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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0 Tue

찬란한 송새벽

송새벽이 영화에 등장했을 때 우린 그가 언젠가는 한국 영화계에 빛이 될 거라는 걸 예감했다. 영화 <도희야>를 통해 폭력을 일삼는 의붓아버지 ‘용하’로 악역에 처음 도전한 송새벽의 연기 인생은 이제 찬란한 아침을 맞이할 예정이다.


슈트 리버클래시 티셔츠 캘빈 클라인 진.


영화 <도희야>로 칸에 간다고 들었어요. 배우로서 세계적인 영화제에 초대받은 기분이 어때요?

제가 살다 살다 칸을 다 가보네요. 하하. 특별한 각오 같은 건 없어요. 그냥 우리나라 영화 홍보하러 간다고 생각하죠.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칸 영화제니까 기념하기 위해서라도 사진은 좀 찍으려고요. 하하.


아직 개봉 전이라 <도희야>의 예고편밖에 못 봤지만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아주 강렬했을 거라는 확신은 들어요.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어떻던가요?

여태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 같았어요. 세기도 했지만 굉장히 생각하게 하는 요소가 많더라고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상상할 수 있게 묘사가 정말 잘되어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콘티 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죠. ‘와~ 너무 좋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하지만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어요. ‘용하’라는 인물이 워낙 거칠고 남성스럽고 억센 느낌이 있어서 과연 내가 이 역할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많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하’라는 역할을 하게 된 계기가 뭔가요?

시나리오를 읽는 내내 가슴이 쿵쾅거리는 뭔가가 있었어요. 그게 ‘내가 이걸 하고 싶어 하는구나’라고 확신하게 된 증거이기도 했죠. 그 어떤 시나리오보다도 많이 읽었고, 읽으면 읽을수록 처음 읽을 땐 몰랐던 것이 드러나는 게 있었어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들도 각자 가져가는 것이 다를 거예요. 뭔가 묘한 여운이 남는 영화예요.


의붓딸을 학대하는 캐릭터라 공감할 순 없었을 텐데 어떻게 연기해나갔나요?

‘용하’란 인물은 정말 ‘이해’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되고 절대 이해해서도 안 되는 캐릭터죠. 대본을 읽다 보면 한 줄 한 줄이 평범한 일상의 대사 같지만 포인트가 있었고, 그런 것을 어떻게 표현해낼까 많이 생각했어요. 플롯을 명확하게 생각하되 저 나름대로 입체적으로 표현하려고 고민했죠. 그래서 너무 틀에 맞게 연기하기보단 큰 흐름만 감독님과 상의하는 식으로 갔어요. 이번 작품은 대사를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그대로 하면 오히려 너무 갇힌 느낌이 들 것 같았거든요.



티셔츠 존 갈리아노 팬츠 카이 아크만.


‘도희’ 역을 맡은 김새론 양의 역할이 큰 작품이잖아요. 어리지만 요즘 가장 주목받는 배우이기도 한데 그녀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초등학생한테도 배울 게 있다고 하잖아요. 한번은 슛 들어가기 전 스탠바이하고 있는데 새롬이 눈을 보니까 이미 완전히 몰입했더라고요.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나오겠구나 하는 촉이 딱 왔죠. 새론이 덕분에 기대 이상으로 뽑아낸 신이 아주 많았어요. 


배두나 씨와 새벽 씨 모두 각자의 색깔이 분명한 연기파 배우지만 전혀 다른 이미지예요. 그래서 한 작품에서 잘 어우러질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예고와 포스터를 보니 쓸데없는 걱정 같더라고요.

배두나 씨와는 <인류멸망보고서>에 같이 출연하면서 꽤 친해졌어요. 이번에 긴 호흡으로 만나보니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연기할 때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는 배우이기도 하고요. 존경스러울 정도로 멋진 배우라고 생각해요.


<도희야> 같은 강렬한 작품을 하고 나면 그 역할과 작품에서 헤어나오기 힘들 것 같은데, 어때요?

촬영하면서 순간순간 그럴 때도 있지만 특별히 역할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힘들다거나 그렇진 않아요. 그동안 해온 역할이 코믹한 캐릭터가 많아 딱히 힘들 일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요.


배우라는 직업은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일하고 길게 쉬는 편이니까 쉴 때 무얼 하며 보낼지도 중요하잖아요. 주로 뭘 해요?

배우는 작품이 없으면 백수예요. 하하. 작품이 정해지기까지 충분히 쉬면서 다음 작품을 위해 몸을 스탠바이시켜놓죠. 운동을 좋아하긴 하는데 헬스엔 흥미가 없어 주로 산에 가요. 


산에 가면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지 않아요?

아니요. 예전보다 알아보긴 하는데 그래도 아직 잘 못 알아봐요.


목소리가 특이해서 한마디만 해도 알 것 같은데요?

제 목소리가 특이하다고 많이들 얘기하는데 영화 속 캐릭터 때문인 것 같아요. 전 제 목소리가 어떻게 특이한지 잘 모르겠어요.



슈트 리미조 테일지 셔츠 까발리 신발 스페리.


연극 무대에서는 어떤 배우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2010년 신인상과 조연상을 휩쓸고 충무로의 ‘기대주’, ‘블루칩’으로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후에도 별로 변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때는 상도 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게 너무 감사했지만 ‘이 사람들이 나한테 왜 이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땐 정신없이 1년이 지나갔죠. ‘지금 내가 뭔가 잘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불안하기도 했고, 남들이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느낌이라 부담됐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튀는 걸 별로 안 좋아했어요. 이름이 튀니까 더 내성적이 됐던 것도 있고요. 그래서 학창 시절 친구들이 제가 연기하는 걸 알면 깜짝 놀라요. “말 한마디 안 했던 네가?”라고 놀라기도 하고, 제가 나온 작품을 보고 “영화에서 너랑 닮은 애 봤어”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으니까요. 스무 살에 극단에 들어가 연극을 하면서 심심했던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던 거죠.


