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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9 Fri

연애와 여성성

‘여성적’이라는 말이 성차별적인 단어로 낙인찍힌 지 오래다. 하지만 여성인 우리는 여성이기 때문에 각자 고유의 ‘여성성’을 지니고 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작동하기 마련인 ‘연애’라는 관계에서 우리는 우리의 ‘여성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난 왜 “여성스럽다”는 말이 기분 나빴을까

가부장적인 대가족 안에서 자랐던 나는, 내가 아무리 기를 써도 집안의 ‘어떤 남자’보다 인정받지 못한다는 게 참 이상했다. 내가 딸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다행히(?) 순종적인 아이는 아니었던 내가 택한 건 ‘여자애처럼’ 굴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제법 남자다운 늠름함을 갖춘 사람으로 자랐다고 자부했다. 그러던 언젠가, 한 남자사람친구가 나를 이렇게 평했다. “넌 여성스럽잖아.” 코웃음을 쳤다. 살다 살다 그런 어이없는 얘긴 처음 듣는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일이었나 싶지만, 아무튼 그가 말한 여성스러움의 포인트는 다음과 같았다. 까불거리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잘 웃는다는 것. 꽤나 충격이었다. 그건 그냥 ‘나’라는 사람의 특징인 줄 알았는데 그게 내가 ‘여자라서’ 그런 거라고 단정적으로 선언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게 바로 무슨 어려운 책에서 읽었던 ‘타자화’라는 건가 싶었다. 재작년 즈음 P&G에서 대대적으로 펼쳤던 ‘#여자답게(#LikeAGirl)’ 캠페인을 기억하나? 청소년기를 지난 여성들은 ‘여자답다’는 표현을 두고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연약한 것으로 묘사한 반면, 아직 세상의 선입견에 물들지 않은 어린 소녀들은 ‘여자답게 해보라’라는 말에 신나게 달리고 힘껏 공을 던지며 강한 발차기를 날린 바로 그 영상 말이다. 무심코 사용하는 ‘여자답다’는 말 자체가 우리 자신을 어떤 틀에 가두게 될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을 타전한 이 캠페인이, 나에겐 그때 그 순간을 환기하는 뭔가가 있었다. 


여성스럽지 않아도 여성인 여성들의 연애

다행스럽게도 이젠 ‘여성적’이라는 표현을 비롯해, 여성에게 기대하는 사회적 역할이 남성 중심의 사회가 규정한 성차별적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여성적’이라는 말로 누군가를 설명하는 것은 나도 모르게 내재화된 성차별적인 잣대로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적’인 특질을 규정할 때 흔히 떠올리는 몇 가지 덕목이, 정말 우리 여자들이 청산해야만 하는 적폐와도 같은 것일까? 여성스럽게 보이기 싫었던 나조차도 이제 와선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 해석이 여성의 고유한 특질을 깎아내리는 자기 부정과도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성으로 태어난 이상, 생리적으로건 정서적으로건 고유의 여성성이 발현될 수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개개인의 차이는 매우 크다. 내 주위에만도 외모는 ‘여성스럽지만’ 성향은 ‘여성스럽지 않은’ 사람이 여럿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성의 역할’이라거나 ‘여성적’이라는 말의 한계에 갇히지 않기 위해 더 무던히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이성애를 가정했을 때) ‘남’과 ‘여’라는 정체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나뉘기 마련인 ‘연애’라는 관계에서 우리는 종종 뜻밖의 장벽을 마주하게 된다. 여기에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까지 결합하면, ‘가부장’이라는 기존 질서와의 상충으로 더 복잡한 상황에 이르고 만다. 성평등주의자를 자처하던 당신의 남자가 혹여 가부장제의 편리함 앞에서 비겁하게 돌아서기라도 한다면? 칼로 무를 자르듯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될 수밖에 없다. 지인 S(35세, 강사)는 해외 발령이 난 남자 친구로부터 청혼을 받았다. 결혼해 같이 떠나자고 했다. 모두가 부러워했지만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던 S에게는 자신의 꿈과 맞바꿔야 하는 결정이었다. 늘 S를 지지하고 응원해 자신의 고민을 이해할 줄 알았던 남자 친구는 “결혼하고 애 낳으면 어차피 일을 못 할 수도 있잖아. 늘 내가 네 의견 존중하니까 이런 큰 문제에 있어선 나한테 좀 맞춰주면 안 될까?”라는 말로 S를 아연케 했다. “만약 누가 남자 친구한테 저런 얘길 들었다고 하면 난 아마 ‘결혼하면 왜 여자가 일을 그만둬야 하는데? 큰 결정은 왜 남자한테 맞춰야 해? 니 인생은 니 거야!’라면서  헤어지라고 말했을 거야. 그런데 막상 나부터 그게 쉽지 않더라? 어쨌든 사랑하는 사람이고 ‘나의 미래’랑 ‘우리의 미래’에서 우선순위가 빨리 안 서더라고.” Y(36세, 아티스트)가 남자 친구와 다투는 주된 원인은 그의 머릿속에 자리한 무의식적인 편견 때문이다. Y가 속칭 그의 ‘한남 성향’을 지적할 때면 남자 친구는 이렇게 얘기하는 식이었다. “너는 내가 아는 가장 극단적인 페미니스트야.”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싫은 게 아니라 그의 말에 담긴 비아냥이 싫었다. 그래서 싸웠다. 사과의 말은 이런 식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순종적이고 여성스러운 사람들만 만나와서 잘 몰랐던 것 같아.” 꼭 순종적이어야 여성스러운 건가? Y는 더 열 받아 했다. “그가 나에게 ‘여자 친구로서’ 당연하게 기대하는 어떤 행동이 있어. 물론 내가 그걸 받아주진 않지만, 좋아하는 사람이랑 계속 핏대 세우게 되는 건 심적으로 힘든 일인 것 같아.” 


