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걸즈, 용기를!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미국 사회에서 시작돼 세계적 주목을 받으며 여성주의 실천에 대한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MeToo 캠페인. 이 운동이 한국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 여성,여자,MeToo,미투운동,미투캠페인코스모폴리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뉴스가 나온다.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을 걷는다. 성폭력과 성차별에 시달리는 여성(또한 남성)들을 돕는 ‘타임스 업(Time’s Up)’이라는 단체도 만들었다. 한다 하는 셀렙들이 1300만 달러 펀딩에 참여했다. 이 모두가 지난 연말을 강타한 ‘미투(MeToo)’ 캠페인 덕분이다. 여성 인권은 언제 어디에서나 진행형 이슈지만 사회적으로 큰 걸음을 내딛으려면 어떤 계기가 필요하다. 바로 그 계기였다. 시작은 심플했다. 한 배우가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에게 당한 성폭행을 공개했고, 다른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나서서 성폭행을 고발하며 SNS상에 ‘미투 캠페인’을 제안했는데 그 후 수십 만 ‘미투’ 멘션이 올라온 것이다. 얼마나 뜨거운 논쟁이 되었느냐? 와인스틴은 본인이 만들었던 회사에서 바로 잘렸고, 그의 행태를 알고서도 침묵했던 이너서클에 대한 비판이 거셌고, 더스틴 호프먼, 케빈 스페이시 등 거물 배우들의 성추행 전력이 드러났으며, 유력 정치인들의 추태까지 드러내며 그들의 퇴장을 이끌었다.  ‘미투’ 운동은 미국 사회에서 시작되어 세계적 주목을 받으면서 여성주의 실천에 대한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오죽하면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2017년의 인물로 ‘침묵을 깬 자들(Silence Breakers)’을 꼽았겠는가? <미리엄-웹스터 사전>이 2017년 올해의 단어로 ‘페미니즘’을 택했겠는가?  한국 사회에서라면?미투와 타임스 업 같은 운동이 한국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여러 의문이 들 것이다. 이런 사건이 닥친다면 나는 침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말을 한다면 내 목소리를 들어줄 사람이 있을까? 오히려 나에게 불이익이 생기지나 않을까? 내게만 수치심을 강요하는 것이 아닐까? 더 큰 상처를 받게 되지 않을까? 내가 모르는 그 뭔가가 작동하지나 않을까? 진실은 과연 밝혀질 수 있으며 정의는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우리 사회에 성폭력과 관련하여 악몽과도 같은 사건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장자연 사건’은 술 접대를 강요받고 폭력을 당한 배우가 그 모욕감 속에서 자살한 사건으로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으나 사건 자체는 그대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영화 <내부자>에 나왔던 목불인견의 성 접대 장면이 리얼하게 보이는 것은 그와 유사한 사건들이 이미 드러났었기 때문이다. 장자연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그에 연루된 권력자들에 대한 응징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드디어 희망을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직장 내 성추행·성희롱 사건이 생길 때마다 우리가 목격하게 되는 것은 언제나 ‘진실 공방’이다. 그 공방 속에서 상처받고 희생되는 주체가 결국 여성 쪽이 되는 경우가 많음을 우리는 뼈아프게 목격해왔다. 중견 기업 ‘한샘’에서 일어났던 사건의 전개에 찜찜해지지 않을 여성이 어디 있겠으며, 이런 상황에서 진실을 말하는 데 어찌 주저하지 않게 되겠는가? 학교와 학원가, 그리고 가정에서 일어나는 성폭력과 성추행에 대해서는 고개를 못 들 정도다. ‘교권’을 권력으로 휘두르는 몰지각, ‘보호 의무’를 망각하고 ‘보호 권력’을 휘두르는 과정에서 끝없이 참고 도움을 기다리다가 꺾어지는 어린 피해자들의 상처는 오죽하겠는가? 그 일단이 드러나야 비로소 ‘미투’를 하는 여성들이 상처가 덧나는 사례를 볼 때마다 분노와 함께 가슴이 미어진다.우리 사회의 성폭력 사정이 이러할진대, 성차별 문제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저변에 흐르는 그 거대한 울분을. 2017년을 강타한 소설 <82년생 김지영> 속의 ‘김지영’은 이 시대를 사는 대부분 젊은 여성의 처지를 대변했다. 차별받고 상처받고 주눅 들고 울분을 삼키고 좌절하고 자책감에 시달리고 자존감마저 통째로 흔들리는 상황은 심각하다 못해 존재의 위기로 치닫는다. 외적 성공과 화려한 외양에 주목할수록 속으로는 문제가 곪아들어가고 내상은 더욱 깊어진다. 여성 일부의 탁월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여성은 구조적인 문제에 노출되어 더욱더 상처가 깊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이런 뿌리 깊은 성차별이 늘어나는 성폭력의 기저에 흐르고 있음을 외면할 수가 없다.   권력에 참여해야 바뀐다이번에 ‘미투 캠페인’이 성공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성공한 여성들의 전폭적인 동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대부분이 여성주의에 대해 의식화가 되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일까? 