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를 뒤흔든 성희롱 소송 사건 이야기 | 코스모폴리탄 (COSMOPOLITAN KOREA)

뉴욕 글로벌그룹의 CEO 벤자민 웨이는 스웨덴 출신의 인턴 한나 보우벤을 여러 차례 성희롱했고, 미국 연방대법원은 그에게 1천8백만 달러를 보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월가를 뒤흔든 성희롱 소송 사건의 주인공 한나 보우벤이 코스모에 들려준 이야기. | 월가소송,성희롱 소송사건,한나 보우벤,성희롱,코스모폴리탄

내 이름은 한나 보우벤. 스웨덴 대학에서 미디어 및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노르웨이의 한 회사에서 1년간 마케팅 인턴십을 거쳤다. 그 후 학생 비자를 받아 여행 가방 두 개만 든 채로 뉴욕에 왔다. 내가 벤자민 웨이라는 남자를 알게 된 건 2년 전 여름, 친구들과 함께 햄튼에 놀러 갔을 때였다. 한 월스트리트 증권맨의 파티에서 만난 그는 자신이 하는 사업 가운데 스웨덴 커피숍 체인 하나를 갖고 있다고 했고, 가족 관계를 비롯해 나에 관해 많은 것을 물었다. 우리는 맨해튼에서 다시 만났다. 그의 펜트하우스에서 열린 칵테일 파티에서 벤자민 웨이는 자신이 ‘뉴욕 글로벌 그룹’의 CEO라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는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단돈 63달러를 갖고 미국으로 건너온 미국계 중국인으로 나보다 스무 살 정도가 많았으며, 결혼을 해서 자녀를 두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는 월스트리트에 있는 스테이크집으로 나를 불렀다. 약속 장소에 가며 나는 내심 그가 일전에 이야기했던 스웨덴 커피숍 인턴십 얘기를 꺼내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그가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겨 와서 한 제안은, “전 세계를 함께 여행할 여자 친구가 되지 않겠느냐?”라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라면 다른 사람을 찾아보시죠. 제가 원하는 건 일자리예요.” 다음 날 그는 내 거절이 매우 인상적이라며 전화를 걸었다. 나는 전날의 어색한 식사 자리 일은 ‘잊겠다’고, 내가 원하는 것은 일자리라고 강조했다. 그러자 그는 ‘기업 홍보 담당 디렉터’라는 근사한 직책과 2천2백 달러 정도의 월급을 제안했다. 걱정했던 취업 비자가 한 번에 해결되고, 월스트리트 트럼프 빌딩 38층의 사무실에 출근하게 되다니 꿈만 같았다.하지만 출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조금씩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내가 ‘약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의 생각대로 나는 미국이란 땅이, 월스트리트라는 사회가 너무 낯설었다. 그는 회사를 대표하는 비즈니스 미팅에 참석하는 만큼 옷차림이 중요하다며 스카프나 보석류를 사주고 싶어 했고, 거절하면 화를 냈다. 남녀의 성적 평등이 확실한 스웨덴에서 나고 자란 나의 행동이 중국인인 그에게 무례해 보일 수도 있단 생각에 나는 결국 수긍했다. 그는 퇴근 후 사교 모임에 동반하는 날엔 매우 만족스러워하다가도 그렇지 않은 날엔 내가 일에 헌신적이지 않다며 차갑게 대했다. 덕분에 난 친구들을 모두 잃었고, 그는 이 월스트리트에서 나를 지켜줄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고 나를 몰아세웠다. 그해 가을, 우리는 보스톤으로 출장을 갔다. 내게 ‘밝은 미래’가 보인다는 그의 말을 기분 좋게 들으며 저녁 식사를 마쳤지만, 문제는 방으로 돌아갔을 때 일어났다. 그가 방을 하나밖에 예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내게 키스를 퍼부었고, 콘돔도 없이 섹스를 시도했다. 섹스는 끝까지 거부했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가야 할지 너무나 막막했다. 직업과 비자를 잃고, 모욕감만 얻은 채로 스웨덴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 날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고, 나 역시 그날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나를 옭아매는 압박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는 역할에 걸맞은 곳으로 옮기라며 나를 월세 3천3백 달러의 아파트에 강제로 이사를 시켰고, 월급을 올려주는 대신 현금이 필요할 때 자신에게 말하라고 했다. 그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였고, 12월의 출장에서도 또다시 방을 하나만 예약하며 섹스를 시도했다. 가까스로 피했지만, 그게 마지막이 아니었다. 1월이 되자 그는 연말 사업을 논의하자면서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고, 콘돔 박스를 꺼내 들고 섹스를 종용했다. 결국 나는 나 자신을 내려놓았고, 그 남자가 하자는 대로 했다. 그다음 달에도 그는 몇 차례나 섹스를 강요했고, 나는 저항하지 못했다. 직업과 수입과 비자, 집,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게, 아니 그가 권력과 인맥과 돈으로 나를 짓밟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두려웠다.  재판에 참석하러 가는 한나 보우벤과 벤자민 웨이상황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비자를 유지해줄 새로운 직업과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취했고, 지난여름 만났던 남자와 다시 사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4월이 되자 그는 최후통첩을 보내왔다. 8월이 되기 전까지 우리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지 않는다면 직업과 아파트를 잃게 될 거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4월 22일, 아파트에 있는 남자 친구의 모습을 본 그는 이성을 잃었고, 회사 로비에서 나를 해고했다. “빌어먹을 년! 네 비자를 취소해버리겠어. 오늘 안으로 아파트에서 짐 싸서 나가!” 직업을 잃었고, 집을 잃었지만, 드디어 해방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나의 가족과 친구들, 사업상 알게 된 사람들에게 나를 음해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사업 파트너에겐 내가 부정한 행위를 저질렀다고 했고, 가족에겐 내가 에이즈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참다 못한 나는 친구의 소개를 받아 법률 회사를 찾았고, 변호사들은 그에게 가혹 행위를 그만두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벤자민 웨이의 협박은 더욱 악랄해졌다. 자신이 소유한 온라인 매거진과 언론사 인맥을 동원해 나와 동생, 스웨덴에서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인 고모까지 모두 불법 범죄자로 만든 것이다. 결국 나는 스웨덴으로 돌아왔고, 연방 법원에 성희롱 고소장을 제출했다. 8월, 판사는 그의 일부 행동에 경고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그는 내가 사는 마을에까지 출현했다. 그리고 지난여름, 우리는 법정에 섰다. 그는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내가 그의 선의를 이용했다는 것이었다.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우며 성희롱 사실 또한 부정했다. 하지만 법원은 공갈 폭행죄를 제외한 직장 내 성희롱, 보복 행위, 명예훼손 등에서 내 손을 들어줬다. 법원이 내게 보상금으로 지불하라고 판결 내린 금액은 1천8백만 달러. 사실 그 돈을 언제 받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 1년 반 동안 그가 나를 괴롭힐 수 없도록 법적 보호를 받게 되었다. 내 말을 믿어주고 나를 돕기 위해 애쓴 친구들과 친척들, 변호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나는 여전히 뉴욕을 사랑하지만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공황장애 때문에 뉴욕을 떠났다. 그리고 지금은 UN 산하의 스웨덴 국립위원회에서 성 평등을 위해 싸우고 있다. 이번 일을 통해 나는 스스로가 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행동이 나쁜 게 아니라는 것을, 약한 사람을 먹잇감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나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 자신에게 잘못된 일을 하려고 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걸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여성으로서 언제나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