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변진섭, 김완선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이야기가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것은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이 담긴 아름다운 노래들 덕분이었다. 순수했던 그 시절의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감미로운 목소리의 발라더 변진섭, 그리고 열정 속에 춤추게 했던 섹시 댄서 김완선. 여전히 우리의 가슴속에 청춘의 기억으로 살아 있는 그들을 만났다. | 변진섭,김완선,응답하라1988,화보,인터뷰

(변진섭)재킷 77만8천원, 팬츠 가격미정 모두 반하트 디 알바자. 니트 톱 5만9천원 자라 맨. 슈즈 30만원 닥스 슈즈. 양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완선)원피스 가격미정 펜디. 뱅글 3만9천원, 블루 스톤 반지 3만9천원 모두 케이트 앤 켈리. 귀고리 1만5천원 쥬얼카운티. 블랙 크리스털 반지 37만원 스와로브스키. 슈즈 가격미정 스튜어트 와이츠먼.영원한 발라더, 변진섭1987년 혜성같이 등장했던 변진섭. 1988년 신인상을 받았던 그는 다음 해 바로 대상을 거머쥔다. 담백한 음색에 순수한 가사로 소녀 팬을 대거 몰고 다닌 오빠의 추억 이야기셔츠 3만9천원 자라 맨. 팬츠 가격미정 캐롤리나 헤레라. 서스펜더, 양말,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 1회 첫 노래가 ‘새들처럼’이었어요. 1988년도 대중가요 하면 이 노래가 가장 먼저 떠오르듯이 이 시절 최고의 스타였잖아요. 드라마를 보면서 그 시절이 많이 생각나지 않았나요?기분이 좋았어요. 공감 가는 부분도 많고요. 첫 앨범을 낼 때 사실 기대를 전혀 안 했어요. 스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고 그냥 음악이 좋아서 낸 앨범이었죠. 제가 하고 싶은 장르의 음악을 담아 획기적인 곡이 많았어요. 주변에서 기대하지 말라는 말도 꽤 했는데 대박이 난 거예요. 그때 제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죠. 데뷔하자마자 신인상을 타고 그다음 해에 바로 대상을 탔으니까요.김완선 씨도 당시 여자 가수 중에 최고였죠. 그 시절 완선 씨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면요?그때는 대기실에서 주로 봤죠. 완선이가 저보다 세 살 어리긴 한데 사실 제 선배예요. 완선이는 사람들과 얘기도 잘 안 하고 어울리지도 않았어요. 제가 말 시키면 “네네”라고만 했었죠. 그러다 무대에 올라가면 갑자기 돌변해 “안녕하세요! 김완선이에요!” 인사하고는 “나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하면서 춤추고 노래해 소방차 형들과 맨날 놀리고 그랬어요.그때 두 분 다 인기가 엄청났잖아요. 실제로 어느 정도였어요?제가 데뷔 전 아버지가 지은 건물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 건물 앞에 학교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데뷔하고 제가 거기 산다는 게 소문이 나 학생들이 몰리기 시작했죠. 결국 그 학교 교감선생님이 집에 찾아왔어요. 저를 보려고 학생들이 몰려 다치고 2층에서 떨어지기도 했다면서 면학 분위기에 방해가 된다고 이사를 가달라고 하더라고요. 1층을 아지트로 쓰려고 아버지께 임대료를 지불한 뒤 오디오 시스템을 설치하고 바닥도 카펫으로 까는 등 인테리어를 다 바꿔놓은 상태였는데 결국 건물을 팔고 이사를 갔죠. 그땐 집 앞에서 기다리던 팬이 많았어요. 그중에 지방에서 온 팬들은 차가 끊겨 밖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는데, 저희 어머니가 걱정해 동네 여관에서 재우곤 했죠.21세에 갑자기 엄청난 스타가 되니 부담감도 컸겠네요.‘뭐지 이거?’라는 생각에 멍하게 정신없이 주어진 스케줄만 소화했어요. 내가 엄청나게 성공했다는 것보단 ‘이게 오래가겠어?’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희한하게 그때 방송국에선 제가 거만한 사람으로 소문나 있었어요. 제가 눈이 나빠 사람을 못 알아봐서 인사를 안 하고 지나가니 건방져 보였던 거죠. 기자와 술 한잔하면서 편하게 말한 것도 스타 됐다고 한참 나이 많은 기자에게 덤비는 걸로 되어 있었고요. 스타가 되니 똑같이 행동해도 사람들이 자꾸 건방지고 거만하게 봤던 것 같아요.그때 라이벌은 누구였나요?문세 형하고 라이벌 구도였고 당시 승철이가 솔로로 떠올랐어요. 승환이가 그다음이죠. 나보다 한 살 많은데 조금 늦게 데뷔해 제 후배예요. 승환이가 신인일 때 저랑 많이 닮아서 카페에 가면 “변진섭씨 아니에요?”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며, 그때는 그것 때문에 어깨에 힘주고 다녔다고 하더라고요.