자신의 ‘여성성’은 남이 아닌 자신만이 알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게 우리 여자들만의 고민이 돼선 안 된다. 특히 ‘함께 행복한 것’을 전제로 한 연애에 있어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20년이 넘는 시간 차를 두고 발간된 두 권의 책에서,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한 힌트를 얻어본다. 캐럴 길리건의 <다른 목소리로>와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캐럴 길리건은 <다른 목소리로>에서 남자아이들이 어떻게 4살부터 자신의 감정과 단절되는지, 또 여자아이들은 어떻게 12살 즈음 자신의 목소리를 잃게 되는지를 알려준다.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는 “우리가 남자들에게 저지르는 몹쓸 짓 중에서도 가장 몹쓸 짓은, 남자는 모름지기 강인해야 한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의 자아를 아주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이라 말한다. 페미니즘의 언어로 따지면 전혀 다른 맥락으로 읽힐 수도 있을 테지만, 두 책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 여자들이 밖으로 뻗어나가는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리는 사이 남자들 또한 내적으로 불완전해진 것이라면, 어쩌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건 남성과 여성이 서로가 완전해질 수 있도록 서로를 지지하고 존중하는 어떤 ‘태도’가 아닐까 하는. 미국의 성 심리 치료사 에스더 페럴은 코스모폴리탄에 기고한 ‘여성성의 힘’이라는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는 남자와 여자가 좀 더 완전해져야 할 때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완전한 여성성이란 부드럽고 친절한 동시에 자신의 강력한 목소리를 되찾아 자신감 넘치게 행동하며 결단력도 갖추는 거죠. 완전한 남성성은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때론 연약한 자신의 내면과 타인의 감정을 돌볼 줄 알아야 한다는 거고요. 하지만 우리 사회가 특정 성향을 특정 성별에 국한된 것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우리는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을 대치되는 역할로 한정시켰습니다. 특히 이건 이성애 커플 사이에서 눈에 띄게 드러나는 부분이고요.” 한마디로 사랑하는 사람과 ‘젠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각자의 ‘여성성’부터 확실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로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인정하고 서로가 완전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받아야 할 것이다. 참으로 아름답고 바람직해 보이는 이 여정은 어디서부터 발을 떼야 하는 걸까? 당장 우리가 나설 수 있는 시작점은 각자의 고유한 여성성을 직시하는 것이겠다. 에스더 페럴은 자신의 고유한 기질, 즉 진정한 여성성을 발견하려면 여성으로서 자신의 ‘몸’을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가진 고유의 기질을 발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온전한 주인 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몸을 제대로 살펴보는 것입니다. 당신이 일을 처리하고 문제를 해결할 때 신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파악하는 거죠. 그리고 당신이 몸을 쓸 때, 가령 춤을 추거나 섹스를 하는 동안, 어떤 식으로 해야 즐거운지를 온전히 느껴보세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것에서 뿜어 나오는 자신감이 바로 당신의 진정한 ‘여성성’의 단서입니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여성성이란, 남자 친구나 남자사람친구나 남자 친구의 가족이나 살면서 만난 그 어떤 사람도 함부로 정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란 얘기다. 내가 기분 나빴던 지점이 바로 여기였나 보다. 다행이다. 이제라도 나는 내가 실실 잘 웃는 게 ‘여자로서’ 웃는 것으로 곡해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이 든다.


CREDIT
    에디터 박지현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8년 0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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