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OPOLITAN

  • 로그인
  • 회원가입
  • 정기구독
코스모폴리탄 디지털매거진
  • facebook
  • twitter
  • blog

    INSTAGRAM
    COSMOPOLITAN KOREA

    SUBSCRIBE TO COSMO

  • kakaostory

    KAKAOSTORY
    COSMOPOLITAN KOREA

  • youtube

    YOUTUBE
    COSMOPOLITAN KOREA

    Follow Youtube

포인트를 모으시면 선물을 드려요
2017.08.13 Sun

가족 대신 시스터후드

싱글 여성들의 자매애는 이성애보다 단단하고 가족애보다 산뜻하다.


며칠 전 집에 물난리가 났다. 지은 지 40년 된 한옥에 사는데, 재작년 지붕 공사를 잘못하는 바람에 종종 비나 흙이 새곤 했다. 이번엔 심각했다. 발이 잠기도록 물이 차고 전기가 차단됐다. 그때가 밤 12시. 근처에 사는 친언니의 집으로 대피할까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직장인 둘, 아들 하나, 딸 하나라는 보건복지부 표창감 4인 가구에게 밤 12시에 전화를 거는 일이 내키지 않았다. 계곡에서 캠핑하는 셈치고 그나마 물이 안 찬 방에 이불을 깔고 초를 켰다. 그리고 SNS에 넋두리를 올렸다. “나 수재민 됐음ㅠㅠ.” 


다음 날 아침 사방에서 쏟아지는 연락에 일찍 잠을 깼다. “당장 우리 집으로 오지 그랬어!”라는 나무람이 대부분이었다. “밤이 늦어서”라는 내 말에 “12시가 뭐가 늦어”라고 답한 건 대부분 혼자 사는 언니들이었다. 그중 한 명은 최근 아담한 빌라를 사서 이사했다. 그 집을 살 때 은행 대출이 늦어지는 바람에 내가 목돈을 빌려줬다. 새집을 구경 간 날 그녀가 말했다.“이 집에는 너랑 은행 지분이 내 지분보다 많아. 네가 들어와서 살아도 돼.”  


오후엔 친구가 찾아왔다. 물만 쓸어내면 되니까 일손은 필요 없다는데도 굳이 거들겠다고 우겼다. 한 손엔 주말 농장에서 기른 채소를, 다른 한 손에는 최근 출판한 내 책을 여러 권 사들고 왔다. 책은 내 사인을 받아서 친구들에게 나눠줄 거란다. 고마운 마음에 일은 못 시키고 낮술만 사 먹여 보냈다. 돌이켜보면 항상 그랬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두 말 않고 달려와주는 건 싱글 여자들이었다. 아플 땐 약을 챙겨주고, 힘들 땐 술을 사주고, 일 때문에 생활이 엉망진창이 되면 슬그머니 찾아와 살림을 도와주고, 밤늦게 택시를 타면 번호를 적어두고, 어디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 함께 화를 내거나 나 대신 보복을 맹세한다. 긴 여행을 떠날 때는 “돈 떨어지면 연락해”라는 다정한 말을 잊지 않는다. 혹여 고독사라도 할까 봐 내 집 현관 비밀번호를 외워두고, 나이가 들어서도 혼자면 집 지어 같이 살자고도 한다. 그사이 사랑은 왔다 갔다 했지만 우정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혼자 살면서도 외로움이나 결핍을 못 느끼는  것은 그 덕일 게다. 


물론 이성끼리도 우정은 가능하다. 이론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행운이 없었다. 친해지려고 잘해주면 ‘나한테 관심 있나?’라는 착각의 늪에 빠져 질척대는 남자가 태반이었고, 나를 여자로 안 보는 남자들은 무례한 태도로 언짢게 만들었으며, 이따금 멀쩡한 남자 사람 친구가 나타나도 그의 애인이나 아내를 배려해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수년간 가까이 지내며 서로를 보살펴준 친구는 여자 아니면 게이뿐이었다. 내게 호의를 베풀고도 그 대가로 연애나 섹스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 말이다. 


‘시스터후드’, 번역하자면 ‘자매애’라는 것은 흔히 여성성의 특징으로 여겨지는 헌신과 보살핌을 기반으로 한다. 그들은 때로 어머니처럼, 언니처럼, 여동생처럼 내가 손 내밀지 않아도 심정을 헤아리고 다가와 내게 필요한 것을 준다. 나 역시 그들을 보살피려 노력한다. 아니, 노력이란 말은 적절치 않다. 그건 내게도 즐거움이다. 앓아누운 사람에게 죽을 끓여준다 치자. 남자들은 내가 여자니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자들은 고마움을 마음에 새겼다가 내가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시켜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존재들이 나의 삶을 지탱해주는 가장 중요한 인프라요, 보험보다 안전한 자산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남편보다, 자식보다 수익성 높은 자산. 


얼마 전 지인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우리 엄마 되게 웃긴다? 수술 치르고 며느리한테는 아프단 말을 안 해. 오빠한테는 조금 아프다, 나한테는 많이 아프다 그러고, 친구들한테는 아파서 죽겠다 그래.” 그렇다. 친구란  그런 존재다. 이제 60대 초반인 내 어머니는 15년 전 이웃에 이사 온 아주머니와 단짝이 됐다. 두 분은 도시에 나간 자녀들과 가부장적인 남편을 대신해 서로의 생일마다 꽃과 케이크를 선물한다. 누가 부부 싸움이라도 하면 편을 들어준다. “부모 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라는 군인의 노래처럼, 어머니의 친구를 믿고 나는 외지에서도 단잠을 이룬다. 여자의 우정이란 게 어떤 건지 아니까. 나는 이제 만으로도 40대가 됐다. 국민연금 불입은 중단했고, 임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결혼은 웬만하면 안 할 생각이다. 대신 시스터후드에 좀 더 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CREDIT
    글 이숙명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7년 08월호

기사입니다

본 기사를 블로그, 커뮤니티 홈페이지 등에 기사를 재편집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을 묻게 되며 이에 따른 불이익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웹사이트 내 모든 컨텐츠의 소유는 허스트중앙에 있습니다.

SUBSCRIBE/DIGITAL MAGAZINE

  • 2016년 9월호 커버

    정기구독 COSMOPOLITAN 트렌드한 여성을 위한 매거진!

    신청하기
  • 2016년 9월호 커버

    정기구독 COSMOPOLITAN 트렌드한 여성을 위한 매거진!

    신청하기

COSMO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