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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0 Tue

헤어지려면 가드부터 올려!

우리가 “안 아픈 이별은 없다”라고 했을 때는 분명 마음의 상처를 말한 거였다. 때리고 협박하고, 영상 유포하네 마네 같은 물리적인 아픔이 결코 아니었다. 이쯤 되니, 이별 통보하려면 복싱 배우고, 무에타이나 유도, 주짓수 유단자쯤은 돼야 하는 거 아닐까 싶다.


그녀의 이름 석 자는 말하고 싶지 않다. 최근 데이트 폭력으로 법적 공방에 휩싸인 여자 연예인과 그의 전 남친에 대해서 말이다. 이것은 유명인 ‘○○○사건’으로 가십거리가 될 일이 아니다. 연인과의 섹스 동영상을 빌미로 여친을 협박하고, “연예인 인생 종치게 해주겠다”라며 데이트 폭력을 가한 ‘최종범 사건’이다. 우리는 대부분 연예인도 유명인도 아니다. 고만고만하게 평범한 상대를 만나 썸 타다 연애를 하고, 헤어짐과 새로운 만남을 몇 번씩 반복한다. 상대가 바람이 나서 떠나기도, 내가 잠시 한눈을 판 적도 있을 거다. 서로에게 늘 조금씩은 잘못하고, 미안해하다가 또 상대가 원망스럽다가, 그렇게 대개는 평등하다. 연애는 원래 이렇게 ‘핑퐁’이 인지상정이니까. 이러한 ‘평범한’ 연애 중에도 데이트 폭력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려 79.7%, 한 번이라도 데이트 폭력을 경험한 사람의 비율이 10명 중 8명꼴이다. 지난해 <형사정책연구> 여름호에서 나이, 교육&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교제 경험이 있는 성인 2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하물며 유명인도 뭣도 아닌 나도 경험했다. 주변에 이 사실을 알리자, 대부분 “나도 비슷한 일 있었다”라거나 피해자 친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데이트 폭력을 경험한 79.7% 중 심리·정서적 폭력에 노출된 비율은 36.6%, 신체적 폭력은 22.4%, 성추행과 성폭력은 각각 37.9%, 17.5%나 됐고, 상해 비율도 8.7%로 나타났다. 가해자의 대다수는 남성으로,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랑해서 맺은 관계가 더 이상 울타리가 아닌 위협이 될 때, 우리에게는 ‘안전한 이별’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전 남친이 스토커로 돌변했다면?

일 년째 연하남과의 알콩달콩한 연애를 즐기던 A씨. 우연히 유학을 떠나 헤어진 전 남친이 한국에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침 전 남친에게서 “가볍게 얼굴 한 번 보자”라는 연락이 왔고, A씨도 옛 친구와 밥 한 끼 먹는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응했다. 그런데 그날 만남을 계기로 둘은 다시 연애 감정이 싹트는 것을 느꼈고, A씨는 심사숙고 끝에 연하남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솔직히 전 남친에게 돌아가고 싶다”라고 털어놓은 순간, 연하남이 무섭게 돌변했다. 소리 지르고 욕을 하며 물건을 집어 던졌다. A씨의 멱살을 잡아 마구 흔들더니 급기야는 A씨를 힘껏 밀쳤다. 다음 날에도 악몽은 계속됐다. 번호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연하남이 전 남친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이 없는 동안 우리가 어떤 사이였는지 낱낱이 까발려주겠다”라며, 계속해서 문자 폭탄을 쏟아냈다. A씨에게는 밤마다 “헤어지면 죽어버리겠다”라고 협박했다. A씨는 행여 어디선가 연하남이 튀어나와 위협하거나, 전 남친에게 이상한 사진을 보내진 않을까 몇 달을 전전긍긍해야 했다. 모든 게 자기 탓인 것 같았고, 전 남친에게 돌아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힘들어했다.

전형적인 스토킹이다. 전 남친이라고 해서 ‘말로 하면 되겠지’, ‘내가 설득해봐야지’ 하고 섣불리 가해자와 만나거나 연락을 취해 해결하려 들면 더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럴 땐 법의 보호를 받는 것이 안전하다. 신변보호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주거지 관할 경찰서에 방문해 신변보호 신청서를 작성하면 된다. 이를 토대로 보복당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경찰이 신변보호에 필요한 조치를 하게 돼 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원의 손경이 강사는 “법적 조치와 별개로 A씨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자책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미친놈을 만난 내 잘못’이라는 발상은 데이트 폭력이 뿌리 내리게 하는 가장 나쁜 토양이다. 그의 미친 행동은 당신의 잘못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범죄다.


폭력을 눈감은 대가는?

