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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0 Thu

이거시 진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3

장거리 비행과 부담스러운 시차 때문에 미국 여행을 마다했다면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할 것이다. 여정이 수고로운 만큼 광활한 자연과 티끌 없이 맑은 공기, 그리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당신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지금 미국, 그중에서도 서부에 가야 하는 이유다.


애리조나에 있는 인디언 유적지, 우파킷 내셔널 모뉴먼트.


여름 낙원 애리조나

애리조나에서 누려야 할 것은 마땅히 자연이다. 주 전체가 자연이 빚어놓은 예술 작품 같은 땅임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자연만 있는 건 아니다. 한 건축가의 뜻에 동의하는 예술가들이 모여 살고, 전 세계의 명상가들이 쉬어 간다. 은퇴한 젊은이들이 새로운 삶을 꾸리는가 하면 완벽한 휴가를 보내기 위해 여행자들이 끝없이 모여든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애리조나에 다녀왔다. 


미국 서부의 최대 비경, 앤털로프 캐니언

목적지에 도착해 차 문을 열고 나서니 황홀한 땅 냄새가 올라온다. 이곳을 찾은 이들의 목표는 하나다. 누구나 한 번쯤 사진으로 본 적이 있을 법한 미국 서부 최대의 비경, 앤털로프 캐니언을 두 눈에 직접 담는 것이다. 인디언들이 사막에서 영양(antelope)을 발견해 이 이름을 붙였다는 가이드의 예상치 못한 설명을 시작으로 투어가 진행됐다. 애리조나주 북쪽 유타주의 접경 지역인 나바호 네이션. 전체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의 수가 565개인데, 그중에서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하는 곳이며 미국 50개 주 중에서 가장 많은 인디언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앤털로프 캐니언은 아래로 꺼진 형태의 로어 캐니언, 위로 솟은 형태의 어퍼 캐니언으로 나뉘는데 같은 형태의 암석이 지상에 생겼느냐 지하에 생겼느냐의 차이라고 한다. 사막 위, 틈이 좁은 바위 사이로 들어가기 위해 철제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순간 빛과 바위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협곡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먼 길을 달려온 노곤함이 보상받는 순간. 한두 걸음만 떨어져도 앞뒤로 붙어 있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굽어 있는 협곡은 모퉁이마다 다른 얼굴을 들이민다. 같은 장소에서도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빛의 세기에 따라, 다른 색을 만들어낸다. 

길을 잃어도 좋을 것 같은 모퉁이를 돌고 돌아 그저 감탄하다 보면 이 비현실적인 지하 세계를 떠나야 할 시간이 가까워진다. 온 우주가 힘을 다해 뭔가를 빚어내면 이러한 모습일까?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에 씻기고 깎여 만들어진 아름다운 결과물이다. 앤털로프 캐니언에서 빠져나와 지상으로 오르니 그 어떠한 지하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꿈을 꾼 걸까? 그렇다면 꼭 다시 꾸고 싶은 꿈이 바로 앤털로프 캐니언이었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기고 깎여 만들어진 아름다운 협곡 앤털로프 캐니언.


다양한 즐거움, 스코츠데일

거대한 자연을 눈에 담고 예술가들의 공간을 감상했다면 쇼핑과 휴식을 즐길 차례다. 고급 리조트와 쇼핑센터가 밀집해 있는 스코츠데일을 찾았다. 5번가 쇼핑 지구와 메인 스트리트 예술 지구, 히스토릭 올드 타운 지구를 둘러보며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애리조나의 무드를 즐겼다. 며칠 전 만난 수많은 명상가와 대비되는, 명품을 두른 쇼퍼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스코츠데일에는 포시즌스 스코츠데일 리조트 앤 스파, 볼더스 리조트 앤 스파, 페어몬트 스코츠데일 프린세스 등 고급 호텔이 즐비한데 대부분의 호텔이 애리조나 특유의 사막 분위기를 반영해 지어졌다. 내가 묵었던 볼더스 리조트 역시 그중 하나였다. 리조트 곳곳에 키 높은 선인장이 자리 잡고 있고 수영장 뒤로 커다란 바위산이 그림 같은 배경이 돼준다. 거기에 사암 벽으로 올린 리조트 건물까지 더해져 마치 마라케시의 깊숙한 곳에 있는 별장 안에 들어온 듯 이국적인 분위기가 넘쳐흐른다. 리조트 산책길을 걷고 수영을 하고 낮잠을 자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그간 쌓인 여행의 노곤함을 완벽하게 지웠다. 

