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선은 어디까지일까?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엊그제 술자리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낯선 그와는 말이 참 잘 통했고, 금세 ‘남사친’처럼 편해졌다. 지금 내가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은 남친 말고 엊그제 만난 그다. | 바람,술자리,남사친,연애,사랑

Stage1  둘이서 한잔 더 할래요? A에게는 3년 된 남친이 있다. 이보다 안정적일 수 없을 만큼 서로에 대해 잘 알고, 굳이 말로 안 해도 마음을 안다. 사사건건 참견하거나 부딪히는 일 없이, 곁에 듬직하게 있어주는 남자. 그와의 관계에선 더 바랄 게 없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났다. 대학 동기 모임 중간에 친구의 남친이 합류했는데, 그가 자신의 친구 K를 데리고 왔다. 여자들만의 거칠 것 없이 편했던 술자리가 묘한 긴장과 설렘으로 탈바꿈한 순간. K는 젠틀하고 유쾌했다. 자기 잘난 척에 혈안인 남자 말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잘 듣고 과하지 않게 자기 생각을 덧붙여 맞장구쳤다. A는 어느새 조금씩 느꼈다. 그의 맞장구가 유독 자신에게 쏠려 있다는 것을. K는 아주 매력적이었다. 2차로 옮겨가는 와중에 친구와 친구 남친이 먼저 자리를 떴다. K는 홀로 술자리에 남았다. 대화는 술과 함께 더욱더 무르익어갔다. 술자리가 마무리되고, K와 A는 우연히 지하철역까지 함께 걷게 됐다. 역사로 들어서기 직전, 그가 말했다. “좀 아쉬운데, 둘이서 한잔 더 할래요?”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신이 상상하는 ‘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그날은 말이다. 잠깐의 설렘, ‘나 아직 건재(?)하구나’ 하는 자기 위안으로 끝났다면 문제될 것도 없다. 그러나 A는 K와 단둘이 3차를 갔다. 그녀는 불현듯 찾아온 설렘을 좀 더 즐기고 싶었던 것뿐이라고 항변한다. 이건 영락없는 ‘마이크로치팅(micro-cheating)’, 즉 사소한 바람의 ‘사인’이다. 미국의 관계 치료사인 태미 넬슨 박사는 “마이크로치팅은 애인과 얽힌 관계 말고, 다른 이에게 작은 애정을 느끼거나 그러한 행동을 할 기회가 있을 때 일어난다”라고 설명한다. 적극적인 양다리는 아니지만, 서로 호감을 느끼는 상황을 즐기며 애인 모르게 ‘썸’ 타는 관계. 코스모 에디터들에게도 물어봤다. “애인을 두고 다른 남자에게 끌린 적이 있나?” 단 한 명을 빼고는 모두 “있다”라고 답했다. 나이 고하, 결혼 유무 상관없이 각자의 ‘선’을 넘지 않는 한에서 대부분이 ‘마이크로치팅’의 상황을 맞닥뜨린 적 있다는 것이다.Stage2  그의 연락이 기다려진다 다시 그날로 돌아가보자. A는 그날 일에 대해 남친에게 굳이 말하지 않았다. 일찍 들어가서 씻고 잔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걱정되니까 도착 문자는 꼭 보내달라던 K에게 도착 사실을 알렸다. 바로 답장이 왔다. “잘 들어갔다니 다행이다. 오늘 난 잠이 잘 안 올 것 같아요. ○○ 씨는 부디 잘 자요.” 불 꺼진 방에 누워 K의 문자를 보고 또 봤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게 얼마 만인가?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는 동시에 남친 얼굴이 떠올랐다. 그에게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다. 죄책감에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뭐. 괜히 알려서 신경 쓰이게 할 필요 없잖아.’이제부터다. 그저 ‘악의 없는 일탈’로 끝날지, 혹은 ‘별일’을 저질러버릴지는. 마이크로치팅은 문제 없이 잘 지내던 커플에게도 문득 찾아오고, 반대로 너무 아무 문제가 없어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좋은연애연구소 김지윤 대표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다른 사람 때문에 흔들리는 지금이야말로 연인과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다”라고 조언한다. 