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OPOLITAN

  • 로그인
  • 회원가입
  • 정기구독
  • facebook
  • twitter
  • blog

    INSTAGRAM
    COSMOPOLITAN KOREA

    SUBSCRIBE TO COSMO

  • kakaostory

    KAKAOSTORY
    COSMOPOLITAN KOREA

  • youtube

    YOUTUBE
    COSMOPOLITAN KOREA

    Follow Youtube

포인트를 모으시면 선물을 드려요
2018.11.23 Fri

돈이란 무엇인가?

기술의 진보가 우리 삶을 매우 다층적이고 획기적으로 바꿔놓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화두는 늘 한 가지뿐이었다. ‘인간이 기술을 지배할 것인가, 혹은 지배당할 것인가?’ 이제 이러한 이분법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디지털 vs 인간’이라는 구도는 좀 낡았다. 이미 우리 삶은 전방위적으로 디지털에게 지배당하고 있고, 또 그렇지 않기도 하다. 우리는 그저 지금을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단, 이토록 흥미롭게 말이다.


지난여름은 돈스코이호 사건 때문에 시끄러웠다. 돈스코이호는 러일전쟁 당시 동해에 침몰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군함의 이름이다. 여기에 대량의 금화가 실려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실제로 20년 전 외환위기 무렵에도 보물선이 떠올라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돈스코이호는 양상이 조금 달랐다. 러시아 군함에 실린 금괴 이야기에 난데없이 가상화폐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해운 건설업체 신일그룹은 지난 4월 9일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를 세우고 신일골드코인(SGC)이라는 가상화폐를 발행했다. 지난 4월 무렵은 가상화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가장 뜨거웠던 무렵이다. 정부가 나서서 규제책을 발표하면서 과열된 시장의 열기를 식혀야 했을 정도였다. 가상화폐 거래시장은 정부까지 개입하면서 왜곡되기 시작했다.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에 익숙한 젊은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중·장년층 투자자들까지도 새삼 가상화폐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에서든 증권시장에서든 대체로 정부의 시장 개입은 투기를 막기보단 투기를 조장하는 쪽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하지 말라는 건 더 하는 게 투자자들의 심리니까. 가상화폐 시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제는 대다수 중·장년층 투자자들이 가상화폐의 근간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그다지 깊은 상식을 갖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가상화폐를 발행하려면 블록체인 기술에 관한 백서를 발행하는 게 순서다. 정작 이런 기술 백서는 전문가가 아니면 상세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가상화폐 투자가 디지털 신기술에 익숙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이뤄진 건 소액 투자가 가능해서였지만 또한 이런 기술에 대한 친화력이 상대적으로 높았기 때문이었다. 가상화폐 투자에 관심은 컸지만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투자자들에게 신일골드코인은 매력적인 상품으로 보일 수 있었다. 합리적인 투자자라면 누구나 가상화폐가 실제 가치가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걸 합리적으로 설명해주는 게 기술 백서지만 내용이 너무 어렵다. 그런데 신일그룹은 여기에 돈스코이호라는 보물선을 연결해버렸다. 돈스코이호에 실린 금화와 신일골드코인이 만나는 순간 골드코인은 곧 보물선 금화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었다. 돈스코이호에 투자자들이 몰렸던 이유다. 아날로그적인 보물선 이야기에 디지털 시대의 가상화폐 스토리를 접목시킨 결과다. 

돈스코이호 사건은 디지털 시대의 화폐 개념에 관한 씁쓸한 우화다. 사실 신일그룹이 주장했던 150조원 가치는 어불성설인 액수였다. 한국은행이 보유한 금고의 금을 탈탈 털어도 104톤 안팎이다. 장부 가치는 5조5천억원 정도다. 러시아 군함에 현재 대한민국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괴 총량의 30배 가까운 금화가 실려 있다는 건 조금만 생각해보면 상식 밖의 주장이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엄청난 돈 단위 앞에선 오히려 돈의 개념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극장에선 카드사 포인트까지 탈탈 털어서 천원, 2천원씩 할인받던 소시민이 아파트를 구매할 때는 1억원 대출을 담대하게 받게 되는 이유다. 돈 단위가 어마무시하게 높아지면 돈의 개념도 희미해진다는 말이다. 심지어 21세기엔 이마저도 모두 가상의 개념이다. ‘내 월급은 사이버 머니’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있다. 통장을 스쳐서 카드사로 직행하는 월급을 일컫는 말이지만 엄밀하게 21세기의 모든 화폐는 사이버머니다.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원화나 미 연준이 발행하는 달러도 요즘은 대부분 디지털 방식으로 유통된다. 이렇게 화폐가 손에 쥘 수 있는 지폐나 동전이라는 물리적 개념을 잃어버린 채 통용될수록 돈의 가치 개념은 더욱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활동에도 기묘한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에겐 ‘심리적 회계’라는 경제관념이 있다. 매일 아침 택시 대신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공연 티켓에 거금을 쓸 수 있는 건, 두 개의 서로 다른 심리적 회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물 경제활동에서 물리적 화폐를 쓸 때는 두 개의 심리적 회계가 거의 같은 장부에서 운용된다. 양쪽 모두 지갑에서 화폐가 빠져나가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다르다. 돈의 개념도, 단위도 가상화시키는 디지털이라는 지불 방식 덕분에 우리는 너무나 쉽게 마음속에 새로운 심리적 회계 항목을 열 수 있게 됐다. 매일 아침 걸어서 출퇴근하던 사람이 그날 저녁엔 인터넷 쇼핑에서 소소한 금액의 잡동사니를 사들이게 되는 이유다. 쉽게 말해 돈을 쓰고 있지만 돈을 쓰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얘기다. 

