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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진

서현진 l LIFE BLOGGER
프리랜서 아나운서
자발적 실업자 (최근 회사를 관뒀다! 대책 없음! 어쩔 거냐?) 말 못해 안달 난 직업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듣는 게 더 좋다. 재미 있는 글 읽고 쓰는 것--하지만 짧아야 한다--도 좋다. 스토리가 있는 도시인의 삶, 토박이 로컬들의 동네 이야기, 소소하게 지지고 볶는 연인들의 사랑싸움처럼 특별할 건 없지만 일상이 주는 보석 같은 순간에 대한 글을 쓴다.

2014.08.21 Thu

칵테일 이야기



Vol. 3

얼마 전 친한 동생과 오랜만에 만나 저녁을 먹었다. 수다 보따리가 제대로 터진 우리는 밥만 먹고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근처 바에서 딱 한잔만 하기로 했다. 몇 달 전 공기 좋은 강남 끝자락으로 이사를 하기도 했고 요 몇년 술이라 하면 늘 고깃집이나 동네 치킨집에서 마시는 게 일상이 된 터라 오랜만에 온 기회에 얼씨구나 신이 났다.


학동역 사거리 근처, 미용실과 고급 부띠끄가 즐비한 거리 어느 귀퉁이에 새침하게 자리잡은 라운지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귀를 사로잡는 chill한 음악과 차가운 실내 공기에 섞인 알싸한 니코틴 향은 단박에 잠자고 있던 ‘한때 놀던 언니’의 오감을 깨웠다. 여름밤 야외 테이블까지 꽉 들어찬 왁자한 치맥집도, 회식하러 온 넥타이부대가 테이블의 반을 넘는 막창집의 소주 한잔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겠지만 새침한 청담동 바에서 칵테일 한 잔을 홀짝거리는 된장녀 놀이에는 대체 불가의 재미가 있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펼친 메뉴판에는 평소 즐겨 마시는 부엉이 맥주부터 한 병에 수 십만원 하는 오크 위스키까지 잠시 잊고 살았던 반가운 이름들이 한가득이다. 마음 같아선 제대로 한 잔 하고 싶지만 이미 둘이서 살치살 4인분에 곤드레밥, 쫄면까지 흡입한 후라 가볍게 하기로 하고 “모히토 두 잔”을 외쳤다. 찌는 여름밤, 솜씨 좋은 바텐더가 내 온 민트잎 가득한 모히토 한잔과 잔잔히 흐르는 음악, 좋은 사람과의 수다. 여기가 바로 천국이다. 


7년 전인가, 역시나 오늘처럼 왠지 그냥 집에 가기 싫은 그런 밤-심지어 장마라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고 달아오른 심장을 안고 달려가 마신 술 역시 모히토였다. 쌉싸름한 다크초콜릿 같은 그의 목소리, 비 오는 밤, 풀내음 가득한 모히토 한 잔. 지금은 그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오글오글 오징어가 될 것 같지만 당시의 나는 과하게 감성적이었다. 어렸으니까. 청춘이니까.


칵테일에 얽힌 추억을 맘 잡고 떠올리자니 굴비 두름 엮이듯 줄줄이 엮여 나온다. 대학생이 되고 한 첫 미팅에서 만난 모 군과의 첫 데이트. 사실 지금은 학교 말곤 그의 이름도 얼굴 생김새도 기억나지 않지만 함께 간 서강대교 근처 ‘바그다드 카페’ 라는 촌스런 이름의 카페 통유리 너머로 보이던 한강 물빛과 처음 마셔본 깔루아 밀크의 맛은 십 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생생하다. 부드럽고 달콤한 깔루아 밀크를 닮은 나이, 열 아홉의 그리운 내 모습도 함께 떠오른다.


