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들’ 대표 장재열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가족이나 친구, 연인에게도 말하지 못할 고민을 마음 놓고 털어놓을 수 있는 언니들이 있다. 2013년 11월, 상담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3만여 명의 청년들의 고민을 공유하며 비영리 법인 청춘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들’을 운영하고 있는 장재열 대표를 만났다.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장재열, 고민, 상담, 건강한사회, 코스모 캠퍼스 | 청춘상담소,좀놀아본언니들,장재열,고민,상담

누구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건강한 사회를 꿈꾸는, 대표 장재열개인블로그를 시작으로, 현재 청춘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들’을 만들게 되기까지의 계기가 궁금해요.저는 사실 대단한 포부나 사명으로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서 뜻을 세운 용감한 청년은 아니에요. 오히려 겁이 많은 쪽에 가까웠죠. 삼성에 입사해, 인사담당자로 일하면서 감당하기 힘든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대기업에 와도 행복은 담보되지 않는다는 진실을 숨기고 아이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는 사실이 괴로웠거든요.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 시작한 게 블로그를 통한 자문자답이었어요. 블로그에 한 아이디로는 제 고민을 쓰고, 또 다른 아이디로는 제가 아닌 어떤 존재를 만들어서 답을 다는 과정을 통해서 제 고민을 객관화시켰죠. 이런 치료목적의 자문자답 과정이 사람들 눈에는 고민상담 블로그로 비춰졌고, 그렇게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보낸 메일에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답해준 게 3년 동안 2만 7천명이 되고,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정말 이럴 줄은 몰랐거든요. (웃음)‘좀 놀아본 오빠’가 아닌 ‘좀 놀아본 언니’로 활동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일단 놀긴 꽤 놀았어요. (웃음) 욕심이 많아서 노는 것도 잘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좀 놀아본 언니’라는 이름은 네티즌들이 지어 주신 거예요. 제 블로그는 ‘치료를 위한 자문자답’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주인 소개, 꾸미기 이런 걸 전혀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블로그가 조금씩 입소문을 타면서 사람들이 저를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제 글속에서 유추할 수 있는 나이, 전공, 회사, 문체 등의 단서를 보고 래퍼 ‘제시’같은 센 언니가 하는 블로그라고 오해를 한 거예요. 본격적으로 상담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장재열’이 아니라 네티즌들이 상상하는 당차고 직설적인 ‘좀 놀아본 언니’로 내담자를 만나는 게 우울증 전력이 있는 제게도 심리적 ‘역 전이(내담자의 우울감이 상담자에게 역으로 전해지는 것)’가 없을 것 같아서 ‘좀 놀아본 언니’로 활동하게 되었어요.‘좀 놀아본 언니들’ 만의 상담원칙이 있다면요?처음에는 왜 유독 많은 사람들이 저희를 찾아주시는지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심리상담’과는 다른 ‘고민상담’이기 때문이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 유독 그런 경향이 있는데, ‘상담’이라는 단어에 심리상담과 고민상담이 뭉뚱그려져 있어요. 근데 이게 문제가 뭐냐면 두 분야는 명백히 다른 거거든요. 심리상담은 ‘심리적 문제 및 질병상태’에 대한 의학적, 심리학적 접근이기 때문에, 일상에서 발생한 고민을 심리상담으로 받게 되면 ‘아, 내가 심리문제가 있구나. 마음의 병이 있구나.’하면서 더더욱 스스로를 옭아매는 부작용이 생겨요. 하소연과 심리상담사이에 명백히 고민상담이라는 구역이 존재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그런 곳들이 없었죠. 그렇기 때문에 심리상담과는 또 다른 고민상담으로의 원칙이 하나씩 생겨났어요. 첫째, 아이들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둘째, 결정대행 대신 사고의 전환을 도와준다. 셋째, 모든 사람은 다 다르다는 점을 명심한다. 넷째, 월권하지 않는다. 우리는 멘토도, 강연자도 아니고 그냥 언니오빠다. 다섯째, 심리상담은 하지 않는다. 심리상담이 필요하면 병원으로 보낸다.대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취업인데, 이 문제는 ‘좀 놀아본 언니들’이 해결해줄 수 있는 고민이 아니잖아요. 취준생들에게는 주로 어떤 방식으로 상담을 하는 편인가요?저희는 고민을 ‘해결’해주는 집단이 아니에요. 사람은 모두 다른 존재인데 어떻게 한 개인이 타인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겠어요. 다만, 저희는 취업 준비 중인 친구들에게 스스로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짚어줘요. 예를 들면, 계속 최종면접에서 떨어지는데 원인이 뭔지 모르겠다는 친구가 있었어요. 우린 물어보죠. “혹시 네가 면접 보는 자세 셀프 모니터링 해봤니?” 생각보다 안 해본 친구들이 태반이에요. 거울을 보지 않고 화장하면 엉망이 된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잖아요? 그런데 면접 준비할 때는 질문에 대한 답만 연습하지 행동, 말투, 자세를 체크할 생각을 하지 못해요. 저희는 그런 부분들을 짚어줘요. 문제를 찾아주고, 스스로 개선할 수 있게 돕는 거죠. ‘좀 놀아본 언니들’의 앞으로 계획은 어떤가요?상담활동이 곧 4년차에 접어들고, 지금까지 만난 청년의 수가 3만 명이 넘게 되는데요. 확실하게 느낀 게 있어요. 