다음 날 느지막이 일어나 게으른 아침을 즐긴 후 소노란 사막으로 향했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는 사막 중 하나다. 상징과도 같은 사와로 선인장을 찾아 기념사진을 찍고 가장 아름다운 전망을 보여주는 ‘맥도웰 소노란 보호구’도 빠뜨리지 않았다. 다음 코스는 미국에서 가장 큰 공립대학으로 손꼽히는 애리조나주립대학. 이곳에 위치한 아트 뮤지엄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1만 2000여 개의 현대 미술 작품을 보유하고 있으며, 건축가 안톤 프레덕이 설계한 건축물로 유명한 장소다. 미국 서부의 광활한 공간에서 주위의 환경과 조화로운 건축물을 설계하는 것으로 유명한 건축가가 쌓아 올린 공간인 만큼 지역 주민은 물론 여행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르코산티의 카페에서 감상할 수 있는 사막 전경.  


자연과의 어울림, 아르코산티

세도나에서 피닉스로 가는 길,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은 바로 아르코산티다. 세도나에서 한 시간 정도 달리면 애리조나에서 찾기 힘든 스타일의 커다란 건축물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데 바로 아르코산티다. 이탈리아 건축가 파올로 솔레리가 1970년부터 진행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사람이 점유하는 면적을 최소화해 자연을 보호하자는 의식에서 시작됐다. 건축생태학, 아콜로지(Architecture + Ecology=Arcology)를 통해 사람이 거주하기 위해 수평적으로 확장되는 구조를 수직적 구조로 만들어 농경과 토지를 보존한다는 환경보호 전략이다. 실제로 피닉스를 여행하다 보면 낮은 주택이 수평으로 퍼져 끝없이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피닉스의 도시 계발에 완전히 대치되는 이념이다. 솔레리의 생각에 동의하는 예술가들, 학생과 자원봉사자의 노력으로 이곳은 다양한 영역이 연결된 전에 없는 공간으로 탄생했다. 주거와 작업, 문화와 상업 공간을 혼합한 자급자족이 가능한 공동체로서의 새로운 도시를 실험하고 있다. 카페에 앉아 감상할 수 있는, 동그랗고 커다란 창밖으로 펼쳐지는 사막의 모습이 더없이 고요하다. 카페는 이곳에 머무는 예술가들이 쉬어 가고 서로 교류하는 중요한 공간. 마침 한쪽 테이블에 설계 도면을 펴놓고 미팅하는 무리가 보인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밖으로 나와 산책하듯 천천히 걸었다. 야외 공간에서는 가구를 만드는 디자이너의 작업이 한창이다. 그 뒤로 원형극장과 도서관, 수영장이 보인다.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 안에서 예술 활동을 하고, 삶을 누리며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다. 때마다 예술가들을 초청해 이벤트를 여는데, 라이브 공연, 서커스, 필름 페스티벌, 연극 공연 등 장르도 다양하다. 


세도나의 풍경과 잘 어우러지는 홀리 크로스 채플.


붉은 아름다움, 세도나

대낮인데도 차창 밖으로 붉은 기운이 엄습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붉은색의 거대한 사암 암벽과 봉우리들이 하나둘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건 바로 세도나에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앞으로 옆으로 병풍처럼 싸고 있는 크고 붉은 바위에 순간 압도당했다. “그랜드캐니언을 창조한 것이 신이라면, 그 신들이 사는 곳은 세도나다”라는 말이 있다. 인디언들이 오랜 세월 성스럽게 여긴 신들의 장소, 서부 개척 시대에 백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오면서 인디언들과 치열한 싸움이 있었고 인디언들이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곳이기도 하다. 

