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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8 Sun

우울한 날에는 뮤직 테라피

방탄소년단만 봐도 그렇다. 한국인만큼 음악에 대한 끼와 열정이 강한 민족이 또 있을까 싶은 거다. 흥 많은 민족의 피가 흐르는 당신의 플레이리스트에는 무엇이 담겨 있나? 음악 취향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고 감정이 반응하는 음악에는 치유의 열쇠가 들어 있다. 리듬과 멜로디가 직조한 시공간에서 오롯이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는 연습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이유다.



 음악으로 마음을 치유하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마다 음악으로 귀를 막았다. 거친 기타 스트로크가 피폐한 마음을 갈아엎어 숨구멍을 트여주고, 속사포의 랩 메탈은 탱천한 분기를 대신 쏟아내주곤 했다. 데이비드 보위는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의 소중함을 끊임없이 상기시켰고, 톰 웨이츠를 듣노라면 실패한 아무개의 인생을 사는 것도 썩 괜찮아 보여 밥벌이의 고단함도 그럭저럭 견딜 만한 일상이 되는 식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게 음악은 단순히 취향의 영역만은 아니었다. 나도 잘 모르겠는 내 마음을 꿰뚫기라도 한 듯 읊어주는 이가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한 데서 오는 안도감. 리듬과 멜로디가 직조한 시공간에서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며 얻는 충만함. 예술적 행위를 통해 감정의 쓰레기를 처리했다는 데서 비롯된 카타르시스. 한마디로 나에게 음악 감상은 ‘치유’의 행위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이런 경험이 나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지점에서 이 기사는 출발한다. 가장 흔한 예로 실연 후 이별 노래만 주야장천 찾아 들으며 이것도 내 얘기, 저것도 내 얘기 같아 눈물, 콧물, 마스카라 범벅의 카타르시스를 느껴본 경험 정도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던가. 

실제로 음악은 전문적인 심리 치료의 훌륭한 도구이기도 하다. 의학 데이터베이스 저널 <코크레인 라이브러리>는 음악의 심리 치료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400명 이상의 사람을 대상으로 9번에 걸친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음악 치료와 언어적 상담 치료를 비교하며 행해진 연구의 결과는, 언어적 상담 치료만 진행하는 것보다 언어적 상담과 음악을 결합한 치료법이 훨씬 효과적이었다는 것. 연구 보고서는 이렇게 분석했다. “음악 치료는 우울 증상이나 불안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보이며, 더불어 인간의 기능(직업이나 기타 활동, 인간관계에의 참여를 유지하려는 습성) 개선에도 도움을 준다.” 즉 음악이 누군가의 감정을 다스리고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감정을 분출시키고 달래는 음악의 힘 

문래동의 문화 예술 공간 ‘재미공작소’에서는 뮤지션 퓨어킴과 함께 ‘이고 뮤직’이라는 자작곡 워크숍을 정기적으로 진행해왔다. 주 1회, 8주간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멜로디와 가사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에니어그램’과 연계해 풀어가는 방식이다(참고로 퓨어킴은 에니어그램 지도사 자격증을 가진 전문가이며, 일러스트레이터 신모래의 그림과 함께 수업 내용을 다룬 책 <이고 뮤직 북>은 재미공작소와 여타 독립 서점에서 구매 가능하다). 참가자들의 태반은 제대로 다루는 악기 하나 없는 사람이고, 노래방에서조차 노래를 꺼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 그들이 뮤지션이 이끄는 대로 물 흐르듯 차근차근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떡 하니 만들어내는데, 곡의 완성도를 떠나 그 자체가 그냥 ‘그 사람’으로 여겨져 마냥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 또한 ‘송라이팅’을 통한 음악 치료의 한 방법이라 볼 수 있어요. 사람들이 ‘이건 정말 나의 이야기야’라고 느끼게 하기 위해 자작곡을 만드는 거죠.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가사로 노래를 만들어 스스로 부르면서 자신을 더욱 이해하고 달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거든요.” 오랜 기간에 걸쳐 청소년 예술 치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참여해온 이화여자대학교 음악치료학과 정현주 교수의 말이다. 정현주 교수가 진행해온 음악 정서 지원 프로젝트는 사회 기관뿐만 아니라 사회 공헌 사업에 눈을 돌리고 있는 YG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여러 기업의 관심과 후원으로 최근 들어 더욱 분주해지는 추세다. 음악의 힘을 믿고 음악을 찾으며 활용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음악이라는 예술의 형태가 여타 예술에 비해 폭넓은 수요층을 지니게 된 건 인간에게 내재된 음악적 기술과 본능 덕이다. 한국인만큼 음악에 대한 끼와 열정이 넘치는 민족이 또 있을까 싶지만, 사실 이건 전 인류의 DNA에 새겨진 거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음악 치료사 리즈 맥도널드는 “웃기, 한숨 쉬기, 울기 그리고 말하기와 같은 우리의 일상적인 음성 표현을 떠올려보세요. 그 안에 내재된 음조, 음의 높이, 빠르기, 음량 등의 음악적 자질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라고 설명한다. 

