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 다큐 <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을 만나다 | 코스모폴리탄 코리아 (COSMOPOLITAN KOREA)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열두 번, 일생 동안 적어도 400번. 이토록 오랜 기간 많은 양의 피를 흘리면서 왜 우리는 한 번도 이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았을까? 생리와 여자의 몸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 더 잘 피 흘리기 위해, 지금껏 말하지 못한 빨간 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어마어마한 제목의 영화는 사실 ‘생리’와 관련된 이야기다. 본격 생리 탐구 다큐멘터리 영화 <피의 연대기>를 만든 김보람 감독은 관객들이 무엇보다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봐주기를 바랐다. “영화가 심각하거나 지루하면 사람들이 생리를 불편하고 또 불쾌하게 느낄 수 있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아, 재밌다’라고 이야기했음 했어요.” 김보람 감독의 말대로 이 영화는 재미있고 심지어 귀엽다. 영화를 보면 알거다. 생리 이야기도 이토록 재기 발랄할 수 있다는 걸.


영화관에 앉아 커다란 스크린으로 ‘생리’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데 기분이 묘했어요. 대중 매체에서 생리를 이렇게 깊고 폭넓게 다룬 경우는 본 적이 없으니까요.

아무래도 매체, 특히나 영상 매체에서 여성을 다루는 방식은 전형화된 면이 있죠. 여성이나 여성의 몸을 판타지로 감추고 주로 순수한 여성성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니까요. 그렇게 따지면 사실 생리는 그다지 좋은 소재가 아니죠. 그래서 더 침묵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그럼에도 생리와 관련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뭔가요?

영국 친구 샬롯에게 한국에서 만든걸 선물로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대부분이 ‘메이드 인 차이나’인 거예요. 하하. 고민하다 할머니가 직접 만든 ‘생리대 주머니’를 줬어요. 생리대를 넣어 다닐 수 있는 작은 파우치 같은 건데, 그걸 받고 당황한 샬롯이 한 말이 이 영화의 시작점이 됐죠. “생리대를 써?”라고 말했거든요. 똑같이 피를 흘리는데 문화권에 따라 처리하는 방식이 다르단 게 흥미로웠어요. 영화를 만들던 2015년 10월 당시, 미국과 영국에서 생리가 어마어마하게 이슈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죠.


<피의 연대기>엔 생리를 바라보는 다양한 문화권의 인식부터 할머니 세대엔 생리혈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한 인터뷰, 생리와 관련된 각종 사회적 문제 등이 담겨 있죠. 특히 영화를 보고 놀란 건 해면 탐폰, 울 탐폰, 소프트 탐폰 등 잘 모르는 생리용품이 무척 많다는 거였어요.

이 영화가 생리용품, 즉 ‘도구’에 집중한 이유는 여성들에게 생리와 관련된 많은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한편, 그 도구가 자신의 몸을 더 적극적으로 알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사실 여성은 자기 질을 평생 보지 않고도 살 수 있어요. 그런데 생리컵을 쓴다고 가정하면 자연스레 내 몸을 만지면서 질이 어떻게 생겼고 또 그 안에 어느 정도의 공간이 있는지 등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게 되죠. 저만 해도 생리컵에 적응하는 시간이 내 몸을 알아가는 과정이었어요. 이는 내 몸에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걸 해석할 능력이 생긴다는 뜻이기도 하죠. 자신의 취향과 성격에 따라 생리용품도 골라 쓸 수 있단 걸 알아야 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기에 앞서 사실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생리는 너무 귀찮아요. 영화에서도 나오잖아요. “아 XX 귀찮네”라고. 하하.

맞아요. 귀찮죠. 심지어 여자들에게 생리할 때 기쁜 순간이 언제냐고 물으면 대부분 “임신했을까 봐 불안했는데 생리 터졌을 때”라고 말해요. 기쁠 때가 거의 없다는 거죠. 만약 내가 굉장히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는데 생리 때마다 너무 힘들다면 시술로 생리를 잠깐 멈출 수도 있어요. 저는 적어도 생리 때문에 못 하는 게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생리로 인해 어떤 벽에 갇히거나 뒤로 물러서는 일이 생긴다면 이걸 어떻게 해결할지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해요. 생리는 싫을 수 있죠. 하지만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긍정적인 자세가 중요해요.


개인이 생리에 대한 불편함을 극복하려면 사실 그걸 가능케 하는 환경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회사 세면대에 생리컵에 담긴 생리혈을 쏟는 건 쉽지 않은 것처럼요.

맞아요. 사실 생리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면 개인의 변화만으론 힘들어요. 문화가 실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려면 법이 바뀌어야 해요. 생리컵이든 뭐든 생리와 관련된 문화와 환경에 대해 논의하려면 일단 필요한 사람은 모두 일회용 생리대를 사서 쓸 수 있을 정도의 상황이 돼야 해요. 돈 때문에 생리대를 못 쓰는 사람들이 있는 상황에서 생리컵이 수입된다고 한들 초기 비용이 몇 배나 더 드는 생리컵 구입이 가능치 않겠죠. 사실 생리컵은 한번 사면 반영구적이니까 시장성이 없는 물건이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여성용품을 모두 시장 논리에 맞춰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일종의 ‘지혜 공동체’가 만들어져야 해요. 그러려면 이 주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겠죠. 우리가 계속 생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예요.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열두 번, 일생 동안 적어도 400번. 이토록 오랜 기간 많은 양의 피를 흘리면서 왜 우리는 한 번도 이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았을까? 생리와 여자의 몸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 더 잘 피 흘리기 위해, 지금껏 말하지 못한 빨간 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