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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7 Sat

떠나지 않고 떠나는 여행

여름만 되면 치솟는 항공 요금과 숙박비를 감수하고 남들 가는 곳으로 우르르 따라가는 휴가가 지겨운 사람에게 전하는, 떠나지 않고 떠나는 여행법.


 

회사에 다닐 때는 퇴근 후 혼자 저녁을 먹으며 뭔가 보는 게 낙이었다. ‘오늘은 뭘 보면서 어떤 걸 먹을까?’ 일찍 퇴근하는 날에는 나도 모르게 이런 고민을 했다. 고민 끝에 가장 많이 고른 메뉴는 떡볶이였고, 볼거리는 <한국인의 밥상>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맛집을 소개하거나 조리법을 알려주진 않는다. 등장하는 사람들이 시청자를 웃기거나 울리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런 걸 무슨 재미로 보냐고 되물으면 이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젊은 여자가 시골에 내려와 엄마와 농사를 짓고 있다. 아빠는 얼마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여자는 도시에서 하던 일(그녀는 선생님이다)을 쉬고 엄마를 돕기 위해 고향 집에 내려온 거다. 저녁으로 먹을 음식 재료를 손질하는 여자에게 PD가 묻는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게 힘들어요, 아이들 가르치는 게 힘들어요?” 여자는 덤덤한 표정으로 “음, 애들 가르칠 때는 농사짓고 싶고, 농사지을 때는 애들 가르치고 싶죠”라고 답한다. 이럴 때, 무릎을 탁 치며 떡볶이를 오물거린다. 그녀도 어딘가에서 울 거다. 혼자 엉엉 울 테지만, 굳이 시청자도 같이 울게 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아버지가 이걸 참 좋아하셨는데” 하면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 무심한 슬픔을 보고 있으면 ‘저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시골집의 담 너머에 서서 고단한 하루를 담담하게 보내는 사람들을 엿보고 있는 기분. 요란한 서울의 하루를 보낸 저녁에는 그런 걸 보며 어느 동네를 상상하는 일이 위안을 줬다.


그런 기분을 몇 번 반복하다가 친구나 가족에게 “우리, 서울 밖으로 놀러 가서 맛있는 거 먹자”라고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오로지 비행기를 타는 여행에만 관심이 있었다. 휴가에 맞춰 끊어놓은 비행기 표를 보며 몇 달을 버티는 건 희망이자 고문이었는데, 그땐 국내 여행을 ‘여행’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바퀴 달린 탈것을 타고 닿을 수 있는 곳은 어쩐지 여행지라 부르기 아까웠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산책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어느 날엔 자가용, 어떤 날에는 기차를 타고 몇 번씩 서울을 떠나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했다. 언젠가 집으로 돌아오며 내게 물었다. ‘이건 여행일까, 산책일까?’  잠깐 고민했는데,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떠난다는 거창한 느낌 없이 떠날 수 있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이 퍽 기뻤을 뿐.


국내 여행을 할 때는 작은 배낭을 챙겨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휴게소에서 간단히 뭔가 사 먹고 한숨 자면 어딘가에 도착한다. 여유를 부리며 걷는다. 외국이라면 조급하고 아까울 법한 시간인데 여긴 한국이다. 길을 잃을 걱정도 없고, 아까울 만큼의 비용을 지불하지도 않았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모르는 단어가 없고 친숙한 것들이 눈에 띈다. 익숙한 것들이 주는 낯선 기분이 번번이 신기하다. 밭두렁에 앉아 도란도란 나누는 할머니들의 얘기를 엿듣거나, 버스정류장에서 장기 두는 할아버지들 옆에 가만히 앉아 있기도 한다. ‘서울에서 바쁜 시간을 보낼 때, 여기엔 이런 시간이 흐르고 있었구나’ 생각하며 느릿느릿 걷는다.


여행의 시작은 <한국인의 밥상>이었지만, 요즘은 그걸 잊고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일만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가 주말이나 친구, 가족의 휴가 날이 오면 작은 가방을 짊어지고 어딘가로 향한다. 얼마 전에는 국내 지도도 하나 마련했다. 내 손바닥만 한 지도를 들여다보며 생소한 이름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생각보다 처음 보는 이름이 많고, 그건 아직도 가야 할 마을이 많다는 얘기기도 하다. 내년엔 아는 이름이 많아지길 바라며, 오늘도 가벼운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다.


 About  박선아 

여행과 소박한 삶을 좋아하는 박선아는 <어라운드> 매거진의 기자였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꾸려온 여행 가방의 무게 같은 삶을 엮어 <20킬로그램의 삶>이라는 책으로 냈다.



CREDIT
    글 박선아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7년 0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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