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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5 Mon

당신의 부모가 완벽하지 않다면

성인이 된 이후 인간관계에서 자꾸만 비슷한 삐걱거림이 발생한다면, 부모와의 관계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지금의 당신보다 한참 어렸을 엄마와 아빠가 어려서, 서툴러서, 완벽하지 않아서 당신에게 준 상처들이 지금 당신의 불안과 어긋남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부모와의 관계가 개선되면 그 문제가 해결될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다

엄마는 나를 미워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게 하나뿐인 오빠 때문이라는 피해의식에 휩싸여 자란 난, 늘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성인이 된 후 열심히 연애를 했다. 엄마로부터도 받지 못했던 사랑을, 넘치도록 공급해주는 타인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나의 쉼 없는 연애의 원동력이었다. 흔히 말하는 ‘애정 결핍’의 전형이었다고나 할까? 또 한번의 허무한 연애가 끝나던 스물아홉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그들 누구도 사랑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들에게 사랑을 ‘주는’ 법을 몰랐다. 내게 애정과 관심을 쏟을 사람만 있으면 족할 뿐, 옆에 있는 그 사람이 꼭 그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던 거다. 상대의 애정 공급 곡선이 하향세로 기울라치면 그대로 빠이빠이, 새로운 공급원으로 갈아치우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런 무의미한 관계의 반복이 갑자기 지겹고 서러웠다. 나는 왜 이런 연애를 반복하는 걸까? 왜 나는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사랑을 주는 법도 모르는 채 늘 상대방의 애정만 갈구하는 애정 결핍자가 되었을까?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연애를 쉬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뻥! 터지고 말았다. 왜 나를 그렇게 미워했는지, 왜 나로 하여금 ‘사랑받지 못한다’는 외로움을 품은 채로 자라게 했는지, 돌배기 조카까지 있는 자리에서 마치 한풀이를 하듯 눈물 콧물을 쏟으며 엄마를 원망하고 가족들에게 꾸역꾸역 서운함을 토해냈다. 모두가 놀랐고, 엄마는 그렇게 느끼게 해 미안하다고 같이 울었으며, 오빠는 그것도 모르고 맨날 또라이에 망나니라고 욕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래서 뭐가 달라졌냐고? 표면적으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을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부른다. 그 후 나의 연애는 분명 달라졌다. 마치 첫사랑 같았다고나 할까?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보이고 상대방을 온전하게 바라보며 사랑할 수 있는 건강한 상태로, 포맷 후 리셋된 기분이었다. 


부모와의 힘든 관계는 인간관계의 나쁜 패턴을 만든다

그 후 나는 이날에 대해 종종 얘기하곤 한다. 자랑스럽지도, 칭찬받을 만한 일도 아니다. 다만 가끔씩, 누군가가 가족과의 문제로 고민하거나 자신의 공허함의 원인을 찾지 못해 방황할 때면 나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가족과의 관계가 알게 모르게 나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쳐왔는지, 그게 결국 모든 인간관계의 뿌리인 건 아닐지, 조심스럽게 운을 떼곤 했다.  

아, 미리 경고하건대 섣부른 ‘부모 탓’은 금물이다. 당신의 모든 결함이 부모의 잘못 때문일 거라는 얘기가 아니니까.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꼭 얘기해보고 싶었던 건, 어쩌면 당신이 지금 떠안고 있는 심리적인 불안과 인간관계의 문제가 ‘부모와의 관계 개선’으로 인해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것 뿐이다. 실제로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각자 자신의 가족(특히 부모)과 크고 작은 문제를 쌓아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마음속에 불만과 불안과 원망을 쌓아둔 채 가족과 일상적으로 각자의 힘겨운 감정 싸움을 펼치고 있다. 만약 부모가 알코올 중독이라거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일삼았던 경우라면, 또 다른 차원에서 더 큰 투쟁으로 다가왔을 거고 말이다. 

<오늘, 내게 인생을 묻다>의 공저자인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의 최정미 전문의도 인간관계에서의 실수와 실패가 패턴처럼 반복되는 상황이라면, 먼저 부모와의 관계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얘기한다. “성인이 된 자신에게 옛날의 상처가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바로 연결시키기는 어렵죠. 대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여러 인간관계를 통해 부정적인 패턴을 수차례 반복하고 난 뒤인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그런 생각을 처음 하기 시작하죠.” 그녀는 ‘애착’으로 이 인과관계를 설명한다. “부모는 자기 인생의 첫 남자, 첫 여자예요. 부모를 통해 어렸을 때부터 불안정 애착이 생긴 사람들이 불안정 애착을 가진 배우자를 만날 확률이 굉장히 높은 이유죠. 가족과 어떤 대인 관계를 맺었느냐가 다른 대인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니까요.” 사람은 경험한 대로 행동하는 법. 만약 부모와의 갈등을 대화와 배려로 풀어내지 못하는 관계를 맺어왔다면, 사회에서도 자신이 겪어왔던 방식을 되풀이한다. 좋은 상사, 좋은 남자를 만나도 결국 틀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심리학 일주일>의 저자이자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의 운영자인 사회심리학연구가 박진영에게 실제로 가족과의 관계에서 애착과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보이는 특징적인 문제가 있는지를 물었다. “조직 내에서 대개 ‘사람을 굉장히 피곤하게 만든다’라고 느껴지는 행동을 보이곤 하죠. 집착한다거나 질투한다거나 눈치를 심하게 본다거나 자기 의견을 잘 내세우지 못하는 식으로요.” 가족이라는 1차적인 사회 집단 내에서 소속감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매우 낮은 상태일 확률이 높은데, 여기에는 부모의 언행, 부모와의 관계가 어쩔 수 없이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 박진영의 설명.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일관되고 안정적인 양육을 받은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신뢰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는다고 해요. 타인과 관계를 맺는 데 두려움을 덜 갖는다는 얘기죠.” 반대로 부모로부터 신뢰와 애정과 배려를 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부지불식간에 인간관계에 대한 여러 가지 두려움을 탑재한 채 성장 후 어려움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


