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의 위대한 역사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동물이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화려한 깃털이나 눈에 띄는 갈기 등으로 자신을 장식하듯, 우리는 ‘파마’를 통해 본인이 가진 자산, 즉 헤어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왔다. 그 역사는 밤이 되면 몰래 모여 말았던 ‘숯파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80년이 지난 지금 파마의 종류는 300개를 훌쩍 넘어섰다. 그중에서도 많은 여성의 사랑을 받았던 대세 펌만 모아 소개한다. 유행은 돌고 도는 거니까. | 스타,셀럽,헤어,뷰티,펌

(시대 순으로) 마릴린 먼로, 재클린 스미스, 파라 포셋, 이상아, 미셸 파이퍼, 고두심, 장국영, 심은하, 강수연 몰래 한 펌  Key word 숯파마, 불파마대한민국 땅에 펌이 처음 등장한 것이 1930년대 후반. 당시의 펌은 아이론이나 숯으로 데운 펌 집게를 이용해 컬을 만드는 정도였고 처음에는 영화배우나 여류 소설가 등 트렌드세터인  몇몇 신여성 사이에서만 실행되다가, 부유층 여성들을 중심으로 스멀스멀 퍼져나갔다. 1940년대 초에는 파마가 금지되기도 했는데, 철창에 갇히더라도 예쁜 웨이브의 머리를 갖고 싶었던 여성들은 새벽부터 미용실 앞에 번호표를 들고 몇백 미터씩 줄을 서서 기다리며 펌을 감행했다고 한다. 사자 머리의 포효  Key word 파라 포셋 파마펌이 자유로워진 것은 1970년대. 보기에도 멋스럽지만 손질이 편하다는 장점 덕분에 펌은 감기 바이러스 이상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정점을 찍은 것은 <미녀 삼총사>를 접한 여성들이 파라 포셋을 핀업 걸로 삼으면서였다. 앞가르마에 양옆으로 펼쳐지는 파라 포셋의 금발 머리는 마치 사자 갈기 같아 ‘사자 머리’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당시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한 여성들 역시 ‘사자 머리’를 연출하곤 했는데, 볼륨 경쟁이 붙는 바람에 거의 흑인 디스코 펌만큼 부풀어오른 상태에서 막 공중파를 타기 시작한 미스코리아 대회 생중계를 통해 대중에게 노출되며 ‘미스코리아 머리 = 사자 머리’라는 공식이 자리 잡았다.  핀컬과 장정구의 공존  Key word 핀컬 파마, 장정구 파마펌은 거의 필수적인 뷰티 루틴으로 자리 잡았고, 핀컬(핀으로 마는 펌), ‘이라이자’ 펌(긴 로트를 세로로 만 버티컬 펌)’ 등 펌의 종류도 4~5가지로 다양해졌다. 젊은 층은 주로 앞머리 부위에만 핀컬 펌을 해서 바람을 맞은 듯한 느낌을 연출했고, 중년층은 경제적인 이유로 “최대한 빠글거리게!”를 요청했다. 당시 가장 많이 거론된 펌계의 스타일 아이콘은, 15차 방어까지 성공했던 전설의 권투 선수, 장정구. 실제로 미용실 메뉴에 ‘장정구 파마’라고 적혀 있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뿌리 깊은 펌  Key word 너도 나도 파마헤어 무스와 젤, 스프레이 등이 보급되면서 뒷머리는 스트레이트로 두고 앞머리에만 힘을 주는 스타일이 유행했다. 또한 장국영, 알란 탐 등 홍콩 배우들을 벤치마킹하려는 시도와 함께 남성들 사이에서도 뒤늦게 앞가르마 핀컬 펌이 유행했는데, <응답하라 1998>의 이동휘가 이 스타일을 잘 보여준 바 있다. 한편 올림픽과 함께 살림이 피기 시작한 중년층은 과도한 빠글거림을 뒤로한 대신 뒷머리를 풍성하게 부풀린 펌을 시도했는데, “잘났어 정말”이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사랑의 굴레>에서 고두심의 폭탄 맞은 헤어스타일이 그것. 하지만 요즘처럼 볼륨 펌이니, 뿌리 펌이니 하는 용어가 딱히 없던 시대라 “좀 굵은 로트로 뿌리에서부터 깊게 말아주세요” 수준으로 커뮤니케이션됐다.  청순하거나 화려하거나  Key word 롤 스트레이트 파마, 나이아가라 파마고현정과 심은하, 이영애 등 청순한 이미지의 스타들이 인기를 장악하면서 전반적으로 스트레이트 헤어가 대세였다. 남자들의 영원한 로망인 ‘찰랑이는 생머리’를 연출하기 위해 ‘롤 스트레이트’가 유행했다. 반면 조금 노는 언니들은 강한 웨이브와 무거운 질감의 펌 헤어에 도전했다. 강수연은 뿌리부터 끝까지 뽀글거리는 ‘나이아가라 펌’(독특한 클립형 로트를 이용한 펌)을 선보여 당시 트렌드 리더로 자리 잡았다. 