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기 위한 나만의 사명을 가지세요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 남겨진 외삼촌을 찾아 구출하는가 하면 6개월간 남자가 돼 그들의 삶을 체험해보는 등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바탕으로 세상에 강한 메시지를 전하는 이혜리 작가. 두 번째 책 <아들이 있는 풍경>의 한국 출간에 맞춰 방한한 그녀는 지난 모든 일들이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명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 멘토,이혜리작가,아들이 있는 풍경,도전,긍정

2002년, 미국에서 출간한 두 번째 책 <아들이 있는 풍경>이 14년 만에 마침내 한국에서도 발간됐어요. 첫 작품이자 베스트셀러였던 <할머니가 있는 풍경>은 50년대에 외할머니가 보고 겪었던 한국전쟁의 상황을 담았었죠. 이번 책에서도 전편과 마찬가지로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뤘더군요. 맞아요. 두 작품 모두 제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완성됐어요. 첫 번째 작품은 한국전쟁을 직접 보고 겪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두 번째 책 <아들이 있는 풍경>은 전쟁 당시 이북에 두고 온 아들을 찾아 나선 외할머니의 여정을 그렸죠. 여기에는 가족이 주고받은 편지나 실명이 그대로 실렸는데, 북한에 첫 책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외삼촌이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어요. 이 사실을 안 외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저는 외삼촌을 그곳에서 구출해내기로 결심했죠. 사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북한의 실상에 대해 모르는 데다 관심을 가지지도 않아요. 하지만 이건 제 외할머니의 이야기인 동시에 한국의 여성, 엄마들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더 많은 사람이 탈북의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 과정을 모두 영상에 담고 이후에 두 번째 책 <아들이 있는 풍경>도 발표했어요. 한국에서 발간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뭔가요? 여러 출판사에 연락했지만 당시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 등을 이유로 전부 거절당했죠. 하지만 외할머니를 위해서라도 이 책을 한국에 꼭 소개하고 싶었어요. 마침내 한 출판사의 동의를 얻었고, 지난 2월 한국에서 빛을 보게 됐죠.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책이 지금 발간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봐요. 당시 전 철이 없고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어요. 그때 책이 나왔다면 지금과 다른 메시지를 전했겠죠. 엄마, 아내, 여자로서 인생과 사회의 다양한 면을 경험한 지금 할머니의 이야기를 깊이 이해하고 더 나은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됐어요. 가족의 사적인 이야기를 책으로 써낸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거예요. 실명을 거론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처음 책을 쓰기 시작한 건 나 자신을 알기 위함이었어요. 어렸을 때 저는 아시아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했어요. 집에서는 한국인 딸이지만 밖에 나가면 유대인 여자애처럼 행동하며 제가 한국 사람이라는 걸 숨기다시피 했죠. 그러다 취직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승진은커녕 삶에 목표가 생기질 않더군요. 이중적인 삶이 자아에 대한 분열을 일으킨 거예요. 그래서 나 자신을 제대로 알기 위해 한국을 찾았어요.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것을 글로 써 동생들에게도 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10페이지 정도 될 거라 예상했던 이야기는 어느덧 500페이지에 달했고, 결국 한 권의 책이 완성됐어요. 출판을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막상 책으로 나오니 실명을 공개한 것이 걱정스러웠어요. 하지만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신변에 대한 염려보다 훨씬 컸다고 생각해요.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거죠. 전 모든 일에 있어 양면을 살펴요. 외삼촌이 위험에 처한 건 불행이었지만 이 책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방송에서도 우리 가족 이야기와 북한의 현실을 알릴 수 있었죠. 그 덕에 외삼촌을 구출해낼 수도 있었고요. 사실 북한에서 가족을 구출한다거나 그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는 것은 웬만한 용기로는 불가능하죠. 그런 이유로 1999년 미국 코스모에서 주최하는 ‘Fun Fearless Female Award’에 ‘Freedom Fighter’로 뽑히기도 했어요. 그러고 보면 당신의 삶은 코스모의 모토인 ‘Fun Fearless Female’이란 문구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 문구를 듣자마자 ‘이건 나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해보자’라고 마음을 먹어요. 결과는 끝난 후에 생각하면 되니까요. 제가 매사에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는 건 이런 성향 때문일 거예요. 요즘은 한국에도 코스모처럼 유쾌하고 두려움 없이 당당한 여성이 많은 것 같아요. 그 어느 때보다 여자들의 역량이 커지고, 우리 스스로도 강하고 용기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죠.반가운 사실이죠. 지난 3월 8일이 세계 여성의 날이었어요. 해마다 이날이 되면 OECD에서 국가별 남녀의 임금 격차를 발표하는데, 한국은 여전히 큰 격차를 보이고 있어요. 경제 발전은 넘버원이나 다름없는데 남녀 임금에는 여전히 문제가 있어요. 저도 스물네 살에 한국으로 와 일해봤고, 그 후로도 꾸준히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데요, 여자로서 한국에서 커리어를 쌓기란 너무나도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사실 한국 여자들만큼 순발력 있고, 일처리도 깔끔하게 잘하는 여자는 많지 않죠. 