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30대 중반 싱글 지인들로부터 제보가 쏟아진다. “확 마음이 가는 괜찮은 남자가 없다”는 거다. 도대체 내 사랑을 차지할 괜찮은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그알>도 풀지 못할 미스터리를 추적해봤다. | 연애,사랑,솔로,릴레이션 팁,결혼

 “그래서, 요즘 연애는 좀 해?” 싱글인 지인들을 만날 때 나의 단골 질문이다. 확실하게 선을 긋자면 이렇다. 마지막 만남을 기준으로 ‘연애나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솔로 상태’에만 해당한다. 결혼은 안 해도 사랑은 하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인다는 신념하에 체크하는 항목이고 말이다. 대학 동창 Y도 이 질문을 피해갈 수 없었다. 전문직 종사자인 Y는 누가 봐도 미녀다. 지적인데 섹시하기까지 하다. 한마디로 다 가졌다. 남친만 빼고. 늘 사랑에 목마름을 내비쳤던 Y. 나의 리액션은 주로 이랬다. “야, 솔직히 너 정도면 들이대는 남자가 한 트럭이지 않아? 네가 너무 까다로운 건 아니고?” 30대 초반 무렵엔 대체로 “내가 정말 그런가?” 자기반성을 유도하는 듯싶었다. 뜨문뜨문한 만남이 이어지는 동안 첫 질문은 좀처럼 바뀌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대답이 바뀌기 시작한다. “주변에 남자가 아예 없진 않다는 건 인정. 그런데 ‘마음이 확 가는 남자’는 정말 없어. 예전엔 분명 괜찮다 생각했을 법한 사람도 이젠 그냥 뜨뜻미지근하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 Y를 만날 때뿐만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아마도 30대 중반을 기점으로) 싱글인 지인들에게서 비슷한 답이 돌아왔다. “내 나이 되니까 주변에 확 끌리는 괜찮은 남자가 없어.” 남자가 없으면 삶이 무슨 재미냐고 부르짖던 S도, 소개팅만 잡아주면 당장 혼수 장만하러 나설 것처럼 너스레를 떨던 R도, 언제든 좋은 남자가 나타나면 몸만 들어오게 할 거라 호언하던 H도 그랬다. “그때 만나던 남잔?” “SNS에 보니까 남자들이랑 자주 어울리던데?” “한번 잘해볼까 싶다던 그는?” 내 기억엔 분명 그들 주변에 물리적으로 남자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는데? 돌아온 답변들을 다음 중 하나 또는 둘, 셋 혹은 전부였다. 1. 괜찮은 남자들은 이미 다 임자가 있거나, 2. 과거에는 괜찮다 생각했던 남자들이 지금은 그다지 끌리지 않거나, 3. 예전에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하는 연애에도 거리낌이 없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굳이 그렇게까지 만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4. 피차 바빠서 애매한 감정에 투자할 시간적 여유가 없거나. 비집고 들어갈 바늘구멍조차 없이 촘촘해 말문이 막히고 마는 ‘내 주변에 남자가 없는 이유’가 이렇다. 이 앞에서 눈 좀 낮추라느니, 잘 찾아보면 없진 않을 거라느니 하는 말들은 정말 세상 성의 없는 울림일 게 뻔하지 않나?결혼은 선택! 할 거라면 소울메이트와! 1번과 2번의 경우는 애석하게도 어쩔 도리가 없다. 곧잘 ‘운명’으로 탈바꿈하기도 하는 ‘타이밍’의 문제니까. 3번과 4번은 사실상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이건 ‘나이’, 연애 세계의 언어로 치환하자면 ‘결혼 적령기’와 연결되는 문제다. 나이와 연애, 결혼의 삼각함수가 비단 요즘만의 고민거리는 아니다. 다만 과거에는 ‘결혼을 꼭 해야 해서’ 다급해진 마음이 걸림돌이었다면, 요즘은 ‘결혼을 꼭 해야 하나 싶어서’ 망설이는 마음이 작금의 ‘애인 없어요’ 현상을 부채질하는 원인이다. 이 근본적인 차이가 바로 이 지면을 빌려 꼭 하고 싶은 이야기의 시작점이고 말이다.“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다고 하면 다들 눈을 낮추라는 얘기부터 해. 근데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사람을 찾고 싶은 게 당연한 거 아냐? 