음악을 하면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가수는 누군가요?무명일 때부터 문세 형의 음악에 영향을 많이 받았죠. 용필이 형하고 들국화 앨범도 많이 들었고요. 그리고 아무래도 팝을 많이 들었죠. 다른 건 몰라도 제가 한국 음악계에 일조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게, 제가 앨범을 내고 나서 대중음악 판도가 팝에서 가요로 넘어왔어요. 그 전까지만 해도 앨범 판매량, 선호 앨범, 음악 취향을 보면 다 팝이 장악하고 있었거든요. 가요도 팝 못지않게 좋다는 걸 제가 어느 정도는 알렸다고 생각해요.당시에 음반 판매량이 엄청났어요. 밀리언셀러 앨범을 낸 가수였고요. 1집 공식 판매량이 180만 장인데 비공식 판매량까지 합치면 300만 장 가까이 팔렸을 거라고 들었어요.비공식 판매량이 더 많을 거예요. 2배가 넘죠. 수치로 보면 정말 어마어마한데 그 시절은 100만 장이 하도 입에 오르내리던 때라 많은 것 같지도 않았어요. 제가 유독 앨범이 많이 나가는 가수였거든요. 솔직히 2집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좋은 앨범 같지 않은데 공식 판매량이 198만 장이니 비공식 판매량까지 하면 거의 글로벌 앨범 수준이었죠. 집마다 그 앨범은 거의 다 있었을 거예요. 제가 생각할 때 당시에 전축과 턴테이블 오디오가 집마다 하나씩 있었는데 그때 기본적으로 산 앨범이 제 앨범이었던 거 같아요. 아무리 음악에 관심이 없어도 디스플레이 차원에서 LP판이 몇 장 있어야 하는데 제 앨범이 그런 식으로 가지고 있기에 무난했던 거죠. 제 노래를 정말 좋아해 산 사람도 있겠지만, 디스플레이용으로 사거나 정기적으로 앨범을 구입해 음악을 듣는 사람이 사니 많이 팔렸던 것 같아요. 지금이라면 불가능한 숫자죠.창법이 담백하고 음색이 부드러운 것도 한몫하지 않았을까요?제가 다른 가수보다 질리지 않게 부르는 면이 있죠. 노래를 아무리 잘해도 과하게 부르면 3~4곡만 들어도 듣기 싫어지잖아요. 저는 스무 곡을 들어도 계속 들을 수 있게 노래해요. 뭐든지 넘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처음에는 저도 누가 더 높이 올라가나 막 지르면서 부르기도 했어요. 그러다 세월이 지나면서 노래를 오래 하다 보니 내게 맞는 음역을 찾게 됐죠. 앨범을 녹음할 때도 지를 땐 지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절제해요. 제 목표는 음정과 박자가 정확한 유치원 애들처럼 노래하는 거예요. 심지는 깊지만 오버하지 않는 거죠. 이번에 앨범을 내면서 예전 노래를 리메이크할 때도 좀 더 능수능란하게 부를 수 있지만 일부러 안 했어요. 30년 가까이 부른 노래니까 허세가 있을 수 있지만 그걸 자제하는 게 노하우죠.목소리가 예전과 변함이 없어요. 특별한 목소리 관리 비결이 있나요?특별한 건 없어요. 부모님이 물려주신 특별한 목소리에, 담배 안 피우고 술도 거의 안 마시고 일주일에 2~3번 운동하는 정도죠. 그리고 도라지차 챙겨 먹는 게 다예요.변진섭 하면 가사도 빠질 수 없죠. 썸이나 밀당 같은 지금의 변형되고 왜곡된 사랑이 아닌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본질을 세밀하게 말하는 가사가 감성을 자극하잖아요.<응팔>도 그렇고 <히든싱어>에 나갔을 때도 그런 점 때문에 제 음악이 다시 재조명되더라고요. 제 음악을 모르는 젊은 층도 그동안 들었던 음악과 달라서 그런지 더 신선하게 느끼더군요. <응팔> OST에서 디셈버가 리메이크한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을 듣고는 제가 부른 오리지널 곡을 찾아 들어보고, 그걸 계기로 다른 제 곡까지 듣는 식으로 말이죠. 요즘 제 팬카페에 “엄마한테 얘기 듣고 노래를 들었는데 이젠 팬이 됐어요”라고 말하며 들어온 젊은 팬들이 있는 것처럼 저 때문에 세대 간의 간격이 좁혀졌으면 해요. 예전처럼 온 가족이 다 같이 음악 프로그램을 보면서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에요.<응팔>이 방영됐던 요즘 가장 빛났던 청춘의 순간이 떠오르진 않았나요?청춘이 꼭 20대라고만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자기 인생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순간이 60대라면 그때가 청춘인 거죠. 설레고 살아 있다는 걸 느끼는 그 순간이 청춘이에요.그럼 변진섭의 ‘청춘’은 언제인가요?사랑할 때. 사랑하면 사랑 빼곤 아무 생각도 안 나잖아요. 제가 음악에 빠졌을 때가 딱 그랬어요. 아무것도 안 보이고 완전히 중독되어 있었죠. 음악이 내 모든 걸 온전히 지배하고 흔들었던 그 시절, 그리고 지금도 저는 쭉 청춘인 것 같아요.언제나 섹시 디바, 김완선1986년, 가요계에 데뷔해 ‘오늘밤’, ‘리듬 속의 그 춤을’ 등의 히트곡을 내놓으며 ‘한국의 마돈나‘라는 애칭으로 불린 김완선.