전화기가 놓인 압구정이나 방배동 카페 골목의 커피숍에 화려한 웨이브 헤어를 한 언니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시대 순으로) 이승연, 김희선, 김정은, 이나영, 김남주, 정유미, 성유리, 고준희, 한예슬 마법의 머리 다림질  Key word 매직 스트레이트, 바람 머리매직 스트레이트의 등장은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쇼만큼 입이 쩍 벌어지게 했다. 당시 스타일 아이콘이었던 김희선 역시 <토마토>나 <미스터 큐> 등에서 매직 스트레이트 펌을 한 헤어스타일로 주목받은 바 있다. 또 하나의 유행이었던 헤어 블리치와 함께 연출하는 것이 당시의 헤어 공식이었다. 한편 영화 <프렌치 키스>에서 보여준 멕 라이언의 바깥으로 뻗친 펌 머리가 주목받으면서, <신데렐라> 이승연, <카이스트> 채림 등 국내 연예인들도 비슷한 헤어스타일을 시도했다. 앞머리는 매직 스트레이트로 펴고, 뒷머리는 웨이브를 만 이 스타일은 훗날 문희준 머리, 이의정의 아톰 머리 정도로 코믹하게 회자되고 있다.  아날로그 감성의 디지털 펌  Key word 디지털 펌펌 기술의 발달로 디지털 펌이 도입되면서 컬의 진격이 시작됐다. 디지털 펌은 세팅 펌과 함께 열 펌의 양대 산맥으로, 고열의 세팅 펌이 머릿결 손상을 남기는 것에 비해 낮은 열로 시술돼 손상이 적고 자연스럽게 풀린 듯한 펌 헤어를 연출해준다. 웨이브가 강한 편이 아니라 무겁지 않은 짧은 길이의 모발에 적용하는데, <네 멋대로 해라>와 <아일랜드>에서 ‘이나영 머리’로 연타석을 친 이나영과 <파리의 연인>에서 김정은의 흩날리는 레이어드 웨이브 헤어스타일이 디지털 펌의 결과물이다. 잘못 시술하면 그냥 자다가 나온 초자연적인 느낌이 연출된다는 점에서, 그 이름인 디지털과는 역설적인 결과물의 펌이라 할 수 있겠다. 완판녀의 물결 펌  Key word 미니 포셋 펌당시 뷰티·패션 업계 실무자들은 공효진과 김민희를 잡기 위해 전전긍긍하지만, 실제 완판은 김남주가 끌어온다는 말이 있었다. 그간 수많은 완판을 장식했던 김남주는 <내조의 여왕>에서 딸기 우유 립스틱과 물결 펌으로 뷰티계를 장악했다. 이 스타일은 청담동 미용실에서 변두리 미용실까지 30대 여성을 중심으로 무분별하게 퍼져 나갔는데, 헤어 전문가들은 얼굴이 통통하거나 둥근 형이라면 얼굴이 더욱 확대돼 보일 수 있으므로 절대 피해야 할 스타일이라고 경고했다. 훗날 <연애의 발견>에서 정유미가 이 물결 펌의 유행을 다시 한 번 몰고 오기도 했는데, 김남주의 웨이브가 좁고 강한 웨이브였다면, 정유미의 물결 펌은 전체 기장에서 두 번 정도의 물결이 부드럽게 이는 수준이었다. S로, C로 굽이치는 일자 단발  Key word 발롱 펌영화 <인류멸망보고서> 시사회에 참석했던 고준희의 헤어스타일은 외모에 관심 좀 있는 여자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스타일이다. 이름하여 발롱 펌. 물결 펌보다 머리 끝부분이 S자 또는 SS자로 좀 더 강하게 컬링되는 스타일로, 윤아 역시 이 헤어스타일로 주목받았다. 깔끔하면서도 풍성해 보이는 발롱 펌에는 층이 없는 일자 단발이 가장 잘 어울린다. 발롱 펌이라는 해괴한 이름을 두고 한 네티즌은 “그냥 단발머리에 긴 로트를 세로로 만 버티컬 펌인데, 왜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에 비해 전달력이 정확한 이름의 C컬 펌 역시 2010년 초반부터 지금까지 인기를 끄는 펌의 종류로, 말 그대로 모발 끝이 밖 혹은 안을 향해 C자를 그리는 펌 스타일이다.  진화하는 나이아가라 펌  Key word 히피 펌 올해는 영혼이 자유로운 보헤미안과 히피들의 빗질 하지 않은 긴 머리 스타일 펌이 유행할 전망. 가르마도 너무 정확하게 타기보다는 삐뚤빼뚤 타면 히피스러운 분위기를 더할 수 있다. 정려원이나 설리, 한예슬 등이 종종 인스타그램을 통해 선보이는 스타일로, 모발이 가는 사람에게 시술하면 잘 어울린다. 사실 스타일이란 것이 라이프스타일에서부터 비롯돼야 빛이 난다는 점에서, 화학약품을 바르고 3시간을 가만히 앉아 있어야만 이 자유로운 영혼의 스타일이 완성된다는 것이 모순 같기는 하다.  끝으로 사족을 하나 달자면, 족보를 찾기도 힘들 정도로 복잡한 펌의 이름이 정리돼야 한다는 것이다. 네이버 헤어 스타일리스트들의 카페 글 중에는 100여 개의 펌 이름을 적어놓고는 “이 밖에도 350여 가지 되는 것 같아요”라고 포스팅한 글이 있다(그 글의 첫 번째 댓글: “그러나 다 비슷하다는 거~”). 블레스 바버샵의 예원상은 “펌은 열을 썼느냐, 어떤 로트를 사용했느냐, 어느 위치에 어느 방향으로 말았느냐에  따라 결과물에 차이가 생기죠. 그런데 그걸 가지고 자기네들이 붙이고 싶은 대로 러블리 발롱 펌이니 섀도 스핀 펌이니 하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이러다간 펌한 지 좀 오래돼 풀어진 단발 펌을 ‘미디엄 에이지드 소프트 볼륨 S 버티컬 웨이브 디지털 펌’이라 부르는 ‘김수한무~’ 식 펌 이름이 탄생할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