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진짜 행복해지는 무기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자존감이 바닥을 쳤을 때, 나는 스스로 밥을 지어서 제때에 먹기로 결심했다. 직접 장을 본 후 요리책을 보며 온전히 나를 위한 밥상을 차린 시간이 쌓일수록 나 자신을 점점 사랑하게 됐다. | 오토나쿨,자존감,인간관계,식사,밤심

원고 청탁 메일에 적힌 주제를 보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요즘 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는 단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존감. 불과 몇 년 전에 나는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처럼 나 자신을 바닥까지 내려놓은 적이 있다. 이미 식어버린 관계에 대한 미련이 나를 잠식했던 시기였다. 하루하루가 고통이었고 이 힘든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일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내 인생이 절대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공포감 속에 매일매일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4월의 일요일 아침이었다. 계절조차 잊고 지내는 사이에  성큼 봄이 와 있었다. 오랜만에 외출하려고 마른 빵을 대충 씹고 세수를 하기 위해 세면대 앞에 섰다가 거울 속의 나를 발견했다. 사람들이 내게 “어디가 아픈 건 아니냐?”라고 묻던 말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수개월 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았고, 매일 잠을 잘 못 잤으며 담배를 끊임없이 피웠다. 내 얼굴을 덮고 있는 것은 흙빛의 거칠한 거죽에 가까웠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날로 담배를 끊었다. 그리고 친구가 매일 SNS에 올리는 건강한 밥상 사진을 보고 나도 ‘식사’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전에도 요리하기를 좋아했지만 편식이 심한 탓에 늘 먹던 것만 만들었고, 그마저도 맵고 짠 음식이었다. 나 자신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요리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편식하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렇게 버섯, 가지 등 건강한 식재료가 내 식탁 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식사’라는 행위를 선택한 건, 먹는 일이 생활의 기본 요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좋은 재료를 고르고 시간을 들여 요리하고 정성으로 차린 한 끼, 그리고 그 음식을 음미하며 즐기는 시간은 내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됐다. 일본에서 생활하는 까닭에 구할 수 있는 요리책이 일본어로 된 것뿐이었지만, 서툰 일본어로 더듬더듬 읽어가며 조리법을 익혔다. 처음엔 반도 못 먹고 버린 음식이 태반이었고, ‘난 역시 안 돼’라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시도해 나의 레시피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 시간을 잘 지나온 나 자신이 기특했다. 그 기특함이 쌓여 자신감이 생겼고, 자신감은 나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버팀목, 자존감이 됐다. 물론 자존감이 예고 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외로움에 대한 완벽한 방어벽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안다. 그렇지만 그 외로움이 불씨가 된 어떤 관계 앞에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자존감은 나를 위한 선택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내 소중한 시간을 나누고 싶을 만큼의 감정이 드는 사람인가?’ 혹은 ‘내가 만든 식사를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인가? 상대는 내가 음식을 만드는 데 들이는 정성과 시간만큼 나에게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사람인가?’ 누군가를 만날 때 내가 생각하는 이런 기준이 까다롭게 보일 수도 있지만, 자신을 위한다면 꼭 해야 할 질문이다. 자존감은 두 사람의 관계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지지대가 되기 때문이다.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사람은 밥심”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나는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불로 삼아 따뜻한 밥 한 끼를 지어 먹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자존감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About  오토나쿨 일본에서 혼자 생활하며 자신을 위해 근사한 1인 밥상을 차리고 소소히 사는 이야기를 SNS에 올리며 1인 생활자 팔로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작가. 그 기록을 모아 <도쿄일인생활>이라는 독립 출판물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