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oo 그에게 어떻게 말할까? | 코스모폴리탄 코리아 (COSMOPOLITAN KOREA)

여자로 살아오면서 ‘성’과 관련된 그 어떤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되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을, 코스모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맞닥뜨려야 하는 순간이 있다. 간절히 바라건대, 이 기사가 당신에게 해당 사항이 없었으면 좋겠다.



“남편의 격려와 지지가 큰 힘이 됐어요”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한 #미투 대열에 합류한 한 여성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트라우마가 자신의 신념뿐만 아니라 일상까지 위협할 정도였고, 공개적인 #미투를 통해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도록 용기를 북돋워준 사람이 바로 자신의 파트너였음을, 그녀는 인터뷰 말미에 털어놓았다. 2016년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19세에서 64세 사이 여성의 72.7%가 평생 동안 한 번 이상의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비교적 가벼운 수위의 성희롱부터 몰카, 스토킹, 성추행, 강간을 모두 포함해서다. 이 중 성추행과 강간에 이르는 신체적 성폭력만 따져도 21.3%의 여성이 한 번 이상 경험했다는 수치가 전혀 놀랍게 느껴지지 않는 건 나뿐만이 아니리라. 그리고 만약 지금 다시 조사를 실시한다면, 저 수치는 더 높아질 거다.


지난 1월 30일부터 3월 6일까지의 성폭력 피해 상담은 전년도에 비해 23.5% 증가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미투 캠페인으로 용기를 얻었거나 자신의 경험이 다시 떠올랐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그 일이 성폭력이었다는 것을 알게 돼서’라니, 우리가 아닐 거라고 애써 부정했던 것들을 하나씩 끄집어낸다면 어쩌면 이건 여성 인구의 거의 전체에 해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형태의 ‘폭력’이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게 ‘성폭력’의 형태였다면, 그 트라우마의 파장은 우리가 연애라는 관계를 맺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많은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파트너에게 털어놓는 것을 놓고 고민하게 된다. 만약 당신이 그 당사자라면, ‘지금’이 어쩌면 적기일지도 모른다.



Step1 그에게 말해야 할까?

자신도 외면하고 싶은 끔찍한 기억을 누군가에게 꼭 말해야 할 의무도 없고, 개인의 상처를 대하는 자세에 정답 또한 없다. 만약 당신이 평생 자신만의 상처로 묻어두고 싶다면, 그리고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다면,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상처가 당신과 그 사이에 어떤 장벽을 만들기 시작했다면, 그 벽을 허물고 그와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당신의 진심이라면, 그땐 정면 돌파가 필요한 순간일 수도 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통합폭력예방 위촉강사 손경이는 이러한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않으면 남성 전체에 대한 신뢰감을 잃게 되는 것이 가장 우려되는 문제임을 지적한다.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의 근본적인 문제는 ‘성’이 아니에요. 신뢰감이죠. 모르는 사람이건 믿었던 사람이건, 하물며 존경했던 사람이건, 그 사건을 계기로 ‘남자들은 다 그래’라는 일반화를 자꾸 하게 되거든요. 친절한 남자, 괜찮은 남자, 심지어는 사랑하는 남자까지도 거부하게 될 수 있어요.”


아침에 눈뜨면 새로운 #미투를 접하게 되는 요즘, 꾹꾹 덮어둔 기억이 자꾸 헤집어지는 탓에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가? 그런 당신의 곁에 당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면, 용기를 내볼 일이다. “본인이 혼자 해결하려는 사람도 있고, 파트너에게 의지하며 상담을 받는 사람도 많아요. 아무래도 후자가 회복 속도가 더 빠르죠.” 손경이 강사 말마따나, 그가 당신에게 큰 힘이 돼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Step 2 이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까?

그에게 말을 꺼내기란 특히 ‘지금’ 이 시점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최근 세상에 알려진 #미투 스캔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그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거다. 손경이 강사도 이런 접근을 권한다. “‘만약 내가 그랬다면 어땠을 것 같아?’, ‘주변에 그런 사람 본 적 있어?’라는 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상대 남자가 말하는 걸 열심히 들으며 정보를 얻는 거죠. 이 남자의 기본적인 인성부터 여성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거예요.”


뉴욕의 임상심리학자인 메건 플레밍 박사는 이것을 ‘리트머스 테스트’에 비유한다. “이건 일종의 리트머스 테스트 같은 거예요. 이걸 통해 성폭력과 관련된 이슈에 대한 그의 전반적인 태도와 생각을 알아볼 수 있으니까요.” 만약 그의 답변이 당신으로 하여금 지지받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정말 놀라워”, “그 사람들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여자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다시 생각하게 됐어”와 같은) 당신은 자신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안전지대에 놓여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차례다. 반대로 그의 반응이 당신을 멈칫하게 만든다면? Step 4를 주시하도록.



