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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3 Tue

김태훈의 남자끼리 베트남 여행기

칼럼니스트 김태훈, 정신과 전문의 양재진, 자연치료 전문의 서재걸, 포토그래퍼 이강신.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떠나고 싶어서 네 남자는 베트남으로 갔다.


나도 가자, 베트남!

사건(!)의 시작은 의외로 단순했다. 연휴를 앞두고 역마살이 도진 나는 아내에게 제안했다. “이번 연휴는 각자의 집에서 각자 지내자.” 아내의 집은 면목동, 내 부모가 사는 곳은 베트남. (아내의 반응에 대해선 생략한다.) 일은 벌이기가 어렵지 일단 벌어지면 순식간에 급물살을 탄다. “형, 연휴에 뭐 해요?” 방송 녹화장에서 만난 정신과 전문의 양재진이 물었다. “형 베트남 간다.” 순식간에 구미가 당긴다는 표정으로 재진이가 말했다. “나도 가자, 형!” 그렇게 일행이 한 명 늘었다. 두 번째 일행이 느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뒤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유산균의 아버지’ 서재걸 원장이 끼어들었다. “나도 가자.” 이제 셋이 됐다. 들뜬 마음에 셋이 전초전 삼아 소맥으로 한잔 깔끔하게 달리기로 한 날, 포토그래퍼 이강신이 합류했다. “뭐가 그리 즐거워?” “우리 셋이 베트남 간다.” “셋이서? 나도 가자, 형!” 그렇게 된 것이다. 반드시 떠나야만 하는 이데올로기도, 당위도 없이, 우린 그냥 가기로 했다. 우울한 유부남 둘과 순진한 돌싱 하나, 그리고 무늬만 총각인 누구를 포함해 네 명의 남자는 원래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듯이, DNA가 시키는 대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떠나기로 한 것이다. 본래 돌아옴엔 이유가 있어도 떠남엔 이유가 없는 법이다. 자, 출발!



Day 1 남자들의 비행, 그 시작  

공항은 언제나 즐겁다. 비싸기만 하고 맛은 없는 국적 불명의 음식과 굳은 얼굴로 ‘음, 이 자식은 밀수꾼은 아닌 것 같군’ 하는 표정의 세관원들이 도처에 있음에도, 공항은 즐겁다. 예쁜 스튜어디스들이 많이 자취를 감추긴 했지만 ‘그래도’ 가끔은 눈에 띄며, 면세로 쿠바산 시가 ‘코히바’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정상 하루 늦게 출발하는 서재걸 원장을 제외한 세 남자가 출국 수속을 마치고 향한 곳은 면세점. 시가를 사기 위해서다. 휴가를 떠날 때면 일종의 의식처럼 하는 행위가 체류 일수만큼의 시가를 사는 것이다. 각자의 필요 물품 구매를 끝내고 우리는 라운지에 들러 컵라면을 먹은 뒤 보딩 게이트로 향했다. 일상을 잠시 벗어난, 남자들만의 휴가가 시작되는 순간.

비행기는 약속된 시간을 다 채운 뒤에야 하노이 공항에 우릴 내려놓았다. 베트남의 수도이자 정치 중심지인 하노이 공항의 첫인상은 꼭 평양 같다. 물론 나는 평양에 가본 적이 없다. 단지 같이 비행기에서 내린 누군가가 “여긴 꼭 평양 같군”이라고 하는 소리를 듣곤 그럴 듯하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한 것이다. 무채색의 소박한 풍경이 공산국가의 수도라는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다. 입국장에 들어서자 오래전의 얼굴을 간직한, 하지만 이젠 후덕해진 외모의 한 사내가 다가온다. “야, 김태훈!” 초등학교 6학년 때 제일 친했던 단짝 친구 한성진이다. 하노이에 오기 전 우연히 연락이 닿아 카톡을 주고받았는데, 반가운 마음에 마중을 나온 것이다. 숙소에 도착해 짐만 내려놓고 다시 만난 우리 셋과 옛 친구 한성진은 간단히 회포를 풀기 위해 한국식 야식 주점으로 향했다.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났으니 첫 잔은 무조건 소주로 가는 법이다. 



동 쑤언 시장을 스캔 중.


