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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1 Fri

성숙해진 배우 한지혜

전작 두 편의 연이은 호평과 흥행. 여세를 몰겠다는 듯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로 숨가쁜 복귀를 준비하면서도 한결 차분하고 성숙해진 배우 한지혜를 만났다. 항상 ‘이전보다 나은 나’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14년이라는 시간을 헤쳐온 그녀는, 지금 막 전성기라는 인생 좌표에 발을 내딛는 참이다.


오랜만에 코스모와 함께했어요. 한지혜의 시크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너무 잘 어울리더라고요.

화보 촬영 자체가 연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돼요. 화보에 걸맞은 느낌을 내고 그 분위기에 맞춰가는 것도 일종의 연기잖아요? 촬영 때 표현했던 이미지들이 나중에 그런 모습을 연기해야 하는 순간 도움을 주곤 하죠. 지난 작품 <금 나와라 뚝딱!>(이하 <금뚝>)에서 ‘유나’라는 캐릭터에 욕심이 났던 것도 화보의 영향이 컸어요. ‘몽희’는 내가 맨날 해왔던 거라 잘할 수 있겠는데, 많은 시청자가 모르는 세련되고 도회적인 나의 전혀 다른 모습,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과 의지가 생겼거든요.


정말 <금뚝> 첫 회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너무 잘 어울리는 건 둘째 치고, 둘이 완전 다른 사람인 거예요. 1인 2역이라고 하면 대개 옷만 갈아입고 나오는 거라고 치부해버리기 십상인데 말이에요.

보통은 그렇죠. 제가 <금뚝>에서 맛이 들렸던 게, ‘메소드 연기’라고 해야 하나? 정말 몰입해서 딱 그 인물이 돼 연기하는 거였어요. 완벽하게 그 사람으로 살진 못하더라도, 나로부터 ‘몽희’와 ‘유나’를 분리시켜 완벽하게 두 사람이 딱딱 나누어지게 만든 다음 얘를 입었다가 쟤를 입었다가, 이런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됐어요. 물론 그 과정이 힘들긴 했지만, 그래서 이번 <태양은 가득히>에서 ‘한영원’이라는 역할에도 자신이 생긴 것 같아요. 죽을 것처럼 힘들어도 그런 연기를 하는 것에 재미를 느낀 셈이죠. 


그래서 이번에 <태양은 가득히>에서 사랑을 잃고 그 비극 안에 자기를 가둬두는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을 맡았다고 했을 때 한지혜가 과연 그 캐릭터를 어떻게 소화하고 표현할지 더 궁금해졌어요. 

사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갈 것 같아요. 전혀 다른 의미에서 ‘몽희’와 ‘유나’의 1인 2역을 처음 봤을 때처럼 신선함이 들 정도로요. 지금 계획하고 있는 건 딱 하나예요. 드라마 횟수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그 인물에 몰입돼서 ‘한영원’이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그런 연기를 하는 거요. 좀 막연하고 어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딱 보면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실 거예요.




한지혜가 바라본 ‘한영원’이라는 인물은 어떤 영혼을 지닌 사람이던가요?

음…. 예를 들어 내로라하는 재벌가의 딸들을 생각해봤을 때,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잘나가고 부족한 게 없는 듯하지만 그들 내면의 고통이나 아픔, 이런 걸 우리는 전혀 모르잖아요? 그들의 속까진 안 들여다봤으니까요. ‘한영원’도 그런 캐릭터인 것 같아요.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자신만의 속앓이, 아픔, 고통 이런 게 가득 찬 불쌍한 애인 거죠. 살인자라고 믿는 사람의 할머니 집을 찾아 가는데, 너무나 가난한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분풀이를 못 하고 돌아오기도 하고요. “할머니는 왜 이렇게 가난해요…” 하면서요. 할머니가 ‘찔레꽃’ 노래를 읊조리며 울자 그 눈물을 닦아주면서 용서까지는 아니지만 서로 화합하고 이해하게 되는,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인데도 소통이 되는, 그런 인간적인 모습을 작가님께서 정말 잘 풀어주신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이따가 그 장면을 찍을 거라서 부담돼요. 나만 슬퍼하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도 이입할 수 있도록 연기를 잘해야 할 텐데….