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는 여전히 섹시하다니트 톱 82만원 미쏘니. 쇼츠 가격미정 씨위여전히 아름다운 미모와 몸매, 도대체 그 비결이 뭔가요? 44 사이즈도 헐렁한 몸매라니! 40대 중반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예요.요즘에 살이 좀 빠져서 그래요. 원래는 55 사이즈 입어요. 그러면 살짝 넉넉한 정도? 타이트하게 입는 걸 안 좋아하거든요.몸매 관리를 위해 따로 노력하는 편인가요?올해 목표가 근육질 몸을 만드는 거예요. 운동을 안 하니까 근육도 다 없어지고, 에너지도 바닥난 거예요.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는 금방 할머니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PT를 시작하려고 해요. <응팔>에 보면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 장기 자랑을 위해 ‘리듬 속의 그 춤을’을 연습하고, ‘덕선이’가 앞머리에 뽕을 넣을 때 ‘기분 좋은 날’이 배경 음악으로 등장해요. 추억의 장면이 김완선 씨 노래와 맞물려 감성을 자극했는데요, 가수 본인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궁금해요. 이미 다 잊혔다고 생각했던 노래를 다시 듣고 사람들이 추억에 빠지기도 한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주변에서 그 드라마를 보고 나서 ‘아, 나도 저렇게 살았었지’라며 좋다고들 해요. 음악의 힘이 참 큰 것 같아요.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거, 저로서도 의미 있죠.드라마를 통해 그때 그 시절 본인이 활동했던 모습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어요?‘아, 저땐 저랬는데 언제 나이가 이렇게 많이 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가 오래전처럼 느껴지지가 않아요. 바로 엊그제 같아. 그런데 이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게 슬프기도 하고, ‘저땐 정말 열심히 했었구나’ 생각하기도 하고. 다양한 감정이 들죠.당시 본인도 가수였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가수가 있었나요?저는 들국화 팬이었어요. 들국화의 1집을 듣고 ‘아, 한국에 이런 밴드가 나타나다니!’라며 정말 충격을 받았죠. 송골매도 좋아했고, 변진섭 씨도 좋아했어요. 변진섭 씨 노래는 안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죠. 특히 ‘새들처럼’이라는 노래를 즐겨 들었어요.1986년도에 데뷔해, 이미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스타였기 때문에 평범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 같아요. 어쩌면 소소한 추억을 만들 겨를이 없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그 부분이 좀 아쉬워요. 남들처럼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후회는 안 해요. 가수가 돼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꿈만 생각하면서 달려왔으니까요.  그럼에도 김완선 씨 역시 가슴에 남는 10대 때의 기억은 있을 거라 생각해요. 가장 순수했던 시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초등학교 때부터 단짝이었던 친구가 있었어요. 어릴 때 저는 피아노를, 그 친구는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음악적으로 굉장히 뛰어난 아이였어요. 둘이 매일같이 편지를 주고받았죠. 내가 편지를 써서 친구의 아파트 우편함에 넣고 가고, 그러면 또 친구가 답장을 써서 우리 집 우편함에 넣고 가고. 종종 시를 써서 주고받기도 하고요. 어느 날은 친구 집에 놀러 갔더니, 내가 쓴 시로 만든 곡을 들려주더군요. 서로에게 굉장히 좋은 영향을 많이 줬던 것 같아요. 그 기억이 어린 시절의 가장 달콤하고 소중한 추억이에요.소녀 같은 사랑의 경험은 없나요? 좋아하는 사람에게 ‘너에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탕뿐’ 이런 메시지가 담긴 쪽지를 줘봤다거나, 아니면 받았다거나.중학교 때 도덕 선생님을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한 번은 도덕책을 펼쳐놓고 몰래 추리소설을 보고 있었는데, 딱 걸린 거예요. 좋아하는 선생님 시간에 그걸 들킨 게 너무 창피해서 한동안 피해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순수했던 거죠. 