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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8 Thu

5월의 멘토, 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 단장을 만나다

코스모폴리탄 편집장이 만난 이달의 멘토는 유니버설발레단의 문훈숙 단장. 발레단의 창단 멤버로 수석 무용수에서 단장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낸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배려와 소통이었다. 어떤 단원이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그녀만의 리더십 비결에 대해 물었다.


올해로 유니버설발레단이 설립된 지 30년이 되었네요. 발레단의 역사와 함께해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네. 단원들이 동료고 언니, 오빠였는데 이젠 단원들의 부모님 나이가 된 걸 보면 세월이 참 빨리 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30년 중에 17년을 현역 무용수로 활동해서 더 그럴 수도 있고, 젊은 단원들과 늘 함께하니 나이 먹는 걸 더 못 느끼는 것 같기도 해요. 유니버설발레단 설립 후 지금까지 해온 일을 돌이켜보면 정말 많은 일을 했고 멀리 왔죠. 한국 발레의 견인차 역할을 하면서 그동안 이뤄낸 결실이 많으니까요. 이런 결실이 앞으로 발레단이 나아가는 데 큰 힘이 되겠죠. 하지만 한편으론 지금까지의 결실이 무거운 숙제로 느껴지기도 해요. 왜냐하면 아무것도 없던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낼 때는 그걸 해내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물불 안 가리고 무작정 달릴 수 있었지만, 이제 정상에 오르니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거든요. 뭔가를 할 때 더 신중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방향에서 한 단계 더 올라서야 할 때인 거죠.

정상만 보고 달릴 때는 조건을 따지지 않죠. 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마음도 몸도 편안해져서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정상에서 더 나아가려면 가치관, 문화 같은 것이 확고해져야 해요. 저희 발레단은 고전 발레로 시작해 2001년 현대 발레로 넘어갔고, 그다음에 <심청>과 <춘향> 같은 창작 발레를 선보였어요. 이젠 유니버설발레단만의 고유 작품을 만들어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저희가 선보였던 <심청>과 <춘향>은 아주 한국적인 작품이에요. 이젠 이것들보다 좀 더 모던하고 세련되고 시크한 우리만의 시각이 담긴 작품이 필요해요. 그래서 한국 안무가를 잘 키워내려고 해요. 동시에 내년에 외국의 유명 안무가와 함께 명작 작품 중 하나를 새로운 각도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발레단 단장이란 경영자이자 예술 감독을 동시에 한다고 생각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 건가요?

제가 단원을 뽑고 공연 작품을 선정하고 단원들을 일일이 지도할 수는 없어요. 그 대신 단원을 가르치는 예술 스태프들을 관리하죠. 공연을 홍보하고 티켓을 판매하는 과정을 담당하는 공연사업 팀부터 무대 의상과 장치 등을 책임지는 무대 팀, 회사 운영과 관련된 총무 팀 이렇게 세 팀도 총괄하죠. 부서마다 전문가가 있긴 하지만 다함께 원활히 돌아갈 수 있게끔 하는 게 제 역할이에요. 그리고 대외적으로 유니버설발레단을 알리고 후원금도 끌어와야 해요. 일반 회사의 CEO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무용수와 경영자는 역할이 많이 다르잖아요. 단장이 되었을 때는 역할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이 컸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조용히 있는 걸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걸 두려워하는 편이에요. 현역 무용수에서 은퇴할 때도 무척 두려웠어요. 단장으로서 CEO 모임 같은 데도 나가야 하는데 불편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편안해졌어요. 이제는 이 역할을 하면서 제 세계가 넓어졌다는 것도 느끼고 있어요. 물론 외국 발레단처럼 재정, 홍보, 후원을 맡아서 하는 이그제큐티브 디렉터와 공연을 책임지는 아트 디렉터가 분리되어 있지 않아 단장 역할을 하는 게 쉽진 않았어요. 사실 저 같은 사람은 아트 디렉터의 역할만 해야죠. 제가 아무리 열심히 일한들 전문 경영인에 근접도 못 할 거예요. 각 파트를 잘 분리해서 각자의 전문성을 살리는 식으로 운영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저의 전문성은 30년 동안 춤을 추면서 배웠던 노하우죠. 그런데 경영에 신경 쓰다 보니 지금은 그런 것을 후배들에게 많이 전달해주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전문 경영인의 자문을 받고 있어요. 그랬더니 좀 더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되고 실무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알아갈 수 있더라고요. 새로운 구조나 조직을 만들 때도 도움이 되고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 소중해서 그걸 버리지 못해 한 단계 더 올라서지 못할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전문 경영인의 자문 덕분에 더 크게 보고 더 멀리 내다보게 됐죠. 경영자라면 자신의 장단점에 대해 잘 알고 자신이 잘하는 게 뭔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해요. 어제도 운영 자문 위원회의 본부장님이 저에게 “단장님은 그런 건 잘 못합니다”라고 얘기하셨는데, 저도 인정하는 부분이라 잘 알고 있다고 말씀드렸거든요. 많은 사람들은 못하는 부분까지 잘하려고 하죠. 오히려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적재적소에서 일하는 게 조직에서 정말 중요한데도 말예요.


