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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5 Fri

그곳을 그냥 내버려두세요

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20세 이상 여성 중 44%가 여성 청결제를 사용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대체로 외음부를 닦는 용도로 쓰는 경우겠지만, 만약 이왕이면 속까지 꼼꼼하게 닦아보겠노라 ‘질 세정제’를 쓰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면, 당장 그 행동을 멈추라고 말하고 싶다. 이유는 단 하나. ‘질’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신비하고 예민하며 또 위대한 신체 기관이기 때문이다.


질을 질이라 부르지 못하는 비극

우리 신체 기관 중 제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곳 1호는 아마도 ‘질’이 아닐까? 속칭 ‘그곳’ 혹은 ‘거기’라는 애매한 지시대명사로 인근의 은밀한 일대와 얼렁뚱땅 싸잡아 버무려지는 바로 ‘그곳’ 중 ‘한 곳’ 말이다. (산부인과에서 진료받을 때를 제외하곤) 감히 질을 질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만큼 우리는 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질’의 세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자부한다면 다음의 퀴즈에 답해보자. “질의 청결과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혹시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가 ‘여성 청결제’, ‘질 세정제’라거나 ‘수시로 깨끗하게 씻어주는 것’은 아닌가?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예상했겠지만 앞선 예시는 모두 오답이다. 미국 국립보건원에 따르면 질을 깨끗이 하려고 노력하는 모든 행위는 단순히 시간과 돈 낭비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질의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그렇다. 우리의 위대한 질은 어떤 방식으로 문질러 씻어야 한다거나 몇 번에 걸쳐 깨끗이 헹궈야 한다거나 특정 제품을 사용하면 좋다거나 하는 꿀팁 따윈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질이 가진 본연의 ‘자정 능력’ 때문이다. 


위대한 ‘질세균총’을 소개합니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신비로운 신체 기관인 질은 그야말로 인체의 신비에 가까운 자정 능력을 타고났다. 그 비결은 질에 존재하는 정상 세균들인 ‘질세균총’의 은혜! 건강 트렌드나 바이오 산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마이크로바이옴’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지도 모르겠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장내 미생물을 총칭하는 말인데 우리의 기분부터 턱밑 뾰루지 하나까지, 모든 것과 연관됐음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알고 보니 우리 질에도 마이크로바이옴이 존재하는데 산부인과에서는 이를 ‘질세균총’이라 부른다. “질 내에는 락토바실러스 속, 가드네렐라 바지날리스 등 많은 종류의 정상 세균총이 있습니다. 그중 호기성 세균인 유산균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요. 이 세균은 유산을 분비해 질 내를 산성 상태(pH 4.5 이하)로 유지해주고, 질 내 미생물들 사이에 균형을 유지해 병균에 대한 저항성을 지니게 합니다.” 분당차여성병원의 산부인과 전문의인 장성운 부원장은 질세균총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질에 존재하는 이 정상 세균의 궁극적인 역할은 유산을 분비해 질 내를 산성 상태로 유지하는 ‘자정 능력’에 있다고 보면 된다. 스탠퍼드 대학교 여성 의약 프로그램의 디렉터이자 부인과 전문의인 레아 밀하이저 박사는 질세균총에서 ‘젖산균’이라는 균주가 가장 주된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게 질 내부를 냄새, 염증, 가려움과 감염의 원인이 되는 생물체가 머물기 어려운 환경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한 연구에서는 질 내에 젖산균이 많은 여성의 경우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HIV에 감염될 가능성이 더 적다는 결과를 공개했다. 그뿐만 아니라 질 내에 젖산균이 많으면 심각한 여성 질환을 야기하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에 감염되더라도 그 증세를 훨씬 빨리 떨쳐낼 수 있다고 한다. 


