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결혼하기로 했다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많은 이유가 있다. 그저 타이밍이 맞아서, 사랑하기 때문에, 이 사람이라면 결혼해도 될 것 같아서….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은 만남’이란 원칙을 고수해온 나에게는 그 어떤 이유도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 결혼,연애,프로포즈,김작가,코스모폴리탄

작년 언제였던가. 결혼하지 않는 삶에 대한 합리화 비슷한 이야기를 코스모폴리탄에 썼다. “결혼이란 걸 아예 마음에 전제하지 않게 됐다. 상대를 미래의 아내가 아닌, 오로지 현재의 애인으로만 대하게 된 것이다”라고 썼던 기억이다. 역시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인가. 결혼이란 걸 하기로 마음먹은 건 그녀를 만난 후였다. 연애 스토리를 쓰기 위한 지면이 아니니 과정은 생략하자. 연애의 씨앗이 움트고 줄기가 솟아오르던 무렵이었다. 화창한 봄날이었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5분 남짓, 나는 지도 앱을 켜고 주변 꽃집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런 나 자신이 너무 신기했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그저 날씨가 좋을 뿐인데,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사람들은 오해한다. 글을 쓰는 남자, 혹은 뭔가 문화적인 직업을 가진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갖고 놀 줄 안다고. 꽃 선물 같은 건 마치 스나이퍼가 헤드샷을 날리듯 적확한 시점에 적확한 품종을 골라 능수능란하게 해치운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경험상, 이런 일을 하는 남자들은 오히려 이기적이다. 베푸는 것보다 받는 것에 익숙하다. 상대의 마음보다는 나의 마음에 충실하다(그 마음을 욕망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큰 것도 아닌,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 여자 친구들을 달래주지 못하기 십상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건대, 꽃 선물을 하더라도 뭔가 특별한 날일 때 약간의 의무감으로 해준 적밖에 없다. 꽤 헤맨 끝에 꽃집을 찾았다. 나름 신중하게 고른 꽃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기대 이상으로 그녀는 밝게 웃었다. 그 모습에 내 마음이 더 밝아졌다. 고마웠다. 아주, 아주 작은 행동이다. 그 작은 행동을 나는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생각하고 확신하던 나를, 짧다면 충분히 짧은 시간 동안 그녀가 변화시켰다. 의도된 행동이 아니었다. 일상적 만남과 대화가 그랬다. 자연스럽지만 미세할 만큼 작은 변화였다. 그 작은 변화가 쌓여갔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프러포즈란 걸 했다. 특별한 날이었다. 콜드플레이의 내한 공연 때였다. 이 이야기를 하면 다들 ‘Fix You’ 때냐고 묻지만 나는 그런 뻔한 선택을 하는 남자는 아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콜드플레이의 노래이자 공연의 마지막 곡이었던  ‘Up & Up’의 첫 기타 솔로 때 나는 준비한 목걸이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뭐라 말할지 미처 준비하지도 못했다. 입에서 저절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우리 꼭 같이 살자.” 많은 이유가 있다. 그저 타이밍이 맞아서, 사랑하기 때문에, 이 사람이라면 결혼해도 될 것 같아서….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은 만남’이란 원칙을 고수해온 나에게는 그 어떤 이유도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명제를 가슴 한구석에서 내려놓은 적이 없다. 익숙한 연애의 시작이 있었고 익숙한 끝이 있었다. 말하자면 루틴이었다. 언젠가부터 맹렬히 사랑하지도, 슬퍼하지도 않게 됐다. 잠시 기뻐하고 잠시 씁쓸해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녀를 만나며 나도 모르던 내 모습이 발굴되면서, 나는 그녀와 떨어지기 싫었다. 아니, 싫게 됐다. 그녀의 원룸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문을 나서면 어김없이 블루투스 스피커는 말했다. “Bluetooth is disconnected.” 처음엔 평범한 시그널로 여겨지던 그 소리가 언젠가부터 그렇게 싫었다. 나의 폰과 그녀의 스피커를 계속 연결해두고 싶었다. ‘disconnected’라는 소리는, 둘이 함께 집을 나올 때만 허용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같이 살아야 했다. 사랑하건 미워하건 존중하건 일체감을 느끼건 뭐건 간에, 같이 살아가는 상태에서만 허용되는 시그널이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수없이 많은 프러포즈 언사를 제쳐두고, 저토록 밋밋한 단어로 구성된 문장을 건넨 이유가. 그녀는 나를 변화시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명절 때 엄마를 찾아갔다. 그녀 앞에서 엄마는 말했다. “나는 정말 니가 결혼할 줄 몰랐어. 당연히 혼자 살 줄 알고 주변에도 그렇게 말했지.” 그런 엄마가 주책맞기도 했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꽤 오랫동안 혼자 산다는 상황에 맞춰 스스로를 세팅해온 나였으니까. 그런 나에게 갑자기 그녀가 나타났으니까. 가족을 꾸릴 준비가 아직 안 된 건 그래서 당연하다. 사소한 것들은 변했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바뀌려면 아직 멀었음을 스스로 느낀다. 중요한 건 그거다. 그녀는 채근하지 않는다. 다만 나 자신이 그러고 싶다는 것이다. 참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게 된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녀를 위해서도 아니다. 우리를 위해서다. 그게 아마도 같이 산다는 게 아닐까. 결혼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공표하고 싶은,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란 그런 게 아닐까.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우리는 바보 같은 표정으로 셀카를 찍었다.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이 사람이랑, 꼭 같이 살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