이럴 때 연인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오히려 위태위태한 관계를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운명이라 믿었던 사랑이 무너졌을 때>의 저자인 제니스 A. 스프링 박사는 “때때로 마이크로치팅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 것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자신의 모습에 이끌리는 거라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매일 비슷한 데이트, 설렐 일 없이 무던한 연애 와중에 ‘나도 여전히 매력적인 사람이구나’ 느끼게 해준 해프닝. 대신 김지윤 대표는 “이에 대해 남친과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다”라고 말한다. “나 사실 얼마 전에 다른 사람한테 좀 흔들렸다? 자기는 그런 적 없어?”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어내보자. 그 역시 안일했던 자신을 돌아보고, 무뎌진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Stage3  과연 선은 어디까지일까?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을 때다. K와 A는 그날 이후 거의 매일 연락을 주고받는다. 썸인 듯 아닌 듯 문자로 야릇한 농담을 나누고, 혹시 남친이 볼세라 그와의 대화는 곧 지워버린다. K와 혹시 급만남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 출근할 때 괜히 옷 입는 것도 신경 쓰인다. 안 사던 옷을 사고, 헤어스타일도 바꿔본다. K의 인스타에 왠지 그녀를 향해 말하는 듯한 의미심장한 글이 올라오고, A는 그걸 보며 ‘좋아요’를 누른다. A의 하루는 점점 K에 대한 생각으로 채워진다. A는 상상 속에서 K와 이미 ‘선’이란 선은 수십 번도 더 넘었다. 남친은 이런 A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 정해놓은 바람에 대한 ‘선’은 각기 다를 것이다. “남친이 있는데 언감생심”이라는 일편단심형부터 “섹스 파트너를 갖는 건 바람이 아니다”라는 신여성까지. 이에 대한 넬슨 박사의 정의는 명쾌하다. “만약 애인이 당신의 행동을 알게 됐다고 가정했을 때 기분 나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이미 선을 넘은 것이다. 자신이 선을 넘지 않았다고 자꾸만 합리화하는 것일 뿐.” 김지윤 대표도 조언한다. “바람이냐 아니냐의 기로에 서서 심히 흔들려본 당신이 어느 한쪽으로 결단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단 한 가지는 바로 ‘역지사지’다”라고. 만약 당신의 남친이 다른 여자와 은근히 썸을 타고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용인할 수 없다면, 다음 수순은 간단하다. 당장 그의 연락처 지우고, SNS 염탐도 끝내고, 야릇한 상상도 허벅지 찔러가며 물리쳐라. 이렇게 해도 차마 못 끊겠다면? 당신은 그냥 바람피우고 있는 거다. ‘마이크로치팅’에서 ‘마이크로’라는 접두사를 떼야 할 차례라는 뜻. 누군가를 계속 속이며 만남을 지속하는 건, 자신도 속여가며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근데 정말 이렇게 묻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남친 하나 더 갖겠다는 게 그렇게 큰 잘못이야?”라고. 물론 가능할 수도 있다. 아래의 기사를 참고할 것!ETC.  "이게 폴리아모리?" 그렇다면 이런 장면도 한번 상상해보자. A에게는 ‘찌릿’하는 스파크는 사라졌지만, 누구보다 안정감을 주는 오랜 남친이 있다. 그리고 A에게 얼마 전 ‘세컨드’도 생겼다. 남친과 싸웠을 때는 물론이고 남친과는 도무지 통하지 않는 정치나 문학, 예술과 사상에 대해, 혹은 남친에게는 말 못 할 집안일 등 거의 모든 주제로 대화가 가능한 사랑스러운 ‘세컨드’. 오늘은 세컨드와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가끔 집에서 단둘이 영화 보며 맥주도 한잔한다. 가벼운 스킨십은 하지만 섹스로 발전할 정도까진 아니다. 물론 아직은. 남친도 그의 존재를 알고 있다. 이왕이면 셋이 다 같이 친해져도 좋겠다. 서로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없는, 둘 다 A에게 소중한 애인들이다. 이게 가능하냐고? 글쎄, 누구나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