30주년을 맞은 유니버설발레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떤 걸까요? 올해부터 그 그림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4월에 공연하는 <나초 두아토-멀티플리시티>도 신선했거든요.

현대 발레를 항상 단막 공연으로 해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현대 발레를 전막 공연으로 올리려고 해요. 이번 공연을 통해 단원들이 많이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작품의 안무를 맡은 분이 10년 전 스페인 국립 무용단 단장으로 있었을 때 단원을 이끌고 한국에 와서 이번에 저희가 공연하는 <나초 두아토>를 예술의 전당에서 올렸어요. 그때 제가 그 공연을 봤거든요. 너무 좋아서 그때부터 이 공연을 하리라 마음먹었는데 30주년을 맞아 올리게 돼 감회가 새로워요. 하지만 30주년을 맞았다고 폭죽만 터트리진 않으려고요. 내실을 다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30년 동안 무대에만 너무 신경 쓰다 보니 내부 운영 시스템이 항상 뒷전이었거든요. 그동안은 한 공연을 정말 어렵게 무대에 올려 성공해도 스태프들이 너무 힘들었어요. 사람이 하는 일이라 계속 부딪치고 오해가 생겼거든요. 그래서 작년부터 TF팀을 만들어 내부 운영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이지만 앞으로 회사가 길게 가려면 이런 부분은 정리가 돼야 해요. 무작정 열심히 일하는 게 아니라 똑똑하게 일해야 하는 거죠. 그래야 일하면서 보람을 느낄 테니까요. 8년 뒤면 제가 60세인데, 그때쯤 제가 이 자리에 없고 직원들이 바뀌더라도 모든 기록이 남아 있고 운영 시스템이 잘 정리되어 있으면 회사가 크게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특히 저희는 예술 단체라 예민해요. 예술가가 많은 곳이라 쉽게 흔들릴 수 있거든요. 몸으로 하는 예술이라 조금만 잘못 운영해도 무너지는 게 한순간이에요. 작년까지 잘했던 단원이라도 한눈을 팔면 조금만 수준이 금방 떨어질 수 있는 것처럼요. 그래서 작게나마 단원들과 소통하기 위해 단원 대표를 뽑아 한 달에 한 번씩 단원들의 애로 사항이나 불편 사항을 모아 예술 스태프와 경영 쪽 팀과 함께 모여 듣고 있어요. 여기서 서로 부탁할 거 있으면 부탁하고 오해한 부분이 있으면 풀어가죠. 단원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지도 선생님과도 격주로 만나요. 예술가들에게 회의 문화를 인지시키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다들 예술가라 작품 생각만 하거든요. 제가 2년 전부터 회의 문화를 만들자고 계속 얘기하고 있어요. 회의를 통해 단원들이 지금 어떤 지도가 필요하고 어떤 점이 힘든지 알 수 있거든요.



유니버설발레단은 단원과 직원을 합쳐 100여 명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개별적으로 관계를 가지며 소통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조직을 총괄하는 단장으로서 어떻게 소통하고 있나요?

사실 그럴 시간이 없어요. 제가 발레단만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선문학원 재단의 초·중·고등학교, 유치원까지 운영을 맡고 있어 너무 바쁘거든요. 단원들과 일대일로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중간 창구로 지도 선생님들과 대화할 수 있는 채팅방을 만들었죠. 언젠가 공연 전에 단원들이 연습하는 걸 봤는데 어떤 단원이 뛰지 않고 발끝 포인트도 안 하는 등 엉망이라 제가 혼을 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무릎이 아파서 그런 거였다는 걸 지도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됐죠. 소통이 안 되면 그런 일이 충분히 생길 수 있는 거예요. 지금은 거의 매일 채팅방을 통해 지도 선생님들이 누가 병원에 갔고 사고가 있었는지 공유해요. 소통이 부족한 게 정말 문제였는데 채팅방을 통해 이용하니 편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다른 회사에서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예술 단체에 이런 식의 회의 문화를 안착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많은 설득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이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걸 느끼죠.


여자 단장이라 소통하는 방식도 남자 단장과 차이가 있지 않나요?

단원들이 저에게 좀 더 편하게 얘기하는 것 같아요. 보통 예술 감독님을 거쳐 저한테 와야 하는데 바로 오는 경우도 많아요. 제가 일단 잘 들어주는 편이고 말할 때도 차근차근 설명하면서 마음이 안 다치게 배려해서 얘기하려고 하거든요. 남자 단장이라면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겠죠. 예술가들이 워낙 예민해서 그러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제가 여자이다보니 그런 점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한국 사회는 상하 관계가 너무 뚜렷해 상사 앞에서 다들 경직되어 있는데 전 그게 싫거든요. 직책만 다를 뿐 모두 똑같다는 게 제 기본 사고예요. 그래서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고 일부러 웃기는 말도 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제 직책 때문에 접근을 못 하거든요. 인간적이고 직원들이 언제든지 얘기할 수 있어야 좋은 상사죠. 저희 발레단 단원이 되면 누구든 있는 동안엔 뭔가 얻어가길 바래요. A가 B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해도 A는 A 나름대로 지금보다는 더 잘할 가능성이 있잖아요. 전 그 가능성을 끄집어내고 싶어요. 무엇보다 단원들이 저희 발레단에 몸담고 있는 동안 행복했으면 해요. 제가 비록 물질적인 걸 많이 해주진 못하더라도 이곳에서 재미와 보람을 느끼며 뭔가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단원들이 꼭 지켜줬으면 하는 게 있나요?