배우들의 이런 얘기를 들으면 항상 궁금해져요. 그렇게 비극적인 상황, 비련의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직간접적인 경험을 떠올려요. 나의 경험을 끄집어내기도 하지만 내가 들었던 주변의 경험담도 도움이 돼요. 우리가 슬픈 다큐를 보거나 슬픈 영화를 보면 같이 눈물을 흘리듯, 그런 동감과 이해를 가지고 주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절로 그 감정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직간접적인 경험으로 인해 몰입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이번 작품 같은 경우 눈물 신이 정말 많아요. 한 회당 서너 번? 일주일에 2회면, 일고여덟 번은 감정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의 눈물 신이 나오는데, 그 정도면 억지로 쥐어짜서 울 수도 없는 거라 고통스러운 작업인 것 같아요. 절로 예전에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일, 고통스러웠던 감정, 혼자 외로웠던 시간과 견뎌내기 힘들었던 순간을 자꾸 끄집어내게 되니까요. 


배우들을 보면 대단하면서도 위태롭다는 생각이 드는 게 바로 그 지점인 것 같아요. 그렇게 몰입해 있다가 빠져나오는 게 큐 사인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닐 테니까요. 한지혜에게는 몰입에서 빠져나와 현실 세계로 빨리 돌아오게 하는 ‘레드선’ 사인 같은 게 있을까요?

<메이퀸> 때부터 시도한 건데, 꽤 효과가 있는 방법이 하나 있어요. 드라마가 끝나면 2~3일 뒤에 쫑파티를 하잖아요? 그 날짜를 계산해서 쫑파티 바로 다음 날 떠나는 여행 계획을 짜요. 일본에 온천 여행을 간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고생한 스태프들과 쫑파티에서 술을 마시고 다음 날 바로 떠나는 거죠. 너무 피곤하다고 집에서 가만히 쉬고 있으면 오히려 극에서, 그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더라고요. 여행하면서 바쁘게 돌아다니며 맛난 것도 먹고 자전거로 동네도 돌아다니고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전환이 돼요. <금뚝> 때는 끝나자마자 유럽 여행을 떠났어요. 파리 컬렉션도 가고 바르셀로나도 가고, 그렇게 바쁘게 보내는 게 비법이라면 비법?




18세에 연기를 시작해서 벌써 14년 차예요. 배우로서 한지혜가 아직도 목말라하는 게 있을까요?
나이가 들고 사람으로서 영글어갈수록 제가 맡을 수 있는 역할도 변할 거라고 봐요. 그런데 앞으로 3~5년 정도가 지금까지 제가 쌓아온 것을 바탕으로 전성기를 만들어볼 수 있는 타이밍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 이후부터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계속 도전할 수 있을 거고요. 당장 앞으로 몇 년간은, 내면의 성숙함을 바탕으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전성기로 좋은 활동을 이어나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한지혜의 전성기라….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그리나요?
아마도 ‘한영원’이라는 역할부터가 시작일 것 같아요. 30대 초반, 나이 대가 20에서 30으로 바뀌는 동안 달라진 나의 모습, 지금까지 했던 엽기발랄하고 억척스럽고 씩씩한 캔디 역할과는 또 다른, 좀 더 성숙하고 내면의 깊이를 표현해낼 수 있는 내가 되고 싶어요. 음, 이미지로 그려본다면, 프랑스 여자처럼 시크하게 머리를 날리며 자연스럽게 트렌치 코트를 여미고 바람이 부는 야외에 서 있는 느낌이랄까요? 더 여성스럽고 더 깊이 있는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껏 드라마 위주의 필모그래피를 잘 다져왔어요. 배우로서 분명 영화 욕심도 있을 텐데, 영화에 대한 계획은 없나요? 어떤 작품의 어떤 캐릭터를 해보고 싶나요?
영화 관계자분들이 이 기사를 좀 읽으셨으면 좋겠네요. 하하. 이번 <태양은 가득히>의 작가님이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작가세요. 그런데 저 그 영화 너무너무 좋아해서 몇 번을 다시 보곤 했거든요. 임수정 씨가 맡은 캐릭터를 언젠가 꼭 해보고 싶더라고요. 꾸밈 없이 편안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아주 라이브한 연기를 꼭 해보고 싶다는 목표와 꿈이 생겼죠. 반면에 사실 영화는 아직 좀 두려워요. 한지혜라는 배우가 영화 쪽으로는 아직 신뢰를 못 줬으니까요. 영화를 찾는 관객들에게 아직 충분하게 어필하지 못한 거죠. 거기에 흥행에 대한 두려움이랄까요? 예전에 이준익 감독님과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할 때도, 를 했을 때도, 흥행에 대한 부담감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느꼈거든요. 



