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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진

서현진 l LIFE BLOGGER
프리랜서 아나운서
자발적 실업자 (최근 회사를 관뒀다! 대책 없음! 어쩔 거냐?) 말 못해 안달 난 직업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듣는 게 더 좋다. 재미 있는 글 읽고 쓰는 것--하지만 짧아야 한다--도 좋다. 스토리가 있는 도시인의 삶, 토박이 로컬들의 동네 이야기, 소소하게 지지고 볶는 연인들의 사랑싸움처럼 특별할 건 없지만 일상이 주는 보석 같은 순간에 대한 글을 쓴다.

2014.07.11 Fri

나의 부산, 그 빛나는 민낯



vol. 1

휴가철이다. 평소라면 사무실 게시판에 커다랗게 붙은 '휴가 계획서'에 빨간 네임펜으로 한 열흘 쭈욱~ 시원하게 그어버리고 어디론가 훌쩍 떠났을 테지만 올해는 변수가 생겼다. 휴가철에 맞춰 무려 사표를 쓴 것이다. 하지만 나 따위 가련한 인생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온갖 매체에서는 너도나도 올 여름 이곳이야말로 가장 힙한 휴가지라며 발음하기도 어려운 외국 도시 소개에 열을 올린다. 카리브해의 파라다이스라 불리는 푼타카나(Punta Cana),[나만 처음 들어봐?] 전 세계 클럽귀신들이 헤쳐모이는 지중해의 이비자 (Ibiza),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닷물 속에 바다거북 반 비키니 금발 미녀 반이라는 세이셸 제도의 (Republic of Seychelles) 어느 섬에 이르기 까지, 소위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아름다운 곳'이 어찌나 많은지 기사를 읽다보면 이들 중 단 한군데도 못 가본 나는 맘놓고 죽을 수도 없겠다. 그렇다고 괜히 기분 상해 잘나가는 극소수에 열폭 하지 말고↗ 좋다고 소문난 국내 여행지로 눈길을 돌려↗ 재밌게 놀다 오면↗ 끝↘ 


'요즘 시시한 외국보다 제주도가 더 낫다'는 파워 블로거들의 포스트에 자극받아 '나 혼자 제주 여행', '제주도 2박3일' 등등을 검색하자 곧장 밀려오는 관광지 바가지의 스멜. 이건 뭐 돈 많은 중국인 관광객 무리에 맘 상하지 않고, 제대로 된 방 잡고 옥돔이라도 한 접시 하려면 웬만한 동남아 여행에 드는 비용쯤으론 어림도 없겠다. 바캉스란 말의 라틴어 어원 ‘바카치온’이 '~로부터 자유로워짐' 이라는데 휴가 한번 제대로 즐기고 나면 카드빚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제주도는 패스. 그럼 어디로 가지? 가뜩이나 럭셔리한 해외여행 기사 보고 상한 맘, 혼자서 만만하게 생각했던 제주도까지 나를 배신하자 맥이 탁 풀린다. 아 몰라. 그냥 부모님 계신 내 고향 부산으로 가지 뭐. 그러고 보니 회사도 관두고 이제는 굳이 고달픈 타향살이를 고집할 이유도 없으니 짐 다 꾸려 부산으로..가는 건 조금 더 생각해보기로 하고(워워) 우선 짧게 떠나자. 만만한 크기의 에코백에 갈아입을 가벼운 옷가지와 최소한의 세면도구를 챙겨 넣고 집을 나선다. 


KTX로 두 시간 반가량을 달리니 내 코가 부산에 도착했음을 먼저 알린다. 부산역은 부산항 지척에 자리 잡고 있어 사계절 내내, 특히 오늘 같이 여름 소나기가 내린 뒤에는 특유의 짠내와 온갖 해초 냄새가 진득하게 바람결에 묻어난다. 아, 그리운 냄새. 코평수를 두 배로 넓혀 킁킁 폐 한가득 고향을 담아본다. 내려오는 내내 무한 반복으로 귓속을 간지럽히던 최백호와 에코브릿지의 ‘부산에 가면’이 이어폰 줄을 타고 애처롭게 들려온다. 나도 부산에 가면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부산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기 피서지라 사실 내가 한마디 더 거들 필요도 없다. 인터넷에는 어떻게 부산 곳곳을 꼭꼭 씹어 먹을지를 소상히 알려주는 블로그 글들로 홍수를 이룬다. 부산 국제 영화제가 아시아인의 축제로 자리 잡으면서 외국 사람들도 알아서 찾아올 만큼 매력적인 도시로 성장했다. 아빠 손잡고 쥬라기 공원을 보던 남포동 영화관 골목은 PIFF 거리라는 새 이름을 얻었고, 영화관 앞에 줄지어 늘어서 길쭉한 고구마튀김과 소라고둥을 팔던 평범한 리어카들은 요즘엔 씨앗호떡[1박 2일 속 강호동이 먹던]의 인기에 힘입어 일 년 내내 늘어선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무용레슨 후 눈썹 휘날리게 달려가 한 젓가락에 털어 넣곤 했던 국제시장의 당면국수는 입소문에 찾아온 서울깍쟁이 아가씨들을 좌판에 털썩 주저앉게 만든다. 이쯤이면 마치 ‘매일 품고 자던 요강이 알고 보니 고려청자 였다더라’ 수준의 환골탈태다.