Day 2 사내들의 꽃 같은 감상 

시계가 오전 9시를 가리키자 인터폰이 울렸다. “내려와라.” 관광 가이드를 자처한 친구 덕분에 늦잠은 글렀다. 렌트한 차를 타고 전통 시장인 ‘동 쑤언 시장’으로 향했다.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대던 이강신 포토그래퍼와 하노이의 이국적인 풍경에 마음을 뺏긴 채 걷던 양재진 원장이 동시에 감탄사를 터트렸다. 둘의 시선이 정지된 곳엔 한 소녀가 꽃을 팔고 있었다. 그런데 이 처자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시장 구경을 나온 극동의 사내들(!)을 감동시키는 무엇인가가 있다. 일찍이 한 작가는 베트남을 이렇게 말했다. ‘잃어버린 내 누이 같은 나라.’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꼭 그랬다면 이해될까? 우리가 지난 몇십 년간 현대화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엿 바꿔 먹은 어떤 것이 시장의 꽃 파는 소녀에게 있었다라고 하면 그저 감상에 젖은 여행자의 상념처럼 들릴까?                   

시장을 나와 한국식 숯불구이집으로 향했다. 소박한 ‘소맥’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저녁 비행기로 도착한 서재걸 원장이 합류하며 비로소 완전한 사총사가 됐다. 비틀스도 4명이었지 않은가? 잠시 후 서재걸 원장의 후배라는 분도 왔다. 사장님 포스의 넉넉한 뱃살과 시원한 이마에 긴장했지만, 나와 동갑이라는 말에 호칭이 애매해졌다. 난 왠지 머리숱이 없는 분들에겐 “야!”라는 말이 잘 나오질 않는다. 술잔이 돌고,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취기가 공기를 채우고, 말이 많아진다. 비로소 휴가임이 느껴졌다. 



하노이의 구시가지. 루프톱 바의 DJ.


Day 3 호찌민의 묘, 하노이의 밤 

오전을 비교적 한가하게 보내고, 오후엔 일행과 떨어져 성진이의 가족을 만났다. 아내와 이제 고등학생이 된 큰아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아빠를 꼭 닮은 둘째 아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아버지는 아들을 닮고, 그 아들들은 자신과 똑같은 또 다른 아들들을 낳는다. 지금의 우리가 그렇다. 휴일임에도 노트북을 끌어안고 호텔에서 일을 보던 양재진 원장과 나머지 일행을 호찌민 묘 앞에서 만났다. 호찌민은 프랑스와 미국, 그리고 중국과의 전쟁에서 베트남의 독립을 이끌어낸, 베트남의 국부다. 사후에 그가 남긴 것은 슬리퍼와 타자기, 그리고 지팡이 하나가 전부였다고 한다. 공산주의의 외피를 가진, 민족주의 국가 베트남을 탄생시킨 인물의 묘는 소박한 그의 삶에 비해 비현실적으로 거대해 보였다. 만약 호찌민이 자신의 묘를 볼 수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하노이의 마지막 날 밤은 클럽에서 보냈다. 퍼시픽 플레이스 빌딩의 루프톱에 위치한 바의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잔을 돌리고, 시가가 하나씩 남자들의 입에 물렸다. 여자 DJ가 중앙에서 음악을 틀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왜 안 그렇겠는가?). 몇 병인가의 보드카가 테이블로 배달되었고, 우린 전사했다. 그날의 기억은 이강신 포토그래퍼의 사진으로만 확인될 뿐이었다. 



충무로 오토바이 거리보다 오토바이가 많은 주차장. 


Day 4 호찌민의 광장과 골목길  

낮 비행기를 타고 호찌민으로 향했다. 대략 한 시간 정도의 비행. 성진이도 동행했다. 호찌민 공항에 내리자 미리 섭외한 가이드가 우릴 반겼다. 배낭여행을 왔다가 호찌민에 눌러앉았다는 가이드는 차로 우리를 숙소까지 데려다줬다. 가볍게 샤워만 하고 사이공의 카이산 로드라 불리는 ‘데탐 거리’를 첫 행선지로 잡았다. 광장의 한복판엔 평생 본 것보다도 더 많은 오토바이가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베트남이 처음인 양재진 원장은 그 장관에 여행자 티를 ‘팍팍’ 냈고, 나는 잘난 척, 아는 척, 한마디했다. “베트남엔 오토바이 선수는 따로 없지만, 전 국민이 오토바이 선수다.” 광장을 가로질러 골목길로 접어들자 전 세계 인종이 뒤섞인 채 맥주를 마시는 카페 거리가 나왔다. 자, 그럼 또 마셔볼까? 



(왼쪽위부터) 아빠와 아들. 전쟁기념관 앞에서 폼 잡는 이강신. 아침마다 열리는 국기 게양식.