B씨는 “평생 너만 사랑한다”던 남자가 있었다. 누가 봐도 허우대 좋고 학벌, 집안,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데다 B씨만 바라보며 세상 달달하던 그. 그가 처음으로 이상한 조짐을 보인 건 B씨가 여사친들끼리의 술자리를 가진 날이었다. 남친은 5분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 어디서 누구와 만나는지부터 누가 또 온 건 아닌지, 어디로 이동하는지 꼬치꼬치 캐물으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신나게 놀던 B씨는 몇 차례 답장을 잊었고,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그 자리에 남친이 ‘두둥’ 등장하더니 다짜고짜 B씨에게 달려들어 뺨을 후려쳤다. 주변에서 말리는 순간 정신이 든 남친은 무릎 꿇고 울부짖으며 싹싹 빌었다. 답장이 없어서, 걱정이 돼서 견딜 수 없었다고, 너무 사랑해서 그랬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그다음은? 예상한 수순이다. 폭력은 결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됐고, 더 심해졌다. 헤어지자고 할 때마다 B씨는 얻어맞았다. 나중에는 친구들 앞에서 날아차기와 이단 옆차기까지 선보였으니까. 그와 헤어지기까지 꼬박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명백한 신체적 폭력이다. 이 경우에는 주저하지 말고 관할 경찰서에 바로 신고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 목격자나 사진, 녹음 자료 등 증거물을 확보하는 것이 좋다. 손경이 강사는 “여기서 더 주목해야 할 것은 피해자의 후유증이다”라고 말한다. 첫 신체적 폭력이 가해졌을 때 여자는 남친을 두둔했고, 폭력이 지속되면서는 무서워 못 헤어지는 자신이 바보처럼 비칠까 봐 견뎠다. 그러나 “그간 쌓인 마음의 상처와 이별 이후 남은 상흔까지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정서적 불안정이나 관계 기피, 자기혐오나 낮은 자존감, 우울증, 섭식 장애 등 다양한 형태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 아무리 경미하더라도 가볍게 치부하지 말고 심리 상담을 받아보라”라고 손경이 강사는 조언한다. 절차는 다음과 같다.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에 전화(02-324-8255)나 온라인으로 예약하고 방문 날짜를 잡으면 심리 전문가가 피해 정도를 포함한 전반적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그에 맞는 심리 검사를 실시한다. 진단 결과에 따라 전문가에게 적절한 심리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에게서 벗어났다고 안전해진 게 아니다. 이후 남은 상처를 잘 극복해내는 것이 진짜 마무리다.


자기 검열의 늪

“왜 이런 데이트 폭력이 일어나는 걸까?”라는 물음은 의미 없다. 맞을 만해서 맞을 사람 없고, 폭력으로 해결되는 문제란 어디에도 없다. 정의는 간단하다. 강자가 약자에게 일방적으로 휘두르는 ‘범죄’. 손경이 강사는 “그중에서도 데이트 폭력이 더 위험한 것은 연인이라는 지극히 친밀한 사이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객관적인 범죄로 인지하기가 어렵다”라고 말한다. “사랑해서 그랬다”는 변명이 통하기 때문에, “헤어지면 죽겠다”는 협박이 사랑의 증거라도 되는 줄 알기 때문이다. 당한 피해자이면서도 “이상한 남자를 만난 내 잘못이다”라는 자기 검열의 늪에 빠지기도 쉽다. 방법은 결국 경험자들 스스로가 더 많은 이야기를 수면 위로 올리는 일이다. 없던 일로 쉬쉬했기에 ‘데이트 폭력도 폭력이다’라는 당연한 사실을 인지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지금 이 시각에도 여전히 물리적인 힘을 앞세운 데이트 폭력은 일어나고 있다. 안전한 이별의 시작은 경험을 공유하고 연대하는 것, 그렇게 함께 대처해가는 것이다. 그는 범죄자라 써 붙이지 않았고, 우리 옆에 버젓이 존재하니까.


 그 밖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 

여성긴급전화 1366 국번 없이 1366을 누르면 여성긴급전화에 바로 연결된다. 가정 폭력, 데이트 폭력 등 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의 신고 접수, 피해 여성에 대한 긴급 상담 및 긴급 보호를 지원한다. 

무료법률구조지원제도 범죄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법률 면담, 소송 대리 등을 돕는 제도다. 가해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민사 및 가사 사건 청구 등을 돕는다. 가까운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방문해 면담 후 신청 서류를 제출하면 사실 조사를 거쳐 소송 구조 여부가 결정되고, 이후 소속 변호사나 공익 법무관이 소송을 수행해주는 제도다.

범죄 피해자에 대한 주거 지원 (범죄피해자지원센터) 범죄 피해자에게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에 근거해 안정된 주거를 지원하여 신체적·정신적 안정감을 확보하는 제도. 정신적 후유증으로 인해 범죄 피해 현장 또는 인근 주거지에서 거주가 곤란한 경우 지원 대상이 된다. 임대주택 지원 신청서와 피해 입증 자료를 첨부해 관할 검찰청 피해자지원실에 접수해야 한다. 


이 모든 게 데이트 폭력 피해다!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은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언어적·정신적 폭력, 경제적 폭력과 성폭력, 스토킹, 디지털 폭력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발생한다. 이러한 것이 모두 데이트 폭력이다. 비난과 무시/고함과 욕설/신체 폭력 및 상해/성추행 및 성폭행/사생활 감시 및 통제/유인 및 감금/디지털 데이트 폭력/경제적 및 사회적 피해/기타, 데이트 관계 및 이별 후에도 지속되는 모든 폭력 행위, 모두 다. 


CREDIT
    에디터 성영주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8년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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