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느리게 살면 행복할까?

일과 일 사이에 또 다른 일을 끼워 넣는 삶에 익숙했다. ‘마감’은 나의 숙명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마감 기한이 없는 삶으로 불쑥 들어갔다. 북아일랜드의 한 시골 마을에선 그런 삶이 실화였다.

BYCOSMOPOLITAN2017.12.01


일 년 동안 북아일랜드의 시골에서 지낸 적이 있다. 자원봉사자라는 사뭇 머쓱한 타이틀을 안고 떠난 그곳은 ‘캠프힐’이라는 장애인 공동체. 대학 캠퍼스 규모의 마을 안에서 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다. 이곳에서 나는 백여 명의 주민과 아웅다웅 생활하며 잊지 못할 사계절을 보냈다. 


캠프힐 생활은 ‘아날로그 자급자족 라이프’라는 문구로 간단히 요약된다. 식탁 위에 오르는 채소와 허브는 공들여 일군 밭에서 가져오고, 마을의 너른 들판에는 양과 소들이 구름처럼 유유자적 몰려다닌다. (미안한 말이지만) 때가 무르익으면 이들 또한 마을 주민들의 일용할 식량이 된다.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바이오 다이내믹 유기농법을 따르기 때문에 한동안 대한민국을 공포에 떨게 한 계란 파동을 걱정할 일도 없다. 이 모든 게 진흙투성이 웰링턴 부츠를 신고 땀에 흠뻑 젖어 일하는 가드너들 덕분이다. 


나는 그곳의 베이커리에서 빵을 구웠다. 시큼한 풍미가 일품인 사워도 브레드, 담백한 식빵, 보슬보슬한 스콘이 집집마다 배달됐다. 제빵 문외한인 내가 베이커리에 투입되다니! 걱정이 앞섰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도움으로 매번 위기를 넘겼다. 물론 그 동료 중에는 나와 같은 자원봉사자뿐만 아니라 장애인들도 포함됐다. 우리는 마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노동하고, 함께 성취했다. 차이가 있다면 일하는 속도가 거북이처럼 느리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걸 문제 삼지 않았다. 목숨 걸고 지켜야 할 데드라인이 없기 때문이다. 작물을 키우고, 목공을 하고, 베틀을 다루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조급함이 보이지 않았다.


캠프힐의 일상은 매일매일의 성실함으로 채워졌다. 서툴면 서툰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차곡차곡 쌓인 하루는 근사한 결과물을 창조했다. 빨갛게 익은 사과, 결이 고운 테이블, 아름다운 패턴의 카펫…. 그토록 꿈꿔왔던 슬로 라이프가 바로 여기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기대만큼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느슨한 일상이 무기력했다. 때로는 게으른 삶에  자책감도 들었다. 데드라인에 쫓기며 산 지난날의 후유증이었다. 나의 20대는 언제나 마감과 함께였다. 그간 몸담았던 회사는 한정된 기한 내에 최대의 결과물을 뽑아내야 하는 곳이었다. 야근, 주말 반납이 빈번했고 뒤돌아볼 틈 없이 다음을 향해 발을 내디뎌야 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일과 일 사이에 또 다른 일을 끼워 넣는 데 능숙한 사람이 돼 있었다. 쉬는 법을 까맣게 잊은 채 당장 오늘을 수습하기 바빴다.


마을에서는 하루 두 번 차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누군가 기다렸다는 듯이 “티타임!”을 외치면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곧장 티룸으로 모여들었다. 찻잔의 온기가 서서히 식는 동안 누군가는 수다를 떨고, 누군가는 볕 좋은 잔디밭에 누워 광합성을 했다. 애꿎은 머그잔을 손에 쥔 채 어쩔 줄 모르고 티룸을 우왕좌왕하는 이는 나뿐이었다. 결국 다시 베이커리로 돌아가 미처 끝내지 못한 비스킷 반죽을 손에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그런 내게 캠프힐은 일상이라는 악보 위에 쉼표를 찍는 법을 알려주었다. 쉬지 않고 달리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법이라던 세상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조언이었다. 


나와 동고동락한 덴마크 출신의 카인은 일상에 여백을 불어넣는 일에 타고난 재능을 보였다. 아침 식사 전 가느다란 초에 불을 붙이는 그녀의 사소한 습관을 나는 무척 좋아했다. 테이블 주변이 환하게 밝아지는 순간의 고요는 어수선한 머릿속을 비워주었다. 카인은 생일과 크리스마스에 받은 카드, 안부 엽서를 곧장 서랍에 넣지 않고 거실 선반 위에 한동안 전시했다. 기쁨을 오래도록 음미하는 그녀만의 비법이었다. 카인과 함께한 시간만큼 내게도 몇 가지 응용력이 생겼다. 언제부턴가 방 곳곳에 작은 화병을 놓기 시작한 것. 깨끗한 유리잔에 산책길에 꺾은 들꽃을 한두 송이씩 꽂아두면 방에 들어설 때, 이른 아침 기지개를 켤 때, 고개를 돌렸을 때 무심코 마주친 들꽃이 매번 나를 무장 해제시켰다.   


네 번의 계절을 통과해 돌아온 한국은 여전히 바쁘고 까탈스러웠다. 변한 것이 있다면 이전보다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는 것. 혹은 지난 일 년 사이 내가 조금은 느려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캠프힐의 안온함 대신 한국행을 선택했을 때 작은 다짐 하나를 마음속에 새겼다. 서울로 다시 돌아가면 그곳에 나만의 정원을 만들자고. 마당도 없는 원룸 책상 위에 작은 화병을 놓고 종종 티타임을 가지겠다고. 창문을 열어 하늘을 보고, 오늘 밤에 뜬 달의 모양을 친구에게 이야기해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