핀테크나 가상화폐 같은 디지털 금융의 진화 방향은 기술적으로는 복잡한 듯 보이지만 이런 디지털 기술들이 소비자에게 적용될 때 일어나는 변화는 의외로 단순명료하다. 우리가 우리 돈을 쓰면서도 얼마의 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전혀 실감하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현금에서 카드로 넘어가면서 우리는 이미 실물화폐의 개념을 상당히 잃어버렸다. 여기에 무슨 무슨 페이들이 결합되면서 이젠 아예 플라스틱 카드조차 가상화되고 말았다. 우리는 돈을 쓰고 있지만 정작 그 돈을 만진 적도, 본 적도 없다. 디지털 금융의 방향이 이렇게 전개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금융사들이 수수료를 챙기려고 혈안이 돼 있기 때문이다. 금을 캐는 것보다 금을 캐려는 사람들에게 삽을 파는 게 돈을 버는 지름길인 법이다. 투자나 사업보다 더 돈이 되는 게 수수료 비즈니스다. 모든 통화가 사이버화되면 햄버거 하나를 사 먹어도 수수료를 내게 된다. 판매자와 소비자가 직접 천원짜리 현금을 주고받는 직거래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디지털 화폐는 소비 자체를 촉진한다. 카지노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르다. 카지노에 들어가면 현금을 칩으로 바꿔준다. 칩은 왠지 돈처럼 안 느껴진다. 아무리 많은 금액을 잃어도 개념이 안 잡힌다. 거금을 탕진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카지노 안에선 자각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다. 디지털 시대는 실물경제를 거대한 카지노 판처럼 바꿔놓고 있다. 경제활동에 참여하려면 우리 모두 현금을 디지털 칩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이때부터 돈 개념은 약해지고 자연히 씀씀이가 커진다. 

21세기 자본주의는 소비로 지탱되고 있다. 디지털 금융은 우리의 소비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분명 편리한 측면이 있다. 다만 디지털 금융이 요즘 같은 유동성 과잉 상황과 결합될 때 문제가 된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하늘에서 헬리콥터로 달러를 뿌려댔다. 전 세계에서 달러가 넘치고 있다. 이런 과잉 유동성은 자산 가치를 상승시킨다. 돈이 있으니 사야 한다. 또 돈이 많아지면 돈값이 떨어진다. 값 떨어진 돈을 쥐고 있느니 그 돈으로 값어치 있는 자산을 사들이는 게 ‘개이득’이다. 자연히 부동산 가치가 올라가게 된다. 지난여름 돈스코이호만큼이나 뜨거웠던 게 부동산 시장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아파트 호가만 1억원씩 올랐다. 당연히 말이 안 된다. 하루아침에 아파트에 1억원어치 대리석 바닥이라도 깔린 게 아니라면 말이다. 과잉 유동성이 만들어낸 거품이다. 사는 사람도 내일 1억원 더 오르기 전에 오늘 1억원이 오른 아파트를 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 아침 모닝 커피값을 아끼겠다면서 회사 봉지 커피를 홀짝이던 사람들이 말이다. 억만장자 워런 버핏은 오늘 소비한 1만원의 투자가치가 10년 뒤에 얼마나 커져 있을지 생각하며 괴로워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곤 했다. 워런 버핏에게 오늘의 1만원은 단순한 1만원이 아니었다. 미래의 1억원이었다. 워런 버핏은 언제나 기회비용을 생각했다. 그가 검소한 건 돈을 쓸 줄 몰라서가 아니다. 역설적으로 돈의 가치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였다. 우리에게 오늘의 현금은 미래의 기회나 다름없지만 우리 모두가 오늘의 현금을 내일을 위해 아끼면 자본주의는 돌아가질 않는다. 누군가 미래를 오늘과 바꿔야 다른 누군가는 오늘 돈을 벌어서 미래를 살 수 있다. 디지털 시대는 세상을 가상화폐 가득한 카지노로 바꿔놓고 우리에게 오늘을 소비해서 내일을 팔라고 유혹하고 있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글 신기주(<에스콰이어> 편집장)

남성 잡지 <에스콰이어>에서 오랫동안 정치·경제 분야에 대한 글을 썼다. <우리는 왜?> <사라진 실패> <장기 보수 시대> <남자는 무엇으로 싸우는가> <플레이> 등의 책을 썼다.


CREDIT
    에디터 성영주
    일러스트 최호형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8년 11월호

기사입니다

본 기사를 블로그, 커뮤니티 홈페이지 등에 기사를 재편집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웹사이트 내 모든 컨텐츠의 소유는 허스트중앙에 있습니다.

SUBSCRIBE/DIGITAL MAGAZINE

  • 2016년 9월호 커버

    정기구독 COSMOPOLITAN 트렌드한 여성을 위한 매거진!

    신청하기
  • 2016년 9월호 커버

    정기구독 COSMOPOLITAN 트렌드한 여성을 위한 매거진!

    신청하기

COSMO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