Step 3 나는 왜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가?

그에게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끄집어낼 결심이 섰다면, 대화를 시도하기 전 한 단계가 더 남았다. 당신이 그와의 대화를 통해 무엇을 얻길 원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사실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다. 대부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공감’과 ‘위로’, 나아가 ‘지지’를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테니까. 당신 이야기를 털어놓기 전에 당신의 ‘목적’부터 그와 공유하자.


미국의 트라우마 전문가인 데브라 보리스 박사는 당신이 그의 평가나 조언을 얻기 위해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리고 시작하라고 말한다. “당신은 그저 그의 두 귀, 이해와 공감, 그리고 지지를 원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세요. 대부분의 남자는 문제 상황에 대해 의사소통을 시도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제안하며 즉각적이고 행동 지향적인 방식을 취하도록 사회화됐어요. 당신이 그에게 바라는 기대치를 미리 정해두면 그 또한 그에 걸맞은 태도를 보이도록 대비할 수 있게 되죠.”


한마디로 그에게 ‘나는 그저 당신이 필요할 뿐이다’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 그 이후에는? ‘어떤 수위가 적당하다’ 이런 건 없다. 그저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당신이 말하고 싶은 만큼, 당신의 감정이 이끄는 대로, 물 흐르듯 하면 된다. “주변에서 그런 얘기를 많이 들을 거예요. ‘자세하게 말하지 말아라’,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말해라’라는 식의 이야기요. 하지만 어느 정도로 얘기해야 하는지 정답은 없어요. 물 흐르듯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요. 얘기를 하다 보면 봇물처럼 터지기 마련인 게 사람의 감정이기도 하니까요.” 손경이 강사의 조언처럼 말이다.



Step 4 내가 원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어느 단계에서건 그의 반응이 당신을 멈칫하게 만들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나가듯 일련의 스캔들을 화제로 삼았을 때 그는 피해자를 무시하거나 ‘가벼운 여자’로 취급할 수도 있다. “만약에 내가 말이야”를 가정했을 때 “그런 끔찍한 소리는 입 밖으로 내지도 말라”며 당신을 절망적인 기분에 휩싸이게 할 수도 있다. 내가 사랑한 남자가 이 정도라는 사실에 화가 나 그의 말을 조목조목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거다. 하지만 이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차라리 잠시 대화의 휴식을 가져라. 그런 다음 그가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 호기심을 보이려고 노력하라. 그리고 당신 입장에서 그의 반응이 당신에게 어떤 끔찍한 기분을 안겨줬는지를 설명하라. 그의 ‘일베’스러운 견해가 당신에게 낯설고 충격적으로 들리듯이 당신의 이야기가 그에게도 낯설게 들릴 수도 있다. 만약 ‘당신에게 일어난 일’임을 가정하거나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가 무력한 기분을 느끼며 자괴감에 빠질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큰 사건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감정적으로 복잡한 주제를 당장 능숙하게 소화하는 일은 남녀를 떠나 힘든 일이라는 얘기다. 마치 정치나 종교에 대해 서로 다른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화할 때처럼, 장기적으로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여성 문제’, ‘성폭력’에 대한 논의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물론 오랜 시간 많은 대화를 거쳐도 당신의 파트너가 공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지지하지 않는 태도를 고수할 확률도 없지 않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워싱턴의 심리학자 크리스틴 니콜슨 박사는 말한다. “관계를 오래 지속할 생각이라면, 이건 좋은 신호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는 여성에게 맹목적인 편견을 가졌을 수도 있고, 그 자신이 ‘가해자’인 #미투 경험으로 혼란을 겪고 있을 수도 있어요.” 남은 것은 당신의 몫이란 얘기다. 그와 이 관계를 유지할지, 아니면 떠날지를 결정하는 것 말이다.


코스모의 의견? 자신의 깊숙한 상처를 내보이는 힘든 결심을 한 당신은 그 누구보다 강인한 사람인데, 당신의 상처를 보듬어줄 생각이 없는 남자마저 보듬으려고 이렇게 노력하는데, 꿈쩍 않는 남자?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은 그에게 너무 아까운 여자다.

여자로 살아오면서 ‘성’과 관련된 그 어떤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되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을, 코스모는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맞닥뜨려야 하는 순간이 있다. 간절히 바라건대, 이 기사가 당신에게 해당 사항이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