20대 중반, 새내기 직장인으로 신나게 여의도를 누비던 시절 내가 가장 즐겨 찾은 칵테일은 코스모폴리탄이다. 인기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가 즐겨 마시던 이 핑크빛 칵테일은 맛도, 담겨 나오는 잔도 너무 예뻐 한 번에 두 잔씩 시켜 마시기도 했다. 아직은 모든게 어설프던 신입사원 시절, 이 칵테일을 마시는 순간만큼은 나도 드라마 속 캐리처럼 근사한 커리어우먼에 빙의한 느낌이랄까? 힘든 하루를 보낸 날이면 여의도 어느 허름한 바 구석에 앉아 코스모폴리탄 한 잔에 힘들었던 하루를 위로받았었다.  


칵테일에 대한 애정은 내 주량이 세 질 수록 집착으로 변해갔다. 맘껏 마시고 싶은데 다른 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비싼 탓에 궁여지책으로 고른 메뉴는 스크류드라이버와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분위기 내며 취하고 싶은데 주머니는 가벼울 때 칵테일 중 도수가 꽤 높은 편에 속하는 이 아이들이 딱이다. 먼저 스크류드라이버는 보드카 베이스에 오렌지 주스를 섞은 건데 남자들이 맘에 드는 여자에게 작업할 때 주문하는 술이라 해서 lady killer 혹은 playboy라는 재밌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오렌지 주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다지 당기지 않는 메뉴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바로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롱티는 보드카와 진, 럼, 심지어 데킬라까지 섞여있어 칵테일이지만 도수가 꽤 높은 데다 커다란 컵 한 가득 양도 많다. 자칫 알콜 냄새가 역할 수도 있지만 콜라와 레몬주스 등의 익숙한 맛이 냄새를 잡아주기 때문에 달콤하게 시작해 나도 모르게 기분 좋게 취할 수 있다. 노는 체력이 슬슬 고갈되기 시작하던 서른 즈음부터 염치 불구하고 바텐더에게 “쎄게 타주세요~”를 외치며 즐겨 마셨던 롱티 덕분에 할 일 많은 골드미스인 나와 친구들은 초저녁 분위기 좋은 바에서 만나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면서 다음날 출근 걱정 않고 맘껏 놀 수 있었다. 



주저리 주저리 칵테일 얘기를 하다보니 몇 년 전 새벽 라디오 디제이 시절 자주 틀던 노래가 생각난다. 정예경이란 가수의 Cocktail Tail 이라는 노랜데 말 그대로 칵테일 예찬이다. 멜로디 역시 경쾌해서 아침에 가볍게 듣기 딱 좋은데, 노래를 듣다보면 각종 칵테일이 가진 이미지를 이렇게도 딱 떨어지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어 놀라웠다.


열아홉 달콤한 Kahlua Milk,

스무 살 취해 봐요 Electric Lemonade,

스물한 살 Love Letter 엔 써 있겠죠,

Please Be my girl, P.S. I love you

스물세 살 달콤 쌉싸름한 사랑 Midori Sour

스물일곱 사랑 앞에 so cool, Margarita


Do you want Virgin Kiss? Then, Please be gentle

사랑도 아닌 우정도 아닌 이상 야릇한 감정

애매모호 전전긍긍 그만해요 Kamikaze 한 잔이면 충분하죠

But 아무에게나 Screwdriver 권하는 남잔, Oh no no no no


이런 가사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을 칵테일과 함께 지샜을까? 모르긴 해도 이 노래를 부른 가수도 나 못지않은 칵테일 마니아인가보다. 꾸밈 없는 피아노 연주에 얹어진 그녀의 투명한 고음을 듣고 있다보면 진탕으로 술을 먹고난 다음 날 아침, 숙취에 괴로워하다 열어 본 냉장고 속에 마침 딱 한 병 남은 차가운 탄산수를 들이켠 기분이랄까, 굳이 표현하자면 ‘귀로 듣는 숙취 해소제’ 같은 음악이다. 나른한 여름밤, 모히토 한 잔에 기억 저편에서도 잊고 살았던 이 노래를 떠올린 건 다시 오지 않을 그 시절이 그리워서일까, 아니면 그때 마시던 술 맛이 그리운 걸까. 아니면 그때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그 사람들이 그립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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