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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8 Sat

당신도 '케미컬 싱글'인가요?

결혼하면 남편과 옆집에서 살고 싶다고 노래하던 한 후배, 아내와 수입을 따로 관리한다는 친구는 이제 유별난 사람이 아니다. 당신과 가까운 곳에 연애, 결혼을 해도 하나가 되지 않는 신인류들이 출현하고 있다.


 

케미컬 싱글인가요?

남자 친구와 동거 중인 L 모 큐레이터의 이야기. “그와 꽤 진지하게 만나고 있어요. 그렇지만 서로 모든 걸 공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함께 살지만 각자의 방을 가진 이유죠. 룸메이트처럼 월세도 번갈아 내고, 생활비도 정확히 반으로 나눠 부담하고요. 이렇게 하니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더 커진 것 같아요. 사실 예전에 연애할 땐 제 삶의 대부분을 남자 친구에게 맞춰 살았어요. 지금은 진짜 제 삶을 살고 있는 기분이에요.” 


동거도, 칼 같은 더치페이 관계로 맺어진 커플도 물론 일반적인 사례는 아니다.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연인과의 동거는 부모님께 자랑하고 싶은 일이 아니며 경제적으로 분리된 삶을 사는 부부도 흔치는 않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에게 속사정을 캐묻고 다니다 보면 적어도 지인의 지인 정도쯤에서 ‘이런 사랑’이 발견된다. 연애나 결혼을 해도 하나가 되기 위해 자신의 반을 덜어내지 않는 사람들. 

트렌드 분석가이자 ‘날카로운 상상력 연구소’의 김용섭 소장은 저서 <라이프트렌드 2017, 적당한 불편>에서 이런 사람을 ‘화학적 싱글’로 명명한다. 한국 사람들이 ‘서로 끈끈하게 잘 통한다’, ‘코드가 잘 맞는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케미스트리’에서 뜻을 빌려온 표현이다. 그는 사전적 의미에 충실한, 물리적인 싱글(배우자 없이 혼자 살거나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개념은 요즘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의 싱글을 규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만약 어떤 부부가 별거 중이라면 그 둘은 커플일까? 물리적으로는 부부지만 실질적으론 싱글 아닐까? 반면 결혼했지만 각자의 경제권, 사회적인 역할,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면서 사는 독립적인 커플의 삶은 싱글 라이프와 더 유사한 것 아닐까? 김용섭 소장은 이 질문들의 끝에서 ‘화학적 싱글’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물리적인 시공간에서는 함께지만 언제나 화학적으로 결합하지 않는 두 사람. 그들은 ‘화학적인 싱글’, 즉 ‘정서적 혹은 감정적인 싱글’의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살 거면 뭐하러 연애, 결혼을 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다. 회사원 박 모 씨는 한 달에 두 번만 만나자고 하는 남자 친구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한 달에 두 번은 꼭 서핑을 가고 싶대요. 평일에는 만나자고 했더니 퇴근 후에 운동하고 친구도 만나고, 일도 해야 해서 바쁘다고 하고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가 싶어 시간을 가져보자고 했는데 화를 내면서 그건 또 싫다고 하고. 그런데 만날 때는 저한테만 집중하고 정말 부족함 없이 잘해줘요. 그를 사랑하니까 헤어지긴 싫은데, 자기 누리고 싶은 건 다 누리려는 심보는 진짜 얄미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자신의 시간과 행복을 야무지게 챙기는 그녀의 서퍼 남자 친구의 ‘심보’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가? 그렇다면 다음 챕터로 함께 넘어가자. 



 

싱글이 되려는 사람들 

김용섭 소장은 이 새로운 형태의 싱글이 나타난 원인을 전통적 결혼관의 붕괴에서 찾는다. “전통적으로 결혼이라는 건 남자가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고 여자는 엄마가 돼 출산과 양육의 주도권을 가지며 둘의 공조로 가족을 영위해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출산이 사라지고, 경제적 독립성이 자리 잡으면 결혼한 관계라도 둘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가족의 개념이 달라지죠. 이들의 목적은 아이를 낳아 대를 이어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목표를 성취하며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데 있어요.” 즉 큰 틀은 공유하되 세부 부분에선 각자의 삶을 살며 ‘따로 또 같이’를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것.  


