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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5 Sun

[곽정은의 러브 토크] 난 오르가슴이 좋다

처음으로 오르가슴이 뭔지 알게 되었던 그날 밤을 기억한다. 또 다른 세상이 열리는 기분, 오래전부터 내 몸속에 갖고 있던 보물을 발견한 듯한 환희, 진짜 어른의 세계에 들어선 것 같은 짜릿함이 온몸을 휘감았던 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이 생각할수록 더 나를 미치게 만든다.


느끼면 느낄수록 몸이 건강해진다 

작년쯤이었을 것이다. 화장품 매장 앞을 지나는 길에 블러셔 하나를 발견하고선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던 것이. 발그스레하면서도 은은하게 빛나는 그 컬러를 볼에 톡톡 두드리는 상상을 하며 제품의 뒷면을 본 순간 난 혼자 묘한 웃음을 지었다. 컬러의 이름이 ‘Orgasm’이었기 때문이다. 오르가슴 직후의 오묘한 그 홍조만큼 예쁘고 생기 넘치는 것이 또 있을까? 그 은밀한 홍조를 경험해본 여자라면 마음을 사로잡는 섹시한 네이밍에 어떻게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있을까? 여자의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과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중첩되는 순간을 목격한 느낌이었다. 물론 얼굴이 아름답게 발그레해진다는 건, 오르가슴이 신체에 가져오는 수많은 변화 중 하나에 불과하다. 숱한 과학자들이 면역력이 높아지고, 암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고, 우울증의 발생 빈도를 낮추는 등 인간의 신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섹스의 효용에 대해 ‘섹스 글로’(Sex Glow)라는 표현까지 쓰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마디로 즐겁게 섹스를 하면 온몸에서 빛이 날 정도로 몸에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온다는 얘기다. 그래서 만족스러운 섹스를 한 다음 날, 피부 톤도 밝아지고 부기도 빠지더라는 말은 여자 친구들과 모였을 때 속닥거리며 할 만한 이야기일 테고, “예전보다 좋아 보이네요, 역시 비결은…?”이라는 말은 스물아홉 살의 건장한 남자와 만나고 있는 나에게 사람들이 눈을 찡긋거리며 하기 좋아하는 질문일 테다.


느끼면 느낄수록, 마음도 관계도 건강해진다 

그러나 오르가슴의 효용은 단지 ‘공짜로 더 건강해지는 방법’ 정도에 머무르지 않는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오르가슴이라는 것이 바로 정서적인 부분에 깊게 관여한다는 것이다. 내가 매력적으로 생각하고 아끼는 그 사람이 내 살갗을 조심스럽게 만질 때 세포와 감각신경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경험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짜릿함을 준다. 그와 나의 호흡이 동시에 거칠어지며 온몸에 열기가 돌기 시작하면 그가 만지는 나의 입술이든 가슴이든, 혹은 클리토리스이든 몸 구석구석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부풀어오르고 팽창하는 그 느낌은 내가 완전히 살아 있는 존재임을 강렬하게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마침내 서로에 대한 흥분과 친밀감이 묘하게 뒤섞인 채로 서로의 가장 은밀한 부위를 결합하고 극치감으로 치달았을 때,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충만감과 위로받고 있다는 감정이 온몸을 감싸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보내는 낮의 시간이란 얼마나 차갑고 비정한가? 맘놓고 편히 웃을 일보다는 상사에게 억지로 웃어보여야 할 일이 더 많고, 주저앉아 울고 싶어도 그저 입술을 깨물고 참아야 할 일투성이 아니던가. 하루 종일 심정적으로 지치고 깨진 한 개인이 다른 한 인간에 의해 그 살과 뼈로, 표피세포부터 깊숙한 점막에 이르기까지 어루만져지고 위로받는다는 것은 아름답다 못해 비장하게까지 느껴진다. 자신의 존재도 망각할 만큼 완벽한 쾌락을 경험하는 일은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자 함께 누릴 수 있는 최선의 쾌락이다. 

또한 섹스는 두 사람이 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섹스는 뇌의 호르몬 분비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오르가슴을 느끼는 순간 여성은 옥시토신 분비가, 남성은 바소프레신 분비가 눈에 띄게 늘어나게 된다. 옥시토신은 서로에 대한 일체감, 친밀감을 높여주어 상대방에게 더 강한 애착을 갖게 해주고, 바소프레신은 다른 이성에게 눈을 돌리지 않도록 하는 데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로에게 오르가슴을 선사할 수 있는 커플이, 적극적으로 쾌락의 포인트를 찾아가는 남녀가 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서로를 만지고, 애태우고, 원하는 바로 그 지점을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애무하고, 짧은 순간이지만 상대방에게 무아지경의 시간을 선사한다는 건 단지 쾌락의 문제가 아니라 둘의 미래까지도 가늠하게 해주는 중요한 키가 되는 셈이다. 

그러니 연인과 상당 기간 섹스를 했지만 아직 오르가슴이라는 걸 느껴본 적이 없고 그저 점막끼리 결합했다는 지극히 물리적인 감각만이 당신이 느낀 전부였다면 이젠 당신 스스로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당신은 위로와 최고의 쾌락을 느낄 권리가 있고, 두 사람의 관계가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면 더더욱 둘 사이에는 무아지경의 짜릿한 시간이 존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아, 원래는 오르가슴을 잘 느끼는 법까지 쓰려고 했지만 오르가슴의 가치에 대해 내가 아는 지식의 절반도 다 말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지면 끝까지 와버렸다. 음, 다음 달 칼럼 주제는 그걸로 정하면 되겠다.

CREDIT
    Contributing Editor 곽정은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4년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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