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호 감독이 말하는 현실 연애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영화 같은 이야기’라는 말의 함의는 이제 수정돼야 마땅하다. 한국 독립 영화계의 아이돌 윤성호 감독과 ‘비치 로맨스’라는 장르를 개척한 정가영 감독, 이 두 사람의 영화를 안다면 말이다. <코스모 라디오 시즌2: 색빨간 연애> 19화와 20화의 게스트로 출연한 두 감독이, 자신의 영화 속 설정과 현실의 연애를 비교했다. | 사랑,연애,윤성호,현실연애,영화

나는 ‘애쓰는 남자’다첫 단편영화 <삼천포 가는 길>은 나와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다. 사실 처음부터 영화감독을 하겠다는 포부로 영화를 시작한 건 아니다. 친구들과 “우리 대학 졸업하기 전에 단편영화라도 한번 만들어보자. 그래도 명색이 신방과인데, 게다가 이제 21세기인데 카메라 조작이나 편집에 대해 조금이라도 배워보자”라는 결의가 출발이었다. 우리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뭘까를 두고 우리는 한마음이었다. “괜한 얘기 하지 말자. 모르는 거 하지 말자. 우리 얘기 하자.” 공교롭게도 모두가 ‘안 해봤다’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랑까진 아니어도 떳떳한 일이다. 군대까지 다녀온 혈기왕성한 청년들이 그때까지 ‘총각’이었다는 건, 어쨌건 사랑하는 사람과 정말 좋아서 ‘하게 될’ 그날을 두근두근 기다린다는 윤리가 있단 얘기니까. 뭐, 실제로는 인기가 없는 데다 여성에게 어떻게 어필할지 몰랐던 것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삼천포 가는 길>의 주된 내용은 이렇다. “우리는 언제쯤 하게 될까?” “그걸 하면 얼마나 좋을까?” “연애는 어떻게 하는 거냐?” 그러다가 각자 “내가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다. 내가 왜 안 하느냐면…” 하면서 남녀 주인공이 각각 궤변 또는 한담을 늘어놓는 식이다. 그 영화로 많은 상을 받았다. 그 후 영화계에 들어섰고 첫 연애를 하게 됐으며 많은 연애로 이어졌다. 영화를 무기로 꼬신 적은 없다고 자부해보지만(무기가 될 만한 정도의 필모를 갖춘 것도 아니었으니 자부할 것도 없다) 내가 매력을 느낀 여성들과 영화를 매개로 좀 더 쉽게 소통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취직하고 명함 생긴 다음부터 당당하게 상대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그런 경우와 비슷하달까. 나에게 “연애할 때, 좋은 남자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NO”라고 답할 것이다. 스스로 나를 ‘나쁜 남자’라고 생각한다는 건 아니다. 그런 위악의 제스처를 부리는 것도 버거운 정도의 사람이니까. 다만 내가 당당하게 ‘좋은 남자’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잘하진 못하고 있다는 걸 전제로 깔면서 스스로 뭔가를 개선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좋은 남자’란 어떤 사람인가? 일단 괜찮게 보여야겠지. 잘생기진 않아도 깔끔하게 자신을 가꾸려는 노력 정도는 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이런 거다. 좋은 컷이 완성되려면 배우가 연기를 잘해야 하고 대사도 좋아야 한다. 하지만 솔직히 그건 다음 문제다. 동시녹음된 대사가 들려야 하고 화면에 빛이 보여야 한다. 그게 없으면 아무리 좋은 대사와 연기도 소용없게 되니까. 그러니까, 상대와의 소통을 위해 자신을 다듬고 개선하는 노력 정도는 한 다음에 좋은 남자 운운해야 맞는 건데, 내가 보기엔 그 정도 남자도 별로 없는 게 현실이다. 특히 ‘좋은 여자’에 비하면 그렇다. 실제로 주변만 봐도 ‘좋은 여성’은 충분히 많다. 가령 스스로가 원하는 식으로 자신을 관리하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상대가 접수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표현할 줄 아는 여성들. 그렇게 성인으로서의 당연한 덕목을 갖춘 여성의 비율에 비해 그런 남성은 적다는 게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이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남자는 커트라인에 간당간당 걸리는 정도인 것 같다. 다만 나는 ‘애쓰는 남자’다. 특히 지금의 연애는 나를 더 노력하게 만든다. 연애와 소통에 있어 내가 그나마 예전보다 나아지고 있다면, 그건 그동안 겪어온 고마운 연애 덕이다. 그런 고마움을 누리면서도 그때그때 적당한 여지를 남기고 최소한의 업데이트만 하며 살아왔었다. 그런 영악함이 나라는 창작자의 위신과 즐거움을 함께 지켜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영악함은 현명함을 못 이기고 심지어 아무것도 못 지켜주는 걸 자꾸 깨닫는다. 지금, 현실의 연애가 나를 자꾸 깨닫게 하고 애쓰게 한다. -윤성호(tvN <박대리의 은밀한 사생활> 연출)이 기사는 <코스모 라디오 시즌2: 색빨간 연애> 19화, 20화의 토크를 정리한 것입니다. 풀 버전은 ‘팟빵’에서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