저성장 시대를 살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가 보이는 특성도 이 자발적인 싱글의 탄생을 부추기고 있다. 빅 데이터로 사회의 흐름을 읽는 마인드 마이너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은 이 세대를 ‘한 번뿐인 인생에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대신 지금 당장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을 위해 돈과 시간을 사용하는 세대’로 정의한다. 따라서 이들에겐 연애나 결혼이 주는 행복이 싱글일 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상쇄하지 못한다면 굳이 의무를 가질 필요도, 선택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화학적 싱글’로 살고 있는 20대의 이유는 좀 더 타의적이다. 외국계 화학 기업에서 일하는 회사원 천 모 씨(27세)는 연애하지 않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군대에 가기 전엔 ‘1학년만 마치고 곧 입대할 텐데 무슨 여자 친구냐’ 하는 생각에 연애를 안 했어요. 괜히 한 사람한테 감정적으로 얽매이기도 귀찮았고. 고무신 거꾸로 신은 여자 친구 때문에 울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냥 소개팅 앱에서 만난 여자들이랑 짧은 만남이나 좀 즐겼죠. 제대한 후엔 철도 들었고 졸업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 간절하진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흐지부지 시간만 보내고 졸업했어요. 지금도 취업한 지 얼마 안 돼 누구를 사귈 마음의 여유가 없네요. 그렇다고 ‘욕구’가 없는 건 아닌데, 내가 좀 이상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있어요.” 


국내 1호 연애 코치이자 칼럼니스트, 작가로 활동하며 근 10년간 우리나라의 연애 트렌드를 최전선에서 보고 듣고 고민하는 이명길도 비슷한 경험담을 들려줬다. “대학교에 강의를 가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연애를 꼭 해야 하나요?’예요. 자신은 이성에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고요. 그러면서 혹시 자신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묻더라고요.” 이명길 코치와 김용섭 소장 모두 오포 세대, 다포 세대로 불리는 이들을 ‘연애를 사치로 생각하는, 욕망이 지워진 청춘들’로 정의한다. 이명길 코치는 미래가 막연한 20대들이 불필요한 물질적·정신적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20대에 해야 할 일 중 에너지 소모가 가장 큰 것이 바로 연애예요. 취업 준비나 자기 계발은 꼭 해야 하는 일이니 그나마 가장 ‘사적인’ 일인 연애를 포기하는 거죠.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남자의 대부분은 연애를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본인이 버는 수입으로는 결혼할 엄두조차 안나니까요.” 실제로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설문 조사(2016 일·가정 양립지표)에 따르면 결혼이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미혼 남성은 ‘결혼 비용 부담’(21.3%)을, 미혼 여성은 ‘마땅한 사람을 못 만남’(24.4%)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프랑스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는 전 세계에서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2030년이면 결혼 제도가 사라지고 90%의 사람이 동거를 결혼 대신 선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랑을 위한 싱글 

본인의 의지에 의한 싱글이든, 사회적 현상에 의해 나타나는 비자발적 싱글이든  화학적 싱글의 증가는 피할 수 없는 미래다. 김용섭 소장은 이런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관계의 형태와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물리적인 결합에 연연하기보다는 취향이나 관심사가 맞는, 한마디로 ‘케미’가 맞는 이와의 화학적 결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심리학 박사 곽소현은 이 ‘화학적인 요소’들이 연애와 결혼 상대를 결정하는 데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예전엔 결혼을 할 때 직업, 사회적 지위, 경제력, 신체 등과 같은 물리적 조건이 비슷한 사람을 찾는 경향이 압도적이었다면 지금 세대들은 그러한 조건의 비중을 최소화하고 좀 더 넓은 시야로 배우자를 결정합니다. 즉 상대의 사랑관, 취향, 성격, 가치관 등의 코드가 자신과 비슷하다면 그 사람의 물리적인 조건이 기대치보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전자의 조건으로 상쇄되는 거죠.” 자발적으로 연애나 결혼을 선택하지 않든, 커플이지만 싱글처럼 살고 있든, ‘화학적 싱글’들은 사실 새로운 형태의 사랑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회가 우려하는 ‘연애 불능자’, 즉 연애와 부딪히지 않는 사람들은  ‘화학적 싱글’과 구별돼야 한다. 전자는 물리적인 커플의 개념에 얽매여 자신을 스스로 구속하는 전통적인 결혼관·연애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연인, 배우자와 독립적인 관계를 맺고 건강한 ‘케미’를 형성하고 있는  화학적 싱글들은 김용섭 소장이 말하는 관계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이 지극히 개인적인 ‘화학적 싱글’들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사랑을 위해 준비된 사람들이다.



화학적 싱글은 연인, 부부의 물리적인 관계나 책임까지 부정하는 개념은 아니다. 

오히려 개인의 구속을 전제로 하는 전통적 결혼 제도를 보완해 현실적으로  재조정하는 것에 가깝다. 

즉 두 사람이 조금 덜 희생하며 개인과 서로의 행복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결합으로 볼 수 있다.


CREDIT
    Editor 류진
    GettyImagesBank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7년 0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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