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그런 남자였어?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몰라서 그랬다.” “모든 남자가 잠정적 가해자는 아니다.” 그래, 이해한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좀 달라져야 한다. 몰랐다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남자는 스스로를 향해, 또 서로를 향해 물어야 한다. 너도 ‘그런’ 남자였냐고.::남녀, 관계, 커플, 러브, 관계팀, 미투, 성희롱, 팁,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 남녀,관계,커플,러브,관계팀

요즘 어디 여자들 무서워서 집밖에 한 발짝이라도 나가겠나….“미투 앞에 장사 없다.” 요즘 남자들이 한탄처럼 내뱉는 말이다. 연예계와 방송계, 정치, 문화, 교육 등 거의 산업 전반에 걸쳐 수많은 폭로가 이어지고 있고, 회식이니 술자리니 아예 갖지도 않는 게 상책이라며, 남자들 사이에서는 “집 밖으로 나가지도 말아야 한다”라며 문제가 될 ‘싹’을 자르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속내에는 ‘편하게 살긴 글렀다’는 일말의 ‘억울함’이 읽히기도 한다. 작년 10월부터 시작된 #미투 운동이 어느덧 반년을 넘어가고 있다. 그동안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의 범위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넓고 크다는 것. ‘설마 저 사람까지?’라며 선을 그었던 ‘좋은 남자’의 현실만 봐도 그렇다. 젠틀하고 반듯한 이미지의 정치인 안희정, 세상 좋은 아저씨 같던 배우 오달수, 모범적인 가장의 전형 김생민까지 성폭력과 성추행, 성범죄의 가해자가 됐다. “과연 좋은 남자는 어디에 있다는 말이냐?”라는 질문만이 메아리처럼 남는다. 칼럼니스트 위근우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그 남자의) 모든 게 가식이라기보다는 김생민처럼 꽤 모범적인 남성조차 조직 구조 안에서 자신보다 약자인 여성 앞에선 한 줌의 권력을 휘두른다고 보는 게 맞다.” 좋은 남자, 나쁜 남자에 대한 판별은 이제 가능하지도 않은 데다 무의미하다. 남자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미투 이후의 남성 문화는 두 갈래로 나뉠 것이다. 그저 모르는 체 눈감는 남자와 용기 있게 질문하는 남자. 당신은 과연 어느 쪽인가? 미국의 전 부통령이자 ‘It’s on us(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의 창립자인 조 바이든의 이 말처럼  말이다. “남자들도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비하하는 대화가 시작될 때, 대화를 중단할 의무가 있어요. 성추행당한 직장 동료를 봤을 때는 앞으로 나서야 합니다. 남자들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추행 현장에서 ‘내가 학교, 동아리 형제들, 팀원들에게 충분히 따지고 있는가?’라고. 남자들은 스스로 자신이 어떤 남자가 되고 싶은지 물어봐야 합니다.” ‘남톡방’에 대처하는 자세 “걔는 다리가 끝내주던데?”, “이번 신입은 온 지 몇 달 됐다고 남자가 수도 없이 바뀌더라? 침대에서 끝내주나 봐?” 학교나 직장 내 ‘남톡방’에서 실제로 오간 대화다. 얼마 전 연세대학교 남톡방 사건으로도 널리 공개된 내용도 다르지 않다. “○○학번 다들 이뻐. ××학번의 3.75배”, “근데 그 정도 섹드립도 안 되냐. 여자애들이 ㅂㅅ도 아니고 알 거 다 알지 않냐”, “민감한 애들은 민감함. 이 톡방의 존재 이유지. ㅋㅋ” 남자는 항변한다. 실질적인 피해를 입힌 것도 아니고, 남자끼리 지극히 사적인 얘기를 한 건데 뭐가 문제냐고. 그렇게 물은 당신에게 다시 묻고 싶다. 너도 ‘그런’ 남자였어? 연세대 남톡방이 세간에 알려진 건 같은 채팅방에 있던 남학생의 내부 고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는 한국에서 남성으로 살아간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여러 곳에서 남톡방이 공론화될 때 남자 동기들이 보인 반응은 ‘단톡방이 불편해서 큰일이네’와 같이 불편해 하는 내가 이상하다는 반응이었다.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기 위해 필요한 건 불편함과 예민함이라고 그 친구들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이후 인터뷰에서도 그는 말했다. “타인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혐오 발언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눈치를 봐야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지치지 않고 끝없이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단호하게 ‘싫다’고 말하고 행동해야 사소하게 여겼던 문제를 직시할 수 있다.” 이제는 가담하지 않은 것이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변화를 위해 필요한 건 소극적 방조가 아니라, 적극적인 문제 제기다. 이런 대화는 하지 말자고 나서서 저지하는 용기, 이게 왜 잘못됐는지 환기시키려는 노력 말이다. 숭고한 성인군자가 될 필요도 없다. 당신은 여전히 쿨한 남자로 “야, 아무리 우리끼리라도 이런 얘기는 하지 말자”, “이것도 언어 성폭력이야”라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런 남자가 훨씬 더 섹시하다.