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하고 섹시한 '펜슬 스커트'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이번 봄, 우리의 패션 창의력을 시험하는 아이템이 나타났다. 고상하면서도 심장 뛰게 섹시하고, 간결하면서도 화려한 펜슬 스커트의 귀환. | 스커트,펜슬스커트,치마,패션,코스모폴리탄

평창 동계올림픽의 뜨거운 감자가 된 두 여자, 김여정과 이방카 트럼프. 사상부터 외모, 말투, 분위기 뭐 하나 같은 것을 찾을 수 없는, 그야말로 극과 극의 이 두 여자에게 묘한 공통점 하나가 발견됐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공식 일정 중 둘 다 똑같이 펜슬 스커트를 입었다는 것. 김여정과 이방카가 펜슬 스커트를 입은 의도는 같은 듯 다르다. 팬츠가 아닌 스커트로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강조했다는 점, 전문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사랑스러운 A라인보다는 날렵한 H라인 펜슬 스커트를 선택했다는 것은 같다. 하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블랙 혹은 화이트 재킷과 함께 펜슬 스커트를 입은 김여정은 패션에 대한 코멘터리를 원천 봉쇄했다. 제복 느낌이 강한 옷차림은 치켜세운 그녀의 턱과 함께 사회주의에 대한 이미지를 강하게 남겼다. 반면 전직 모델 출신답게 이방카는 몸매가 드러나는 타이트한 펜슬 스커트를 화려한 컬러의 니트와 매치했다. 스타일리시하고 젊은 미국의 지도층이라는 걸 패션으로도 강조한 셈. 펜슬 스커트는 때때로 남자의 슈트와 비견되는 딱딱한 비즈니스 웨어기도 하고, 때때로 자신의 감각을(물론 몸매도!) 뽐낼 수 있는 옷이다. 마치 하얀 캔버스와도 같은 펜슬 스커트는 입는 이의 의도에 따라 새로운 색을 띠게 된다. 하얀 캔버스에 어떤 그림을 그릴지 전적으로 화가의 손에 달렸듯 펜슬 스커트 역시 어떤 의도로 연출하느냐에 따라 매번 새롭게 재창조된다.펜슬 스커트는 1954년 크리스찬 디올이 처음 선보인 그때부터 여성 패션에서 확고한 역할을 맡고 있다. 통이 좁은 무릎 길이 스커트로, 연필과 같이 길고 호리호리한 모양 때문에 ‘펜슬 스커트’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불린다. 초창기에는 신축성 없는 소재로 만든 탓에 펜슬 스커트를 입으면 자연스레 보폭이 좁아져 그 걸음걸이가 조신하면서도 섹시했다. 엉덩이를 흔들며 걷는 일명 ‘먼로 워크(Monroe Walk)’ 역시 이 펜슬 스커트로 인해 탄생된 것! 1970년대에 신축성이 향상된 소재가 개발되면서 펜슬 스커트 역시 불편함을 덜어내고 여자들의 기본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번 봄, 펜슬 스커트는 새로운 여성관과 함께 우리 앞에 나타났다. “섬세함도 강해질 수 있어요.” 펜슬 스커트가 세상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여자 중 한 명인 디자이너 빅토리아 베컴은 이번 시즌 여성성과 남성성의 균형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에 대한 결과는 시어하면서 과감한 슬릿이 더해진 펜슬 스커트로 드러났다. 나비의 날개처럼 얇고, 솜사탕처럼 투명한 컬러의 스커트에 체크 패턴의 단정한 셔츠가 비쳤다. 그건 마치 여성 속에 내재된 남성성과도 같았다. ‘도시와 전원을 아우르는 현대 여성을 위한 옷’을 만들었다는 막스마라 역시 펜슬 스커트를 택했다. 1990년대 미니멀리즘을 담은 컬렉션에서는 날렵한 펜슬 스커트가 탱크톱 또는 니트와 짝을 이뤘다. 러버 소재를 이용해 현대적인 펜슬 스커트를 보여준 캘빈클라인, 로퍼와 니트 베스트, 벨트로 레트로 분위기를 더한 펜슬 스커트 룩을 선보인 프라다 등 이번 시즌 여자의 하의는 펜슬 스커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펜슬 스커트의 매력은 여성의 아름다운 보디라인을 패브릭과 하나가 돼 살릴 수 있다는 거예요.” 제이백 쿠튀르의 디자이너 제이백 역시 펜슬 스커트 마니아다. 그는 펜슬 스커트를 고를 때 일단 이것부터 확인하라고 조언한다. “펜슬 스커트를 입을 때 중요한 점은 슬릿의 길이감이에요. 적당히 노출되면서 활동할 때 움직이기 편안한 길이감을 찾아야 해요. 대놓고 드러내는 노출보다 최소한의 노출이 더 관능적으로 보이죠. 자신의 몸에서 가장 자신 있는 부위에 슬릿이 위치하면 펜슬 스커트의 장점을 살릴 수 있을 거예요.” 자신에게 잘 맞는 펜슬 스커트를 찾았다면 이젠 어떻게 스타일링할지 고민해보자. 재킷과 셔츠를 더하는 고전적인 방법부터 오버사이즈 스웨트셔츠를 매치하는 ‘애슬레저 스타일’까지, 펜슬 스커트가 부릴 수 있는 스타일링의 마법은 끝도 없다. 이번 시즌 상의와 함께 중요한 건 슈즈의 선택이다. 로퍼 힐이나 발레 슈즈, 스틸레토가 런웨이 위에서 펼쳐진 조합이라면, 스트리트 퀸들은 더 과감하다. 마치 현관에서 아빠 신발과 헷갈린 듯 투박한 운동화를 펜슬 스커트와 매치했다. 섬세한 것과 투박한 것, 부드러운 것과 거친 것, 얌전한 것과 요란한 것… 이 수많은 이질적인 것의 공존이 새로운 펜슬 스커트의 모습이자, 더 나아가 빅토리아 베컴이 얘기하는 새로운 여성관이다. 호기심 넘치는 호모사피엔스에게 이번 봄 펜슬 스커트는 수많은 물음표를 던진다. 우린 거기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귀엽게? 섹시하게? 도도하게? 단정하게? 펜슬 스커트가 있어 더없이 행복한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