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즐길줄 아는 욜로 걸을 소개합니다. -1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뜻의 이 문구를 들어본 적 있는지? 여기, ‘욜로 정신’으로 무장하고 오늘과 지금에 충실한 인생을 사는 멋진 여자들이 있다.::한번 뿐인 인생, 욜로, YOLO, 욜로 정신, 인터뷰, 여행, 문화, 라이프, 멘토,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이수현 (25세)

영화 <와일드>에서 리즈 위더스푼이 걸었던 길을 기억하는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서 시작해 캐나다 국경에서 끝나는 길, PCT(Pacific Crest Trail)의 길이는 무려 4260km. 이수현은 그 길의 존재를 처음 알고 5분 만에 항공권을 끊었다. 그리고 550만원을 모아 5개월 동안 그 길을 걸었다.


858일 동안 세계를 여행하고 PCT도 걷고 돌아왔어요. 그런 용기는 어디서 얻는 거예요?

중학교 때 다카하시 아유무의 <러브앤 프리>라는 책을 읽었어요. 그때부터 세계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죠.


떠날 수 없는 수만 가지 이유가 있었을 텐데.

저는 늘 ‘무언가’가 되고 싶었어요. 제가 만난 멋진 사람들처럼. 그래서 열심히 돈을 모았고, 떠났죠.


작정하고 긴 여행을 떠난 거예요?

다니다 보니 욕심이 나더라고요. 돈을 아껴야겠다고 생각해 노숙도 불사했어요. 돈이 떨어지면 현지에서 일도 하고, 엽서나 팔찌도 만들어 팔고요. 그렇게 해서 아시아에서 아프리카까지 여행했어요.


그 험난한 PCT를 걷는 건 세계 여행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에요. 거길 제 발로 들어간 이유가 뭐예요?

여행하면서 만난 친구에게 처음 PCT에 대해 들었어요. 바로 찾아봤죠. 구글에서 사진을 보자마자 매료됐죠. 5분 만에 비행기 표를 끊었어요. 사실 그때 몸이 좀 아파서 여행을 마무리하고 귀국하려고 했었거든요. 수중엔 고작 30만원 정도 남았었고요. 캐나다로 넘어가서 일을 하며 돈을 모았어요.


PCT 대장정을 고작 몇 문장으로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제일 좋았던 순간은 언제예요?

하아. 할 얘기가 정말 많은데…. 그 질문에 전 늘 같은 대답을 했어요. 매일 새롭고 벅차고 감동적이었다고. 매 순간 바람도, 햇빛도, 풍경도 다르니까요.



후회했던 순간은 없어요?

단 한 번도 안 했어요. 위험한 순간은 많았죠. 마지막 7일을 남겨두고 위기가 왔어요. 그 지역에 100년 만에 태풍이 온 거예요. 많은 하이커가 완주를 앞두고 포기했지만 저랑 일행은 그럴 수가 없었죠. 장비를 재정비하고 허리까지 오는 눈을 헤치면서 걸었어요. 마지막 사흘은 거의 죽을 뻔했죠. 절벽에서 막 미끄러지고…. 패닉이 왔죠. 동행한 언니가 제가 정신 차릴 수 있도록 다그쳤어요. “위험하지 않다, 넌 할 수 있다”라고. 나중에 들어보니 진짜 위험한 길이었대요.


끝을 알리는 표지를 봤을 때 기분은 어땠어요?

덤덤했어요. 허무하기도 했고… .


아직 학생이잖아요. 졸업하면 무슨 일 할 거예요?

프랑스에 가려고요. 불어가 너무 예뻐서, 그 언어를 배우고 싶어요.


취업은 안 해요? 무언가가 되고 싶다면서요.

여행 마지막쯤 일기를 썼어요. “나는 무언가가 되고 싶어 뭔가를 했는데, 스물다섯이 된 나는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돌아왔다. 그럼에도 97%의 역경 속에서 3%의 희망을 찾으며 살아가고 있다. 나의 여행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젊어서 그럴 수 있는 거겠죠? 헤매도 여전히 젊으니까.

