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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3 Sat

윤진서의 혼자 떠난 캘리포니아 여행기

언제부턴가 배우 윤진서는 캘리포니아 예찬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태양이 가득 내리쬐는 바다와 그 바다를 찾는 젊은이들의 혈기왕성함, 그리고 미국 특유의 낙천적인 분위기가 좋다고 말이다. 얼마 전 그녀는 겁도 없이 샌프란시스코와 LA를 ‘카우치 서핑’으로 여행했고, 지극히 개인적인 그 여행기를 코스모에 보내왔다.


카발리 카페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텔레비전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카페를 지키는 남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후 정확히 한 시간 만에 목격한 모습이다. 아, 월드컵이지. 서울에서 몇몇 연예인이 브라질로 간 사진을 본 것이 기억났다. 그리고 월드컵으로 인해 경기장을 지으려고 집을 잃거나 비슷한 이유로 피해를 본 현지 시민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SNS를 통해 접한 것도. 비행기만 타면 이렇듯 잠시 기억이 허공으로 떠올라 다른 세계로 갔다가 다시 발이 땅에 닿으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현실로 돌아온다. 

오늘 이곳에서 만나게 될 L은 내게 자신의 카우치를 허락한 샌프란시스코 주민이다. 웹사이트에 자기소개를 하고 여행 온 이들에게 자신의 집에서 묵는 것을 허락하는 ‘카우치 서핑’. 

이 여행법을 처음 알게 됐을 때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문화를 나누기에 단연코 으뜸인 방법이라 생각했기에 이후 한국을 찾은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나의 집을 허락하게 되었다. 실제로 한 집에서 같이 있다 보면 언어도 배울 수 있고 인간사의 다른 면을 경험할 수 있다.  

차이나타운에서 한두 블록 떨어진 이곳, 카발리 카페(Cavalli Cafe)는 100년도 넘은 카페임에도 깨끗하고 세련됐으며 편안한 공간이었다. 동네 사람들로 가득 찬 분위기를 보니 이번 여행에서 자주 찾게 될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믿을 만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아이스라테와 샌드위치를 눈 깜짝할 사이에 먹고 나서 주인아저씨에게 L의 사진을 보여줬다. “이 사람 알아?” “응. 자주 오는 청년인데?” “이상한 사람은 아니지?” “왜?” “오늘 만나기로 했거든. 여기서.” “너희 둘은 친구 아니야?” “우린 친구가… 될 사이!” 

엄청나게 큰 여행 트렁크를 맡기기 위해 당신의 단골과 친구라고 말하려던 거였지만 얼굴을 보아하니 이 정도 짐은 별 조건 없이도 맡아줄 것 같았다. “여기다 두고 가면 돼? 정말? 문 옆인데 괜찮을까?” “괜찮아. 여기 오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 짐에 신경 안 써.” 난 이런 곳이 좋다, 마치 특권을 누리는 것 같은 느낌이니까.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몇 시간이 남아서 차이나타운을 걷기로 했다. 뉴욕의 그곳보다 더 크다고 들었던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은 역시나 상인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L과 하나씩 먹으려고 복숭아 2개와 자두 2개를 사고 1달러를 지불했는데 동전 몇 개를 거스름돈으로 받았다. 역시나 과일은 차이나타운에서 사는 게 맛있고 가격도 감동적이다. 

복숭아 하나를 입에 넣고 그늘에 앉아 휴대폰으로 페이스북을 열었다. 해외로 출장을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난 친구가 SNS에 샌프란시스코에 있다고 뜨다니, 이런 일도 있구나. 문자를 해보니 차이나타운 근처의 한 호텔에 묵으며 봉준호 감독님과 <설국열차> 미국 개봉 홍보 중이라고 했다. 친구와 호텔 바에 앉아 우연의 축배를 들며 모히토를 한 잔 마시니 시차가 느껴졌다. 자꾸만 눈이 껌뻑껌뻑. 봉 감독님과 <설국열차>의 미국행에 인사를 고하고 카발리 카페에 들어섰다. 맡겨놓은 짐 가방은 아무도 손대지 않은 상태로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때, 자전거를 타고 카페 입구 유리문으로 검정 머리를 찾는 청년이 보였고, 나는 대번에 L임을 확신했다. 

