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시에 갈 때마다 데이팅 앱을 켠다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런던에 갓 입성한 뉴 페이스. 이 도시의 매력을 함께 탐험하고 즐길 사람 찾음.” 프로필란에 글을 띄우면 곧 전 세계의 남자들로부터 열렬한 구애가 시작된다. ::인연, 데이트, 소개팅앱, 틴더, 여행, 모험,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 인연,데이트,소개팅앱,틴더,여행

만나던 남자와 이별했다. 이별이란 단어를 쓸 수나 있을까? 고작 한 달, 게다가 원거리 연애였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타격은 컸다.  그의 적극적인 애정 공세에 푹 빠져버렸던 거다. 달달한 메시지와 애틋함 가득했던 영상 통화, 함께 떠났던 주말 여행…. 그가 떠나자 세상은 더없이 차갑고 적막했다. 옛 남자를 잊으려 곧바로 새 남자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지만 또 그 길을 택했다. ‘다시는 접속할 일이 없으면 했는데…’ 결국 틴더를 켜고 말았다.처음 틴더를 알게 된 건 3년 전. 크리스마스 휴가로 샌프란시스코를 찾았을 때였다. 아티스트인 친구와 만났는데 그는 틴더를 통해 진지하게 교제 중이라는 여자 친구를 소개했다. 살짝 놀랐다. 바이킹의 후예로 훤칠한 훈남에 잘나가는 아티스트가 데이팅 앱을 쓰다니?  “틴더를 알려줄게.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거야.” 두 사람은 열정적으로 나를 틴더의 세계로 인도했다.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전화번호나 페이스북과 연동해 가입할 수 있는데, 페이스북을 이용하면 페이스북에 공개된 정보, 즉 이름, 나이, 직장, 출신 학교, 친구, 관심사, 프로필 사진 등이 틴더의 프로필로 그대로 옮겨진다. 전화번호를 통해 가입할 경우 문자 메시지로 본인 인증을 받고 ‘원하는’ 이름과 생년월일을 직접 기입해야 한다. 요즘엔 전화번호 가입 혹은 ‘틴더 플러스’를 통해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설정’하는 이가 많은데, 당시엔 자신의 신상을 온전히 드러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더욱 신뢰가 갔달까? 자기소개란에 원하는 내용을 기입하고 설정란에서 최대 거리, 연령대, 알림 등을 조정하면 잠시 서칭 중이라는 아이콘이 작동하다 곧바로 남자들의 프로필 페이지가 뜬다. 이때부턴 손놀림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진과 정보를 살펴본 뒤 ‘좋아요’는 오른쪽, ‘싫어요’는 왼쪽, ‘진짜 좋아요’는 위로 스와이프를 한다. 틴더의 장점은 서로 호감의 스와이프를 보내야 매칭 페이지가 나타나고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것. 이상적인 상대를 만났다고 생각한다면 ‘진짜 좋아요’로 마음을 표시한다.“여행 중이면 어때? 여행지에서의 로맨스, 누구나 꿈꾸는 거 아냐? 좋은 인연을 만나 이 도시에 살게 될 수도 있고.” 그렇게 틴더를 시작했고, 틴더는 나의 좋은 여행 친구가 됐다. 프리랜스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해외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꽤 많은 편인데, 보통 2주에서 한 달에 이르는 장기 여행이나 출장을 떠나면 어김없이 틴더를 켠다. 틴더를 통하면 더욱 다양한 지역과 직종, 문화의 사람들을 ‘선택’해 만날 수 있다. 인상적인 도시는 런던이었다. 관심 있는 동네를 순회하다가 한낮에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하는 카페를 찾아 노트북을 펼쳤다(일도 해야 하니까). 그러곤 틴더를 켰다. 리먼 브라더스, 모건 스탠리, HSBC 등 국제적인 금융 회사와 법률 회사가 모여 있는 카나리워프에서는 말끔한 슈트, 반듯한 헤어스타일의 직장인 프로필이 떴다. 크리에이티브 클래스가 모여 있는 쇼디치, 혹스톤에는 스타일리시한 차림의 남자들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최근 두 달간 머문 베를린과 뮌헨에선 틴더를 통해 두 도시의 남자들을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스타트업 붐으로 젊은 사업가와 IT 전문가, 예술가들이 많은 베를린, 독일의 내로라하는 대기업과 미디어가 몰려 있는 뮌헨. 프로필에선 두 도시의 각기 다른 라이프스타일까지 엿볼 수 있었다. 베를린 남자들은 미술관이나 콘서트, 클럽에서 찍은 사진을 내걸었다면 뮌헨 남자들은 근교 알프스나 호수에서 아웃도어를 즐기는 사진, 옥토버페스트에서 전통 복장을 입고 술을 마시는 사진이 많았다. 여행이나 출장을 떠날 때면 자기소개란에 “××에 갓 입성한 뉴 페이스. 이 도시의 매력을 함께 탐험하고 즐길 사람 찾음”이란 메시지와 함께 취미, 좋아하는 것 등을 써 넣는다. 그러면 친구를 찾는 이부터 하룻밤의 데이트나 진지한 이성 교제를 원하는 사람까지 두루 매칭됐다. 그중 몇몇과는 친구가 됐고 또 다른 몇몇과는 낭만적인 데이트를 즐겼다. 물론 데이트가 무르익어 뜨거운 밤을 보낸 적도 있다. 사실 여행 중이긴 했지만, 운명의 연인을 만나기를 내심 바랐다. 웬만하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런던이나 베를린, 뉴욕,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도시에서. 그래서 욕심을 내봤지만 결론은 실패. 원거리 연애의 주인공인 그는 암스테르담에 단기 출장을 온 인도 출신의 28세, IT 개발자였다. 주말 여행으로 찾은 런던의 한 바에서 처음 만난 그는 20대의 특권과도 같은 열정과 패기로 뜨거운 구애를 펼쳤다. 하지만 런던에서 일자리를 구할 방법을 찾지 못하자 안녕을 고한 것이다. 이별 후 바닥에 나뒹구는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도 틴더가 즉효다. 런던을 떠나 베를린에서 만난 텔아비브 출신의 남자는 스타트업을 이끄는 30대 중반의 젊은 사업가. 그는 장소 선택부터 음식 주문, 스킨십 기술까지 ‘완숙’한 남자였다. 이스라엘의 뜨거운 태양을 가득 품은 듯 따뜻하고, 함께 있을 땐 우주의 별이라도 따줄 것처럼 정성을 쏟다가도 헤어지고 나면 연락이 두절됐다. 그러곤 일주일쯤 후 그저 바빴을 뿐이라면서 온갖 달콤한 수식어를 담은 메시지를 보냈다. 독일에 왔으니 독일 남자를 만나려고 열심히 스와이프를 해봤지만 일주일 후에나 약속을 잡을 수 있는 철저한 계획성, 무미건조한 대화에 포기했다. 이렇게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데이트 앱을 계속 사용할 거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그렇다. 나이가 들수록 좁아지는 인간관계, 일로 버둥대며 보내는 하루, ‘귀찮다’는 말로 포장해 의기소침하게 숨겨버린 ‘사랑’이란 감정. 데이트 앱을 통해 누군가를 만나 마음을 열고 연애의 기쁨, 사랑을 다시 찾고 싶어졌으니 그걸로 됐다. 나는 더 유연해지고 더 자주 함박웃음을 짓는다. 데이팅 앱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카페에서도, 바에서도 적극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곧 틴더와 영원히 작별할 날을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