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 농락당한 당신에게 | 코스모폴리탄 코리아 (COSMOPOLITAN KOREA)

자기 주도적 연애는 누구나 꿈꾸지만, 우리는 늘 연애에 농락당한다. 당신처럼 쿨하지 못해 힘들어본 누군가가 건네는 짧은 위로의 글이다.::연애, 자기주도적연애, 의존적연애, 연애팁, 사랑, 러브,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알 게 뭐야?” 입버릇처럼 내뱉는 이 ‘쿨병’의 시작은 대학 2학년 즈음, 첫 연애를 하면서부터였다. 학생회 활동으로 만난 그는 외모 말끔하고 운동도 잘하던 총학생회장 선배. 깨알 유머 장착했는데 순정파이기까지 한 그는 지금 생각해도 거의 ‘만찢남’이었다. 어느 날 귀갓길에 그가 굳이 자신과 반대 방향인 내 쪽으로 따라오더니 “잠깐, 가지 말아봐. 할 말 있어”라며 날 붙잡았다. 지하철을 5대나 보내는 동안 입도 벙긋 못 하던 그가 6대째 안내 음성이 나올 때쯤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 너… 좋… 좋아해. 우리 만나보자.” 나는 ‘맙소사, 저도요!’라는 외침을 간신히 누른 채 짐짓 쿨한 척 웃었다.

연애는 그러나 순탄치 않았다. 총학생회장은 늘 바빴다. 학교와 학우가 최우선이었고, 나는 내내 쿨한 척 ‘오빠가 먼저 좋아한댔잖아’를 주문처럼 외워야 했다. 진짜로 쿨하게 모든 걸 포용하는 여친이…면 오죽 좋았겠냐만, 나는 그와 매분 매초 같이 있고 싶어 안달이 난 쪽이었다. 일주일에 하루도 제대로 데이트 못 하는 현실에 짜증이 났고, 그와 함께 있지 못해 서운해하는 나를 맞닥뜨리는 것도 자존심 상했다.


늘 미안해만 하는 남친도 싫고, 그가 언제 짬이 날까만 기다리며 ‘5분 대기조’가 된 나도 싫었다. 근 일 년의 내적 갈등 끝에 마음을 굳혔다. 그에게 얽매여 남 탓만 하며 살 수는 없었다. 내 삶을 더 주도적으로 살아내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나는 당시 하고 있던 동아리 활동을 전보다 훨씬 더 열심히 했다. 동아리 회장까지 되면서 학교 생활이 한층 더 바빠졌다. 그 바쁜 남친이 잠깐 짬이 났다는데 내가 바빠 약속을 미룰 땐 묘한 쾌감도 느껴졌다. 내가 보채지 않게 되자 그는 전보다 더 노력했다.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주도적 연애’란 결국 허상이라는 걸.

좋은 연애란 권력의 우위에 서서 상대를 쥐락펴락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삶을 건강하게 살아내는 토대 위에 시작된다는 걸 말이다. 그의 회장 임기가 끝날 때쯤 나는 어학연수를 결심했다. 곧 그와 알콩달콩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발목을 잡았지만, 또다시 그에게 매여 보채게 될 내가 싫었다. 각자의 미래를 위해 각자 노력하는 시간을 보내며 7년 동안 연애를 이어갔다. 결과적으로 이런 저런 이유와 상황들 때문에 그와는 헤어지게 됐지만, 나라는 사람을 성장시킨 8할이 지난 7년의 연애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난 이후로 지금껏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와도 밀당 따위 안 한다.


보고 싶으면 불러내고, 보러 가겠다며 달려간다. 소개팅에서 괜히 좋아하지도 않는 파스타 먹으면서 입 가리고 웃기보다는 “우리 그냥 곱창에 소주 한잔하러 갈래요?”라고 먼저 제안한다. ‘아님 말고, 알 게 뭔가?’ 정신! 반대로 내게 중요한 일이 있거나 내 몸이 힘들 때는 다른 핑계 대지 않고 솔직히 거절도 잘한다. 늘 내가 우선이라 크게 흔들릴 일이 없다.

물론 연애라는 게 처음부터 ‘워라밸’처럼 반듯하게 균형을 잡을 수는 없는 일이다. 원래 연애란 삶에 균열을 내며 격렬하게 시작되는 법이니까. 그러나 그렇게 시작된 연애라도 결국 각자의 삶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밀당하는 법? 그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속여가며 상대를 자꾸 시험하는 연애는 상대는 물론이거니와 스스로가 버텨내지 못한다. 궁극적으로 나한테는 내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그게 연애도 삶도 좀 더 쿨해질 수 있는 방법 아닐까? “아님 말고, 알 게 뭐야?”


About 용감한자매들 낮에는 출판사 에디터, 밤에는 필명으로 인터넷에 소설을 연재하는 생계형 작가. 숱한 연애 경험에서 우러나온 ‘전지적 언니 시점’의 현실 조언이 담긴 칼럼과 연애소설을 쓴다. 2030 여자들의 평생 연애를 지지하며 오늘도 연애에 몰두하는 연애주의자.

자기 주도적 연애는 누구나 꿈꾸지만, 우리는 늘 연애에 농락당한다. 당신처럼 쿨하지 못해 힘들어본 누군가가 건네는 짧은 위로의 글이다.::연애, 자기주도적연애, 의존적연애, 연애팁, 사랑, 러브,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