“안녕. 나는 J.” “아, 너구나. 반가워.” 



L의 집

카발리 카페에서 L의 집까지는 불과 200m도 되지 않았다. 이 카페는 동네 사람만 오는 곳이라는 주인아저씨의 말이 맞았다. 그럼에도 처음 보는 사내의 집에 가려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가방에 숨겨둔 전기 충격기는 작동이 잘되겠지? 엘리베이터가 없는 6층짜리 좁은 건물의 4층으로 올라가 L의 집 거실 소파에 앉았다. 정면으로 텔레비전과 오른쪽으로 커다란 창문이 보이고 왼쪽으론 그가 켜둔 아이팟이 쉴 새 없이 재잘대고 있었다. “저녁 먹으러 갈까?” “그래. 뭐 먹을 건데?” “나는 베지테리언이야. 괜찮아?” “나도 6년간 베지테리언이었어.” “굿!”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 그가 말했다. “사실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응. 좀 그렇지.”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살짝, 미친 짓인지도 몰라.” “부정하지 않을게.” “그런데 넌 정말 운이 좋아. 난 브라질에서 카우치 서핑을 하다가 이상한 사람을 만난 적도 있거든.” “그렇구나. 어떤 일인데?” “정말…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그래. 나도 듣지 않는 게 좋겠다.” “아무튼 괜찮은 사람을 만나는 건 정말 드문 일이야.” “알겠어. 난 행운아야.” “나도 행운아지. 미친 서퍼도 많거든.” “음… 그래. 그럴 일도 많을 것 같아.”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펍에 들러 맥주 한잔을 했다. 이곳 또한 카발리 카페 같은 분위기다. 눈 씻고 찾아봐도 처음 온 사람은 나뿐인 것 같은 스멜. 생맥주 두 잔을 마시고 나니 샌프란시스코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그리고 온몸에 피곤이 밀려온다. “나 정말 졸려. 미안.” “그래, 피곤하겠지. 집에 가서 쉬자.” “고마워. 맥줏값은 내가 낼게.”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그래도 집에서 재워주는데 맥주 정도는 사고 싶은걸?” “그래도 안 돼. 내 카우치 서핑 철칙이야.” “흠, 그래? 어쩔 수 없네.” 

집까지 서너 블록을 걷는데 서늘한 바람이 몸속을 파고든다. “샌프란시스코는 정말 추워.” “낮에는 덥지 않았어?” “응. 무지 더웠지.” “그게 좋아.” “뭐가?” “확실히 더웠다가 확실히 추워지니까.” 녀석의 캐릭터를 대번에 파악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집에 돌아와 샤워를 마칠 때까지 문 밖에서 나는 소리에 쉼 없이 신경을 곤두세웠다. 혹시나 내 가방을 가지고 사라졌으면 어쩌지? 나갔는데 날 덮치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지, 두려울 건 없어. 난 태권도도 배웠고 전기 충격기도 있으니까. 만에 하나 나쁜 일이 생긴다면 이렇게 말해야지. “죽여. 난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아!”라고. 정말 별생각을 다 하네.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들어서니 소파는 어느새 새 침대보까지 두르고 침대로 둔갑해 나를 기다리고 있다. L이 하나밖에 없다는 열쇠를 내밀며 말했다. “대신에 내가 저녁 9시에 들어올 건데 그 전에 돌아와야 해.” “물론이지.” “혹시나 그 전에 못 오면 꼭 문자 하고.” “그럴게.” “잘 자.” 카우치 서핑 사이트에 들어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이에게 메일을 보낸 지 3일 만에 그의 집 열쇠를 손에 쥐고 찾는 건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쩔 수 없는 욕망이라고!” 

작년에 LA에서 머물며 촬영한 영화 <태양을 향해 쏴라>에서 유일한 여성 카메라맨이었던 T는 실버레이크에 사는 힙스터다. 영국인인 그녀는 영화 사진가로 일하며 한국인 남자 친구가 있고 나보다 훨씬 젊다. 가끔 그녀와 인텔리젠시아(Intelligentsia) 카페에서 만나 LA 친구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할리우드와 영국, 한국의 영화 산업에 대해 서로의 고민을 나누며 요즘 신작의 재치 있음과 없음에 관해 혹은 동시대 영화인 누군가의 삶을 화제로 삼곤 했다. 