외지인들은 밤이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해운대로 향한다. 세계에서 제일 큰 백화점과 찜질방, 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아파트, 세계 최대 규모의 지붕에 12만개의 LED 조명이 일제히 밤을 밝힌다는 어마어마한 건물[아직 안 가봤고 일부러 갈 것 같지는 않다]이 자리한 해변으로 부산 사람도, 서울 사람도, 연예인도, 외국인도 앞 다퉈 달려간다. 부산의 명물 광안대교가 눈앞에 펼쳐진 어느 다이닝바에 호젓하게 앉아 서울 특급호텔 출신 쉐프의 이태리 요리를 깨작거리다보면 여기가 서울인지 홍콩인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도로에 즐비한 명품 차, 빼곡히 들어찬 체인 호텔과 브랜드 아파트, 다 똑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숍들까지. 위태롭게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해운대는 부산에서 태어나 열여섯 부산을 떠날 때까지 해운대 앞바다를 놀이터 삼아 자란 내겐 참 낯설다. 


건물이라고는 조선호텔이나 글로리 콘도 정도만 있던 시절, 그러니까 해운대 백사장이 확장 공사를 하기 전 지금보다 더 아담하고 수줍었을 때, 해운대 바다는 온 부산 시민들의 놀이터였다. 여름엔 검정 고무 튜브를 빌려 해수욕을 하고 과식이라도 한 저녁에는 온 가족이 동백섬으로 산책을 갔다. 백사장에 자리 깔고 뜯던 브라운백 통닭은 늘 따끈하고 고소했고 도로에 늘어선 뽑기와 솜사탕 리어카들의 달콤함은 내 용돈 주머니를 스르륵 열리게 만들었다. “망개~떠억~” 외치던 아저씨를 붙들고 사먹던 망개 잎 속의 하얀 떡은 얼마나 향기롭게 쫄깃했던가. 고등학교부터 시작된 서울살이에 지칠 때마다 이 음식들은 꿈에까지 등장했고 나의 소울푸드가 되었다. 


이런 행복한 추억을 밀어내고 들어선 화려하기만 한 부산은 나를 서글프게 만든다. 마치 내가 좋아하는 배우, 길다란 외까풀 눈에 동양미를 자랑하는 김고은양이 어느 날 갑자기 쌍수에[그것도 절개법] 돌려깎기를 하고 나타난다면 느낄 법한 낭패감이랄까. 절대 변하지 않았으면 좋을, 그 존재 고유의 dignity가 훼손됐을 때 느끼는 상실감 같은 것을 나는 지금의 부산을 보며 느낀다. 그리고 이런 반쪽짜리 부산을 전부로 알고 돌아가는 관광객들이 안타깝다. 부산은, 적어도 나의 부산은 압구정 3번 출구 출신 강남미인이 아니라 자신만의 야생미로 블랙홀처럼 남정네들을 빨아들이는 팜므파탈에 가까운데.


올 여름, 누구처럼 럭셔리하게 해외로 떠나지 못하는 건 괜찮다. 대신 목적지를 부산으로 정했다면 참을성이 많은 사람에 한해 조금 불편한 여행을 추천한다. 상상만으로도 멘붕에 빠지겠지만 하루쯤은 스마트폰을 숙소에 두고 길을 나서자. 밤이 되면 하나 둘 보석처럼 불이 켜지는 산복도로 비탈 마을의 정겨운 모습을 스마트폰 카메라가 아닌 두 눈 속에 담아 보고 용두산 공원[중경삼림 속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연상케 하는 에스컬레이터도 있다] 전망대에도 올라보자. 세계 곳곳에서 도착한 컨테이너들로 가득한 부산항을 내려다보며 가보지 않은 지구 반대쪽 끝 어느 나라에 대해 마음대로 상상하는 재미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더 진하다. 묵묵히 불편함을 견디고, 출처 불명 맛집 리스트의 유혹에서 자유로운 여행자에게라면 진한 방송용 화장 밑에 숨겨둔 정갈하고 말끔한, 여인의 눈부신 민낯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 어떤 럭셔리한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도 부럽지 않은 알찬 휴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준비 됐나? Welcome to my Bu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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