첫째, 사람들은 자기 고민 앞에서 약할 뿐이지 모두 각자의 현명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둘째, 우리 삶의 많은 고민들이 ‘개인의 노력’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어두워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저희는 단순히 상담을 ‘해준다’라는 소극적인 활동을 넘어서 ‘누구나 고민을 털어놓고 서로 상담해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적극적인 활동을 해 나가려고 해요. 2017년에는 전북, 부산 등 지역에 ‘부산언니’ ‘전주언니’등 지역 언니들을 만들 예정이에요. 고민을 말하는 게 더 이상 하자나 흠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 시대가 와서, 서로가 서로의 고민을 말하고 들어주는 사회분위기가 생겨나게 되면, 우리 사회 전체가 조금은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요?한국의 오프라 윈프리를 꿈꾸는, 사람 장재열그렇다면 ‘장재열’의 고민은 누가 들어주나요?저는 제 주변 사람들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 또는 메신저를 통해서 고민을 상담해요. 저희가 지향하는 게 ‘누구나 고민을 말하는 세상’을 만드는 거잖아요. 당연히 저희 ‘언니들’끼리도 고민을 서로 이야기하고, 저도 친구들에게 ‘나 고민 좀 들어줘’라고 먼저 말을 건네곤 해요. 세상 사람들의 고민이 너무 많고 깊다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제 자신과 상담소가 정말 유의미한 존재일까 고민될 때 제 고민은 역으로 많은 청춘들이 들어주고 보듬어주더라고요.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도전적인 삶을 선택했는데,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후회 안 해요. 회사를 계속 다녔어도 결국 퇴사했을 거예요. 어차피 퇴사 후 세상에 혼자 나와야 한다면 한살이라도 어릴 때 나온 게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제가 도자기를 전공했는데, 회사 다닐 때는 패션을 전공했다면 더 잘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근데 정말 재밌는 게, 지금은 제 전공에 오히려 감사해요. 도자기는 백자면 백자, 청자면 청자 다 똑같아 보이잖아요. 그런데 졸업할 때쯤에는 일반인들 눈에는 다 같아 보이는 도자기의 미세한 1mm 차이를 다 잡아낼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때 길러진 예민한 눈이 지금 상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다 비슷해 보이지만, 1mm의 미세한 차이를 읽을 수 있는 것 또한 고민상담의 핵심능력이거든요. 상담을 통해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날 텐데, 사람을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다면요?인사담당자일 땐 똑똑한 친구들이 좋았어요. 착해도 둔하면, 나중에 후배나 부하직원으로 들어왔을 때 제가 힘들잖아요. 저는 그런 성격이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달라요. 지금은 사람을 볼 때 ‘꾸밈이 없는지’를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점점 더 능력이 아닌 내면을 보게 되더라고요. 능력은 개발할 수 있고, 외모는 가꿀 수 있지만 내면을 드러낼 수 있는 진솔함은 어떤 트레이닝으로도 쉽지 않아요.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가치이기도 하고, 오래도록 그 사람과 함께 해 나갈 수 있는 동기가 되니까요. 다양한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자신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해요?제가 생각하기에 저의 장점은 두 가지인 것 같아요. 오지랖이 넓다는 것과 ‘나’를 굉장히 중시한다는 것. 저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함께 고민하고 들어주는 게 천성이거든요. 근데 재미있는 게, 제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나, 저, 제가, 내가, 나는’이에요. I, my, me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라는 거죠. 타인을 돕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타고난 성향이긴 하지만 반대로 타인에게 완전히 흠뻑 빠져서 같이 울고, 화내는 게 아니라 ‘제3자’로 정확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편이에요. 많은 분들이 저희와 유사한 무언가에 도전하셨다가 ‘우울‘이 전이 되어서 심리치료를 받고 그만두시는 경우를 봤어요.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을 돕고 나누기 위해서는 강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객관성도 필요한 거죠.상담뿐만 아니라 작가, 방송인 등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장재열’의 최종 꿈이 궁금해요.한국의 오프라 윈프리요. 저는 청년 멘토는 정말 되고 싶지 않아요. 한국사회에서 멘토는 뭔가 가르쳐준다는 관점이 강한데, 저는 제 이야기로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지 않아요. 누구도 그럴 자격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멘토의 시대에 막내가 되기보다는 모두가 각자의 빛을 낼 수 있는 다음세대의 첫 주자가 되고 싶어요. 평범한 사람, 트렌스젠더, 미혼모 같은 소셜마이너리티에서부터 대권주자, 정치인, 연예인까지. 위치와 관계없이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는 사람, 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로 울림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꿈꿔요. 상담가가 MC라면 방송인과는 또 다른 깊은 울림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도울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