부모와의 대화를 시작하는 법

안타깝게도 당신의 부모가 여러 이유로 완벽하지 못해서 당신에게 상처를 안겨주며 불안과 원망의 원천으로 작용했다면, 아마 당신은 성인이 된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연애를 하면서, 뜻밖의 힘겨움과 자주 마주해왔을 것이다. 가볍고 육체적인 관계만 지향하는 연애 패턴, 집착하고 의심하고 상대방을 옥죄는 행동, 남을 믿지 못하고 마음을 열지 못해 겪는 외로움, 자신감이 부족해 늘 눈치를 보느라 조직 구성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이 그 대표적 결과물이고 말이다. ‘이제 와서 뭘 어쩌겠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평생 힘겨운 상처를 반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저명한 가족 치료사인 존 브래드쇼는 저서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하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아직도 우리 안에 남아 있으며 불행하게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 상처를 전달하며 살아가게 된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상처를 발견하지 못하고 치유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생의 모든 문제의 가장 큰 원인으로 남을 것이다.” 그 늪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부모’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너무 당연하게도 ‘대화’가 정답이다. 하지만 갑자기 부모에게 진지한 대화를 청하는 것은 참으로 겸연쩍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엄마, 얘기 좀 해요”라는 말 한마디로 쉽게 대화가 가능한 부모였다면 애초에 그런 힘든 관계를 형성하지도 않았을 거고. 최정미는 먼저 부모에 대한 생각을 전환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라고 조언한다. “부모님과 대화를 시도하기 전에 먼저 형제들과 한번 대화를 나눠보세요. 각각 경험한 부모가 다르거든요. 자신의 어린 시절을 곰곰이 되새겨보면서 ‘우리 엄마(아빠)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엄마 아빠의 인생을 재구성해보는 거죠. 엄마 아빠에게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름의 이유가 분명 있을 테니까요. 같은 성인으로서 공감하며 재구성하다 보면 저절로 이해되고 용서되는 부분이 생길 겁니다.” 최정미는 “엄마를 한 여자로 보기 시작할 때, 아빠를 한 남자로 보기 시작할 때, 그들의 인생을 보기 시작할 때, 부모와의 관계는 새로워질 수 있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지금의 나보다 어렸을 당시의 부모 모습과 상황을 떠올리다 보면, 그들의 ‘완벽하지 않음’을 더 너그럽게 받아들이게 될 수 있다. 그렇게 한 겹 누그러진 마음으로 부모에게 대화를 청해보자. 당신이 그간 삶을 헤쳐오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변해왔듯이, 당신의 어리숙하고 불완전한 부모도 분명 변했을 것이다. 지금부터 그들과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완벽하지 못한 부모를 용서하는 법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의 ‘용서 전문가’ 로버트 엔라이트 교수는 말한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만으로도 나쁜 에너지로부터 탈출해 치유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이다. 일단 용서하면 분노, 불안, 우울감이 덜어진다. 그게 부모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1 터뜨려라 그게 분노건 슬픔이건 빡침이건 간에, 당신에게 벌어진 일에 대한 감정을 가감 없이 표출해라.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한 부모와 깊은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2 ‘부모는 왜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이것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부모의 삶을 반추해보면서 그들의 삶의 어떤 부분이 그들로 하여금 그런 행동을 하게 했는지 생각해보자. 엄마가 당신을 방치하거나 차갑게 대했던 건, 어쩌면 엄마 또한 자신의 부모로부터 똑같은 대우를 받았고 더 나은 방법을 알지 못해서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부모를 위한 변명거리를 만들어주라는 게 아니다.  그저 이 상황의 모든 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하는 거다.


3 나쁜 감정 표현을 한 번씩만 참아보자 만약 부모에게 툭툭 차가운 말을 던지는 게 습관화되어 있다면, 그 순간 딱 한 번만 참는다고 생각해보자. 거기에 가능하다면 차라리 미소를 짓는 식으로 뭔가 ‘좋은’ 반응을 보여볼 것. 당신의 부모를 위해 그러라는 게 아니다. 이건 당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명심할 것.


4 상처를 통해 얻은 교훈을 생각해보자 완벽하지 못한 부모를 보면서 당신이 깨달은 중요한 인생의 교훈은 없는지 생각해보자. 남을 배려하는 법을 알게 됐다거나 웬만한 일에는 인내심이 생겼다거나 혹은 우울함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았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완벽하지 못한 부모가 당신을 더욱 강한 존재로 만들어줬다고 생각하자. 그건 사실이기도 하다.



CREDIT
    Editor 박지현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4년 0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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