음악이 뇌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도 음악의 치료 효과는 설명 가능하다. 음악을 듣는 동안 감정의 절정을 기대하며 전율과 닭살을 경험하는 것은 도파민의 분비로 이어진다. 도파민은 주로 식사, 섹스, 특정 약물에 의해 활성화되는 쾌락 및 보상 시스템과 연관되는데, 음악이 바로 그것들과 동일한 효과를 나타내는 청각 자극인 거다. 누군가에게는 작사, 작곡, 연주, 노래라는 창조적 활동을 통해 구현될 수도 있지만 꼭 음악적 자질이 뛰어나야만 음악의 치료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할 수도 있고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감정 상태를 들여다볼 수 있다.


 안전한 치유의 공간 

가장 손쉬운 음악 감상에서부터 가사 분석, 작사 및 작곡, 동작 표현, 즉흥적 연주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음악을 통해 현재 느끼는 감정과 직면하고 끄집어낼 수 있다. 물론 이 중 ‘감상’의 영역을 제외하고는, 혼자서는 쉽게 시도해보기 힘들 수 있다. 그럼에도 음악의 일상적인 치료 효과를 무시할 순 없는 건, 단순한 ‘감상’조차도 우리에게 당면한 감정을 맞닥뜨리고 처리하는 데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방대하고 다양한 음악이라는 틀 안에서 어떤 음악을 선택하고 선호하느냐, 그 자체가 말해주는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있죠. 그래서 음악치료사는 거꾸로 음악을 투사의 척도로 사용합니다. 음악을 이용해 어떤 사람을 읽어내는 거죠.” 정현주 교수는 누군가가 좋아하는 음악, 반응하는 음악, 듣고 싶은 음악 안에 다 ‘나’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말한다. “내가 가진 우울감이 어디에서 온 건지, 어느 정도의 것인지, 어떤 종류의 감정인지를 음악을 들으며 알아보는 거예요. 보통 ‘우울감’이라 칭하는 감정 안에만도 슬픔, 분노, 극한 외로움 같은 여러 복합적인 감정의 형태가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게 어떤 것인지를 살피고 돌볼 수 있게 되는 거죠.” 원리는 이렇다. 음악에 감정을 투사함으로써 그 음악이 내 감정(주로 부정적인)을 담아내는 그릇과 같은 ‘음악적인 공간’을 제공해주는 거다. “그게 바로 ‘치유의 공간’이지 않을까요? 어떤 노래의 가사에서 전하는 메시지, 가수의 목소리가 전하는 이야기, 그 음악 자체가 주는 정서적인 공간 안에 자신의 감정을 담아내는 거죠. 음악이 만들어낸 안전한 공간 안에 꽁꽁 숨어 있던 감정이 풀어지면서 묽어지는 거고요.” 