무엇이 질을 괴롭게 하는가

문제는 이러한 젖산균과 기타 이로운 균주를 파괴하는 우리의 행동에 있다. 무엇이 이들을 괴롭히는 걸까? 앞서 언급한 세정액, 비누, 그리고 라임 주스나 암모니아 희석액 같은 별난 민간 요법들 되시겠다. 보스턴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외음부 질환 프로그램의 디렉터이자 부인과 전문의인 캐롤라인 미첼 박사는 이러한 것들이 질의 섬세한 산성도를 유지하는 데 지장을 주며 좋은 박테리아가 머물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고 해로운 세균들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고 한다. 쇼킹한 통계도 하나 있다. 미국 보건복지부의 보고에 따르면, 아이러니하게도 질 세척을 자주 하는 여성들은 ‘세균성 질염’에 감염될 가능성이 5배나 높다는 것이다. 젊은 여성 3명 중 1명꼴로 겪는다는 냄새 나고 고통스러운 증상을 유발하는 바로 그 질환 말이다. 외음부 세척도 아니고, 대체 질 세척을 왜 하는 거냐고? 국내 통계는 집계된 바 없지만, 미국 CDC(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발표한 최근 자료에 따르면 15~44세의 미국 여성 5명 중 1명이 질 세정제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질 세척을 하는 이유는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거나 산뜻한 느낌을 갖기 원해서’가 84%, ‘청결한 섹스를 준비하기 위해서’가 54%, 그리고 ‘섹스 후에 씻기 위해서’가 무려 70%라고 한다. 우리가 언뜻 보기에도 일견 타당하게 생각되는 바로 그 이유들 말이다. CDC에 따르면 세균성 질염은 가임 연령의 여성들에게서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질 감염 질환인데, 이게 무서운 이유는 따로 있다. 세균성 질염에 자주 걸리면 골반염에 감염될 확률을 높이고 생식계 전염병인 골반염은 열, 성교통, 부정 출혈의 원인이 된다.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을 경우 생식력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고 말이다. 물론 질염이 치료가 힘들다거나 우리가 숨겨야 할 정도로 부끄러운 질환인 건 아니다. 실제로 주변인들의 경우만 봐도 질염은 흔하게 걸리고 쉽게 재발하는 질환 중 하나다. 마치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누군가는 꼭 코감기에, 또 누군가는 목감기에 걸리듯 유독 컨디션이 나빠지면 질염이 재발해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내 주위에만 여럿이다. “질염은 감기처럼 자주 재발되는 질환입니다. 치료만큼이나 습관 교정이 중요한 이유죠”라며 장성운 부원장은 특히 세균성 질염은 정상적인 질세균총의 변화 때문에 발생한다고 강조한다. “세균성 질염은 정산 질세균총의 변화 때문에 발생하는데 이는 잦은 성교로 인해 질세균총의 리듬이 파괴되거나, 질 세척 후 자주 반복되는 알칼리화에 기인합니다. 정상적으로 있어야 할 유산균이 사라지면 정상 질내 상태가 유지되기 어렵고 세균성 질염의 재발 또한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죠.” 질 세척 이 외에 질세균총의 균형을 깨뜨리는 가장 흔한 습관은 사실 따로 있다. 질을 습한 상태로 유지하는 거다. “질이 습한 상태로 유지되면 질세균총을 변화시키는 균이 과증식할 수 있거든요. 샤워 후 바로 속옷을 착용하기보다는 외음부와 질을 말려주는 습관을 가지는 게 좋습니다. 용변 후 청결을 위해 물티슈로 닦거나 물로 씻는 경우도 많은데, 이를 말리지 않은 상태에서 옷을 입는 것도 균이 번식하기 더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죠.” 장성운 부원장은 꼭 끼는 타이츠나 팬티스타킹 등 통풍이 잘 안 되는 옷을 오래 착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질의 습도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한다. 이 밖에도 질세균총을 괴롭히는 요인은 실로 다양하다. 항생제(이건 나쁜 박테리아와 함께 좋은 박테리아까지 제거해 질 내부에 효모균이 증식하게 만든다), 파라벤이 함유된 윤활제(요즘 너무 유명해져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파라벤은 병의 뚜껑을 열기 전에 내용물이 오염되지 않도록 보존해주는 방부제다. 이 또한 체내의 이로운 박테리아를 죽일 수 있다), 그리고 세척하지 않은 섹스 토이나 항문 성교 이후에 씻지 않은 성기도 질 내부의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다고 밀하이저 박사는 말한다. 아, 그리고 질 안에 어떤 종류든 음식을 넣는 것도 절대 안 된다. 미안하지만 코스모가 간간이 권하는 섹시 푸드 플레이는 되도록 배꼽 위 언저리에서만 하는 게 안전할 것 같다는 말이다.


그곳을 내버려두세요

청결과 위생을 위해 해왔던 행동이 오히려 패악을 끼치는 결과를 일으킨다니,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질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이제야 말하는 정답은 “그냥 내버려두세요”다. 진짜로,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당신의 질은 이미 스스로를 깨끗하게 정화하고 있다. “그곳은 자기가 알아서 완벽하게 일을 처리할 줄 아는 해결사이기도 하거든요”라는 밀하이저 박사의 말은 농담이 아니다. 만약 굳이 그곳에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자 한다면, 밤에 잘 때 헐렁한 면 소재의 속옷을 입거나 속옷을 아예 안 입고 자는 것 정도가 있겠다. ‘엄마 팬티’나 ‘노팬티’가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면, 습기를 좋아하는 나쁜 박테리아가 질에 침입해 건강한 질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상상하면 왠지 우습겠지만 샤워 후 드라이어로 두피만큼이나 ‘그곳’을 잘 말려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간식으로 케피어(우유를 발효시킨 음료)나 요구르트와 같이 프로바이오틱스가 풍부한 유제품을 먹는 것도 몸 안의 산성도를 굳건히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건 특히 다른 질병으로 어쩔 수 없이 항생제를 복용하는 경우에 큰 도움이 될 거다. 또 질뿐만 아니라 외음부도 살살 다뤄야 한다. 이 부위를 씻을 때 필요한 건 오로지 ‘미온수’다. “흐르는 물에 씻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또 생리 기간에 패드를 자주 바꿔 착용하면서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도 좋고요.” 장성운 부원장의 조언이다. 굳이 뭔가를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저자극성 무향 비누 정도가 좋다고 밀하이저 박사는 말한다. 진짜로,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라니까? 


CREDIT
    에디터 박지현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8년 0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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