Day 5 아버지, 전쟁기념관, 그리고 쿠반 재즈  

베트남에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한 날이다. 미리 예약한 중식당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늙은 아들과 그의 일행을 맞아주셨다. 베트남에서 가족이 조우하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 풍경이긴 하다. 양재진 원장과 이강신 포토그래퍼가 슬쩍 귓속말을 해왔다. “형 아버지 완전 나이 든 김태훈이신데?” 아버지를 보니 비록 하얗게 세긴 했지만 머리숱은 여전하셨다. ‘나도 일흔여섯이 되어도 머리숱은 많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부모님과의 식사를 마치고, 관광에 나섰다. 감기가 단단히 든 서재걸 원장은 숙소로 향했다(휴가를 오기 위한 무리한 일정 때문에 휴가지에서 병이 나다니!). 먼저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미군이 호찌민에 떨어트린 폭탄과 탱크의 잔재가 야외에 전시돼 있고, 실내에 들어서니 베트남전에 사용된 무기의 양과 인명 피해가 제2차 세계대전 때보다 더 많다는 것을 알려주는 자료가 전시돼 있었다. 베트남인들은 자신들을 고문하던 고문실과 총탄을 전시한 전쟁기념관에서 사진을 찍는 미국인과 한국인들을 어떤 마음으로 쳐다볼까?  

식사를 마친 우리는 프랑스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낭만적인 도시라고 말한 ‘사이공의 밤거리’로 나섰다. 목적지는 가이드가 소개한 쿠바식 클럽 ‘사이공 사이공 바’. 같은 공산권이라는 공통점 때문일까? 사이공엔 심심찮게 쿠바의 깃발이 나부끼는 바와 클럽이 눈에 띈다. 아름다운 쿠반 걸들이 노래를 하는 클럽에 들어섰다. 어느새 사이공은 쿠바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바뀌어갔다. 맥주와 뜨거운 밤의 열기, 그리고 쿠반 재즈. 아쉬운 하루가 또 그렇게 지났다. 



(왼쪽위부터) ‘내가 찍은’ 이강신. 이 뱃사공은 영업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강신이 찍은 양재진과 나. 


Day 6 메콩 강에서 사진 찍는 남자 

실질적인 호찌민에서의 마지막 날, 메콩 강 투어에 나섰다. 얼마 전 결혼했다는 참한 베트남 아줌마의 안내를 받으며 마차를 타고 가길 두 시간여. 갈대와 열대우림이 가득한 메콩 강이 보였다. 미군의 무차별적인 네이팜탄과 고엽제의 투하 속에서도 용케 살아남았다. 베트남인들처럼 강인한 나무들이다. 배를 타고 강을 따라 올라가는데, 연신 셔터를 누르던 이강신 포토그래퍼가 투덜거린다. “도대체 내 사진은 누가 찍어주냐고?” “자식, 삐치기는. 노는 카메라 한 대 이리 내라.” 그의 카메라 한 대를 잡고, 그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이 지면에 실린 그의 사진은 다 내가 찍은 것이다. 맞다. ‘나 사진 좀 찍는다’는 잘난 척이다!). 메콩의 물살은 고요하다. 격변의 역사를 버텼으니 이제 좀 쉬고 싶다는 듯이. 호찌민으로 돌아온 우리는 호텔 앞 바에서 마지막 술잔을 기울였다. 어느새 일주일의 시간이 다 지나가버렸다. 흔한 쌀국수 몇 그릇과 25m 풀장을 가득 메울 만큼의 술을 마시며, 아쉬운 시간이 채워졌다. 가이드까지 테이블에 앉힌 채 건배를 제안했다. 영원히 늙지 말기를, 그래서 언젠가 다시 훌쩍 “형, 나도 가자”라고 말할 수 있기를. 



Day 7 베트남의 끝  

마지막 날이 시작되었다. 저녁 비행기 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하루 먼저 한국으로 돌아간 서재걸 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셋은 우정의 징표로 베트남 공산당 모자를 하나씩 사서 쓰곤 사진을 찍었다. 고작 그 정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여행의 준수한 마무리였던 셈이다. 그리고 아쉬움의 한마디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음에 다시 오자고.” 누구의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모두 그러자고 한 건 분명히 기억한다. 언젠가는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올 것이다. 비록 네 명이 모두 함께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처음 출발처럼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저 베트남은, 그런 나라이기 때문이라고만 설명할 수 있을 뿐. 


“베트남에 가면 그곳의 낭만적인 분위기에 푹 빠져보세요. 여행을 갔을 때 남자와 여자의 다른 점이라면 남자들이 어디에 가든 이방인의 느낌을 받을 때, 여자들은 그곳에 금방 동화되는 거잖아요? 전통 시장에서 아오자이를 사 입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네요. 베트남은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순수를 찾는 시간’을 경험할 수 있는 나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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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김태훈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4년 0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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