음악이 이렇게 우리의 내면에 깊숙이 파고들 수 있는 데는 심리학적으로 ‘동조화’와 ‘항상성’에 기인한다. 흥겨운 리듬에 몸이 절로 들썩이고, 차분한 클래식 선율에 나른함을 느끼게 되는 게 바로 ‘동조화’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외부 자극에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본능적으로 항상 ‘안정적인 상태’에 머무르길 원한다. 우울한 기분을 빨리 떨쳐내고 싶고, 격앙된 상태에서 평정심을 찾으려 애쓰는 것이 항상성의 원리다. “인간에게 내재된 동조화 성향을 이용해 음악으로 정서를 조율할 수 있게 됩니다. 적절한 음악을 하나의 도구로 활용해 우리가 머물고자 하는 ‘항상성’의 영역 안에 다시 복귀하는 거죠.”


 우리는 더 많은 음악이 필요하다 

전문적인 상담 치료나 약물의 도움이 필요한 강도가 아니라면, 우리의 대부분은 하루 10~20분간, 본능과 감정에 따라 고른 음악을 통해 본연의 치유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음악 치료 전문가들은 말한다. 특별한 무대장치나 특수한 장비가 필요한 일도 아니다. 음악을 들으며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명상, 기도, 휴식이 될 수도 있고 그냥 음악을 들으며 가만히 있어도 된다. 혹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수도 있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거나 자극을 받으며 어떤 힘을 얻게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자신의 공격성이나 좌절감을 없애기 위해 드럼을 가지고 놀거나 펀치백을 치는 것까지, 모두 음악 치료의 한 방법에 해당된다. 음악 치료 및 트레이닝 프로그램인 ‘뮤직웍스’의 CEO 바버라 루어는 말한다.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고 싶다면, 깊게 호흡을 하는 동시에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음악을 들으세요. 고통을 덜어내고 싶다면,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 다른 것에 집중시키는 음악을 찾아보시고요. 노래를 불러도 좋고 실수할지언정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좋아요. 핵심은 그냥 ‘전부’ 내려놓는 거예요.”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각자의 ‘상황별 플레이리스트’다. 중요한 것은, 부정적인 감정이 자신을 압도하는 그 순간에 찾을 게 아니라(그 순간엔 사실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니까!) 미리 자신의 감정 조절에 효과적이었던 곡들을 리스트업하는 것. “사람마다, 상황에 따라,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음악은 다 달라요. 그간 본인에게 효과적이었던 음악들을 한번 리스트업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굉장히 다운됐을 때 이 음악이 도움됐던 것 같아’ 하는 곡들이 분명 있을 거예요. 

특정한 상황에 어떤 음악들이 도움이 됐는지 미리 분류해놓으면, 유사한 상황이 닥쳤을 때 하나의 ‘프로토콜’처럼 작동할 수 있어요.” 정현주 교수는 이를 위해 위로를 주는 음악, 내면의 힘을 상기시키는 음악, 에너지를 주는 음악 등 자신이 좋아하는 각 음악이 기능하는 부분을 메모해둘 것을 권한다. 아침마다 혹은 출퇴근길에 긍적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음악을 들으며 ‘정서 조율’을 연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신만의 플레이리스트를 프로토콜에 맞게 잘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일상 속 감정을 조절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 정현주 교수의 설명이다. 

뭐 하나 녹록지 않은 게 인생이다. 와중에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게 자명하고, 우리의 불안함과 고민은 그만큼 늘어날 일만 남았다. 하루하루 버텨내는 힘을 우리 스스로 길러야 하는 게 현실이라면, 가장 손쉽게, 가장 편안하게, 또 가장 사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게 바로 ‘음악’이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 더 많은 음악이 필요한 이유는, 딱 이거면 충분하다.

CREDIT
    에디터 박지현
    사진 Stocksy
    디자인 이효진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8년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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