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벌써 11월. 이렇게 또 한 살 더 늙는구나 싶은 마음에 괜스레 울적해지는 그런 시기죠. 나이가 든다는 것의 자각,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의 각성이 극명해지는 시기가 바로 ‘스물아홉의 12월’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그 시기를 잘 넘긴 인생 선배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서른? 한창일 때지!” | 서른,서른즈음,진짜어른,어른되기,인생선배조언

서른은 인생의 전환점이 아니다서른 즈음, 나는 인생의 변화를 한번에 겪고 있었다. 단 3주 만난 남자에게 청혼을 받아 3개월 만에 결혼했고, 초창기 멤버로 가담했던 인터넷 벤처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대기업 마케팅 팀장으로 이직했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는 와중에 난생처음 내 이름을 단 칼럼을 매달 잡지에 기고하기 시작했다. 살던 집을 떠나 신혼집으로 이사했고, 새로운 가족과 새로운 회사 동료들이 생기는 동안 자연스레 내 나이 앞에 ‘3’자가 붙었다. 뭐랄까, 본격적으로 번잡스러운 ‘어른’이 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인생을 송두리째 새롭게 시작한다는 감회도 있었다. 사실 내 경우는 나이가 주는 인생의 전환기라기보다 내가 환경을 자발적으로 전환했다고 보는 게 맞긴 하다. 그 ‘새로움’ 때문인지, 그 ‘정신없음’ 때문인지 30대가 돼서도 특별히 30대라 더 늙었다는 기분은 별로 안 들었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주도적으로 선방을 날림으로써 내가 ‘나이 먹고 있다’는 실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막상 서른을 넘기고 나니, 세월은 20대 시절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지나갔다. 새 직장에서의 일은 무척 바빴고, 글쓰기는 새로운 기쁨과 발견을 주었다. 주말이 되면 결혼 생활에 적응해나가느라 바빠 ‘이번 주말엔 뭐 하지?’ 같은 싱글 시절의 가장 큰 고민거리에 시달릴 겨를도 없었다. 여전한 것도 있었다. 야근을 밥 먹듯이 했고 귀찮으면 화장도 지우지 않고 잤으며, 다이어트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맘껏 야식을 시켜 먹기도 했다. 운동? 힐링? 그게 다 무어냐. 서른 초반은 브레이크 없이 “모두 다 덤벼!” 하는 기세로 달리고 또 달리던 시절이었다. 서른 전에는 나의 20대야말로 회사에서 일을 배우고 겨우 자기 몫을 해내느라 눈이 핑핑 돌아가던, 정신없이 바쁘게 불태웠던 시절이라고 자부했다. 그런데 막상 서른이 넘어 팀장이란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하다 보니 이번에는 내 몸 하나 건사할 걱정이 아니라 나에게 딸린 팀원들을 건사해야 하는 일까지 겹쳐 그야말로 공사다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회사일과 집안일을 병행하는 틈틈이 여기저기서 청탁받은 글쓰기와 첫 책을 내기 위해 집필도 해야 했는데, 그것 역시 보통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내게는 여전히 힘겨워도 보람을 느낄 정도의 에너지가 있었고, 몸과 마음이 따로 놀지 않았던 행복한 시기였다(반면 30대 중반을 넘기면 슬슬 몸과 마음이 엇갈리면서 서로 눈치를 보게 되는 시절이 온다). 연말이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한 살 더 먹는 게 두려운 20대 후반 친구들로부터 “서른이 되기 전에 무엇을 준비할까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사실 29에서 30이 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앞자리 숫자밖에 없다. 우리는 어쨌든 계속 자신의 페이스대로 걷거나 달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오히려 인생의 큰 전환점은 서른 이전 스물아홉 살 때 올 수도 있고 한참 뒤인 서른아홉 살 때 오거나, 혹은 ‘기점’과 연관되지 않은 어느 숫자의 나이에 올 확률이 더 높다. 그러니 마치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기분으로 과잉의 의미 부여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다만 한 가지. 나이가 한 살 더 많아지는 데 대한 각오를 자문하는 태도는 분명 필요하다. ‘나는 조금 더 나다운 인생을 살고 있는가?’, ‘나는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만큼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전자는 나의 인생에서 어떤 가치들이 우선순위에 있는지 파악하는 질문이며, 후자는 그 우선순위를 위해 내가 실제로 얼마만큼 ‘행동’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해줄 것이다. 왜 나이가 들수록 나아져야 하느냐고? 가만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외면과 내면이 자동적으로 퇴보하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되니까 ‘마음의 힘’이 필요하고, 행동으로 이를 뒷받침해줄 ‘몸의 힘’이 더불어 필요한 것이다. 또 하나 더. 여자로서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을 하나 첨언하자면, 가능하면 나이 들수록 ‘맑고 고요한 여자’가 되라는 것이다. 탁하거나 우악스럽지 않은 투명함, 그리고 불필요한 말수를 줄일 수 있는 차분함. 이것이 ‘어른 여자’의 멋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하루하루 늙어감을 슬퍼하는 대신, 잊지 말자. 오늘이 내 남은 인생 중에서 가장 젊은 날임을. - 임경선(칼럼니스트,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태도에 관하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