내 나이쯤 되면 나랑 안 맞는 부분을 확실하게 알고 있으니까 사소한 것 하나까지 거슬리는 경우도 많고.”(L, 35세, 교사)  “이왕이면 좋은 사람을 만나 남은 인생을 함께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야. 그렇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거지. 결혼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는 건 아냐. 그저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보니 결혼을 전제로 만날 거면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지.”(K, 36세, 회사원) “결혼과 출산, 육아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희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그려져. 그래서 꼭 해야 하나 싶다가도 주변에 결혼한 친구가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압박감이 생겨. 근데 어차피  ‘적령기’는 이미 놓쳤고 만약 할 거라면 내 일, 내 인생, 내 생각을 존중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싶어.”(G, 36세, 회사원)상황의 온도 차, 가치관의 개인차를 배제하더라도 이들에게 남는 공통점은 많다. 결혼을 안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꼭 해야 하나 의구심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 한다면 나와 꼭 맞는 사람과 하고 싶다는 것, 즉 급하게 아무나 붙들고 결혼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도 <라이프 트렌드 2017: 적당한 불편>에서 싱글의 이런 성향에 주목한다. 과거에 결혼은 무조건, 그냥, 해야만 하는 거였다면 지금은 결혼 적령기 인구 중 절반만 결혼을 하는 ‘결혼 선택의 시대’라면서 말이다. 결혼 자체보다 결혼해서 살아가는 과정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는 건 당연하다. 한마디로 상대방의 ‘알맹이’가 더 중요해진 거다. “자식 때문에 살고, 정 때문에 사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워서 살고, 미래를 함께하는 게 행복해서 살고 싶어 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피상적 조건이 아니라 결혼을 통해 형성되는 관계에서 진짜 중요하고 필요한 것을 따지기 시작했으니, 그게 바로 ‘코드’가 맞는 사람이다.” 대신, 이왕이면 경제력과 외모도 갖추고, 코드와 케미스트리까지 맞는 ‘완벽한 상대’를 찾는 이들이 늘었다고도 김용섭은 지적한다. 함정이다. 과거 능력, 배경, 외모, 성격 같은 1차원적 필터로 한두 번 걸러졌던 것이 이젠 가치관, 취향, 취미, 정치 성향 등의 다층적인 필터를 모두 통과한 순도 높은 ‘결정’ 같은 사람만이 내 미래를 함께 그려나갈 자격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이건 단순히 싱글 여성들이 더 까다로워졌다거나 눈이 높아졌다는 식으로 매도할 문제가 아니다.실패가 ‘더’ 두려운 세대 “요리부터 캘리그래피, 스쿠버다이빙까지,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재밌어요. 경험하는 게 많아질수록 내 삶의 만족도와 행복감도 커져요. 연애요? 좋은 사람이 생긴다면 당연히 하고 싶죠. 결혼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지금 나 혼자서도 즐기며 할 수 있는 것이 이렇게나 많은데 굳이 애매한 호감이 드는 사람과 맞춰가며 만날 필요는 못 느껴요.”(S, 34세, 큐레이터) 우리는 ‘혼자’의 시대에 살고 있다. 혼밥, 혼술은 일상적인 풍경이 돼가고 있고 굳이 연애를 하지 않아도 도파민과 엔도르핀을 ‘뽐뿌질’하는 액티비티는 널리고 널렸다. 만약 연애, 결혼을 하려면 이에 투자할 재화와 용역을 맞바꿀 수밖에 없다. 