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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Tue

엉뚱한 원칙주의자, 박해진

10분 전 약속 장소에 도착해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 자신을 냉정하고 현실적이라고 말하는 남자, 스스로 정해놓은 규칙을 지키는 남자. 원칙주의자 박해진이 엉뚱한 행동을 하고, 농담을 던졌다.


셔츠 발렌티노. 팬츠 보테가 베네타.


오늘 촬영장에 꽤 큰 가방을 들고 왔어요. 그 안에 뭐가 있나요?

짐이 좀 많아요. 매니저한테 맡겨도 되지만, 제가 필요할 때 손이 닿는 곳에 있어야 마음 편한 것들이죠. 대본, 보조 배터리, 지갑, 텀블러, 모자, 향수, 파우치…. 파우치 안도 보여드릴까요? 구강 청결제, 프로폴리스, 립밤, 각종 약 그리고 줄자도 있네요. 무엇이든 사이즈를 재는 버릇이 있어요. 사이즈에 딱 맞게 사는 걸 좋아하거든요. 요즘 가구랑 조명 기구에 빠져 있죠. 직접 만들 생각은 없어요. 기성품보다 잘 만들 자신이 없거든요. 하하.


한창 드라마 <사자> 촬영 중이죠? 

네. 스마트하고 인간적인 ‘일훈’, 동물적인 성격의 ‘첸’, 감각적인 ‘미카엘’, 냉철한 ‘동진’, 총 4명의 인물을 연기하고 있어요. 한 명이 다른 인격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별도의 각기 다른 인물이에요. 각 인물을 어떻게 달리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촬영하고 있어요. 다른 배우와 만나는 장면이 적어 한번은 감독님께 “왜 이렇게 주변 인물이 없어요? 저 누구랑 연기하죠?”라고 했더니 “응, 넌 너랑 연기하면 돼”라고 하시더라고요. 


1인 4역을 한다는 점이 작품 출연에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나요?

처음에는 ‘한 인물만 연기하기에도 버거운데 이렇게 어려운 걸 굳이 왜 해야 하나?’란 생각에 피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새로운 작품은 늘 도전이잖아요. 매번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없고, 또 늘 새로운 역할만 할 수도 없고요. 한 작품 안에서 몸에 잘 맞는 옷도 입어보고, 맞지 않는 옷도 입어보며 어긋나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인터뷰에서 늘 스스로를 냉정하다고 말했어요. 

현실적이고, 차가운 편이에요. 제가 무표정하면 차가워 보인다고 하시는데, 실제로는 더 차가워요. 하하. 


한 손에 강아지 인형을 들고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어본다. 

재킷, 팬츠, 타이 모두 가격미정 수트서플라이. 셔츠 8만5천원 리버클래시. 타이 바 16만9천원 유니페어×불레또. 슈즈 가격미정 존롭.


최근에 소방관 처우 개선을 위한 재능 기부를 하고, 중국에 나무 2만 그루를 기부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박해진 씨가 어디에 기부하고 봉사 활동을 하는지 사람들이 주목하곤 하죠.

중국에 나무를 심은 건 조카들을 보며 ‘얘들이 커서 더 탁한 공기를 맡으며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거였어요. 일반적으로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과 노인, 사회 빈곤층을 더 많이 도우려고 애쓰는 편이에요. 처음 기부를 시작할 때도 고민이 많았어요. ‘이번 한 번만 돕고, 다음엔 도울 수 없으면 어쩌나’라는 걱정 때문이었죠. 아직까지는 잘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냉정하고 현실적인 박해진 씨가 감정에 휘둘릴 때는 언제인가요?

아무래도 가족과 관련된 일이죠. 가족 중 누군가가 잘못하면 바로 지적하고, 현실적으로 보려고 하지만 감정이 아예 배제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스케줄이 없을 때도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편이잖아요. 일하지 않을 때는 스스로를 느슨하게 풀어놔도 될 텐데요.

연예인이란 직업은 자유롭다기보다는 불규칙적이에요. 그래서 일이 없을 때 더 규칙적으로 생활하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한번 흐트러지면 낮과 밤이 바뀌어 바이오리듬이 깨지는데, 저는 그걸 싫어해요. 어렸을 때도 그랬어요. 고등학교 3년 내내 정확히 아침 6시 37분 전철을 타고 다녔어요. 전철은 늘 정시에 오니깐요. 그러면 그 시간에 만나는 친구들이 있었죠. 환경이 바뀌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지금 다니고 있는 피부과, 헬스장 등도 10년 이상 다닌 곳이에요.  


스스로 생각하기에 원칙주의자인 편인가요?

