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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8 Mon

빨주노초파남, 그리고 김보라

“혜나 씨, 아니 보라 씨!” 이런 상황은 자꾸만 벌어졌다. 스물다섯의 김보라는 드라마 에서 교복을 입고 열아홉의 ‘김혜나’를 연기했다. 그녀는 사람들의 혼돈이 익숙한 듯 감내했다. 아니, 오히려 반겼다. 김보라는 ‘혜나’였다가 또 다른 누군가가 될 것이고, 다시 전혀 다른 누군가로 불릴 테니까. 김보라의 색깔은 총천연색이다.



스웨이드 재킷 3백8만원, 쇼츠 2백3만원, 블로퍼 63만원 모두 롱샴. 귀고리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2004년 데뷔해 올해로 배우 15년 차예요. 같은 일을 15년 동안 계속해온 건데, 드라마 로 하루아침에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됐어요. 어떤 기분인가요? 

솔직히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낯설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전 여전히 김보라인데 주변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고, 원래 해오던 일에 뭔가가 계속 추가되고 있으니까 저도 모르게 지치더라고요. 드라마가 끝나고 한 달 동안 정말 쉴 새 없이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한 달이 이렇게 길구나’ 처음 느꼈어요. 고작 한 달인데 ‘좌절하지 말자, 좌절하지 말자’ 제 안에서 계속 싸우고 있는 것 같아요. 5년 뒤나 3년 뒤, 빠르면 내년에도 다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기쁘다는 말보다 ‘지친다’, ‘좌절’이라는 단어가 먼저 나오네요. 

전 배우 생활을 굉장히 평탄하게 해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전부터 자주 하던 말이 “가늘고 길게 가는 게 내 목표다”였어요. 근데 인터뷰도 많아지고, 이렇게 화보 촬영, 심지어 예능까지 하게 되니까 적응이 안 되는 거죠, 사실. 15년 동안 나는 어떤 배역을 맡아 그 이름으로 연기했는데, 요즘에는 ‘인간 김보라’로 임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니까 부끄럽기도 하고, 온전히 내 생각을 이야기해야 하니까 지치기도 하는 거죠. 또 한편으로는 힘들다고 말하는 자신이 나약해 보이기도 하고요. 그것 때문에 또 스트레스 받고…. 지금은 복잡한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인 것 같아요.


은 배우들의 힘이 굉장히 셌던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혜나’ 캐릭터가 강렬했는데, 대본 속 ‘김혜나’를 김보라가 연기하면서 펄떡펄떡 살아 숨 쉰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배우로서 이런 배역을 만나는 것도 꽤 신나는 일일 것 같아요. 

맞아요. 사실 초반 한두 달 정도는 ‘혜나’에게 적응을 잘 못했어요. 이 아이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행동하는 건지 완벽히 파악을 못 한 상태여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출생의 비밀을 디테일하게 알게 되고, 엄마의 죽음이 다 ‘예서’네 집안과 관련돼 있다 보니 ‘혜나’의 행동이 이해되더라고요. 그러면서 굉장히 신나게 연기했던 것 같아요. ‘혜나’는 자신의 약점을 들키지 않으려고 오히려 더 강하게 나가고, 상대를 약 올리기도 하는데 그게 재미있고 속 시원하기도 했어요. 한편으로는 ‘혜나’가 또 마냥 행복한 아이가 아니니까 즐거우면서도 가슴 아픈? 촬영 끝나고도 여운이 많이 남았아요.


몰입도가 센 편인가 봐요? 작품 끝나면 ‘땡’ 하고 빠져나오는 배우도 많으니까.

저도 몰랐는데 제가 되게 몰입을 많이 하는 편이더라고요. 저뿐 아니라 모든 인물이 맡은 배역으로 보였으니까요. 분명히 찬희인데 계속 ‘우주’로 보여서 촬영 아닐 때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야, 미안하다” 하면서 툭툭 치고 그랬어요. 아무래도 3~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혜나’의 힘든 과정을 너무 가까이에서 겪어냈던 입장이라서, 더더욱 깨기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스웨이드 원피스 3백99만원, 숄더백 85만원 모두 롱샴.


단편영화, 독립영화도 꾸준히 해온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떤 작업할 때 제일 재미있어요? 

연기적으로 항상 부족함을 많이 느끼는 편인데. ‘어떻게 해야 내가 발전할 수 있을까’ 고민과 걱정이 많던 시기에 단편영화를 찾아보면서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았던 것 같아요. 계속 오디션 보러 다니고 프로필과 영상 돌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배역이 크든 작든, 비중이 높든 낮든 내가 다른 사람이 돼서 실제로 해보지 못한 걸 연기하는 게 뿌듯하기도 하고, 뭔가 계속 배워가는 느낌이 커서 좋았어요. 또 단편영화는 스태프 연령대가 어리다 보니까 작품을 다 같이 만든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 이게 바로 함께 하는 맛이지!’ 하는 충만함.


한 5년 뒤를 떠올려보죠. 대본이 막 이만큼 들어와서 고르는 김보라가 있고, 들어오는 건 없지만 좋은 작품 찾아서 오디션 보러 다니는 김보라가 있어요.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들어요? 

