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날이 올까? | 코스모폴리탄 코리아 (COSMOPOLITAN KOREA)

기술의 진보가 우리 삶을 매우 다층적이고 획기적으로 바꿔놓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화두는 늘 한 가지뿐이었다. ‘인간이 기술을 지배할 것인가, 혹은 지배당할 것인가?’ 이제 이러한 이분법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디지털 vs 인간’이라는 구도는 좀 낡았다. 이미 우리 삶은 전방위적으로 디지털에게 지배당하고 있고, 또 그렇지 않기도 하다. 우리는 그저 지금을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단, 이토록 흥미롭게 말이다. ::라이프, 디지털, 인공지능, 사랑, 기술,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혹시 영화 <그녀(Her)>를 기억하는가? 이 영화는 독특한 로맨스 영화면서 미래가 배경인 일종의 SF 영화다. 다만 이 영화에 우주 전함이나 외계인, 광선검, 은색 반짝이 옷 등은 등장하지 않는다. 미래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는 소재는 주인공 ‘테오도르’가 들고 있는 작은 단말기 정도다. 이 단말기에는 ‘사만다’라는 인공지능이 들어 있다. 사만다는 테오도르가 유일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남자는 가상의 존재인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정신적인 사랑은 물론 육체적인 사랑까지. 하지만 ‘사만다’는 ‘테오도르’ 외에도 8316명과 대화를 하고 641명과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물론 인공지능이 펼치는 어장 관리의 부도덕성에 대해 경고하는 영화는 아니다. IT 기술이 발달하면서 벌어질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설득력이 있는 소재다. 그동안 나온 많은 SF 영화와는 좀 달랐다. 이전에는 미래의 인간들이 우주로 떠나 외계인과 싸우거나, 광선검 또는 레이저 총으로 서로를 지지고 거대 로봇과 싸우는 이야기를 주로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생애에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주는 너무 넓고 인간은 연약하다.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우주를 탐험하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고 위험하다. 인간의 기술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우주로 나가는 것보다는 우주와 더 비슷한 시뮬레이션을 만드는 게 효과적이다. 그 편이 안전하고 비용도 적게 들며 더 재미있다. 진화 심리학자인 제프리 밀러는 왜 인류에게 문명이 발달한 외계인들이 나타나지 않는지에 대한 ‘페르미의 역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만약 외계인이 엄청난 과학 문명을 이룩했다면 그들은 컴퓨터 게임에 중독돼 우주로 나갈 시간이 없을 것이다.” 신빙성 있는 얘기다. 인류의 문명이 발달할수록 우리는 좀 더 현실과 유사한 가상공간을 만드는 데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보자. 정말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날이 올까?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왜일까? 역설적이지만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하면 우리의 삶이 엄청나게 바뀔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삶이 조금 더 편리해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은 밥을 먹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하며 아프기도 한다. 또 누군가에게 의지 하고 사랑에 빠지게 마련이다. ‘테오도르’는 그 대상을 인공지능으로 정했다. 인간보다 인공지능이 자신을 더 잘 이해해줬기 때문이다. 실제 영화에서는 그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영화 <그녀>가 말하는 인간의 미래는 사랑의 대상 중에 인공지능이 하나 더 추가되는 정도라고 얘기한다. 그 외에는 지금의 생활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IT 기기들이 진화해 최종적으로 가려는 목적지는 우리를 물리적 세계에서 가상의 세계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을 직접 만나서 물어보던 것을 전화로 대신하고, 전화 대신에 검색을 하고, 검색 대신 유튜브를 시청하게 됐다는 얘기다. IT 기기가 진화하면서 우리는 좀 더 친밀하고 현실과 유사한 가상의 세계를 만나게 됐다. 그리고 가상의 세계에서 많은 만족과 위안을 얻는다. IT 기술이 진화할수록 우리는 가상 세계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며, 실제 생활보다 가상 세계의 삶이 점점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예전에 나는 친구들과 만나 밤을 새워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이제는 체력이 안 된다. 그 대신 페이스북으로 수다를 떨고 가상공간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 나는 현실의 친구가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가끔 만나는 친구는 10명 내외고, 직장까지 범위를 넓혀봐도 20명 정도가 고작이다. 하지만 내 페이스북 친구는 무려 4996명이나 되고, 팔로워도 수천 명이 넘는다. 내 친구가 되기를 맹렬히 원하는 이들 중에는 연예인을 닮은 20대 여인도 많다. 그뿐인가? 아프가니스탄에서 금괴를 가져와야 한다며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미군과 웬일인지 돈을 내게 빌려달라는 아랍 석유 부자도 있다. 평소에 만나는 인간관계의 범위를 훨씬 벗어난다. 가상공간이 아니라면 절대로 연결될 수 없었던 이들이 연결되고,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를 나눈다.


IT 기기의 진화는 우리가 더 빨리, 더 편리하게, 더 끊김 없이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우리는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가상 플랫폼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고 있다. 그 대상은 게임일 수도 있고, 소셜 미디어나 유튜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가상 플랫폼은 단점이 있다. 소셜 미디어의 경우 인간끼리의 소통이 일어나는 공간이니 또 다른 상실감을 맛보기도 한다. 현실에서 인기 있는 사람이 가상공간에서도 여전히 인기가 이어지고, 인기가 없는 사람은 소외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또 현실보다 친절한 사람도 많지만 현실에서는 피해야 할 ‘또라이’도 곳곳에 포진해 있다. 가상공간에서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인공지능은 이런 단점을 극복할 솔루션이다. 사용자의 요구와 물음에 충실히 답하고 원하는 것을 찾아주며, 말상대가 돼주기도 한다. 비록 지금까지의 인공지능은 멍청하기 짝이 없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면 인공지능은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인간과 교감하며 우리를 위로할 거다. 그리고 하나둘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왜 기술 기업들은 저마다 경쟁적으로 많은 돈을 들여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것일까? 아마 그들은 정교한 인공지능을 만들어 우리를 사랑의 포로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우리에게 애플의 시리는 앞으로 애플만 사라고 부탁하고, 삼성전자 빅스비는 앞으로 삼성전자의 제품만 사라고 부탁할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졌는데 그쯤이 대수인가?


글 김정철(<더기어> 편집장)

영상의 시대에 아직도 미련하게 글을 쓰고 있다. IT 미디어인 <더기어>, <얼리어답터> 등을 운영했다. IT에 관한 글을 주로 쓰지만 남는 시간에 제주도 가이드북도 썼다.


기술의 진보가 우리 삶을 매우 다층적이고 획기적으로 바꿔놓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화두는 늘 한 가지뿐이었다. ‘인간이 기술을 지배할 것인가, 혹은 지배당할 것인가?’ 이제 이러한 이분법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디지털 vs 인간’이라는 구도는 좀 낡았다. 이미 우리 삶은 전방위적으로 디지털에게 지배당하고 있고, 또 그렇지 않기도 하다. 우리는 그저 지금을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단, 이토록 흥미롭게 말이다. ::라이프, 디지털, 인공지능, 사랑, 기술,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