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아니다? 얼마 전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보며 매우 불편했다. 주인공인 손예진이 직장 회식 자리에서 남자 상사에게 러브샷을 요구받고, 노래방에서도 불쾌한 스킨십을 당하고도 참고 맞춰주는 장면. 주변에서도 누구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더러워서’ 피하는 사람들. 여자로서 너무 익숙한 현실이라 눈으로 확인하기 싫었다. 쓴소리 천국인 SNS에서는 “때가 어느 땐데 아직도 저런 장면이 버젓이 TV에 나와?” 하며 몰매 맞을 일이지만, 한 발짝만 현실로 나오면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피해와 가해의 당사자를 넘어,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목격자가 있다. 아직도 #미투의 가해자는 늘 다른 사람일 거라 생각하고, 성범죄는 내 주변 말고 저기서 일어나는 일이라 착각하는 남자가 많다. 성희롱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국민의 반(49.6%)인데, ‘내 직장, 내 주변의 심각한 문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3.2%에 불과하다는 설문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의 78.4%가 “참고 그냥 넘어갔다”고 답했다. “좋지 않은 소문이 날까 봐”(51.9%), “고용상 불이익을 당할까 봐”(35.9%), 또 “처리 과정 중 정신적인 스트레스 때문에”(34.3%), “회사가 무시할 것 같아서”(19.9%), “문제 제기로 따돌림당할까 봐”(18.8%) 참고 또 참았다. 목격자 중심의 성폭력 예방 교육안을 만든 권김현영 성공회대학교 외래 교수는 “목격자가 ‘뭐 하는 거냐’, ‘내가 보고 있다’고 개입하는 것이 성폭력을 중단시키는 효과적이고 빠르고 실질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고발해 승소한 A씨는 “한 명만 있으면 된다. 상대에게 잘못했다고 말해주고,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 단 한 명만 있어도 이 싸움은 이긴다”라고 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 한 명이 필요한 것이다. 남자의 적은 남자가 될 차례다. 2차 가해는 ‘아무나’ 한다 남자 친구와의 성관계 영상이 있었다. 나중에 남친이 그걸 친구들과 돌려 봤다는 걸 알았다. 남친은 헤어진 후에 영상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 100만 명 넘는 사람이 그 영상을 다운받아 봤다. 자, 여기서 개새×는 누구일까? 남친을 포함해 영상을 돌려 보던 남친의 친구들, 영상을 다운받아 본 100만 명까지 모두가 공범자다. 실제로 2016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피해 여성은 이사를 하고 이름을 바꿨지만 온라인상에서 도는 자신의 영상 때문에 정신적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결국 자살을 선택했다. 1차 가해는 남친이 저질렀지만,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수많은 2차 가해자다. 낄낄거리며 돌려 본 친구들, 포르노 보듯 다운받아 본 100만 명의 사람. 이들은 그게 피해 여성에게 얼마나 가혹한 가해인지도 모른 채, 혹은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2차 가해를 저질렀다. 친구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이건 네 여자 친구에게 성폭력을 저지르는 일이나 다름없다”라고 충고했다면 어땠을까? 다운받아 보는 행위로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짓밟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지금, 당신이 그 한 명의 남자가 될 수 있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같은 성희롱 다른 대처 남자들 사이에서는 요즘 이런 얘기도 돈다. 피해자가 정확한 증거를 제시하기 전까지는 절대 아니라고 발뺌하라고. 성희롱을 인정하는 순간 범죄자로 낙인찍히니 피하고 보자는 식이다. 기업 대상으로 성추행 예방과 해결 방법을 교육하는 ‘엠트레인’의 부회장 패티 페레즈는 “남자들은 성추행에서 ‘성적인’ 요소에 집착하며 ‘내가 ○○을 성추행했다는 건 불가능해. 난 그녀에게 끌리지 않았어’라고 말한다”고 했다. 끌리지 않았으니 성희롱할 리가 없다는 발상이다. 그럼 끌리면 성희롱을 해도 된다는 ×소리인가? 일본의 여성학자 무타 가즈에는 남성들에게 “성희롱이라고 인정하는 것만으로 범죄자가 되지는 않는다”라고 매우 ‘친절히’ 알려준다. “(여성들이 보내는) 옐로카드에 민감해지고 솔직해지자. 눈치 못 채서 미안했다고 순순히 사과하고 그런 말과 행동을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인정하고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강제 추행이나 강간 같은 일부 악질적 행위를 제외한다면 성희롱을 인정한다고 바로 유죄가 되지는 않는다. 부디 과잉 반응이나 적반하장으로 사태를 악화시키지 말고, 냉정하고 성실하게 대응하자. 사과하고 시정하면 된다. 다 지켜보고 있다. 끝까지 잡아떼는 게 누군지. 누가 10~20년 전 일이라도 즉각 사과하며 반성하는지 말이다. 같은 성희롱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