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와서 '같이' 자자고?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상대의 언어를 짐작대로 해석하는 일이야말로 오만한 권력이다. 모든 폭력이 거기서 비롯된다.::언어, 해석, 폭력, 태도, 라이프, 컬처,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 언어,해석,폭력,태도,라이프

대학에서의 마지막 여름. 가깝게 지내던 여자 후배와 밤 11시 즈음 만났다. 다른 친구와 술을 한잔 마시고 들어가던 길이었다. 주고받은 문자 몇 통에 이은 전화 한 통의 말미, 후배가 살갑게 말했다. “그럼 오빠, 저 지금 번역하고 있는데 저희 집에 와서 기다리실래요? 금방 끝나니까 다 하고 한잔해요. 대신 올 때 오렌지 주스 한 통만 사다 주세요. 집에 보드카 있어요.” 오렌지 주스랑 아이스크림을 사서 후배의 집으로 갔다. 후배는 컴퓨터 책상 앞에서, 나는 바닥에 앉아 오렌지 주스와 보드카를 섞어 마셨다. 그때 듣던 노래가 블러였나, 스트록스였나? 어쨌든 영국식 악센트가 짙은 노래를 연달아 들으면서 그만 쿠션을 베고 모로 누워 잠들어버렸다. 후배의 기척에 깼을 땐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전혀 몰랐다. ‘이 새벽까지 숙제를 했구나. 피곤하겠다’ 생각하곤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후배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나를 불렀다. “오빠, 오빠?” “응?” “올라와서 같이 자도 돼요. 거기 불편하지 않아요?” 나는 바닥에 누워 있다가 상체만 일으켜 침대 위에 있던 후배의 발목을 잡고 말했다. “○○아, 나 너무 믿는 거 아니니?” 글로 쓰면 좀 무표정하고 진지하게 들리지만, 이 말을 주고받는 순간의 우리 둘 사이에는 ‘ㅋ’가 참 많았다. 청했던 후배도, 굳이 몸을 일으켜 심지어 발목을 잡고 그런 말을 했던 나도 좀 웃긴 상황. 아침에 깨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후배한테 전화가 왔다. “오빠, 다 놓고 가셨어요. 모자랑 지갑이랑.” 찾으러 갔더니 후배가 짓궂게 말했다. “설마 일부러 놓고 간 건 아니죠? 또 오려고.” 멋쩍고 어색하기도 해서 되레 명랑하게 인사하고 돌아 나왔다. 여기까지가 그날 밤 이야기의 전부다. 친구는 혀를 차며 “침대에 올라오라고 한 건 섹스하자는 뜻이었다”라고 확신했다. 나보고 “바보”라며 연민하던 친구는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 될 수도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선배는 여자가 먼저 제의했는데 거부했으니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른다고 분석했다. 정말 그랬을까? “올라와서 자도 좋다”라는 말에 이어지는 여러 가지 상황을 상상해봤다. 나란히 누워 마주 보다 팔베개, 키스, 애무를 차례대로 거치는 와중에도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았다. 같이 가빠진 숨, 가늠할 수 없는 흥분의 복판에서도 ‘어라, 이건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파고들 틈이 무수했다는 뜻이다. 한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는 게 섹스에 대한 직유일 수 있나? 정말? 심지어 은유도 아닌 것 같았다. 올라와서 자도 좋다는 말은 그냥 말 그대로 올라와서 자도 좋다는 뜻이라는 걸 그때도 알았다. 지난 10여 년의 모든 경험을 보태 다시 가정해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이 섹스와 이어지는 것 같지 않았다. 최초의 신호가 빈약했으니 나머지는 과도한 해석이었다. 사람은 그대로 하나의 우주, 관계는 우주끼리의 충돌이라고 믿는다. 그 와중에 상대의 언어를 짐작대로 해석하는 일이야말로 오만한 권력 같았다. 모든 폭력이 거기서 비롯됐다. 생소한 행성을 여행할 땐 무턱대고 용맹하기보다 살얼음판 위를 걷듯 조심스러운 태도를 차라리 귀하게 여긴다. 잘 모르겠을 땐 손 들고 질문을 하는 겸양이 곧 지혜라고 배웠다. 몸과 섹스를 둘러싼 구시대의 폭력과 판타지는 좀 더 무너져야 한다. 마침 좋은 시대니까 직접 나서서, 아주 섬세하게 박살을 내는 편이 낫겠다. 진보야말로 예민한 사람의 몫이고, 세상을 움직이는 건 은유가 아니니까. About  정우성 <레이디경향>과 <GQ> <에스콰이어>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다. 한국과 당신, 우리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쓴다. 리뷰 미디어 더파크(www.thepark.co.kr)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