그럼에도 제대로 된 기회를 얻지 못하는 현실이 참 안타까운데요, 당신이 2000년도에 진행한 프로젝트 ‘나 같은 남자(Macho like Me)’ 또한 성차별을 계기로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북한에서 외삼촌 가족을 데려온 직후 저는 남자와 사회에 대해 굉장히 분노하고 있었어요. 당시 외삼촌의 탈북을 도와준 가이드가 있었는데, 그는 제가 결혼 안 한 여자라는 이유로 제 말을 무시하고 명령만 하더군요. 그때 알아차렸죠. 한국뿐 아니라 중국, 미국에서도 남자의 입지가 여자보다 높다는 것을요. 문득 내가 남자가 되면 특권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직접 실험해보기로 결심했죠. 긴 머리를 자르고 몸집을 키운 후 지인들과의 연락도 끊고 다른 동네로 떠나 6개월간 남자로 살기 시작했어요.겉모습과 달리 행동이나 말투는 바꾸기 어려웠을 텐데, 주변 사람들이 당신을 남자로 보던가요?처음 제 모습을 본 사람들은 절 레즈비언이라고 오해했어요. 그러다 양성으로, 그 후에는 아시안 게이 소년으로 생각했죠. 이 모든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남자가 될 수 있었어요. 그사이 게이, 젊은 남자, 할아버지 등 다양한 남자들과 친구가 되고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관찰했어요. 그들과 술잔을 나누는가 하면, 함께 플레이보이 맨션에 가보기도 했죠. 결국 제가 내린 결론은 남자로 살아가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는 거예요. 그들도 나름의 고난과 역경을 안고 살아간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이 6개월간의 경험을 통해 전 남자도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덕분에 남자와 마찰 없이 조화롭게 지내는 방법도 터득했죠. 제 안에서도 안정감을 찾을 수 있었고요.그들에게도 여자들 못지않게 힘든 부분이 있다니, 선뜻 떠오르지 않는데 어떤 걸 느낀 건가요? 우선 자기 자신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아요. 우리 사회는 여자들의 감정 표현에 너그러운 데 반해 남자들에겐 냉정한 편이죠.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해지다 보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져요. 게다가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보다 가정을 위해 돈을 벌고 희생하는 존재로 인식되다 보니 젊어서 일만 하다가 나이가 든 후에 얻는 것은 고립과 외로움, 우울증뿐이죠. 그래서 남자들도 감정 표현에 자유로워지고 가장의 무게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어요. 그것이 남녀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고 올바른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깨우침과 6개월간의 기록을 바탕으로 원 우먼쇼 <나 같은 남자(Macho Like Me)>를 제작했죠. 직접 무대에 올라 스토리텔링의 형태로 당시의 경험담을 이야기한다고 들었어요. 공연을 본 관객들은 당신의 경험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던가요? 예정된 공연 스케줄은 5주였는데 계속되는 매진에 결국 6개월까지 연장됐어요. 처음엔 여자들만 보러 오는가 싶더니 나중에는 관객의 절반이 남자더라고요. 특히 결혼 상담가나 심리 상담가가 많이 왔어요. 직접 보고 난 후에 자신들의 고객에게 제 쇼를 추천한다고 하더군요. 쇼를 통해 남녀 사이에 대화가 시작되고 서로에게 공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기 때문이죠. 이렇듯 제가 얻은 남녀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관객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연이 가지는 의의는 크다고 봐요. 최근 한국에서도 여성과 남성 사이의 갈등에 대한 많은 담화가 오가고 있어요. 결론은 남자도 여자도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건데, 이런 시기에 <나 같은 남자>가 한국에도 소개된다면 좀 더 풍성한 스토리를 만들 수 있겠네요. 실제로 한국에서 <나 같은 남자>를 무대 위에 올리는 것이 제 꿈이에요. 특히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앞둔 여성, 혹은 남자와 함께 일하는 많은 여성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쇼의 전반적인 내용은 한국 사정에 맞게 다듬어야겠죠. 무대 위에 오르는 사람도 제가 아닌 실제 한국 여자 배우였으면 해요. 당신의 남편이자 <도전! 슈퍼모델>의 공동 프로듀서인 켄 목이 제작한 영화 <조이>가 이번 책의 발간 시기와 비슷한 때에 개봉했어요. 그도 여성과 소수자를 위한 콘텐츠에 관심이 많다던데, 부부가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을 것 같아요.맞아요. 남편과 전 창의적인 일을 함께하면서 많은 부분 영향을 주고받죠. 우리가 하는 대화의 주제는 항상 똑같아요.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에 대한 것이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몸담은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근래 대중에게 더할 나위 없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우리는 이를 기반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에 앞장서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사명에 대해 끊임없이 계획하고 생각해야 돼요.사실 누구나 일상에서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며 살아가죠. 그런 의미에서 당신처럼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우선 사회가 안정을 찾아야 해요. 분단국가의 현실, 혹은 불안한 경제 상황에서는 개인에게 주어지는 부담도 적지 않거든요. 이러한 거시적인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개개인의 노력도 게을리해선 안 돼요. 전 강연을 다닐 때마다 늘 이 이야기를 해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감사히 여기고 적극적으로 가꿔나가라고요. 그런 다음 자신을 넘어 더 큰 세계를 위해 어떤 사명을 가지고 살아갈지 생각해야 돼요. 사명이라고 해서 거창한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분리수거나 투표에 참여하는 것도 좋아요. 소소한 행동이나마 사명감을 가지고 실천하면 그 안에서 자부심과 즐거움, 삶의 목적을 찾게 되고 동시에 외적인 변화도 절로 나타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abortion dc multibiorytm.pl abortion techniqu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