선택의 순간이다. A 대신 B를 택하기 위해서는, A보다 더한 보상(가치)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야 한다. 나의 즐거운 싱글 라이프를 일정 부분 포기하는 대가로 얻게 될 이 남자가 나를 ‘더’ 행복하게 해줄 사람이라는 확신이 필요한 거다. 하지만 현실은? 복잡다단한 필터링을 통과한 후 남는 사람은 ‘제로’에 가깝다. “30대 중반 즈음엔 자신의 가치관이 확고해지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기반을 구축하면서 남녀를 막론하고 자신의 삶을 즐기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지죠. 그걸 포기하거나 타협까지 해가며 연애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점점 덜하게 되고요.” <그때 알았더라면 내 사랑이 조금은 달라졌을까>의 저자인 상담가 손정연은 이렇게 분석하는 동시에 현 시점의 30대 중반이 공통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상처를 끄집어낸다. “한편으론 ‘실패’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앞뒤 세대에 비해 더 크기도 해요. 지금 30대 중반은 IMF 때 대학에 입학했다는 공통점이 있거든요. 아직 철들지 않은 그 시점을 혼란과 함께 보냈고 자신이 누릴 것보다 책임져야 할 것들을 먼저 알게 된 거죠.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안정적인 기반에 대한 열망이 굉장히 큰 세대라고 보면 돼요.” 세대적인 문제를 우리 세대의 ‘여자’로 국한시키면 더 복잡해진다. <진짜 사랑은 아직 오지 않았다>를 쓴 상담심리학자 선안남은 우리를 ‘이중 압박에 시달리는 세대’라고 일컫는다. 독립성과 의존성을 동시에 교육받았단 얘기다. “우린 양성평등을 교육받은 동시에,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전통적인 여성상을 지켜본 세대이기도 해요. 가장 현대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내면엔 굉장히 전통적인 관념에 사로잡힌 경우도 많아요. 결혼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생각하면서도 사람들이 결혼 안 한 자신을 결함 있는 것처럼 받아들이니 혼란스러워하기도 하고, 정반대로 현모양처가 꿈이어도 현대적인 여성상에 부합하지 않아 보인다는 생각에 자신을 방어하고 속마음을 감추기도 하죠.” 게다가 30대 중반엔 주변에 기혼 인구도 급격히 늘기 마련. 그들의 천태만상 시행착오를 지켜보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더욱 키울 수밖에 없다. 독일의 칼럼니스트 미하엘 나스트는 <혼자가 더 편한 사람들의 사랑법>에서 우리를 ‘연애 불능 세대’라 칭한다. 자신은 특별하다는 인식, 자아실현의 욕구가 큰 세대인 우리는 이왕이면 결혼도 자신의 이상향에 완벽하게 부합하길 원한다. “우리는 더 잘 맞는 상대, 내 삶을 더욱 유의미하게 채워줄 상대가 어딘가에 존재할 거라 생각한다”는 그의 말은 ‘둘이라 더 행복한 미래’를 향한 우리의 욕망을 함축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반성과 개선이 시급한 현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우린 그저 ‘결혼을 위한 결혼 상대’를 찾는 게 아니라, 함께라 더 즐겁고 행복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상대를 찾기 때문에 더 힘든 거니까. 동시에, 나는 슬프기도 하다. IMF 때 대학에 입학한 나는, 스무 살 소년병이었던 보르헤르트의 <이별 없는 세대>를 읽으며 스무 살을 버텼다. “우리는 행복도 모르고, 고향도 잃은, 이별마저도 없는 세대다. 우리의 태양은 희미하고, 우리의 사랑은 비정하고, 우리의 청춘은 젊지 않다.” 15년도 더 지난 지금, 아직도 이 글귀가 아픈 우리는 사랑으로 위로받아 마땅한데 말이다. 궁극의 돌파구 대신 마지막 문장을 전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미래가 우리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