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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6 Wed

폴리아모리가 연애하는 법


 모노아모리, 폴리아모리를 만나다 

내가 그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할수록, ‘사랑’과 ‘관계’에 관한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 여겨왔던 사랑의 개념은 사회적이다. 그동안 연애 관계는 어떤 특정한 형태로 답습됐다. 폴리아모리는 그 근간을 흔드는 개념이다. 혼란스러운 만큼 해방적이다. 낭만적 사랑을 기반으로 한 가부장적 일부일처제에서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당하는 사람은 대부분 여성이다. 폴리아모리 관계에서 갑자기 모두가 평등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전통적 가족 관계를 상정하지 않으니 여성이 보다 동등한 입장에서 관계에 참여할 여지가 많아진다. 또 사회 범주를 넘나드는 연애 형태인 만큼, 폴리아모리 관계에 있는 사람은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이해하며, 그로 인한 위계 관계에 민감하기도 하다. 폴리아모리 자체의 특성이라기보다는, 그만큼 관계에 있어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파트너가 많은 만큼 피임이나 성병 예방의 문제에도 보다 신경을 쓰게 된다. 폴리아모리스트인 그와 첫 데이트가 있기 전, 우리는 서로 스킨십 단계와 성관계의 세부적인 취향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최근 성병 검사 결과를 공유했다. 그는 일 년에 두 번 이상 보건소에서 정기검진을 받고 있으며, 한 달 전쯤 자궁경부암 예방 접종을 시작했다고 했다. 여태까지 내가 만난 남성들 중에서 그 2가지를 실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성병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건 조금 불편했지만, 자연히 이야기의 주제는 연애와 성 경험으로 이어졌다. 신기했지만 한편으로 모노아모리 성향인 나로서는 폴리아모리 관계가 대체 어떻게 작동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폴리아모리스트들을 직접 만나 사생활에 대해 묻고 싶어진 것은 그 즈음부터였다.


Case 1

관계의 기본은 대화와 존중 - 박민호(가명, 27세, 남성, 영어 강사)

민호는 동시에 여러 사람에게 끌리는 자신의 성향을 알고 나서, 한동안 연애를 하지 않았다. 상대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서였다. 그럼에도 은연중에 한 사람과 사귀게 되면 다른 모든 감정은 잘못된 감정으로 치부하는 상황이 이상하다고 여겼다. 2015년 미국에서 유학할 당시 애인이 처음으로 공식적인 오픈 릴레이션십을 제안해왔다. 애인은 섹슈얼한 관계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 무성애자였고, 민호가 성욕을 해소하도록 배려한 한편 스스로도 민호 외에 다른 사람과 친밀감을 표하는 관계를 맺고 싶다고 했다. 그렇지만 첫 오픈 릴레이션십은 좋게 끝나지 않았다. 그는 한국에 잠시 돌아와 있는 동안 새로운 사람을 만났고, 단순히 섹스 파트너를 넘어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됐다. 그러나 차마 그 사실을 터놓고 애인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건 오픈 릴레이션십에서도 명백히 바람피운 거예요. 그렇지만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면 관계에 금이 갈까 봐 두려웠거든요.” 뼈저린 후회 끝에 그는 스스로 몇 가지 규칙을 세웠다. 그중 가장 중요한 규칙은 욕망에 솔직하고 감정 표현은 주저 없이 한다는 것이다. 지금 그는 미국에 애인과 섹스 파트너가 있고, 한국에도 두 명의 섹스 파트너를 두고 있다. 민호는 섹스 파트너를 ‘FWB(Friend with Benefit)’라 칭하는데 한국에서 통용되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단순히 ‘섹스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섹스를 떠나서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친밀한 관계죠.” 애인에게는 데이트가 있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될 경우 미리 통보하고, 누군가와 성관계를 한 경우에도 곧바로 그 사실을 알린다. 물론 FWB들에게도 애인과 다른 FWB의 존재를 알린다. 만약 또 다른 누군가와 애인으로 진지하게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경우엔 애인에게 그 사람을 먼저 소개해주기로 약속했다. “섹스에 관해 애인이 원한 규칙이 하나 더 있는데, 새로운 걸 시도해보고 싶을 때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와 먼저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애인과 장거리 연애 중인 그는 그때그때 사람의 상황에 따라 가장 중요한 주변인은 바뀔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한 사람이 제가 원하는 것을 다 충족시켜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애인이 여러 명 있다면 누군가와는 어두운 내면을 공유하고, 다른 누군가와는 좀 더 가벼운 농담 위주의 대화를 할 수도 있게 되겠죠. 그러나 그 사실이 감정의 깊이에 차이를 뜻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Case 2

