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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9 Tue

나의 연하남 연애기

서른여섯의 나는 지금 서른한 살의 남자와 다섯 달째 뜨거운 연애 중이다. ‘연하남이라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보니 연하남이었다’는 부제를 붙이고 싶은, 나의 연하남 연애기.

 

“동갑까지는 몰라도 연하는 솔직히 남자 같은 느낌이 안 들어.” 수년 전 친구가 혹시 연하남과 소개팅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물었을 때, 난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연애란 것에 딱히 룰을 두고 있진 않았지만, 유독 연하남에게는 끌릴 일도, 엮일 일도 없었으니까. 생각해보면 그건 내가 연애 상대에게 가지고 있는 어떤 바람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힘들거나 고민이 될 때 완벽히 기댈 수 있을 만큼 생각이 깊은 사람이길 바랐고, 내가 토라졌을 때 넉넉한 마음으로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이길 원했으니까. 이왕이면 나보다 사회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도 부정하지 못하겠다. 그런 나의 바람을, 나보다 어린 남자는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내 나이는 서른여섯이 되었고, 나는 지금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남자와 연애를 한다. 자, 내 인생에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내 일상의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된 83년생 어떤 남자와 연애하는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려 한다. 물론 모든 연하남이 나의 그와 같을 리 없겠지만, ‘연하랑 연애? 그래도 남자가 한 살이라도 많아야지…’라고 생각하던 당신이 읽어볼 만한 그런 이야기를 말이다.

 

“선배, 그 남친 생기고 나서 훨씬 표정이 좋아진 거 알아요?” “야, 너 왜 이렇게 피부가 탱탱해졌어? 너 뭔 주사 맞은 거야?” “어? 스타일이 훨씬 더 어려졌는데?” 요즘 내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는 내 외모에 대한 것이다. 물론 연애를 하면 온몸에 엔도르핀이 돌고, 찡그리기보단 웃을 일이 많아지니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화색이 도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기서의 핵심은 그냥 표정이 좋아진 수준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나이가 어려 보인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연상의 남자를 만났을 땐 ‘좀 한다’는 레스토랑에 가고, ‘좀 괜찮다’는 뮤지컬을 보러 가는 식의 데이트를 많이 했겠지만, 그를 만나고 나서는 데이트 패턴이 꽤 많이 바뀌었다. 아직은 30대 초반이라 그런지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고, 해보지 않았던 것에 도전하기 좋아하며,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도 훨씬 적응이 빠른 모습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나보다 다섯 살 많은 마흔한 살의 남자와 만났다면 나의 일부분은 마흔한 살의 감성에 흡수되었겠지만 지금 나의 일부는 서른한 살의 감성과 맞닿아 있다. 핫한 트렌드에 대해 수다를 떨고, 스파 브랜드에 가서 함께 쇼핑을 하고, 주말이면 그가 직접 싼 김밥과 돗자리를 들고 용산가족공원에 가서 음악을 듣다 한숨 자고, 몸이 좀 찌뿌둥하다 싶으면 함께 한강 변에 나가 자전거를 타게 된 나. 어느 때부터인가 그와 나의 시계는 함께 서른한 살로 맞춰진 느낌이다. 나보다 다섯 살 많은, 마흔한 살을 만났다면 이런 느낌이 가능했을까?

 

