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셰익스피어 베케이션

셰익스피어 베케이션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관료들에게 준 ‘유급 독서 휴가’다. 독서 부족에 시달리는 코스모 에디터들이 오직 책을 읽을 목적으로 떠나고 싶은 장소, 그리고 가져갈 책 한 권을 골랐다.

BYCOSMOPOLITAN2017.08.28


남아공 라이온 샌즈 롯지 / <문학소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직업이라는 알량한 핑계를 대며 스마트폰 중독 증상을 독서 불능의 핑계로 운운한다. 고로 책 몇 권을 진득히 읽으려면 얘기할 사람도, 나가 놀 장소도 없는 오지 중 오지로 가야 한다. 인터넷이 잘 안 터질수록 금상첨화. 남아공 음푸말랑가 ‘크루거국립공원’ 안에 위치한 라이언 샌즈 롯지는 강제적 독서를 도모하는 이를 위한 최상의 안식처다. 이곳에서 할 일이란 불시에 나타나는 야생동물 관찰하기, 섹시한 필드 가이드와 아침과 밤에 게임 드라이브 나가기, 때 되면 밥 먹기뿐. 아프리카 초원 한복판이라 밤에 나갈 읍내도, 유흥가도 없다. 오래된 나무가 만드는 그늘 아래서 수시로 콸콸콸 소변을 보는 코끼리, 하루 종일 오물거리는 기린을 친구 삼아 책을 읽고 싶다. 글도 쓰고 편집도 하고 잡지도 만드는 김용언이 쓴 <문학소녀>는 ‘문학 소녀’에 대한 사회의 억압적인 편견, 즉 작가가 되지도 못할, 글을 제대로 쓰지도 못할, 감정의 몰입을 특징으로 하는 소설, 시에 열중하며 몽상하는 독자를 꼬집는 책이다. 서울에선 엄두도 못 낼 이 ‘궁서체’의 책을 공부하듯 읽고 돌아오고 싶다. 10박 정도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피처 에디터 류진 



포항 구룡포 바다 / <오늘은 잘 모르겠어> 

사실 내 독서량의 대부분은 학창 시절에 결정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앞으로는 파도가 치고 뒤로는 등대가 빛을 발하는 구룡포라는 어촌 마을에 살며 나는 책을 사고, 빌리고, 돌려가며 읽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부는 구룡포에선 도깨비의 말마따나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책이 잘 읽혔다. 부모님은 집이 있던 자리에 펜션을 짓고 바다의 순우리말인 ‘아라’라는 이름을 붙였고,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다. 그래서 언제든 마음 내킬 때 그곳으로 독서 휴가를 떠날 예정이다. 그곳에 가면 과거, 알고 싶은 게 너무 많던 여고생의 마음으로 책을 왕창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구룡포엔 맛있는 것도 많으니 몸도 마음도 든든해져서 돌아올 수 있을 거다. 읽고 싶은 책은 심보선 시인의 <오늘은 잘 모르겠어>. 바다 앞에 앉아 그의 <슬픔이 없는 15초>를 울렁거리는 마음으로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의 새로운 책이 나오다니 반가운 마음이 든다. 구룡포 바다 앞에서 이 책을 얼른 펴는 날이 오길. -피처 에디터 김소희 




제주 ‘윈드스톤’ /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책은 무거우니까’라는 알량한 핑계로 E북과의 외도(?)를 즐기는 나지만 여행지에서는 역시 종이책이 진리라 생각한다. 특히 휴가차 즐겨 찾는 제주도에서는 한적한 분위기 덕분인지 안 읽던 책도 술술 읽힌다. 탁 트인 야외에서 책을 읽는 맛도 훌륭하지만 바다 보고 설렌 가슴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땐 북 카페를 찾아간다. 서울만큼 북적이지 않고 종이 냄새와 커피 향이 어우러져 마음에 여유란 것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휴가엔 장석주 시인의 산문집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를 들고 갈 예정. 자신의 나이를 인생의 오후에 비유하는 그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여유와 평온, 고독과 회한의 감정과 함께 풀어낸 책이다. 매일 뉴스, SNS, 가십에 빠져 타인의 이야기에만 귀 기울였던 시간을 반성하며 나는 지금 인생의 어느 시간을 살고 있는지, 지나간 시간은 어땠는지 고민해볼 계획이다. -피처 에디터 박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