뒤쪽이오. 전 15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고, 여전히 그게 더 즐거워요. 10~15분 짧은 시간 동안 낯선 사람 앞에서 연기를 하고, 평가를 받는 상황 자체가 어느 순간부터는 되게 즐겁더라고요. 가끔은 귀찮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지금은 완전히 받아들였고, 재미있어요. 결과적으로 붙든 떨어지든 그 안에서의 시간만큼은 자유로우니까.


평소 혼자 있을 때 뭐 하면서 시간 보내는 걸 좋아해요? 

필름 카메라 찍는 걸 좋아하는데, 그보다 더 좋아하는 게 집 안 정리예요. 제가 생각이 워낙 많고 예민해 별명이 ‘고슴도치’거든요. 머릿속이 막 어지럽더라도 집을 치우다 보면 눈앞에서 정리되는 게 보이잖아요. 물리적으로 깨끗하게 정리된 집을 보면 마음까지 편해지더라고요. 분리수거 제일 좋아하고, 제 옷은 무조건 손빨래 해요.


스웨이드 미니드레스 3백1만원, 체인 백 68만원 모두 롱샴. 


인스타를 보니까 광화문, 경복궁 쪽에서 찍은 사진이 많더라고요. 제일 좋아하는 장소라고요? 

공허함이 느껴져서 좋아해요. 광화문에 처음 놀러 갔을 때가 3~4년 전 겨울이었는데, 찬 공기라든지 사람이 많은데도 탁 트인 느낌이라든지. 그 기분이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나요. 그때 마음에 뭔가 공허함이 자리 잡았는데 이후로 갈 때마다 그 감정이 그대로 들어 좋더라고요. 한 달에 한 번은 꼭 가는 것 같아요.


평소 김보라의 스타일은 어떤지도 궁금해요. 

오늘 올 때 입은 것(트레이닝팬츠에 헐렁한 티셔츠)처럼 입어요. 항상 두 사이즈 정도는 크게 입고, 움직이기 편한 옷을 좋아해요. 가끔은 오늘 화보 촬영 의상처럼 화려한 원피스 같은 것도 좋아하고요. 불편해서 잘 안 입게 되긴 하는데, 기분 전환용으로 몇 벌이 있죠.


평소 다이어트는 따로 안 하나요? 

어느 순간부터 안 했어요. 원래 마른 체질이었는데 성인 되면서 살이 조금 붙었다가 다시 자연스럽게 빠졌어요. 제가 너무 예민한 편이라 한번 스트레스 받으면 그날은 종일 잘 못 먹거든요. 그럼 저절로 빠지기도 하고, 가끔은 또 올랐다가 그래요. 운동은 흠… 해야죠, 해야 되는데. 하하.


롱 드레스 3백8만원 롱샴. 안경 프로젝트 프로덕트.


술도 좋아해요? 

전 양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걸 선호합니다.


아, 양폭! 

스물세 살 때인가? 처음 그렇게 마셔봤는데 취하지도 않고 좋더라고요. 취해도 30분 만에 깨고, 다음 날 머리도 안 아프고 깔끔해요. 이번 드라마 종방연 때 2차를 갔는데, 테이블에 염정아 선배님 팬분들이 보내주신 양주가 있었거든요. 한참 마시다가 제가 “정말 죄송한데 이거 오픈해도 될까요?”라고 물었더니 염정아 선배님이 “어머, 쟤 무서워~”라며…. 하하.


혹시 책 읽는 것도 좋아하나요? 

자주 읽으려고 해요. 이것도 청소와 같은 맥락인데, 책도 문장들이 딱 정리돼 있잖아요. 정리된 문장을 보는 게 좋고, 제가 상상력이 풍부해 뭘 읽으면 완전히 빠지는데, 그렇게 되면 다른 복잡한 생각 안 하고 몰입할 수 있으니까 좋아요.


외롭거나 지칠 때는 뭘로 위로받나요? 

영화를 보거나 방 안에 처박혀 있는 편이에요. 혼자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친한 지인들에게 “이게 스트레스였다”라고 얘기하는 식이죠. 근데 사실 같은 업계 친구들에게는 말을 안 하게 돼요. 그 친구들도 분명 비슷한 고민과 걱정을 할 텐데 저까지 끼어들어 흐트리고 싶진 않거든요. 결국 스스로 극복하고 해결해야 할 때가 많은 직업이니까.


사람들이 김보라라는 배우를 볼 때 어떤 걸 떠올리면 좋을 것 같아요?

우선 지금처럼 “아! 혜나!” 이렇게 배역 이름으로 불리고 싶어요. 제가 대중에게 그만큼 몰입감을 줬다는 거니까. 그게 제일 크고, 두 번째는 ‘솔직한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배우마다 표현하는 방법이 다 다를 텐데, 연기를 위한 연기는 하지 말자는 생각을 늘 하거든요. 속이지 말고,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였으면 좋겠어요.



CREDIT
    Editor sung Young joo
    Photographer Zoo Yong Gyun
    Stylist 김윤미
    Hair 이일중
    Makeup 서선녀
    web Design 조예슬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9년 0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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