네. 촬영장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저보다 다른 배우가 먼저 촬영장에 나와 있으면 불안해요. 무조건 제가 1등으로 가 있어야 해요. 저는 스태프들이랑 노는 것도 좋아하고, 감독님이랑 얘기도 많이 하는 편인데 촬영 시간에 임박해 도착해서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촬영에 들어가면 하루가 후딱 가버려요. 날마다 밥을 함께 먹는 식구는 아니지만 24시간 동안 촬영하며 한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니, 그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서로의 안부 정도는 묻고, 사탕 하나라도 나눠 먹을 수 있게끔요. 


청명한 느낌의 그린 컬러 블루종도 그에겐 그림처럼 잘 어울린다.

블루종 가격미정 발렌티노. 셔츠 35만원, 팬츠 35만원 모두 송지오 옴므.


한편으로는 시청률, 관객 수에 대한 부담감도 있을 것 같아요.

늘 있죠. 모든 배우가 ‘이 작품이 잘될 거야’라는 생각으로 새 작품을 시작할 거예요. 그리고 방송이 임박하면 시청률을 의식하게 되죠. 배우들이 시청률 혹은 관객 수 공약 등을 하곤 하는데, 그 공약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크거든요. 그런데 그걸 지킬 수 없을 때 되게 속상해요. 


작품의 흥행과 배우 자신의 만족도 중 택한다면 어느 쪽이에요?

흥행이오. 제 연기에 혼자 만족한들 누군가 봐주지 않으면 그저 자위하는 것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대중의 사랑으로 먹고살고, 상업성을 띤 작품을 하고 있으니깐요. 작품이 잘 안 되면 어떤 제작사는 문을 닫아야 하고, 또 누군가는 손해를 봐요. 최소한 그런 상황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구 하나라도 손해 보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품에 임해요. 


작품이 끝나면 캐릭터에서 쉽게 빠져나오는 편인가요?

힘들지만 어떻게든 빠져나올 수밖에 없죠. 얼른 벗고 다른 옷을 입어야 하는데, 계속 이 옷을 입고 또 덧입을 순 없잖아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유정’이라는 옷은 덧입은 셈이죠. <치즈인더트랩>은 드라마와 영화에 모두 출연했으니까요. 

한 번 벗어봤으니, 오히려 더 쉽게 벗을 수 있었어요.


비눗방울 장난감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그.

아우터 2백2만원, 셔츠 42만원, 팬츠 78만원 모두 펜디. 


“불편한 진실이라도 진심을 듣고 싶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아무리 미사여구로 치장해도 분명한 팩트가 있잖아요. 빙빙 돌려서 말하거나 포장한다고 한들 듣는 사람이 상처를 덜 받을까요? 사실 저는 슬프면 “아…”, 기쁘면 “아!” 정도의 리액션만 해요. 기뻐도 크게 들뜨지 않고, 아무리 슬퍼도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아요. 그래서 더욱 객관적이고 솔직한 얘기가 듣고 싶은 거예요. 그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은 연년생 누나예요. 


운동화와 피규어 등을 수집하는 연예인으로 꼽혔는데, 지금은 정리했다고 들었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집에 내가 사는 건지, 신발이 사는 건지 모르겠는 순간이 왔어요. ‘할 만큼 했구나’ 싶으면서 어느 순간 회의가 들었죠. 사실 어떻게 보면 안쓰럽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엄청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출구가 딱히 없었거든요. 술, 담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도 아니니까요. 제 유일한 창구는 스마트폰 화면뿐이에요. 특별히 뭔가를 하는 건 아니고, 계속 검색하다 어떤 물건을 보기도 하고, 트렌드도 살펴보고요.


연애는 안 해요?

필요성은 느껴요. 점점 감정이 무뎌지는 것 같거든요. 사람이 퍽퍽해진달까요? 사랑을 해야 엔도르핀이 돌고, 그런 장면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걸 위해 연애를 할 순 없잖아요. 연애를 하지 말아야겠다란 생각도, 또 절실하게 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어떻게 나이를 먹고 싶어요?

하루하루 늙어가는 건 별로지만, 조금씩 안정을 찾을 나이가 다가오고 있어 좋아요. 올해 36살인데, 지금보다 한두 살이나 세 살만 더 먹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애매한 나이인 것 같아요. 20대 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가고 싶지 않아요. 젊음을 애써 붙잡고 싶지도 않고요.


CREDIT
    Photographer KIM YEONG JUN
    Fashion Director JEON SEON YOUNG
    Feature Editor JEON SO YOUNG
    Celebrity Model 박해진
    Stylist 신혜련
    Hair 조영재
    Makeup 지연주(보이드에이치)
    Set Stylist 유여정
    Assistant 박가현, 전혜라

이 콘텐트는 COSMO MEN
2018년 0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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