지혜에게 가장 충만한 행복감을 선사하는 ‘사랑’의 형태가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기도 해요.
제가 의외로 낯을 많이 가려요. 예전에 영화 찍을 때도 초반에 감독님, 선배님들과 같이 대본 리딩하거나 하면 되게 우울했어요. 고통스러웠을 정도로요. 처음 보는 사람들, 처음 합을 맞추는 스태프들 사이에서 너무 어색하고 낯설고 두렵고, 그런 기분이 들어 힘들어했어요.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할 때 초반에 그런 외로움과 고통이 있더라고요. 전작 두 편을 모두 MBC에서 했던 터라 그사이에 굉장히 그곳 환경에 익숙해졌는데, 너무 오랜만에 KBS에 들어오니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더라고요. 역할 자체도 힘든데, 마음도 불편하기만 하니…. 그러다가 집에 딱 왔는데, 그냥 말 한마디로 나에게 용기를 주고, 존재 자체로 나를 편안하게 해주고, 정신적으로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그 느낌! 그게 나를 일으켜세우는 힘이 되더라고요. 정말 상대방의 단 한마디에 기분 전환이 돼요. 나 혼자 가만히 있었으면 우울하고 점점 늪에 빠져드는 기분이었을 텐데, 이 사람이 그냥 툭툭 던진 농담 한마디에 완전 다 잊어버리고 웃게 되거든요. 그러다 보면 바로 회복돼요. 아마 결혼한 사람은 알 거예요. 

이거 완전 싱글에게 제대로 염장 지르는 발언이네요. 하하. 이제 한지혜도 30대예요. 30대가 되니 자신만의 개성과 캐릭터가 잡혀가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돌이켜봤을 때 20대인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뭘까요?
아,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실제로 한지혜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질문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하하. 오늘 밤에 중요한 신을 찍어야 해서 계속 감정을 잡고 있었는데, 그런 질문을 들으니까 갑자기 너무 슬퍼지네요. 그 어떤 말보다 그냥 ‘고생했다, 수고했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너무너무나.

더 잘하라고 채찍질하는 충고의 한마디보다는 그저 토닥토닥하며 안아주고 싶은?
네. 왜냐하면 20대의 난, 충분히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남들이 저를 어떻게 기억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말 제가 생각했을 때는 실패도 너무 많이 했고 고생도 많이 했어요. 너무 많은 좌절도 있었고요. 그걸 잘 이겨내서 지금의 내가 있고 앞으로 더 나은 나를 꿈꿀 수 있게 된 거잖아요? 그 원동력이 바로 20대의 치열하고 고생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고생했다고, 너무 잘해냈다고 꼭 얘기하고 싶어요.

와, 저도 눈물이 날 것 같아요. 바로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까지 물어보면 너무 못됐나요?
그냥 지금 하는 대로만 침착하게, 계획한 대로, 의지가 향하는 대로, 신념을 갖고 흔들리지 말고 꾸준히 밀어붙여나갔으면 좋겠다는 것. 예전에 사람들이 나에 대해 하는 말에 굉장히 신경 쓴 적이 있어요. 하지만 내가 가진 가능성,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는 건 결국 나 자신뿐이더라고요. 이런저런 것에 흔들리지 않고, 흔들림 없는 신념으로 꾸준히 해나가는 게 더 맞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사람들에게 한지혜라는 사람이 걸어나가는 길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한 번에 되는 것도 아니지만 얘가 뭘 하려는 건지를 차분히 느끼게 해주고 싶은 바람이 있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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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박지현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4년 0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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