아뇨. 저는 40살이어도 똑같은 일을 했을 거예요.


사람들한테 말하지 않은 꿈이 있어요?

북극에 가는 거요. 오랜 시간 준비해서 탐험하고 싶어요. 그리고 티베트의 카일라스 산! 이건 좀 마음에 품으려고요. 꿈꾸는 시간들이 행복하거든요.



송주희 (27세)

‘풍운의 꿈’을 안고 상경한 송주희는 도시에서 행복하지 않았다. 잠시 내려간 고향에서 밭을 일구고 씨를 심고 깨를 털어 기름을 짜는 일을 할 때, 동네 할머니들과 수다를 떨며 마을 일에 참견하고 자연 속에서 땀 흘려 노동할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낀 스물일곱 아가씨의 이야기.


왜 농부가 됐어요?

원랜 노량진에서 경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엄마가 손을 크게 다쳤다는 전화를 받고 그날 바로 집으로 내려왔죠. 집안일과 엄마가 하던 농사일을 조금씩 도왔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는 거예요. 매일 동네 아줌마들이 집으로 놀러 와서 밥도 해주시고, 일도 거들어주셨는데, 그런 게 참 좋더라고요. ‘아, 이게 사람 사는 거구나’라고 느꼈죠.


다시 상경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요.

고등학교 때 서울에 올라와 삼수해서 대학에 갔어요. 점수에 맞춰 간 대학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됐죠.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니까. 노량진의 수많은 공시생들 사이에서 매일 자존감이 낮아지는 기분이었어요. 힘든 시간이었죠.



농부가 되기로 결단하기까지 자신을 가장 괴롭힌 건 뭐예요?

이곳에 내려온 후에도 친언니들이 한동안 제게 물어봤어요. “넌 꿈이 뭐야?” 그런 말에 사실 스트레스를 좀 받았죠. ‘내가 아직 불안해 보이나?’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성공하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게 아니더라고요. 난 그냥 여기서 살면서 매일 햇빛을 받으며 몸을 수고롭게 움직이는 일이 좋았어요.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신을 믿고 결심을 실행한 사람이 누리는 축복이 궁금해요.

매일 자연을 느끼며 햇빛, 바람 같은 것에 본능적으로 반응해요. 새벽에 눈을 떴는데 안개가 자욱하면 ‘오늘은 볕이 뜨겁겠다. 서둘러 나가야지’, 공기가 푸석푸석하면 ‘작물들이 목 마르겠구나. 빨리 물 주고 와야지’ 하면서요. 그리고 하루 종일 일하지 않기 때문에 제 시간을 충분히 가져요. 아침 일찍 일하고 해가 뜨거운 낮엔 쉬면서 낮잠도 자고, 책도 읽고, 친구도 만나요. 서울에 있었다면 누리지 못할 여유죠.


자신을 북돋워준 사람은 누구예요?

부모님이오. 농사에 대한 신념과 철학이 굉장히 뚜렷하신 분들이에요. 아빠는 여전히 “국가의 근본은 농사다. 잘 지켜나가야 한다”라고 말씀하세요. 그 신념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성장한 면도 있을 거예요. 농사는 제가 다 결정해야 하잖아요.

그전까지 난 남이 시키는 일만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젠 혼자서도 잘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계속 농부 할 거예요? 계획이 뭐예요?

소박한 계획이 있다면 내년에 우리 공장을 동네 할머니 세 분 정도를 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을 만큼 성장시키는 것? 할머니들이 연세가 많은데도 밭에 나가 힘들게 일하셔야 하는 게 안타까워요. 이젠 좀 쉬운 일을 하며 돈도 벌고 그러셨으면 좋겠어요. 그분들한테 ‘택배 송장 뽑는 법’을 알려드리는 게 제 내년 계획이에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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