기본기에 충실했으면 해요. 겉으로 화려하게 보이는 스킬보다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지고 정석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무용은 몸만 움직여서도 안 돼요. 혼이 담겨야죠. 주역이 아니고 설령 무대 끝에 서더라도 무대에 설 때는 자신의 모든 정성을 다 쏟아내야 해요.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면 발레단 문을 닫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고 그런 수많은 발레단 중 하나가 될 거라면 굳이 이 일을 할 필요가 없는 거죠. 무대 하나하나를 만들어낼 때 관객에게 감동을 준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담아 정성을 다해야 해요. 


잘해보자고 하는 일이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관계에 지칠 수도 있어요. 그럴 땐 어떻게 마음을 다지나요?

저도 마찬가지지만 사람이 완벽할 순 없잖아요. 최고의 회사에 다닌다는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눠봐도 불만이 많더라고요. 어떤 조직이든 그런 게 있는 거죠. 단원이나 직원들이 저와 회사에 대해 서운함이 왜 없겠어요? 그런데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그들에게 가끔 얘기해요. “나도 사람이다. 나도 너희들한테 서운할 때 있다. 나는 상처가 없는 줄 아니?”라고 말이죠. 가끔 자기가 받는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불만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땐 열심히 하는 다른 사람들을 봐요. 시선을 돌리는 거죠.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고 긍정적으로 다시 생각해요. 


직원과 단원들뿐 아니라 대중과의 소통에도 열성적이잖아요. 발레의 대중화를 위해 공연에 앞서 직접 해설을 하는 게 반응이 아주 좋던데요?

원래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는 걸 너무 싫어해 마이크 잡는 게 좋지만은 않아요. 그래서 아주 간단한 5분 스피치여도 다 적곤 해요. 그래도 이 자리에 앉아 있는 한 계속할 거예요. 공연을 무용수가 직접 해설한 게 제가 처음이라 보람도 크거든요. 평론가가 하는 것과 달리 동작 설명이나 작품 해설이 좀 더 디테일해요. 발레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거부감 없이 들을 수 있고 공연을 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설명하니까요. 저의 해설을 듣고 공연을 보면 사소하지만 발레 동작을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도 있고, 발레를 내가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는 뿌듯함도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무대에 서면서 예술가로서 보람을 느꼈다면 지금의 일에서는 어떤 즐거움을 찾았나요?

저희를 후원해주셨던 한 시멘트 회사가 있어요. 그 회사를 알기 전까진 시멘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죠. 그런데 회사 관계자들과 만나면서 시멘트에 대해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됐어요. 발레를 할 땐 한 우물만 파야 하니까 시야가 정말 좁은데 이 일을 하면서 저의 세상이 넓어졌어요. 무용수 생활에서 은퇴하면서 두렵기도 했지만 당시 나이가 어렸다는 건 좋았어요. 그때 제가 35세였거든요. 보통 50대나 60대에 은퇴를 하잖아요. 근데 그 나이엔 미래를 다시 생각하기 힘들죠. 그런데 저 같은 경우 하나의 커리어에 집중했다가 그다음에 또 완전히 집중해야 할 커리어가 있었던 거잖아요. 아직 젊고 할 수 있는 게 많은 30대에 제2의 인생이 펼쳐지니까 하나의 커다란 선물처럼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최근 한국 발레가 여러 면에서 화제가 되고 있어요. 30주년을 맞은 유니버설발레단과 최근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이 된 강수진 씨 때문이죠. 한국 발레를 대표하는 두 단체와 두 사람이 서로 선의의 경쟁자가 되어 올해는 발레가 좀 더 성장하는 한 해가 될 것 같은데요?

네. 강수진 씨가 한국에 돌아와서 활동하는 건 너무 좋은 일이죠. 그녀는 국립발레단장으로 아주 적격인 것 같아요. 같은 선화예고 출신이기도 하고 저와 마찬가지로 모나코에서 공부하기도 했고요. 앞으로 그녀 덕분에 국립발레단이 좀 더 발전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녀가 선보일 작품도 기대하고 있어요. 예전에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자전거는 앞바퀴와 뒷바퀴가 같이 굴러야 잘 나갈 수 있는데 만약 한 바퀴라도 멈추면 바로 넘어진다고요. 나만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기보단 함께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하고 싶어요. 그래야 서로 더 크게 발전할 수 있을 테니까요.



CREDIT
    Editor 김현주, 정화인

이 콘텐트는 COSMO BUSINESS
2014년 0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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