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며 '책 읽기'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독서를 즐기는 건 홀로 오롯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책 읽는 능력이 ‘혼자’인 삶을 잘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비례하는 이유. | 라이프,싱글다이어리,독서,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

우리는 혼자다. 이 사실은 간과되기 쉽다. 그 무엇을 해도 타인과 진정으로 ‘함께’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 그러므로 언제나 혼자이기를 준비해야 하며, 으레 준비하기도 전에 혼자의 상태로 내던져진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달콤한 망각이다. ‘혼자’를 가장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은 몸이 아플 때다. ‘아픈 곳까지가 나’라는 명제는 아플 때마다 어김없이 증명된다. 정초부터 이 명제를 실감할 일이 있었다. 허리 통증이 시작되더니 골반이 아프고, 허벅지가 저리더니 종래에는 발등까지 저려왔다. 허리 디스크였다. 척추 사이에서 삐죽이 고개를 내민 디스크는 추운 날씨와 협공해 몸뚱이를 침대 속으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달콤한 설렘도 있었다. 반강제로 휴식을 취하게 된 이상 혼자 보내는 시간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앉아 있지 못하니 컴퓨터를 쓸 수 없었지만 그 편이 오히려 더 좋았다. 나에게는 혼자의 시간을 보내는, 아니 혼자의 시간을 늘 기다리게 만드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이 무기는 배터리를 필요로 하지 않고, 눈을 피로하게 하지 않으며, 순식간에 시간이 흐르고, 한자리에서도 세상의 다채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모로 누워 무기를 펼쳤다. 까끌한 감촉과 사부작 소리마저 설레는 그것. 책이다. 앓아누운 마당에 어려운 책보단 잘 읽히는 판타지 소설을 골랐다. 700쪽에 육박하는 소설책은 의도와는 달리 정말 호신용 무기로 보이기도 했지만, 이리 눕고 저리 누우며 책장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아픔을 잊은 채 소설 속 세계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지. 일이 쏟아지는 시즌에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이다. 오로지 혼자 있을 때만 독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독서는 그 태생부터가 타인과 함께 할 수 없는 행위다. 동시에 독서는 강렬한 만남의 행위기도 하다. 이 모순적인 몰입이 독서라는 행위를 풍요롭게 만든다. 이 때문에 독서를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책이 제공하는 무한한 세계를 혼자의 힘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독서를 매력적인 동시에 부담스럽게 만든다. 재미있게도 ‘독서를 감당하는 힘’은 정확히 ‘혼자를 감당하는 힘’과 같다. 혼자 있는 적막한 시간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책을 읽지 못한다. 반대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혼자 보내는 시간을 그 누구보다 기다린다. 책을 꼭 읽어야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꼭 읽지 않아도 되지만 읽으면 좋다”라고 답한다. 책의 장점을 나열하라면 끝도 없이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체계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른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을 때보다 책을 통해 정보를 접할 때 훨씬 더 뇌 활동이 활발해지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하게 된다는 사실은 이미 밝혀진 지 오래다. 많은 장점 중에서도 하나를 꼽으라면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 독서에는 허무감이 없다. 같은 시간 동안 SNS를 할 때와 독서를 할 때, 끝마친 후의 기분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독서가 허무하지 않은 이유는, 혼자 있고 싶지 않아 몸부림치는 대신 완전히 혼자가 된 상태로 타인과 깊이 만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경험은 오로지 독서만이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혼자 있을 때만 독서는 가능하며, 오로지 독서할 때만 우리는 용감하게 혼자일 수 있다.About 김겨울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그룹 ‘겨울소리’에서 노래를 만들고 부르며 라디오 진행도 한다. 유튜브 ‘겨울 서점’ 채널에서 책 이야기를 하며 독서의 기쁨을 설파하고 있다. 그 이야기가 책 <독서의 기쁨>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