한 살이라도 어릴수록, 평균 신장이 커지는 세례를 입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 세례를 담뿍 받은 그는 내가 만난 어떤 남자보다 긴 다리와 업된 엉덩이를 가졌다. 긴 다리로 내게 성큼성큼 걸어올 때, 타이트하게 업된 엉덩이 라인이 드러나는 트레이닝 팬츠를 입고 함께 자전거를 탈 때, “이리 와” 하며 그 큰 가슴팍에 나를 폭 안아줄 때면 그의 남다른 발육 상태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사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긴 다리를 사랑해왔다고 진화생물학자들은 말한다. 남자의 늠름한 긴 다리는 보다 많은 짐승을 사냥할 수 있는 증거로 여겨졌으며, 여자의 미끈한 긴 다리 역시 그 사이에 있는 생식기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섹슈얼한 표상으로 여겨져 온 것이다. 하지만 긴 다리와 업된 엉덩이의 이점은 비주얼적인 이점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힙업이란 필연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둔부와 대퇴부 근육 발달을 전제로 한다. 고로 둔부와 대퇴부가 탄탄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남자는 여자와의 결정적 순간에 훨씬 더 많은 파워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 아이스하키 동호회를 하며 다진 그의 단단한 허벅지는, 내가 만났던 그 어떤 연상남의 그것보다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들과 사귈 때마다 경험했던 난감한 포인트가 하나 있다. 단지 “오늘 나 힘들었어, 글쎄 있잖아…”로 시작했던 크고 작은 하소연에 대해 그 연상남들은 여지없이 “그건 네가 잘못했네… 그러니까 그럴 때는 말야…”라는 조언을 하려고 했다는 것. 사실 우리가 그렇게 하소연을 하는 건 조언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이리 와 안아줄게”라는 위로가 필요해서 아닌가. 나보다 한 살이라도 많다는 남자들은 그저 위로가 필요한 내게 어느 순간 “그건 말이야, 그게 아니고 이렇게…”를 말하며 조언가 노릇을 하려고 했다. 남자는 ‘문제 해결’ 위주의 대화를 하고, 여자는 ‘공감’ 위주의 대화를 주로 한다는 분석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위로가 필요할 때 은근한 비판 섞인 조언을 듣는다는 건 유쾌하지 않았다. 나보다 다섯 살 어리기에, 13년 차 직장인인 나에 비해 사회 경험이 상대적으로 짧은 그는 내가 정말로 “너의 조언이 필요해”라고 말할 때까지는 섣불리 조언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즉각적인 조언을 원하는 그에게 난 사회생활 선배로서 실질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으니 합이 잘 맞는다.) “그건 내가 경험해봐서 아는데…”라는 말 같은 건 그의 어록에 존재하지 않는다. 잠자코 들어주고, “그랬구나”라고 말해주고, 그저 따스하게 안아줄 뿐이다. 그것은 내가 생각하던 완벽한 형태의 위로. 파김치처럼 지친 내 앞에서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애교 댄스를 춰 결국은 웃으며 잠들 수 있게 해주는 이 연하남의 밝은 에너지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스무 살 때 다섯 살 아래의 남자는 고작 열다섯 살. 내가 머리 쥐어박아가며 과외하던 딱 그 나이 ‘녀석’들에 불과했다. 또 내가 서른 살일 때 다섯 살 아래의 남자는 아직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한 대학생일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서른 중반을 넘긴 이 시점에 만나는 다섯 살 아래의 남자는 직장 생활도 어지간히 해보고, 인생의 궤적에 대한 고민도 얼추 비슷한 서른한 살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좀 어릴지 몰라도 사회적으로는 나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나이. 회사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 앞으로의 꿈에 대한 이야기까지, 십수 년 전에는 함께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았을 그와 나였겠지만 이젠 어느새 함께 나누지 못할 이야기가 거의 없는 그런 나이가 되어버린 셈이다. ‘사회생활을 좀 해본 연하남’이 가지는 미덕은 단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13년째 쉬지 않고 일을 해서 가끔 일 자체에 지쳤다는 생각이 들 때, 아직은 일에 대해 파릇파릇하고 에너제틱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를 보면서 난 5년 전쯤의 내 모습을 떠올린다. ‘그래, 나도 너처럼 그랬었는데 말야…’라고 생각하다 보면 잠시 매너리즘에 빠졌다가도 힘을 내게 된다. 나보다 어리지만 때론 나의 좋은 스승인 그는 나와 함께 늙어가는 서른한 살이다.

 

우리 어머니 세대에게 ‘여자의 결혼’이란 평생 나와 내 아이를 잘 먹여 살려줄 착하고 능력 좋은 남자를 선택하는 작업의 의미가 컸다. 먹고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던 시기였으니까. 하지만 능력이 있고, 그래서 딱히 남자와 함께 살지 않는다 해도 충분히 자신의 삶을 잘 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여자들에게 결혼의 의미는 점차 달라지고 있다. 스스로 삶의 질을 케어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적어도 남자의 경제적 조건에 대해선 좀 더 너그러워지고, 오히려 나의 커리어를 존중해주고 대화가 잘 통하는지의 여부를 더 꼼꼼히 보게 되는 것이다.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더 많은 성취를 이룬 여자는 그 덕분에 남자를 고를 때 비로소 제대로 눈을 뜨게 된다. 나 역시 이제야 그 눈이 열린 것 같은 느낌이다. 누군가에게 내 삶을 의지할 수 있다고 믿기보단 나 스스로 신뢰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고, 돈이야 어차피 잘 버니까 상대방의 인성과 가치관에 좀 더 집중하고 싶어지는 이 변화는 얼마나 멋진 일인지. ‘나보다 성공한 남자여야 한다’, ‘나보다 연봉이 많아야 한다’는 기준이 쓸모없는 조건이 되는 순간 내 커리어적 성취를 존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해줄 진짜 짝꿍이 눈에 들어오는 법. 혼자서도 잘 살 확신이 있는 여자에게 친절하고 살가운 연하남은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파트너인지 모른다.

 

CREDIT
    Editor 곽정은
    Design 최인아

이 콘텐트는 COSMOPOLITAN
2013년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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