“<팔로 알토(Palo Alto)>라고 제임스 프랭코가 쓴 소설이 있는데, 그걸 지아 코폴라(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손녀)가 연출했더라.” “진짜? 소피아 코폴라 뒤를 잇는 코폴라 집안의 연출가가 나왔네. 영화는 봤어?” “아직. 그리 좋은 평은 못 받는 거 같아. 그렇지만 제임스 프랭코와 그녀가 영화를 만들어가는 방식은 신선했어” “어떤 면에서?” “제임스 프랭코가 카페에서 우연히 지아 코폴라를 만나 굉장히 세련된 여자라고 느껴 자신의 소설책을 주며 제안했다고 하더라. 근데 영화가 개봉할 무렵 제임스 프랭코가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서 알게 된 여자에게 만나자고 제안한 사실을 그 여자애가 자신의 SNS에 올리면서 스캔들이 난 거야. 당시 지아 코폴라가 ‘나는 그런 스캔들 따위는 잘 모르고, 프랭코는 멋진 아티스트다’라고 말해 친구들 사이에서 ‘의리녀’로 통하게 됐다나 봐.” “그렇구나. 영국에는 재미있는 영화인 뉴스 또 없니?”    

실버레이크에 사는 또 다른 친구 M은 영화감독 데뷔를 준비하며 시나리오를 쓰고 자신이 제작·집필·연출까지 한 미국 드라마 시리즈의 파일럿을 촬영하며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실버레이크 힙스터 청년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내게 레스토랑 포리지(Forage)를 추천했는데, 점심시간 무렵에 찾은 그곳은 진한 선글라스를 쓴 채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나타나 건강한 유기농 식사를 주문하는 인근 주민들로 북적댔다. 음식이 맛있는 것은 물론이다. 사실 실버레이크가 좋아진 건 호수 때문이었다. 아침이면 안개가 자욱한 호수 둘레를 뛰며 땀을 배출하고 오늘에 대해 생각하는 청년들. 그들과 마주칠 때면 서로 손바닥을 힘껏 치며 각자의 길로 향하곤 했다. 그럴 땐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마주친 차가워만 보이던 힙스터라 불리는 자들에게 왠지 모를 친근함과 인간적인 섹시함도 느끼게 된다.   


베니스 비치 

베니스 비치에서 내게 카우치를 빌려준 C는 침술사였다. 배탈이 난 내게도 누워 보라더니 침술을 선보였는데, 30분 정도 잠들었다 깨니 배탈기도 사라지고 기운이 났다. 그녀에게 물었다. “베니스 비치에 사니까 좋아?” “난 바다 근처에 살아야 돼.” “왜 그래야만 해?” “아침마다 보디서핑을 하거든. 얼마나 짜릿한지 몰라.” “보디서핑? 그게 뭐야?” “파도타기. 몸으로 파도를 뚫는 거야. 팔의 힘을 이용해 내 몸이 회오리가 되지.” “언제 같이 가자.” “그래.” 

L이 말했던 대로 난 운이 참 좋다. 여행지에 와서 이런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하다. 이들이야말로 ‘지구별 여행자’가 아닐까? “언제부터 침술사가 될 생각을 했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거든.” “어째서?” “살아보고 싶은 곳이 많아서.” “아….” 

베니스 비치에는 홈리스도 많다. 젊고 화장을 진하게 한 여자 홈리스에게 물었다. “웨어 이즈 유어 홈?” “아이 돈 해브 홈.” “와이?” “아임 홈리스!” “덴, 와이 두유 페인팅?” “비커즈 아이 엠 페인터!” “소, 유 해브 투 잡스. 홈리스 앤 페인터.” “웰, 예스.” 

홈리스에겐 집만 없는 게 아니다. 국가가 만들어놓은 체계도 없다. 그래서 가끔은 그들이 부럽다. 그래, 돈을 벌 수 있어야만 직업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곳에 머물며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사실 생각보다 많다. 여행의 진짜 묘미는 국적을 잃어가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봤다. 원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 어떤 인종으로 태어났느냐보다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가, 그것이 더 큰 유대감을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코스모폴리탄 9월호에서 만나보세요!


CREDIT
    글·사진 윤진서(배우, <비브르 사 비> 저자)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4년 0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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