 잡지, 책과 만호, 영화와 드라마, 트위터와 페이스북, 블로그와 온라인 게시판을 가리지 않지만, 까다롭게 골라 보는 눈 높은 콘텐츠 중독자다. ‘일하는 사람들의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