그보다는 이른바 성공했다는 여성들 역시 성폭력과 성차별을 겪어왔을 뿐 아니라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일 것이다. 여성 배우들의 설 자리가 점점 축소되고 있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른바 할리우드식 블록버스터 시장이 커질수록 여성들의 역할은 오히려 축소된다. 그 한정된 자리에 여성을 경쟁으로 몰아넣는 과정에서 남성 권력자들의 횡포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 것이다.   이들은 드디어 스스로 깨닫고 더불어 행동한 것이다.  ‘의사 결정권’ 자리에 여성 제작자, 여성 감독, 여성 촬영감독, 여성 작가들이 늘어야 더 많은 여성의 목소리, 더 많은 여성의 역할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공론화’해야 영향력이 커진다는 것을 말이다.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셀렙들이 나설수록 가능성은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진즉에 활발한 페미니스트 활동을 하던 케이트 블란쳇이 한 시상식에서 “여성 주인공으로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고 자부한 것처럼, 메릴 스트립이 “다양성이 영화 산업의 미래 핵심 동력이다!”라고 강조한 것처럼 말이다.    성폭력·성차별의 문제란 성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에서 비롯됨을 우리는 이제 다 알고 있다. 거대한 권력이든 알량한 권력이든 그 권력을 ‘사회적 약자’를 향해 휘두르는 것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병폐 중 하나다. 유행병처럼 전염성이 강하고, 퇴행성 질병처럼 속도가 빠르며, 불치병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치유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자유롭게 보이던 미국 사회에서조차 가부장제의 폐해에 대한 의식이 늘어나고 성폭력과 성차별이라는 오래된 문제를 다시 꺼내는 것은 그만큼 현재 진행되는 사회의 보수화, 금권력의 도구화, 거대 상업주의의 폭력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자각과 행동이 여성의 권력화 자체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여성의 권력 참여와 의사 결정권 획득을 통해 보다 빠르게 평화와 상생의 세상으로 나아가자는 것이 그들의 방향성이다.  연대와 제도, 투 트랙으로! 유교적 위계, 가부장제, 일제강점기와 독재 시대에 퍼진 폭력성, 분단 사회에 내재한 갈등, 게다가 급격한 양극화로 인한 계층 갈등까지 존재하는 우리 사회는 더욱더 ‘미투’하기 힘들고 ‘타임스 업’하기 힘든 사회다. 여기에 ‘갑질’ 문화와 여성 비하 문화, 자존감이 흔들리는 사회, 불안 사회의 위기까지 겹쳐져서 성폭력과 성차별은 더욱더 치유하기 힘든 문제가 되었다. 투 트랙으로 이 절망의 굴레에서 벗어나보자. 첫째는 ‘연대’에 대한 신뢰를 쌓는 일이다. 내가 말을 하면 메아리가 있고 공감하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미투’의 개별적 발언에서 ‘타임스 업’의 활동 연대로 발전한 것이 바로 그 예다.개인의 용기란 물론 중요한 것이지만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믿을 데가 있어야 한다. 외로움과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는 용기란 나의 문제가 결코 나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연대 의식으로 뒷받침될 때 가능한 것이다.둘째는 제도에 대한 신뢰를 올리는 일이다. 평등과 정의로움에 대한 법 제도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그것이 현장에 뿌리내려야 한다. 실제 응징을 통해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한 엄중한 진실 규명과 판결이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연대’를 통해 ‘공론화’를 하고 그것을 ‘제도적 실천’에 이르게 할 수 있는 힘을 갖출 수 있다. 디어 걸즈, 용기를!나는 여자와 남자가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법을 익혀야 우리 사회가 비로소 행복해진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 사랑은 침묵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기다림으로부터 나오지도 않는다. 인내로부터 나오지도 않는다. 나의 문제를 말하고, 우리의 아픔을 말하고, 그대의 공감과 지원을 받고 싶고, 서로를 배려하며 우리의 연대를 쌓고 싶다. 그렇게 세상을 바꾸고 싶다.  No more silence. no more waiting, no more tolerance! 침묵은 그만, 기다림은 그만, 인내는 그만! 이제 발언하고 연대하고 행동할 때다. 디어 걸즈, 용기를! About 김진애 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이자 <여자의 독서> <한 번은 독해져라>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영향력 있는 여성 리더이자 도시건축가인 그녀는 정치, 사람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형성하며 대중과의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