연극 무대와 연기의 어떤 점이 성격까지 바꿔놓은 건가요?

튀는 걸 싫어했던 제가 극단에 들어가니 그곳이 저에겐 신세계인 거예요. 선배들을 보니 다들 인생을 너무 재미있게 살고 있더라고요. 경제적으로는 힘들어도 너무 자유롭고 멋졌어요. 무대에서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도 매력적으로 보였고요. 그래서 연기가 더욱 하고 싶어졌죠. 운 좋게도 극단에 입단한 지 얼마 안 돼 무대에 설 수 있었고요. 여러 가지 상황까지 저에게 잘 맞아 떨어졌던 거죠.


연극 무대에서 활동할 때 어떤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스무 살 때 연우무대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칠수와 만수>라는 연극을 했어요. 저는 ‘만수’ 역할을 했는데, 이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제겐 큰 영광이었죠. 하루는 무대에서 대사를 치고 있는데 갑자기 심장이 벌렁벌렁거리는 게 장난이 아닌 거예요. 이 작품을 매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가슴이 벅차더라고요. 그래서 한 작품 끝나면 또 하고 또 하고 그렇게 지금까지 온 거죠. 하하.



셔츠 리버클래시 바지 제스 신발 어그.


2009년에 영화 <마더>로 주목받은 게 서른한 살 때니까 그때까지 연극만 했다면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내가 배우의 길을 잘 가고 있는 건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진 않았어요?

군대 제대하고 다시 극단에 들어갔을 때 열 몇 살 차이 나는 선배들을 보면서 그게 제 미래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그런지 좀 외로워 보이는 모습이었죠. 그래서 ‘너 앞으로 결혼 안 하고 혼자 살 자신 있어?’라고 스스로 물어봤어요. 그리고 결론은 ‘그냥 하자’였어요. 조그만 단칸방에 살아도, 굶어 죽지만 않는다면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의미 있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죠. 나이가 드는 것도 두렵지 않았어요. 연우무대에서 활동할 때 언젠가 대표님이 그러셨거든요. 남자는 서른이 넘어야 배우로 쳐준다며, 서른 넘어서 좋은 작품을 하면 그때 비로소 배우가 될 거라고요. 전국에서 연극하겠다고 오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활동하다 힘들어서 빠지는 경우도 너무 많았던 거죠.


그런데 어떻게 영화에 나올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20대 중반에 영화 오디션을 두세 번 본 적이 있어요. 물론 다 1차에서 떨어졌죠. 선배들이 혼자 가기 뻘쭘하니까 같이 오디션 보자고 꼬여서 따라간 거였어요. 준비를 전혀 안 했고 카메라 테스트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라서 오디션 보러 온 예쁜 여배우들이나 구경하고 왔죠. 하하. 그러다 나중에 <해무>라는 공연을 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어요. 그게 봉준호 감독님이에요. 전화를 받고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감독님이 떡하니 앉아 계시더라고요. 정말 깜짝 놀랐죠. 그렇게 <마더>라는 영화에 출연하게 된 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때가 새벽 씨 연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겠네요.

그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마더>를 하면서 이 팀에 누가 되진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NG를 덜 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필름 카메라 영화였거든요. 하하. 


<마더> 이후로 조연뿐만 아니라 주연 출연작도 많잖아요. 그중에 배우로서 가장 몰입했던 영화를 뽑으라면요? 

<도희야>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최근에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사실이 그래요. <도희야>는 오바이트를 몇 번이나 하면서 찍은 영화예요. 속도 괜찮고 먹은 것도 없는데 뇌가 체한 느낌이었거든요.


언어 구사력이 남달라요. 소설가인 아버님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가요?

잘 아시네요? 갑자기 우쭐한대요? 집에 반 이상이 다 책이었어요. 책에 질려서 그런지 책 읽기가 싫어 어렸을 땐 오히려 책을 별로 안 읽었어요.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 연극을 하면서 관련 서적을 읽기 시작했죠. 책이 워낙 많아 도서관에 갈 필요가 없었어요.


마흔이 되면 어떤 배우가 되어 있을까요?

나이 먹는 것을 크게 걱정하진 않아요. ‘또 하루 멀어져간다’라는 노래 가사처럼 덤덤하게 받아들여요. 그냥 지금보다 좀 더 성숙한 연기자가 되었으면 좋겠고, 그 나이에 걸맞은 연기를 잘 찾아가는 정도가 바람이죠. 지금 서른여섯 살인데 저에게 점수를 주자면 딱 36점이거든요. 마흔이 넘으면 40점대를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죠.


마지막으로 영화 홍보의 기회를 드릴게요. <도희야>를 선택한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봐주었으면 좋겠나요?

처음 시나리오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고요한 밤인데 옆 동네에서 누군가 싸우고 때리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괴팍하고 음산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 동네에 가서 몰래 ‘뭐지?’ 하면서 쳐다보는 거죠. 힘든 영화라 생각하지 말고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며 보시면 어떨까요?



CREDIT
    Photographs by Mok Jung Wook
    Editor 정화인
    Stylist 김희정
    Hair 강혜경
    Makeup 오현미
    Assistant 이상미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4년 06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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