세도나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붉은색 사암 수파이층은 전기적인 에너지가 방출되는 곳으로 유명하며 이를 ‘볼텍스(Vortex)’라 한다. 볼텍스는 지구에서 뿜는 전기적 에너지, 초자연적인 힘을 뜻한다. 전 세계에 있는 21개 볼텍스 중 4개가 이곳 세도나에 모여 있다고 알려졌다. 벨 록, 캐시드럴 록, 에어포트 메사, 보인튼 캐니언이 그것인데, 이 중 벨 록에서 가장 강한 ‘기’가 흐른다고. 덕분에 세도나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의 명상가, 예술가, 뉴에이지 운동가들이 모여드는 성지가 됐다. 도착한 다음 날, 보인튼 캐니언에 오르기로 했다. 공기가 맑아서인지 생각보다 수월하게 발이 옮겨진다. 카치나의 여인이라는 바위 앞에 도착했다. 지구의 영혼을 만날 수 있다는 전설 때문인지 유난히 많은 명상가가 눈에 띈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사람들 뒤로 조용히 앉아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앉아 이름 모를 새들의 소리를 듣고 온몸을 관통하는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함께 그 공간에 머무는, 각자의 이유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평화롭다. 실제로 붉은 사암은 철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사람의 몸에 자력적인 힘을 준다고 하니 이 모든 것이 단순히 마음으로만 느끼는 플라시보만은 아닐 거다. 세도나에서 가장 기대했던 공간이기도 한, 홀리 크로스 채플을 찾았다. 1956년 완공된 이 작은 성당은 붉은 절벽 사이 좁고 기다란 십자가 모양으로 세워져 있다. 붉은 바위 위로 홀로 설계된 이 건축물이 주위의 자연과 이렇게도 멋지게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더없이 다정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는 노부부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성당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세도나의 붉은 풍경이 이제까지 수없이 보아온 그것과 또 다르게 다가온다. 한참을 서서 바라보고 눈을 감고도 그 풍경이 선명할 즈음 겨우 세도나를 빠져나왔다.




★Exciting Arizona

산악자전거 타고 프레스콧

북부의 소도시 프레스콧은 산악자전거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여행지로 이름 높다. 이곳에는 초보자용 슬로프 구간부터 극강의 고통을 맛보는 바위투성이 구간까지 무려 400km 이상의 트레일이 있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코스는 마치 성처럼 암석이 땅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윌로 델스 슬릭락 트레일이다. 매년 4월이면 산악자전거 경주와 함께 위스키 축제 등의 이벤트가 열린다.


그랜드캐니언 협곡을 누비는 래프팅

그랜드캐니언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물길을 타고 협곡 사이를 누비는 것이다. 콜로라도강이 지난 600만 년 동안 협곡을 침식한 결과 그 어느 곳보다 멋진 래프팅 코스가 탄생한 것이다. 콜로라도주에서 가장 험한 크리스털 폭포, 라바 폭포와 비슷한 등급으로 평가되는 만큼 초보자보다는 래프팅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오프로드 차량으로 즐기는 세도나

세도나 곳곳에서 오프로드 투어 광고 문구를 볼 수 있는 만큼 세도나에서 빠뜨릴 수 없는 프로그램이 바로 오프로드 체험이다. 하이킹으로는 둘러보기 힘든 협곡을 돌며 드넓은 사막과 오래전 아메리카 인디언의 거주지까지 둘러볼 수 있다.


소노란 사막 위 열기구 투어

열기구 투어는 애리조나주 곳곳에서 할 수 있지만, 애리조나주 남부의 소노란 사막 위에서 시작해보길 추천한다. 땅 위를 주의 깊게 살핀다면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는 소노란 영양, 코요테와 헤블리나를 만날 수 있다. 일출과 일몰, 프라이빗 라이드와 열기구 안에서의 웨딩 이벤트까지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CREDIT
    editor 전소영
    freelance editor 조소영
    photo by 조소영, Visitarizona, Jessica Sypher
    web Design 조예슬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9년 0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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