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텐데 반려동물은 안 키워?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대한민국에서 싱글, 여성, 독거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현실은? 우리의 일상에 빛과 소금 그리고 사이다가 돼줄 네이버 포스트 연재 시리즈. | 라이프,싱글라이프,혼삶,독거인,일상

 ‘20대 독거녀’에 관한 가장 흔한 오해와 가장 주관적인 대답  by 단지곤지 나는 일평생 가축과 친밀한 교감을 나눠본 경험이 없다. 관심을 가지려다가도 생명을 책임진다는 무게감과, 나 한 명으로도 벅찬 엥겔 지수의 벽 앞에 무릎을 꿇어왔다. 내심 동경은 있었다. 길 가다 공원에서 마주치는 세상 깜찍한 존재들을 보고 있자면 귀여워 어쩔 줄을 몰랐다. 저런 애교를 매일매일 마주하는 일상이 마냥 부러웠다. 그래서 훗날 반려동물을 키우게 된다면 꽤 좋은 주인이 되리라고 자신했다. 그들이 가진 찰나의 귀여움‘만’ 소비해온 줄도 모르고.몇 달 전 친구가 집에 초대했다. 그곳에서 ‘콩이’를 만났다. 뭉툭하고 심술궂게 생긴, 결 고운 털이 매력적인 잡종 강아지 콩이. 콩이는 귀여웠다. 그리고 활달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했다. 더구나 평소엔 주인 혼자만 있던 집에 3명이 더 늘어났으니 사람이 퍽 반가운 모양이었다. 그 반가움을 우리에게 온통 달려들고 비비는 스킨십으로 표현했다. 그러는 사이 수다는 밤까지 이어졌다. 그러는 중간에도 콩이는 멈추지 않았다. 4명의 품에 차례대로 달려들고, 목이 마르면 장판에 팟팟 발톱 소리를 내며 물을 마시러 갔다. 잠이 들만 하면 귓가에 대고 asmr도 들려주었다. 낑낑(더 놀아줘!), 끼이잉낑낑(난 낮잠 많이 잤단 말이야!), 낑끼잉(심심해! 일어나 이 잠만보들아!)…. ‘콩이 언어’를 속으로 해석하는 경지에 이른 밤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날 밤 잠을 설쳤다. 수련회나 수학여행에서도 숙면을 취하던 ‘프로 숙면러’가 잠을 설친다는 건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밤새 팟팟 발톱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고, 온 얼굴을 핥는 혀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마침 털갈이 시즌이라는 콩이의 털이 숨 쉴 때마다 콧속에 들어와 주기적인 재채기도 필요했다. 다음 날, 다른 친구들도 사정이 비슷해 보였다. 콩이가 유난한 개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원룸이라는 비좁은 공간이 차지하는 이유도 컸을 것이다. 다른 것보다 강아지의 당연한 행동을 귀찮아하는 스스로에게 적잖은 실망을 했다. 그게 고양이나 다른 동물이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평화로운 동고동락은 치열한 수준의 인내와 노력을 통해 보장받는다는 건 반려인들의 숙명 아닌가? 마치 육아의 민낯 같았다. 많은 부모가 수많은 이론 공부와 나름의 각오로 아이를 낳지만 실전은 차원이 다르다고 하는 것처럼, 반려동물도 만만하지 않은 걸 알았지만 훨씬 더 만만하지 않았다. 반려동물을 들이려다가도 망설였던 많은 이유 중에 내가 동물을 귀찮아할 수도 있다는 건 예상에도 없었다. 혼자 사는 집에 낮 동안 외로울 것이, 병원비·미용비·사료비 등 경제적인 비용이, 여행을 갈 때 항상 데리고 다니거나 어딘가에 맡겨야 한다는 문제 등만 걱정했었다. 혼자 사는 집의 온전한 고요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건 뜻밖의 고충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명적인 문제였다. 나는 도덕의식을 갖추기만 한 게으름뱅이다. 나의 성격적인 결함을 모른 채 반려동물을 들였다면 두 가지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주인이 돼 괴로워하거나, 게으른 주인이 돼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이러나저러나 결말은 비극이다. 그동안 경솔하게 반려동물을 들이지 않은 내 소심함이 고마운 순간이었다. 앞으로도 단순히 외로움을 위해, 혹은 귀여움을 탐미하기 위해 새 친구를 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가벼운 이유로 입양하기엔 너무나 ‘섬세한’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자발적 비독거인들’의 부지런함과 인내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