하하.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나요?아니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10대, 20대는 정말 힘든 시기였어요. 연습생 3년, 데뷔하고 나서 7년. 그 10년을 진짜 너무 열심히 살았어요. 일밖에 안 했죠. 그 시절은 저에게 지치고 힘들었던 기억으로만 남아 있어요.1988이 아닌 다른 시기로 타임머신을 타고 떠날 수 있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응답하라’의 시기는 언제인지 궁금하네요.딱 서른 살. 30대를 다시 한 번 살아보고 싶어요. 저는 30대를 너무 방황만 하다가 흘려 보냈어요. 14년간 너무 치열하게 살아온 탓인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긴 방황 끝에 하와이로 가 공부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돌아왔죠. 어찌 보면 40대인 그때, 진짜 ‘나’로서 다시 데뷔를 한 거예요. 그러니 40대에 품기 시작한 그 마음으로 30대를 다시 살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사실 과거 가수 김완선에 대한 이미지는 ‘도도하고 신비롭다’는 수식이 강렬했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예능 프로그램 <불타는 청춘>에서 털털한 매력을 선보이고 있죠. 이런 모습이 리얼이었구나 싶기도 하고, 의외이기도 해요.그게 원래 나예요. 작년 4월부터 <불타는 청춘>에 합류했는데, 정말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프로그램 덕분에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매주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지역을 찾아 힐링 여행을 떠나잖아요. 얻는 게 참 많아요. <불타는 청춘>을 촬영하면서 보낸 1년이 지금까지 내 47년 인생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생각도 해요. 자연스러운 내 모습으로 편안하게 할 수 있어 재미있어요.가수로서의 활동도 기다려져요.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았는데 특별한 계획이 있나요?6월에 국내 주요 도시를 도는 콘서트 투어를 계획하고 있어요. 그리고 올해는 그동안 만들어둔 곡을 하나씩 발표할 생각이에요. 2년 전에 코스모와의 인터뷰에서 죽기 전에 꼭 영화 한 편 찍겠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음, 아직 영화 제안을 못 받았어요. 영화감독들이 그 인터뷰를 못 봤나 봐. 하하.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어요. 연기력이 출중한 사람은 아니니, 대사가 별로 없는 스릴러물이면 좋겠네요. 좀비나 괴물 나오는 건 싫고 두뇌 싸움하는 심리 스릴러 같은 거? 그런 건 나랑 잘 맞을 거 같아요. 일 말고 사랑 계획도 궁금해요. 결혼보다 평생 연애하며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어떤 사랑을 꿈꾸나요?모르겠어요. 사람이 앞일을 어떻게 예측하겠어요. 지금 당장은 내 생활이 너무 행복해요. 나는 지금 내 삶을 너무 즐기고 있어요. 그런데 어디선가 운명처럼 멋진 남자가 나타나 내가 좋다고 한다면,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이 좋다면 연애하는 거죠. 안 될 게 뭐 있어요?1988 시절에는 몰랐던, 지금의 나이가 되었기에 알 수 있는 깨달음 같은 것이 있나요?일의 소중함. 어렸을 때는 “넌 연예인이 천직이야”라는 이모의 말이 전혀 공감되지 않았어요. 그저 ‘25세에 그만둘 거야’라는 생각밖에 없었죠. 그런데 나이 들고 나니까 죽을 때까지 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만약 내가 나이가 더 들어서 방송 활동을 못 한다면 김밥 장사라도 할 거예요. 그게 건강의 비결이고 내 삶을 행복하게 하는 비결인 것 같아요. 일할 수 있다는 거, 그것만으로도 반 이상은 행복한 거예요.정말이지 일에 대한 열정이 느껴져요. 타고난 워커홀릭인 것 같아요.내 평생을 그래프로 그린다면 90퍼센트가 일이에요. 일할 때 가장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요. 홀릭은 아니에요. 하지만 일을 안 하는 나는 상상할 수가 없어요. 평생 이렇게 즐기며 일하고 싶어요.abortion dc multibiorytm.pl abortion techniquesabortion dc multibiorytm.pl abortion techniquesabortion dc multibiorytm.pl abortion techniqu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