질투는 옅고 짧게! -양누리(가명, 28세. 여성, 회사원)

학창 시절 첫 연애부터 ‘양다리’였던 누리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깊은 우울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몇 해 전 웹툰을 통해 폴리아모리스트라는 개념을 접했고, 당시 애인에게 커밍아웃하자 그는 떠났다. 그러나 지금 폴리아모리스트 애인을 만나면서 심적으로 훨씬 안정됐다고 말한다. 현재 누리는 애인과 동거 중이며 섹스 파트너를 여럿 두고 있다. 그의 애인에게는 또 다른 애인이 한 명 더 있다. 누리와 애인은 어제 커피숍에서 눈길을 교환한 사람부터 오늘 관계한 사람까지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동안 규칙을 체계화해서 정리한 적은 없지만 암묵적으로 생겨난 규칙이 있다. 질투를 표현할 때 주의할 것. 장난처럼 얘기하거나 애교로 소화하는 것은 좋지만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들거나 화를 내지 않는 것이다. 혹시라도 화낸 후에는 꼭 늦지 않게 사과한다. 누리는 질투가 관계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독점적 연애 관계를 학습하며 자랐잖아요. 질투는 사랑하면 당연히 생기는 감정이 됐죠.” 그러면서 질투의 성격을 잘 살펴야 한다고 덧붙인다. 다른 감정과 복잡하게 섞여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저는 애인이 다른 애인을 만나서 식사할 때 음식 사진은 되도록 보내지 말라고 해요. 저는 그렇게 좋은 것을 사주지 못하니까 기분이 묘해요. 한편으론 제가 해줄 수 없는 걸 다른 누군가 해주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죠.” 어떤 날은 둘 중 누군가는 일 때문에 지치고 힘든데 상대방은 즐겁게 데이트를 하고 몸에 ‘흔적’을 남긴 채 귀가하기도 한다. “그땐 질투와 함께 짜증이 나죠. 그런데 쉬고 나면, 감정 정리가 비교적 수월해요. 소유욕이라는 게 부질없음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거든요.” 누리는 두 사람 이상을 사랑하게 될 때를 ‘사랑의 다른 카테고리가 생기는 것’이라 표현한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영향을 끼치지 않아요. 

만약 지금 애인이랑 싸우면 다른 파트너 생각이 나겠지만 그건 그냥 순간적으로 화가 난 것뿐이죠.”


Case 3

사랑의 목적은 너와 나의 행복 -김지윤(가명, 23세, 여성, 건설 현장 근무)

“스무 살까지 사람에 대해 잘 몰라서 많이 데였어요. 유부남을 만나 상처받기도 했고, 사귀던 애인이 알고 보니 약혼 상태인 적도 있었죠.” 어느 날 지윤이 좋아하던 사람이 자기 애인과 지윤을 동시에 만나고 싶다고 고백해왔다. 그 사람을 놓치기 싫어 기꺼이 응했다. 그런데 결국은 그의 애인이 지윤을 찾아와 “내가 힘드니 관계를 정리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번에도 지윤은 그렇게 했다. “타인에게 맞추는 게 더 익숙하거든요.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게 편하고요.” 예전부터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이 관계의 중심이었던 지윤에게 폴리아모리는 너무도 당연한 경험이자 감정이다. 그녀는 집착을 유달리 싫어한다.  “질투가 나긴 하지만, 괘씸하거나 화가 나는 정도는 아니에요.”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서로의 비밀을 모두 알고 싶어 하는 건 실례라고 여긴다. 폴리아모리 관계에서도 상대가 먼저 묻지 않는 한 다른 관계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때로 상대방이 서운해하기도 해요. 그렇지만 저는 묻는 말에는 모두 대답할 수 있어요.” 지금 지윤은 모노아모리 성향의 사람과 독점적 연애 중이다. 물론 성향이 변한 건 아니다. 애인의 행복을 위해 맞춰주고 있을 뿐. “어느 한쪽이 나쁘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제 경우에는 더 이상 상처받기 싫어서 폴리아모리 관계를 택한 것도 있어요. 어느 한 사람에게 상처받으면 다른 사람에게 기댈 수 있으니까요.”



CREDIT
    프리랜스 에디터 김예린
    일러스트레이터 Tomi Um
    디자인 조예슬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9년 0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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